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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가감정에 시달리는 가스검침원의 노트

판타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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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점퍼
그림/삽화
번지점퍼
작품등록일 :
2020.05.31 21:02
최근연재일 :
2021.02.21 22:29
연재수 :
45 회
조회수 :
3,786
추천수 :
441
글자수 :
209,470

작성
20.10.18 09:58
조회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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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글자
9쪽

35화 뒷골목 어벤저스

DUMMY

#



샤샤가 잠깐 화장실을 간 사이 강주가 우진에게 왜 여태 샤샤한테 채동식이 자신의 부친이라는 말을 안 한 건지 슬쩍 물어 보았다.


"딱히 무슨 이유가 있어서 숨기거나 한 건 아냐... 자연스럽게 밝힐 만한, 그런 기회가 마땅히 없었어... 근데 지금 같아선 당분간 얘기 안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네."

"그래? 음... 내 생각엔 뭔가 특별히 불편한 이유가 없다면 이야기를 먼저 해주는 편이 나을 꺼 같은데."


우진이 약간 곤혹스러운 기분으로 친구의 얼굴을 봤다. 일상적으로 늘 횡설수설 어눌하게 말하는 편인 강주가 유난히 비문 없이 간결하고 정확하게 이야기 할 때는 뭔가 꽤 타당한 이유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자주 겪는 일은 아니다.


"딱히 쟤를 믿지 못해서라기보다.... 그냥 습관적인, 니 방식이지?"

"그런가......"

"옛날에 너한테 그런 얘기 들은 적 있어. 인간은 누구도 백 프로 믿을 수 없다. 아니, 믿으면 안 된다. 믿는 순간 서로에게 억압과 굴레가 된다. 뭐 그런... 비슷한 얘기..."

"설마.... 내가 그렇게 감성적이고 단정적인 얘길 했다고?"

"너 임마, 니가 진짜 그랬어, 고등학교 때. 그래서 내가 속으로 쫌.... 슬펐다. 저 새끼 겉은 멀쩡해도 속이 좀 곯아 있구나 하면서..."


우진은 시인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표정으로 강주의 말을 듣고만 있다. 강주는 평소 우진에 대해서 훤히 잘 안다고 자신했는데, 금방 우진의 낯선 표정을 보곤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얼핏 머리를 스치자 짐짓 화제에 집중하며 다시 말을 잇는다.


"나도 저 여자를 백 프로 믿지는 못하지만... 며칠 봤는데...와, 진짜 매일매일 악몽을 꾸더라. 늘 눈물이 범벅이 되어가지고. 심지어 낮잠 잘 때도 꾸는 거 같았어. 근데, 일어나면 저언~혀 내색을 안 해. 눈은 이따마이 부어가지고.... 아휴... 내가 참, 사정은 모르겠지만... 많이 안쓰럽더라. 한편으로 좀 무섭기도 하고. 너무 힘든 일 겪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사람 같아서..."


우진이 잠시간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솔직히 나도 겁난다. 그 일상, 애꿎은 너까지 짊어지게 될까봐...."

"엣! 뭐야,, 채우진... 너는 나, 나를 걱정하고 있었어? 우왓, 이 다정하고 음흉한 자식."


강주가 낯간지럽다는 듯이 몸을 틀며 킬킬거리고 있는데 우진의 표정은 여전히 심각하다. 아닌 게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처신하냐에 따라 몇 안 되는 소중한 사람들마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상상을 하니 며칠 전부터 위장까지 뒤틀리듯이 아팠다.


"암튼, 너는 누가 말려도 갈 데까지 가고 보는 애니까... 그렇게 목숨 걸고 도와줄 바에는 괜히 오해 같은 거 생기지 않도록 뭐든 투명한 게 좋을 거 같아. 갖고 있는 힘 박박 모아서 나쁜 새끼들 혼내줄려면 최대한 서로 합이 맞아야 되고..."


저쪽에서 샤샤가 걸어오는 게 보여서 강주가 말을 멈췄는데 끄트머리만 들은 샤샤가 자리에 앉자마자 말했다.


"나쁜 새끼들 혼내줄 방법은 없어..."

"뭐야, 그런 게 어딨어. 그 자식들 싹 다 찾아서 일망타진 해야지..."

"일망타진? 싹 다 찾아? 우리가 그런 게 가능해...?"

"아니면 윗대가리라도 잡아야지!"

"하아,....."

"다, 당연히 우리 셋이선 어렵고... 일단 증거부터 차근차근 모은 다음에 경찰한테 넘기는 방식으로..."

"일단, 그 사람들 벌 주거나 응징 하는건 우리 목적이 아냐. 우리는 지금처럼 최대한 숨어서 움직여야 돼."


문득 핏물에 잠긴 채 쓰러져 있던 인수를 떠올린 우진은 잠시 이채로운 눈빛으로 샤샤를 가만히 바라보았으나 딱히 입을 열거나 하진 않았다.


"넌 대한민국 경찰을 믿니?"

"믿, 믿거나 말거나 우리가 증거를 어느 정도 모아다 주면 그때는 지들이 알아서 움직여야지, 무슨 똥배짱으로..."

"우리는 아직 아이들의 소재는커녕 정확한 숫자도 파악을 못하고 있어. 당연히 어떤 놈들이랑 어디서 어떻게 있는지도 모르고... 그런데 이걸 이 애매한 상태로 공론화시켜서 터트리고, 당장 대대적으로 수사가 시작된다면.... 제일 먼저 어떤 일이 일어날까?"


강주가 눈만 꿈뻑거리고 있는데 우진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증거를 모두 없애려고 하겠지....."


강주가 바로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있다가 갑자기 퍼뜩 떠오른 생각 때문에 얼굴이 순식간에 사색이 됐다.



#


문산시 조인철의 건물. 그는 미술학원 살인 사건과 관련한 단서를 캐다가 임두한이 서울 남부구치소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영민한 수하 둘을 급파했다.

임두한이라면 잠깐 그의 밑에서도 일했던 놈이라 잘 안다. 입이 무겁고 묵묵히 일을 잘하던 친구다. 최초의 누군가는 웃자고 한 소리였겠지만, 한때 이름을 빗대어 장군의 외손자라는 별명까지 들었었다. 하지만 지가 아무리 입이 무거워봐야 그의 주변 사람들까지 모두 입이 무거울 리는 없다.

조인철은 임두한이 최근 수시로 칼잽이 오형건을 만났으며, 오형건은 이 년 전부터 대양 뭐시기 라는 곳의 이사로 있는, 껄쩍지근한 작자 밑에서 따까리 노릇을 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됐다.


지금 조인철은 강부장, 유상무 등과 함께 수집해 온 CCTV 파일들을 모니터로 보고 있다. 현장을 다녀간 승합차가 마지막으로 머문 곳, 그리고 거기 어디쯤에서 빠져나온 차량들 중 하나를 통해 틀림없이 유라와 예지가 어딘가로 옮겨졌을 것이다.


이제껏 조사한 바로는 차이나타운 인근의 코모도 관광호텔과 대양 F&B 인천지부 두 곳이 유력하다.

조인철은 강부장과 밑의 부하 몇에게 인천지부 쪽을 맡기고 관광호텔 쪽은 유상무에게 맡겼는데, 워낙 껄끄러운 곳이라 자신의 심복들도 함께 보내기로 했다.


"최대한 빨리, 동시에 치고 빠져야 돼. 안 그러면 괜히 양쪽에서 피만 보고 건지는 건 쥐뿔도 없을 수 있어."


신중한 성격의 유상무는 아까부터 걱정이 많은 표정이다.


"그래도 조금 더 저쪽 동향을 정확히 파악한 다음에 움직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 계속 밍기적거리는 바람에 이런 사태까지 온 거 아닌가, 휴.... 지금 니들 탓하는 게 아냐. 언제나 늘 내가 우유부단해서 문제였지.."

"그래도 아직은 좀 무모한 듯합니다. 일단 저쪽은 대략이라도 우리 화력을 꿰고 있는 느낌인데.... 저희는 거의 백지상태나 다름 없..."

"저러다 언제, 애들을 중국 P.L로 넘겨 버릴지 모른다고."


유상무는 더 이상 만류해봐야 소용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입을 닫았다.

조인철은 탁자를 짚고 있는 양 손의 화상 자국을 무기력하게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힘있게 주먹을 쥐었다. 옛날의 괴로운 어떤 일을 떠올린 듯 힘겨운 표정이다.


"살면서.... 인간이 인간에게 해선 안되는 짓을 많이 하고 살았지만.... 그래도 우리 마지막 선은 지켜야 안 되겠나."


뭔가 공감한 듯한 표정의 강부장이 고개를 약간 끄덕거리자 조인철이 살짝 고무된 기색으로 먼저 자리에서 일어선다.


"참, 강부장이 신경 쓰인다던 대양목장은 여기서 멀지 않으니까 내가 한실장이랑 같이 둘러보도록 하지. 이제 됐지?"



#


"채동식 그 사람, 우릴 도와주려고 했어."


샤샤의 말을 듣고 한동안 멍하게 있던 강주는 뭔가 만감이 교차한 표정으로 한시름 놨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우진은 늘 그렇듯 덤덤한 얼굴이었지만 몸은 축적된 스트레스로 인해 일시에 균형이 무너지면서 온 몸에 열이 오르고 있었다.


"사실은 만날려고 했어. 그날, 사고가 있던 날....."

"아.... 이럴수가..... 어떻게, 그럼 혹시 그날 사고도...."

"직접 현장을 본 건 아니지만.... 나도 니네들 상상처럼 우연한 사고가 아닐 거라고 생각해."


강주가 너무 기가 막히고 말문이 막혀서 친구의 얼굴을 선뜻 바라보지도 못하고 있다. 우진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지만 곧 평정심을 찾고 이내 냉정한 얼굴로 돌아왔다.


"그럼 그 회색 벤에 샤샤도 타고 있었던 거야?"

"아니, 인수가... 그날... 위험하니까 자기가 혼자 다녀오겠다고....."


샤샤의 눈에 살짝 석연치 않아 하는 빛이 스치는가 싶더니 말끝도 살짝 흐렸다. 강주는 그녀가 죽은 동료를 언급하는 게 괴로운가보다 정도로 여기고 오늘은 더 이상 캐묻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진이 곧바로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가 뭘 어떻게 도와주려고 한 거지?"

"리스트를 넘겨주기로 했었어."

"리스트....?"

"현재 회사 루트를 통해 거래하고 있는 자들의 명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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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43화 언더 더 세임 문3 +4 21.01.09 65 8 11쪽
42 42화 언더 더 세임 문2 +6 20.12.31 59 8 10쪽
41 41화 언더 더 세임 문 Under the same moon +2 20.12.09 72 8 13쪽
40 40화 인투 더 와일드 +6 20.12.01 62 8 10쪽
39 39화 라비린스 Labylinth 3 +9 20.11.22 72 10 11쪽
38 38화 라비린스 Labylinth 2 +4 20.11.15 66 10 10쪽
37 37화 라비린스 Labylinth +4 20.11.09 74 10 11쪽
36 36화 묘곡모자 猫哭耗子 +6 20.10.31 73 10 9쪽
» 35화 뒷골목 어벤저스 +4 20.10.18 91 10 9쪽
34 34화 고립과 갈망 2 +2 20.10.11 81 11 9쪽
33 33화 고립과 갈망 +7 20.10.09 66 10 11쪽
32 32화 경제적 동물 +8 20.10.04 65 12 9쪽
31 31화 어둠 속의 아이 +9 20.10.01 64 12 11쪽
30 30화 리셋 Reset +8 20.09.27 90 11 12쪽
29 29화 멜랑꼴리 맨 Melancholy Man +8 20.09.18 92 11 9쪽
28 28화 암탉의 영혼 +4 20.09.13 87 12 13쪽
27 27화 엇박자 +4 20.08.31 65 11 11쪽
26 26화 의중 +4 20.08.28 58 9 12쪽
25 25화 재회 +4 20.08.21 60 8 14쪽
24 24화 터미널 +6 20.08.12 83 8 12쪽
23 23화 성난 괴수와 웃는 나무 +6 20.08.01 84 11 11쪽
22 22화 경계선 +5 20.07.27 69 9 8쪽
21 21화 라스트 액션 히어로 +2 20.07.18 60 9 11쪽
20 20화 한여름밤의 꿈 +3 20.07.11 62 9 11쪽
19 19화 좋은 놈, 나쁜 놈, 애매한 놈 +4 20.07.07 69 10 7쪽
18 18화 하늘나라 동화 +2 20.07.07 62 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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