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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노래 님의 서재입니다.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최근연재일 :
2021.08.02 07:50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8,234
추천수 :
231
글자수 :
613,867

작성
21.07.13 07:50
조회
42
추천
2
글자
11쪽

97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마법사란 본디 방어엔 능하지만, 공격은 약한 자.

사람 대 사람으로 싸운다면 모를까 군대 대 군대로 싸우면 이 공식이 일반적이다.

마법사가 많은 엘렌 성이 이렇게 오래 버티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놈이다! 변수가 다가온다!”

“총병은 쏘면서 물러나!”


아무리 보병이라도 한둘쯤은 마 엘구룬을 갖고 다니기 때문에

마법사와 보병이 부딪히면 높은 확률로 마법사가 진다.

거기에 전쟁을 나가면 보병뿐만 아니라 기병, 총병 등도

마법사를 상대하려고 마 엘구룬을 하나씩은 갖고 다닌다.


일단 갖고만 있으면 웬만한 마법은 다 막는 만큼

마 엘구룬은 마법사에게 쥐약이나 다름없다.


“방패병! 방패병은 어딨어!”

“방패병이 가장 먼저 도망치면 어떡해!”


물론 공격이 마 엘구룬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위즈한테는 상관없는 말이다.


사슬이 도망치던 병사들을 덮치자

병사들이 일제히 마 엘구룬과 무기를 같이 들지만,

사슬에 닿은 마 엘구룬은 그 자리에서 깨지고 병사들은 그대로 꿰뚫린다.


“최대한 나무가 많은 곳으로 도망쳐라! 놈도 숲을 쉽게 돌아다니지 못한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아사르군더니움 군이 도망치던 방향에 창이 솟더니

나무가 공중에 뜬다.

적들이 당황하는 사이에 위즈는 사슬을 이용해 나무 위로 훌쩍 뛴다.


“위다! 놈이 위로 갔다!”

“방패병들! 돌아와서 머리 위로 방패를 들어!”


방패병들이 죽기 싫다는 표정으로 다시 돌아오더니 방패로 하늘을 가린다.

위즈가 공중에서 날린 사슬이 방패에 부딪혀 불꽃을 튀기고

방패 사이로 파고든 사슬에 병사 몇이 꿰인다.

그리고 위즈가 다시 착지하려는 순간에 적 중 하나가 외친다.


“지금이다! 공격!”


총병들이 위즈가 발을 딛는 곳으로 일제히 총을 쏜다.

하지만 작은 폭발음이 연달아 울리더니 위즈에게 닿기 전에 공격이 사라진다.


“방패병! 마법병!”


후퇴를 포기한 건지 위즈가 새로 만든 공터에

아예 제대로 진을 치려는 것 같기에 원하는 대로 제대로 마주해준다.

방어 준비를 마친 적과 혈혈단신인 위즈.


“차라리 도망치지 그랬어.”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적을 쫓아 꾀죄죄한 위즈가 조용히 말한다.

말투와 달리 얼굴은 피로에 절어 푸석푸석하고 눈은 말라서 얼굴을 잔뜩 찡그린다.


“그러면 다른 놈들처럼 살 가능성이 있기는 했는데.”

“당신의 술수는 이미 다 알고 있어.”

“술수?”

“마력으로 방어막을 만들어서 못 도망치게 하잖아? 이미 많이 봤거든.”

“그래? 전부 없앴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생각해보면 적들이 알 법도 하다.

피곤해서 주위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니까.


“그래서, 그렇게 자세를 잡으면 날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공터가 만들어졌다고 해도 어차피 사슬로 파헤친 좁은 공간이다.

여기에 소대 하나가 진을 쳐봤자 얼마나 잘 칠까.


“전원 공격 준비!”


방패병을 앞세워 돌진하고 총병이 뒤에서 엄호할까?

아니면 총병만 공격하고 다들 방어에 치중할까?

출신 학과가 학과인 만큼 호기심이 생기기는 하지만,


“공······!”


이를 악물고 발끝으로 땅을 가볍게 두 번 두드리자 사슬들이 땅에서,

나무에서 솟아나 순식간에 적들의 머리를 모두 꿰뚫는다.


혼자 머리를 내밀고 명령하던 적 지휘관은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위즈를 노려보다가

사슬이 뽑히자 주저앉는다.


“후.”


무거운 한숨과 함께 손을 털고 시체 더미에 다가간다.

방어막을 탈출하려던 적도 모두 죽었으니

그대로 벽을 없애고 적 지휘관의 몸을 뒤져 지도를 찾는다.


위즈가 혼자 숲에 있는 모든 적을 무찌르고 다니자

리나를 찾으려고 뿔뿔이 흩어져 진을 세웠던 적은 조금씩 모이기 시작했다.


프레그의 어리석음으로 식량을 자급자족해야 했던 전쟁 초반과 달리

지금은 모두 모여도 식량 배급에 어려움이 없는 모양이다.


아니, 오히려 모이지 않으면 식량을 찾기 힘들 정도로

위즈가 수를 줄여놓았다는 이유도 있지만.


‘없나?’


그리고 위즈가 갖고 있던 지도에는 적이 모인 본부의 위치가 안 나와 있다.

당연히 적들이 지도에 나온 대로 있을 줄 알고 당당하게 나왔는데.

위즈는 혹시 몰라서 계급이 높아 보이는 다른 병사들도 뒤져본다.


다행히 부관 정도 될 것 같은 자가 품에 종이를 갖고 있었다.

팔다리가 덜렁거리는 시체를 던져두고 한쪽 귀퉁이가 피에 젖은 지도를 펼친다.


아사르군더니움 군 작전 계획도.


지도도 살펴보고 조금 쉴 겸 한쪽에 자리를 잡고 나무에 등을 기댄다.

제대로 눈도 못 붙여 흰자가 벌써 붉게 변해 눈을 제대로 뜨기도 힘들다.


‘적이 대충 여기, 여기······.’


지도를 빤히 쳐다보다가 옆으로 툭 내리고 한숨을 쉰다.

피곤해서 머리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다.

3일째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싸운 탓도 있지만,


- 너만 없었으면.

- 잔인해.


싸울 때도, 적을 해칠 때도 그 생각이 들어 죄책감에 몸을 가눌 수가 없다.

언제 사라졌냐는 듯 다시 돌아온 감정은 위즈를 계속 괴롭힌다.


“으아아아.”


얼굴을 쓸어내리고 이상한 소리를 낸다.

그러다 툭 내린 오른손에 나무 뒤쪽에 쓰러져있던 시신의 손이 닿자

귀찮다는 듯 툭 쳐서 치운다.


자신이 시체로 만든 적을 봐도 아무렇지 않다.

피로에 찌든 머릿속에 남은 건 오직 ‘리나를 위해서’라는 말뿐.

죽은 적을 동정하고 살상을 반성할 기운조차 없다.


평소 같으면 감정이 없더라도 이렇게 적을 해치려 들지는 않았을 텐데.

감정이 잠깐 돌아온 덕에 더욱 맹목적으로 싸울 수 있게 되었지만,


이게 정말 좋은 걸까.


이제 제발 한곳에 모여 있으면 좋겠는데.

너무 피곤해서 관자놀이가 아프다.

잠시 눈을 붙이고 싶지만,

이대로는 약속 날짜 전에 끝내야 한다는 불안감에 잠도 제대로 못 잔다.


여기서 더 늦어지면 리나를 못 떠나보낼 것 같다.


지금 목표는 리나에게 말한 날짜까지

숲에 있는 모든 아사르군더니움을 섬멸하고

리나를 안전하게 성으로 데려가는 것.


당연히 성을 포위한 적도 같이 처리해야 한다.


‘혼자서 성을 구원하는 건 힘들지만, 적어도 싸우고 있으면 라스가 호응하겠지.’


피곤해서 아무 생각도 하기 싫은데 머릿속은 계속 시끄럽다.

시간이 촉박하다는 강박감에 가슴 한구석이 계속 답답하다.


“안 돼, 안 돼. 정신 차리자.”


손을 쥐었다가 펴고 이빨을 부딪치며 어떻게든 정신을 붙잡고 다시 지도를 쥔다.

적이 있는 곳은 대략 지대가 높은 곳.

다행히 몇 번 다녀본 적 있는 곳이라 길을 헤맬 리 없다.


“그리고 본부 주위에 여러 부대가 흩어져서 호위를······.”


계속 혼자 중얼거려도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는다.

눈을 뜬 채로, 글을 읽으면서 꾸벅꾸벅 조는 기분.


“흩어져서 호위를······.”


다시 이를 악물고 읽어봐도 앞만 흐릿해진다.

몸에 힘이 빠져 그대로 다시 하늘을 본다.


적이 어디에 숨었는지 모르는 만큼 잠도 참고 계속 싸웠다.


학교에 다닐 때도 이 정도로 무리해본 적 없었고

이렇게 될 걸 예상하면서도

위즈는 리나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했다.


리나가 목숨을 구해줬던 만큼

리나가 없어도 혼자 얼마든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하니까.


하지만 위즈는 리나의 생각보다 훨씬 더 약하다는 걸 리나는 알고 있을까?

그 와중에 지도 날아갈까 고이 접어서 품에 넣고 그다음에야 팔을 툭 내린다.

숨을 크게 내쉰다.


‘조금만 쉬자. 조금만······.’


나뭇잎 사이로 내려오는 햇빛.

바닥도 등받이도 딱딱해서 자고 일어나봤자 온몸이 쑤실 게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더 싸울 수도 없다.

눈을 약간만 뜨고 멍하니 위를 보는데 갑자기 어두워진다.


“토루마.”


그렇게나 보고 싶던, 그렇게나 만나고 싶던,

그렇게나 머리끄덩이를 잡아 후려치고 싶던 상대가 뜬금없이 눈앞에 나타난다.

아무 말 없이 자신을 쳐다보는 토루마에게 위즈가 잠긴 목소리로 말한다.


“아직은 아니야. 지금 영원히 잠들 생각은 없어.”


역광 때문에 얼굴은 안 보이고 너무 앞뒤 맥락 없이 나타나서

진짜인가 싶지만, 이내 생각을 고친다.

원래 토루마는 그런 자였다.


“그니까 내가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싶을 때 깨워줘. 적이 나타나거나 할 때.”


그리고 눈을 감다가 마지막에 덧붙인다.


“이왕이면 그냥 직접 적을 쫓아내 주고.”


눈앞에 보인 게 진짜 토루마인지 그저 피로에 본 환상인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 토루마는 그 말을 들었다.


“그래.”


꿈결에 들은 그 목소리에 위즈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가 내린다.

그리고 고개를 팍 쳐든 불편한 자세로 잠에 빠졌다가,



******



“헉!”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정신을 차린다.

벌써 깜깜해진 하늘.

잠시 눈만 감는다는 게 푹 자 버렸다.


‘잠깐만, 짐은?’


일단 짐은 물론이고 품에 넣어둔 지도도 사라지지는 않았다.

자는 사이에 누가 다가오지는 않았다는 말인데.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얼마나 잤지, 나?’


주위를 둘러봐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다.

하늘은 이미 달이 떠 있고 별을 봐도 어제 하늘이 어땠는지 기억이 안 난다.


‘설마 하루하고 몇 시간 더 잤나? 그러면 약속은? 빨리 놈들을 없애야 하는데?’


우선 짐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현기증에 다시 주저앉는다.

급하게 일어나느라 앞이 새햐얘지지만, 그래도 억지로 다시 몸을 일으킨다.


‘빨리, 지금이라도 놈들을,’


“안 늦었으니까 진정해.”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버둥거리는데 갑자기 앞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까 위에서 말했던,


“······토루마?”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우고 싶다는 그 목소리.

그렇게 찾아도 안 나타나던 토루마가 갑자기 앞에 나타났다.


“갑자기는 아니지. 아까 너 잠들기 전에 나타났잖아.”

“그게 진짜 당신이었어?”


피곤에서 헛것을 봤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갑자기 왜 내 앞에 나타난 거지?”

“네가 깨워달라면서?”

“말고. 그 전에.”

“아아, 잠들기 전에?”


그렇게 말하더니 씩 웃는다.

안 그래도 무서운데 어두운 숲 속 달빛 아래에서 저러니 더 무섭다.


“그냥, 네가 계속 날 찾기도 했고 약속도 있고, 무엇보다,”


뜸을 들이기에 위즈가 똑같이 반복해준다.


“무엇보다?”

“큰일을 하려는 자식을 떠나보내는 기분이랄까?”

“나한테는 별로 큰일이 아닌데.”


물론 숲에 있는 적 모두를 무찌르고 성까지 리나를 데려가는 일이기는 하나

위즈에게 직접 마법을 가르친 토루마라면 모를 리가 없다.


“그게 아니야. 나도 당연히 네가 저 사람들을 이길 수 있다는 건 아는걸.”

“그럼 뭐지? 뭐, 리나를 떠나보낸다는 게 나한테 큰일이다, 이건가?”

“그렇게 그 아이가 소중해?”


토루마가 비웃자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어차피 말싸움해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니 그만둔다.


“그래서 대체 큰일이 뭔데?”

“알고 싶어?”

“알고 싶게 말해놓고 그렇게 얘기하지 마시지.”


말 안 하겠다는 건 확실히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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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94화 21.07.10 38 2 11쪽
94 93화 21.07.09 38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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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91화 21.07.07 43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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