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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노래 님의 서재입니다.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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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최근연재일 :
2021.08.02 07:50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8,222
추천수 :
231
글자수 :
613,867

작성
21.07.07 07:50
조회
41
추천
2
글자
11쪽

91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어느 오후.

숲 어딘가에서 나무가 무너진다.

무너지던 나무는 다른 나무에 부딪혀 부러뜨리고,

그 부러진 나무도 또 다른 나무를 부러뜨린다.


“어······.”


의도치 않게 어느새 목재가 잔뜩 쌓였다.


‘차라리 공터 주위에 있는 나무를 벨 걸 그랬나.’


굳이 정원에서 이 멀리까지 나올 필요는 없었을 텐데.


위즈는 일단 나무, 아니 목재를 더 잘라서 운반하기 편한 크기로 만든다.

그래도 여전히 운반 자체가 힘들다는 문제는 남아있다.

뭔가 한 번에 옮기기 쉬운 그런 방법 없을까.


‘나무만 순간이동 하는 방법은 모르고, 내 마법으로 없앴다가 다시 만드는 건 내 분야가 아니고.’


이리저리 나뒹구는 목재를 멍하니 보고 있다가 입맛을 다시고

사슬로 가지런히 모은다.

그러고는 사슬로 지게를 만들어 그 많은 나무 조각을 등에 진다.


“어, 어, 어,”


몸에 마법을 써서 힘은 세졌으나 발이 땅으로 조금씩 들어간다.

그래서 조금 중심을 잡으려고 움직이니,

그대로 옆으로 넘어지며 목재가 쏟아진다.


멍하니 목재를 노려보는 위즈.

차라리 목재를 하나씩 던져 방어막 근처로 날릴까 생각도 하지만,


‘방어막에 부딪히면 목재는 괜히 사라지고 적들은 날아다니는 나무로 오두막 위치를 눈치채 신무기를 다시 들고 오겠지.’


물론 이미 습격받기도 했고 그런 만큼 적도 오두막 위치를 이미 알고 있을 것이며,

신무기로 방어막을 뚫어봤자 위즈와 리나한테 의미 없이 목숨만 낭비한다는 걸 적들도 알겠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등에 목재를 가득 싣고 좀 더 생각해봐도,


“후······.”


역시 방법은 지게로 옮기는 것뿐.

최대한 중심을 잡은 뒤 목적지인 정원 입구를 떠올린다.

목재와 몸이 하나가 될 수도 있어 불안하기는 해도,


‘그렇다고 하나씩 옮길 수도 없으니.’


자기 실력을 믿고 시도해보기로 한다.


“그런데 왜 가져온 건 이것뿐이야?”


라는 이야기를 다 들은 리나가 팔짱을 끼고 위즈에게 묻는다.


“나도 뭐, 오다가 사슬이 풀릴 위험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정말 그럴 줄은 몰랐지.”


중량 초과라서 그럴까.

위즈는 정원 입구가 아니라 조금 떨어진 곳 허공에 나타났다.

나무를 묶은 사슬은 사라진 채로.


“그래도 뭐, 나무랑 하나가 되지는 않았으니까 다행이야.”

“하나가 되면 어떻게 해?”

“병원 가야지, 뭐. 그래도 꽤 흔한 상황이니까.”

“어쨌든, 멀쩡하면 다시 찾아왔어야지.”

“나도 그러려고 했어. 그런데 나무들이 전부 이상한 곳으로 날아갔는걸.”


오두막과 나무를 베던 숲 사이에 나타나서 그런지

나무 조각들은 관성을 못 이기고 조금 더 날아가다가 이리저리 부딪혀 흩어졌다.

그리고 위즈는 더 멀리 날아가 바위에 부딪혔다.


다행히 나무 꼭대기 부근에서 나타나

목재가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별로 보이지도 않았고,

위치 때문에 방어막에 부딪혀 사라지지도 않았다.


“아마 방어막에 부딪혔으면 적들도 방어막 위치를 눈치채고 왔을 거야. 그거에 비하면 다행이지.”

“뭐, 그래도 처음부터 많이 베었는지 가져온 것만 해도 많기는 한데,”


리나가 위즈 등 뒤를 흘끔 보며 말한다.


“정말 저거면 충분해?”

“괜찮겠지. 부족하면 더 베어오면 되니까.”

“이왕이면 그냥 베어놨던 거 찾아와. 또 나무 베지 말고.”

“그래, 그래. 알았어.”


위즈가 웃으면서 리나 머리를 쓰다듬자 손을 탁 쳐낸다.


“안 돼. 쓰다듬지 마.”

“왜? 어째서?”

“빨리. 머리는 다 끝나고 쓰다듬어.”

“이거 오늘 안에 다 안 끝날 거 같은데.”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오늘 못 쓰다듬는 거야.”


위즈의 얼굴이 굳더니 입꼬리가 내려가고 세상 무너지는 표정을 짓는다.


“그렇게 충격이야?”


입을 제대로 닫지도 못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빨리 끝내면 되잖아. 빨리 끝내면 바로 쓰다듬게 해줄게.”

“정말?”

“응. 정말로.”

“나중에 가서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하거나 하진 않지?”

“······뭔가 익숙한데 안 그럴 거니까 걱정하지 마.”


누가 애고 누가 어른인지.

그 말을 듣자마자 위즈는 사슬로 목재 몇 개를 찍더니

오두막으로 뛰어, 아니 날아간다.

날아가는 사이에 목재는 다 다듬어져 평평하게 변하고,

그대로 도착하자마자 옻칠을 담은 통에 빠진다.


“위즈, 잠깐만! 그거 그렇게 막 넣으면 안 돼! 아니, 그러지 말라고 위즈가 나한테 먼저 얘기했잖아!”


그 꼴에 리나가 기겁하며 옻칠하던 붓을 들고 위즈 뒤를 따라 뛰어간다.


“저건 뭐, 동물 조련도 아니고.”


그 모습을 보며 토루마가 한쪽 턱을 괴고 중얼거린다.

즐겁다는 말투이나 정작 얼굴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자네가 무슨 짓을 해도 저들은 변하지 않는군. 다른 흐리프키르스와 달라.”

“그러게. 내 예상보다 더 대단해.”

“저 정도면 자네의 계획을 벗어난 것 아닌가? 물론 결말이야 자네가 원하는 대로 되겠지만.”


위즈는 오두막 위에 올라가 새 지붕을 만들고 있고,

리나는 아래에서 장갑을 낀 채 나무에 옻을 묻히고 있다.


“그래도 보기 좋으니까 됐어. 아직 부작용이 일어날 정도는 아니니까.”


처음에 리나를 위즈에게 이끌 때 서로 호의를 갖도록 이끌기는 했지만,

마치 몇 년 알고 지낸 사이처럼 저렇게까지 가까워질 줄은 몰랐다.


“내가 흐리프키르스가 아니라서 다행이야.”


토루마가 가슴에 손을 얹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흐리프키르스였으면 저 둘이 불쌍해서라도 계획을 철회했겠지?”


토루마를 의미심장한 눈으로 내려다보고는 다시 둘을 보며 말한다.


“그렇다면 내 계획도 망가졌을 테고, 정말로 싸웠을 게다.”

“응. 이번에도 또 세상이 멸망했을 거야.”


두 번의 실패에 지프메는 망토 조각을 직접 거둘지도 모른다.

그 뜻을 세세히 알지는 못한다 해도, 망토 조각끼리 싸우는 걸 바라진 않을 테니.


“리나! 옻칠 좀 더 묻혀줘!”

“그러면 뚝뚝 흐르는걸!”

“응! 뚝뚝 흐를 정도로!”


몸에서 나온 사슬을 뼈대에 묶어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


“그랬다간 내가 옻칠에 맞는단 말이야!”

“지금까지처럼 하면 지붕 썩어!”


불탄 오두막을 보수하겠다고 마음을 맞추더니 정작 손이 안 맞는다.

적과 싸울 때는 그렇게 잘 맞았으면서.


“자네를 따라 저 둘을 보다 보니 나도 호기심이 생기는군.”

“호기심?”


아라가 눈을 반짝인다.


“저 아이가 과연 어떻게 이별을 고할지 말이야.”

“위즈가 언니를 떠나보낼 거 같아?”

“내 생각에는 그렇다네. 자네는 다른가?”

“응. 내 생각에 위즈는 분명 언니를 끝까지 붙잡고 있을 거야.”


리나를 곁에 두기 위해 싫은 기억까지 끄집어내며 다시 학살을 저질렀다.

상대가 토루마라고 해도 리나를 곁에 둘 수만 있다면 싸우려 들 위즈.

그 정도로 떨어지는 걸 싫어하는데

위즈가 정말로 리나한테 크레센타로 돌아가라고 말할까.


“저 아이는 말할 수밖에 없네.”

“왜?”

“자네를 알잖나.”


누구보다 새까만 속.

토루마에게 마법을 배운 위즈라면 그 안이 얼마나 끔찍한지 모를 리가 없다.


“자신이 자네의 계획에 들어간 것도 알고, 자네가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알고 있네. 그런데 그걸 알고도 자신이 가장 아끼는 아이를 곁에 두려고 하겠나?”


아라가 지금까지 봤던 흐리프키르스 중

아무도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아끼는 이를 위험에 빠뜨리려 하지 않았다.

하물며 사이가 유난히 좋은 위즈와 리나인데,

위즈가 과연 자기 욕심을 앞세우려고 할까?


“하지만 저 아이가 가진 감정은······.”

“나도 알아. 허나 처음은 자네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지금도 그럴까?”

“그래서 내 손에서 벗어났다고 한 거야?”

“완전히는 아니지만.”


입을 삐쭉 내밀고 리나와 티격태격하면서도 즐거워하는 위즈를 노려본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자네가 떠나보내도록 종용하고 있지 않나.”

“내가 언제?”

“자네 다음 계획을 생각해보게. 난 오히려 그걸 보고 계획을 바꾼 줄 알았네만.”


그 말에 할 말이 없어진다.


“물론 흐리프키르스와 한 약속 따위야 우리에게 지킬 의무 따위 없지만, 자네가 아끼는 데스트리아누스 테 살베니움과의 약속을 어기는 것 아닌가?”

“흐리프키르스와의 약속보다, 데스트와의 약속보다 위대하신 분의 안위가 더 중요해.”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라도 위즈의, 리나를 향한 긍정적인 감정을 키워야 한다.

어떤 고난과 역경이 와도 손에서 놓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내기 하나 할까.”

“내기?”

“그래. 자네의 그 계획을 겪은 뒤에도 저 아이가 아가씨를 놓을지 말지 말일세.”


미간을 좁히고 생각해본다.


“내기라면 뭔가를 걸어야지. 뭘 걸 건데?”

“만일 자네 말대로 끝까지 안 놓는다면 내 계획은 포기하겠네.”

“포기한다고? 그러면 내 계획도 무산되는데?”

“아니. 내 계획을 포기하더라도 자네의 계획은 도와줄 생각이야. 자네가 어떤 계획을 세우든 별말 않고 도와주지.”


확실히 혹하는 제안이다.

아라 말대로 하면 처음에 세운 계획보다 훨씬 더 빨리 목표를 이룰 수도 있다.


“그럼 내가 지면? 지면 뭘 내놓아야 해?”

“내놓을 필요는 없네. 난 내 계획이 제대로 이뤄지기만 하면 되니까.”

“정말로?”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어.”


아라가 검지를 든다.


“조건?”

“이번 계획이 실패하면 다시는 저 둘을 위협하지 마.”


절대로, 어떤 작전이 생각나도,

둘에게 손대지 마라.


“물론 기존 계획을 방해하려는 건 아니네. 처음에 약속한 대로 내 계획을 끝내면 곧바로 네 계획이 성공하도록 돕는 건 변하지 않아.”

“대신 네 계획이 성공할 때까지 아무 간섭하지 마라?”

“바로 그거일세.”

“그 정도면 상관없어. 대신 만약 상황이 달라져서 네 계획이 더 늦춰지면 그때는 다시 얘기하자.”


아라가 고개를 끄덕인다.


“좋네, 그 정도면. 만족하네.”


토루마가 손을 내밀자 아라가 맞잡는다.


“위즈! 거기 이상한데 다시 확인해봐!”

“여기? 위에서 보면 괜찮은데?”

“내려와서 봐봐!”


리나 말에 위즈가 풀밭으로 폴짝 뛰어내린다.


“그러네. 정말로 이상하네.”

“뭐가 문제일까?”

“글쎄. 평소에 오두막 지붕 위까지 볼 일은 없어서 기억나지도 않고.”


위즈가 성가시다는 듯 머리를 벅벅 긁는다.


“날도 더운데, 일단 쉬었다가 이따 선선해지면 하자.”

“그럴까?”


리나의 말에 화색이 돌며 같이 따로 빼놓은 짐 더미 곁으로 간다.

오두막 바로 옆에 있는 나무 아래.

어느새 그림자가 짧아졌다.


“자네는 자네가 이길 거로 생각하는가?”

“응.”

“어째서인가?”

“저 아이를 오래 봤으니까.”


아라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토루마가 묻는다.


“넌 네가 이긴다고 생각하고?”

“그렇다네.”

“왜?”


위즈를 응시하는 아라의 눈.

아라는 위즈가 앞으로 할 선택에서 정해질 운명들이 모두 보인다.

누구나 다 그렇지만, 토루마가 건드려서 깨진다는 것이 안타까운,

그런 행복한 운명들.


“흐리프키르스를 오래 봐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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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107화 21.07.23 37 2 12쪽
107 106화 21.07.22 32 2 12쪽
106 105화 21.07.21 35 2 11쪽
105 104화 21.07.20 35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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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94화 21.07.10 38 2 11쪽
94 93화 21.07.09 38 2 11쪽
93 92화 21.07.08 39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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