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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그라토 서재

헌터의 극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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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니그라토
작품등록일 :
2018.07.21 07:53
최근연재일 :
2018.07.21 16:00
연재수 :
9 회
조회수 :
1,527
추천수 :
17
글자수 :
47,783

작성
18.07.21 07:55
조회
447
추천
4
글자
11쪽

1.수호자의 귀환

DUMMY

헌터의 극의








1.수호자의 귀환


김준호는 빈정거리는 투로 말했다.


“나 보고 돌아가라고?”


침착한 목소리로 엘프 여왕 유넬이 대답했다.


“돌아가세요.”


“내가 여기 온 지가 벌써 100년이야. 내가 아는 사람들은 다 죽었을 거고, 내게 유산이 있을 리도 없어. 그런데 돌아가라고? 너무 하는 거 아냐?”


100살 넘게 먹은 사람치고 김준호는 너무 젊어 보였다.


김준호가 처음 이곳 일데아 세계로 왔을 때와 겉보기엔 거의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몇 차례에 걸쳐 환골탈태를 한 김준호였다.


아예 지구에서 왔을 때와 같은 모습인 건 아니었다.


김준호는 그때와 거의 비슷한 얼굴이었지만 어딘가 활력이 넘쳤다. 김준호는 근육이 잘 붙은 잘 생긴 사내였다. 온몸에 넘실거리는 압도적인 거대한 힘이 김준호를 그렇게 보이도록 했다.


유넬이 대답했다.


“이곳 일데아 세계와 지구는 세계 시간대가 달라요. 엇갈리고 있었거든요. 김준호님이 돌아가면 하루만 지난 때일 겁니다.”


“호오!”


유넬은 함부로 거짓말을 하는 엘프는 아니었다.


물론 사기치는 것일 수도 있다고 김준호는 문득 생각했지만 그런 식이라면 이 세상 자체를 믿을 수 없는 것이지 별 수 있겠는가. 김준호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왜 날 굳이 지구로 보내려고 하지? 아니지. 이건 좋아. 아주 좋다고. 설령 유넬이 안 좋은 의도래도 날 고이 돌려보낸다면 좋아. 엄마를 만날 수 있구나!”


엄마를 생각하자 김준호는 저절로 눈물이 났다.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혹자에 따르면 엄마의 빈자리는 처자식으로는 채울 수 없다고 하던가. 잃은 것으로만 생각했던 엄마를 생각하자 일데아에서의 모든 부귀영화가 하찮은 것으로 느껴지는 김준호였다.


김준호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내 능력은 통하지 않겠지?”


“그렇겠죠. 일데아 문장 정렬은 못 해도 몸은 확실히 똑 같을 거고요.”


“올림픽에 나가도 쉽게 우승할 이 육체가 그대로라. 나쁘지 않군.”


김준호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금괴 몇 점과 보석 몇 웅큼을 꺼내 허리춤의 주머니에 되도록 많이 집어넣었다. 순도가 높은 금괴요, 질 좋은 보석이니 제값을 두둑이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공간 주머니는 지구로 가면 안 될 거라 생각하고 쟁여놓는 김준호였다.


하지만 확실하게 해둬야 한다고 김준호는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엘프 왕국의 준왕이자 인간 세계의 수호자라는 내 지위와 명성을 버리고 돌아가는 건 아쉽군. 돌아가도 다시 올 수 있는 거겠지?”


“그걸 말씀 안 드렸군요. 돌아오실 수 있을 거예요.”


유넬이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엘프다운 티 없이 맑고 아름다운 웃음이었다. 저 미소 뒤에 아직 말하지 않은 것들이 숨어 있곤 했던 걸 김준호는 숱하게 겪어 왔다.


지금까지야 엘프들이 거의 전적으로 김준호에게 우호적이었기에 문제 삼을 이유가 없었던 것 뿐이다.


“왔다 갔다 할 수 있으면 나야 좋지. 나 혼자 양쪽 세계 보따리 장사를 독점할 수 있다는 건데 금방 부자가 되겠네. 부자로 살면 지구에서 누릴 수 있는 게 더 많으니까 지구에 본부를 둬야겠네.”


김준호는 그렇게 말하면서 웃다가, 엘프답게 아름답고 젊어 보이는 여자인 유넬을 바라보고 말했다.


“유넬, 돌아가려면 필요한 게 있을 텐데 언제 준비되지?”


“거의 다 끝났어요. 5시간만 기다리세요.”


“좋아! 잠깐 나갔다 와도 되지?”


“5시간이 지난 뒤로는 언제든 돌아가겠다고 말씀만 하세요.”


“알았어!”


김준호는 들뜬 마음이 되었다.


김준호는 엘프 궁전 밖으로 나가 마음속으로 문장을 정렬했다. 이 세계와 조율되는 일데아 문장 정렬이 통하는 존재를 이곳에서는 헌터라고 불렀다.


김준호의 헌터 자질은 탁월하다고 했다. 그래서 엘프들이 100년 전에 김준호를 이곳 일데아 세계로 소환한 것이라 했다. 헌터는 일데아 문장 정렬이 배우지 않아도 그냥 되는 형용할 수 없는 경지를 뜻했다.


김준호의 몸에서 불길이 치솟아 올랐고 바람에 둘러싸여 움직였다.


김준호의 몸이 극도로 강화되기도 했다.


모두 김준호가 일데아 문장 정렬을 통해서 기인시킨 바였다.


지구에서는 헌터로서 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니 아쉬웠지만, 세상에 일이란 게 어디 좋은 측면만 있는가 말이다.


김준호는 일데아에 자손을 남기지는 않았다. 21세기 초반 한국에 살던 김준호의 눈엔 일데아 인간들의 노예제 사회는 너무 미개해 보였던 것이다.


김준호는 24살 때 왔었다. 첫 번째 예비군 훈련 끝난 다음날에 기분이 꿀꿀해서 방에 누워 있다가 갑자기 풍경이 바뀌었었다.


김준호가 엘프 왕국에서 준왕으로 만족한 것은 김준호가 왕 업무를 수행할 정도로 사회성이 높지 못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사회성이 그리 특출나지 않음에도 일데아 인간 세계에서 수호자로 떠받들릴 정도로 김준호는 강력했다.


오죽하면 일데아 세계 사상 최강의 헌터라 불리겠는가 말이다.


김준호는 여러 엘프들에게 자신이 돌아간다고 이야기하면서 다녔다.


이곳은 엘프 왕국의 수도.


김준호가 엘프 왕국이 유지되는데 도움이 된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김준호는 엘프들 사이에서도 영웅이었다.


정이 많은 엘프들은 훌쩍거렸고, 몇몇 엘프 여자들이 김준호에게 뽀뽀를 하거나 포옹을 해오거나 했다. 엘프들은 다들 개성은 있었지만 젊어 보이는 미남 미녀들이라 김준호는 엘프들을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았기에 이 같은 피부 접촉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잠자리를 가져본 엘프들도 많았다. 엘프들은 성생활이 꽤나 자유로웠다.


지구에 가면 많은 여자들과 어울리는 건 힘들 것이다. 꽃뱀이야 마음만 먹으면 쉽게 만날 수 있을만한 경제력을 갖출 여지는 있어도 말이다.


그렇게 김준호는 멋대로 생각하면서 이곳 광장의 톱니바퀴 시계를 틈틈이 보았다.


5시간이 의외로 길게 느껴지는 김준호였다.


유넬이 뭔가 음모를 꾸미는 거 같았다. 김준호가 지금까지 당해 본 엘프 뒷통수는 한 결 같이 김준호에게 나쁘지 않아서 이번에도 그냥 넘어간다 싶다가도 언제까지 엘프들이 사기치는 것이 김준호에게 이롭다는 보장은 없었다. 뭐 그렇게 따지면 이 세계 자체가 희한하다고 할 수 있었다. 김준호는 가볍게 생각하기로 했다. 모든 게 운이었다. 그저 사람은 할 수 있는 바를 다하고 나머진 하늘에 맡길 뿐이었다.


김준호는 엘프 광장 한켠에 있는 드워프 식당에 들어갔다.


“한스 주인장! 스테이크 좀 주게나!”


드워프 한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땅딸막하고 수염을 기른 전형적인 드워프인 한스가 호탕하게 웃었다.


엘프는 다 좋은데 채식만 한다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김준호가 우겨서 드워프 한스가 이곳에 식당을 열도록 했었다. 한스의 식당은 장사가 잘 되었다. 드워프들이나 인간들도 이젠 꽤나 왕래하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김준호는 스테이크를 먹었다. 두껍고 육질이 훌륭했다. 소스 맛도 기가 막혔다. 뭐 지구에 가도 비슷한 등급의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가난했던 김준호였지만 지금은 금괴와 보석을 챙겨가니까 말이다.


김준호는 한스에게 금괴 하나를 지불했다.


“기념이야. 거스름돈은 주지 말게.”


황금을 좋아하는 드워프답게 한스가 호탕하게 웃었다.


배도 채웠겠다 시간도 얼마 안 남아서 김준호는 유넬에게로 갔다.


“자 날 보내줘.”


“따라오세요.”


유넬에게 김준호는 인도되어 갔다.


그곳엔 유넬을 비롯한 몇몇 엘프 군주들이 있었고 여러 엘프 마법사들도 있었다. 다들 낯익은 얼굴들이었다. 엘프 왕국은 군주들이 여럿 있었으니 실질적으로는 공동 통치인 과두정이고 그냥 칭호만 군주인 것이었다.


“모두들 내게 도움을 준 고마운 엘프들이네. 나한테 말을 낮추라고 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김준호와 엘프들은 서로에게 인사했다.


마법력이 김준호에게 쏟아졌다.


눈앞이 흐려졌다.


다시 눈이 밝아졌을 때 낯설어 보이는 좁은 방이 보였다.


김준호는 몸을 일으켰다.


쭉 둘러본다.


김준호는 핸드폰을 찾아 켜보았다.


날짜를 본다.


날짜를 봐도 정말로 유넬이 말했던 그 다음날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김준호는 주머니를 더듬거렸다. 금괴들과 보석들을 꺼내 보았다. 크고 영롱하게 빛나는 모습을 보니 배가 불러오는 느낌이었다. 김준호는 그것들을 가방에 옮겨 담았다.


김준호는 일데아에서 입고 온 옷을 벗어서 옷장 안에 넣은 뒤 옷을 꺼내서 차려 입었다.


김준호는 부엌으로 나갔다.


“일찍 깼구나.”


“엄마.”


기억 속에 희미해져 가던 얼굴이 보인다.


김준호는 엄마를 가볍게 껴안았다. 엄마가 맞는 것이 확실했다. 김준호의 엄마답게 포옹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자주 하던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너 덩치가 이렇게 컸니?”


“예비군 훈련 때 엄청 많이 먹었어요. 요즘 잘 나온다고요. 엄마도 왜 알잖아요. 군대 가면 초반에 엄청 살 붙는 거요.”


일데아로 간 날이 예비군 훈련받은 다음날이었다는 건 일데아 세계에서도 김준호에게 똑똑히 기억나던 일이었다. 엄마를 호강시켜 드려야겠다고 김준호는 결심했다.


김준호는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물구나무서서 팔굽혀펴기를 해보았다. 한없이 가볍게 되는 걸 보니 일데아에서의 체력도 유지되는 중인 것이다. 일데아는 지구와 거의 같은 중력을 가진 이세계의 행성이었다.


김준호는 그러고 나서 잠시 앉았다. 엄마에겐 그저 어제 잤다가 오늘 일어나서 한 번 안아준 아들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김준호에겐 100년 만에 본 엄마였다. 김준호는 엄마를 떠올리면서 한 번 많이 눈물을 흘려 보았다.


김준호는 그런 뒤 담배를 찾았다.


일데아엔 담배가 없었다. 얼마나 피우고 싶었던가. 고등학교 졸업한 이후로는 일탈의 상징이 아니라 돈과 건강을 까먹는 구름과자에 불과한 담배였지만 가끔 피우고는 싶었다.


베란다에 나와서 김준호는 라이터를 꺼내려다가 습관적으로 마음속에 일데아 문장을 정렬시켰다. 일데아 문장이 정렬되는 동안에는 시간이 멈추는 효과도 있어서 김준호가 꽤나 좋아하기도 하는 순간이었다.


김준호의 손가락 끝에서 불꽃이 일렁이면서 담배에 불이 붙었다.


“응?”


마나의 진동이 연립주택 너머 곳곳에서 느껴졌다.


일데아 문장 정렬로 불이 지구에서 나오자 김준호는 잘 됐다고 생각했다. 마나 진동이야 김준호가 지구에 예전에는 못 느끼다가 일데아 세계에서 수련해서 느끼는 걸 거라고 여겼던 것이다. 지구에도 마나가 있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김준호는 다만 이렇게 생각했다.


‘일데아 문장 정렬이 지구에선 안 된다고 하더니만 이 엘프가 또 나한테 사기를 쳤네.’


김준호가 가져온 금괴 순도가 지구 금괴랑 같아야 값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 터였다. 세공도 잘 된 보석들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일데아 기술은 꼭 지구 보다 열등한 것만은 아니었다. 일단 김준호는 그렇게만 생각했다. 우선 인터넷부터 검색해봐야 할 터였다.


마나의 잔잔하지만 불길한 진동이 느껴졌다.


몬스터가 나타났을 때의 마나 일렁임이었다.


김준호는 미간을 좁혔다.


확인해 봐야겠다고 김준호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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