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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환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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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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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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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네가 만든 마을

DUMMY

※※※



이검(二劍). 두자루의 검.


본디 무인들이 가장 흔히 사용하는 무기는 검이다. 그 범용성과 내공을 싣기 적합한 구조. 그리고 천년 넘게 쌓여온 무학의 깊은 뿌리가 곧 검이라는 무기를 가장 고고하게 만들었다.


혹자가 만병지왕(萬兵之王)이라 검을 칭하기도 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그런 위상에도 불구하고 무인들 중 두자루의 검을 사용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가장 큰 이유는 한가지였다.


정점에 이르지 못한 이검은, 곧 목숨을 도외시하는 낭인의 검일 뿐이기에.


‘이검보다 일검 일권, 일검 일장등 모든 상황에서 일검이 더 쓸모있다. 그것이 일반적인 무인들의 생각일진데.’


머릿속에서 생각이 접혔다 풀려나오듯 빠르게 흐른다. 눈을 두 번 깜빡일 시간도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시야에 들어오는 검객의 무장. 가면을 쓴 검객의 허리춤을 따라 비끄러져 매인 두자루의 검이 눈에 띈다. 그것도 충분히 놀라울 일인데, 더 놀라운 것은 사내의 허리춤에 매인 검이, 아직 뽑혀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분명 뽑았다.’


여휘검을 쥔 손에 남아있는 얼얼한 감각이 그 근거였다. 방금 전, 검객은 검을 뽑아 백연을 공격했다. 그리고 검을 회수해 납검했다.


‘언제?’


인지가 되지 않았다. 사고가 한계까지 가속한 상황임에도.


주변의 모든 것이 느릿하게 흐르고 사고가 가속되며 감각이 극도로 활성화되는 간극. 그 사이에 진입한 이상, 아무리 극한의 쾌검이라 하더라도 인지를 할 수는 있어야 했다. 사실상 그의 감각이 아니었다면 믿기 어려웠을 일.


하지만 백연은 의심하지 않았다. 불가능한 상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감각은 정답을 말하고 있으니.


‘이검의 고수다. 맞붙으면 필패. 시간을 끄는 것 정도는......’


생각을 하며 내공을 끌어올렸다. 하단전에서 끌어올린 수기가 몸을 감싸고 대기중으로 옅게 퍼져나갔다. 창명류수검의 기파를 흘리는 기법. 자연히 팔에 쌓인 내공 여파가 바깥으로 희뿌옇게 변해 흘러나왔다.


‘세합? 네합?’


동시에 상대를 가늠한다. 여휘검을 바꿔 잡으면서였다. 파지를 변경하는 것으로 한순간에 수세적인 움직임을 가져간다.


그와 함께.


검객의 뒤편, 절벽 끝에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유성과 루주는 이미 검객이 나타나기 직전 절벽으로 뛰어내린 모양. 자연히 남은 사람은 하나였다.


‘소홍 사형.’


자령안 안법으로 이지러진 세상 속에서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를 쳐다보고 있는 모습. 그것을 눈에 담으며 백연이 검격을 내치려 할때였다.


“저놈들을 잡아라!”

“감히 무덤의 입구를......”

“가면쟁이부터 노려!”


뒤편에서 날아와 꽂히는 목소리들. 막 상황을 알아차린 무인들이 즉각 반응해 돌진하고 있는 듯 했다.


일련의 모든 상황이 스치듯 지나간다. 늘어진 감각이 모든걸 날카롭게 인지한다.


뒤에서 스쳐오는 바람. 병장기의 소리. 달려오는 사람들의 보법 기파.


‘좀 더 비워야 해.’


이미 적들이 이쪽으로 달려들고 있는 것은 인지했다. 그러나 등 뒤의 어느 누구보다, 눈 앞의 검객이 위험한 상대라는 것을 백연은 알아차렸다.


‘가라앉도록.’


후우.


반 호흡을 끊어 들이킨다. 동시에 백연의 감각이 아래로 침잠했다. 날카롭게 느껴지던 모든 감각이 무뎌지며 흩어지고, 시야에 들어오던 모든 공간이 한점으로 수축한다.


안법 자령안.


무아(無我)의 의념을 바탕으로 모든 감각을 일점에 집중시킨다. 자신보다 강자에게 도전하는 도전자의 눈. 보지 못할 것을 보게 만들어주고, 예측을 예지에 가깝게 탈바꿈 시킨다.


그 자신이 지닌 넓은 감각도를 일순 포기하는 대가로.


찰나, 백연의 감각에 남은 것은 단 두 사람이었다.


눈앞의 검객과, 그 뒤의 소홍.


‘보여.’


언뜻 웃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가면의 검객. 그의 손이 허공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주 흐릿한 잔영. 움직임이 마치 바람결 같았다. 자령안 안법을 한계까지 끌어올린 상태로도 희끄무레하게 밖에 인지할 수가 없는 검격.


‘하지만, 궤적은 파악했다.’


발검술이었다. 이검이 각기 뽑혀나오는 순간 교차되며 양 사선을 그어낼거라는 사실이 눈에 보인다.


하지만 알면서도 부족했다. 이미 보법을 밟으면서 자령안 안법에 들어간 상황. 직전의 움직임이 채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 돌진하고 있는 백연의 몸이었는데, 속도가 부족했다. 적화검류를 쓴다 해도 그랬다.


‘젠장.’


백연이 입매를 비틀었다.


모든 순간이 도박이었다. 지금 이 순간도. 하지만 저자를 뚫고 무덤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 생각이 머리에 스친 순간, 백연은 그대로 스스로의 하단전에 묻혀있던 바람의 제어를 풀어냈다.


여태껏 운연동공의 바람으로 묶어 분리해 두었던 적양공과 현음공. 상극의 기운이 한번에 물밀듯이 풀려나온다.


두 내공운용법을 동시에 극성으로 일으킨 것이다. 자령안과는 다르게 제어를 풀어 두 기운을 충돌시키는 도박.


온몸에 퍼져나온 기파가 세맥을 따라 휘돌며 반발했다. 본질적으로 상극인 두 기운을 억지로 충돌시킨 여파. 그 반발로 온몸의 혈도가 찢겨나가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반발은 곧 증폭.


‘현음공 때도 역회전을 걸어서 증폭시켰지. 그렇다면......’


파지지직!


찰나 세맥이 찢겨나가는 고통과 함께 온몸을 타고 기운이 폭주하듯 내달렸다. 주화입마를 입은것만 같은 감각이 몸을 지배했다. 그러나 타버릴 듯한 고통 속에서도 백연은 의식을 붙잡고 검을 쥐었다.


귓가에서 연이어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현실의 소리인지, 아니면 그저 그의 착각인지.


시야가 하얗게 점멸하기 시작한다. 적양공과 현음공의 기운이 번갈아가며 충돌하고, 그 사이에서 일어난 반발이 막대한 기운으로 화한다.


여휘검을 쥔 오른팔이 바르르 떨려왔다.


웅웅거리는 진동이 검을 타고 일었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기파가 여휘검의 검신을 타고 뚝뚝 떨어지듯 흐른다. 이지러지는 시야 속에서 백연은 앞을 보았다.


시야에 담긴 검객. 막 손을 뻗으려 하고 있다. 희끄무레하게 번져오는 검격의 선이 대기에 연기처럼 남는다. 백연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검격의 궤적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보이는 선이 한줄기 있었다. 검객의 옆을 파고드는 선명한 은빛 선율.


‘사형?’


검객의 등 뒤에 선 소홍이 은밀한 기파를 휘감아 단검을 던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가 인지한 것을 검객이 인지하지 못할리가 없었다. 간극 속에 진입한 가면의 검객이 암습을 알아채고 고개를 살풋 비트는 것이 느껴지는 찰나.


‘기회.’


쿠궁.


백연이 그대로 진각을 밟았다. 몸에 실린 기파를 한껏 발에 실으면서였다. 미친듯이 증폭된 내공이 실린 진각. 화신풍의 묘리를 응용해 실어냈다. 발을 딛는 순간 우레같은 소리와 함께 사두근을 통해 슬개골로 막대한 충격이 실리는 것이 느껴졌다. 우득 하는 소리가 몸을 통해 전해진 것 같은 감각.


진각을 딛는 순간 반동으로 왼다리가 망가졌다. 하지만 백연은 멈추지 않았다.


‘한번만 버티면 된다.’


땅에 꽂아넣은 다리를 그대로 지지대로 삼는다. 한계치까지 반발시켜 몸에 가둬놓은 기운을 찰나 전부 오른손의 여휘검에 담아낸다. 궤적은 이미 정해두었으니.


그 순간 시야 사선에서 한줄기 햇빛이 눈앞으로 떨어져내렸다. 살풋 흐려진 자령안 안법 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이는 새벽의 빛살.


그것을 인지함과 동시에 팔에 찢어지는 격통을 느끼는 순간.


쩌저저정!


시야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손끝에서 피어난 검격이 뇌성(雷聲)으로 화했다. 눈앞에 새겨진 한줄기 백색 선은 자신의 검격이었다. 시야 사선에서 떨어져 내리던 햇살은 분분히 쪼개진 듯 허공에서 일렁였다.


스스로의 인지를 벗어난 검격. 지나간 후에야 눈에 다른 것들이 들어왔다. 가면의 검객은 어느새 검 두 자루를 모두 빼든채 반보 비껴 서 있었고, 그의 뒤편에 자신을 향해 달려오려는 소홍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끌어 오른발을 내딛었다. 검격을 내치기 직전 오른발 용천혈에 쌓아두었던 내공 기파가 연이어 텨져나오며 그의 몸을 가속시켰다.


그대로 돌진한 백연의 신형이 가면의 검객을 스쳐 지나가고.


-이러면, 곤란한데요.


어쩐지 난처한 듯한 검객의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정확히 백연 자신을 겨냥해 날아온 전음성. 찰나 검객의 방향을 힐끗 쳐다보자 금이 간 가면 사이로 언뜻 연하늘의 빛이 일렁인 것 같기도 했다.


생각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백연은 돌진하던 속도 그대로 소홍의 가슴께를 잡아채 끌어안았다.


“백연!”


귓가에 틀어박히는 사형의 목소리를 들으며 즉시 절벽을 향해 몸을 내던졌다. 한순간 허공에 뜬 몸을 뒤집어 뒤편을 바라보자 그들을 등지고 선 검객의 모습이 보였다.


‘......검격이?’


시야 저편. 검객의 앞으로 그려진 거대한 선이 보였다. 마치 누군가가 검으로 대지를 죽 베어낸 듯이. 백연이 돌진하던 자리의 뒤였다.


그것을 눈에 담는것도 잠시, 더 생각을 이어갈 겨를도 없이 그들은 그대로 절벽 아래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괜찮아!?”


낙하하며 자령안 안법을 거두자마자 눈앞이 흐려져왔다. 같이 떨어지며 그를 껴안은 소홍을 향해 백연이 나직히 중얼거렸다.


“사형. 잘 들어. 여기 아래로 떨어지면......”


말하는 순간, 낭떠러지를 가득 채우고 있던 구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동시에 시야가 탁 트이며 차가운 기운이 후욱 불어닥쳤다. 허공에서 자유로이 낙하하고 있는 그들의 눈 아래 저편으로 드넓은 물결이 눈에 들어왔다. 막 쏟아지는 햇살을 받아 부서지며 반짝이고 있는, 거대한 폭포.


광활한 너비의 흐름을 따라 막대한 양의 물이 떨어지며 부서져 내린다. 수천의 투명한 보석이 일제히 쏟아지고 있는것만 같은 압도되는 풍경. 귓가에 스치는 거친 바람의 숨결에 섞인 차가운 물기가 진하다.


그 모습을 보며 백연이 미간을 좁혔다.


“이런. 시간이 조금 늦었네. 폭포 오른쪽으로 헤엄쳐 나가야해. 알았지?”

“백연, 너.”

“기력을 많이 써서. 약간 어지러워.”


삽시간에 시야가 좁아져온다. 시야 가장자리부터 어두워지며 의식이 서서히 침잠한다. 기력을 과다하게 소진한 탓이었다. 방금의 일검에 모든 내공을 쏟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터.


“부탁할게, 사형.”

“......맡겨.”


입술을 꽉 깨문 소홍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백연의 의식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지상 최대의 기문진(奇門陣)을 만들거다.

-그게 가능해?

-이 몸은 가능하다. 흐하핫. 천하의 검귀도 놀라 자빠질 물건을 만들어주지.

-흐음.

-뭐냐, 그 불신이 가득한 눈초리는.

-아니, 그게. 재능이 없다고 가문에서도 쫓겨난 놈 아니었나 해서.

-뭐? 내 발로 나온거다! 범인들은 천재를 이해하지 못하는 법. 가문의 장로들이 이걸 보면 각혈하며 쓰러질거다. 재능을 못 알아본 눈깔들을 스스로 파버리고 싶게 해주마.

-그래. 잘해봐. 근데 왜 진법의 중심이 하필 여기냐?

-그야 이곳은, 네가 만든 마을이니까.


격통이 스쳤다. 잠시 아찔할 정도의 고통. 하지만 백연은 감각과 생각을 분리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꿈이군.’


흐릿한 대화의 잔영이 남아 머릿속을 맴돌았다. 점차 또렷해지는 의식이 느껴졌다.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있게 된 상황. 천천히 이전의 기억을 불러온다.


‘무덤에 진입했나.’


가면의 검객. 그리고 그를 상대하기 위해 쏟아낸 일격. 몸에 막대한 반동으로 돌아왔는데, 의식이 반쯤 깨어난 지금 상황에서도 스스로의 몸 상태를 짐작할만 했다.


‘한동안은 짐덩이겠네.’


모든 기력을 소진한 상태이다. 지금은 제대로 걷는 것 조차 힘들 일. 그러나 그가 정확히 시간을 맞추었고, 무덤에 진입하는 것에 성공했다면 당장은 괜찮다.


그때였다.


몸을 덮어오는 따스한 온기가 있었는데, 곁에서 바삐 움직이는 기척이 누구인지 짐작할만 했다. 속으로 옅은 미소를 지은 백연은 다시 가라앉으려던 의식을 억지로 잡아끌었다.


“......”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올리자 흐릿한 시야 속, 벽면을 타고 일렁이는 불빛이 보였다. 어두운 회색 벽을 배경으로 춤추는 불꽃이 있었다. 그리고 그 불꽃의 앞.


“일어났어?”


눈썹이 팔자로 휘어든 소홍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바쁘게 움직이며 무언가를 그의 다리 위에 올려놓고 있던 모양.


“......얼마나, 지났어?”


말라붙은 목을 가다듬으며 백연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 하자 황급히 움직인 소홍이 그를 부축했다.


“두 시진. 어쩌면 더.”

“그 정도면 충분하네.”


아직 오전이었다. 어두운 벽면 때문에 시간이 많이 흘렀나 순간 걱정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백연은 기침을 하며 몸을 반쯤 일으켜 앉았다. 소홍의 부축으로 벽에 기대어 앉자, 그때서야 오른팔과 왼다리를 칭칭 감고 있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물에 적신 천인듯 했는데, 차가운 기운이 팔다리를 지그시 식혀주는 중이었다.


“이건 뭐야. 사형이 해 놓은거?”

“응. 엄청 부었었어.”

“고마워. 으음. 그나저나 근맥에 좀 손상이 갔나. 아무래도 과했나보네. 반발을 통한 증폭은 자제를 해야......”

“백연. 너 자꾸......”


낮아진 소홍의 목소리에 백연이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깐.”

“그건, 맞는데.”

“그 검객은 대체 뭐지? 새외에도 절세 고수들은 많다고 들었긴 했지만.”


백연이 눈매를 찡그렸다.


분명 그 검격은 새외 무림 특유의 느낌이 아니었는데.


“마교의 사람도 아닌듯 하고.”

“그 사람. 마지막에.”


그의 옆에 조용히 앉은 소홍이 입을 열었다.


“베었어.”

“......그랬지. 분명히 검격을 펼쳤는데.”

“네 뒤를.”


백연이 입술을 베어물었다.


소홍의 말이 맞았다. 자신의 사형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체적인 상황을 보고 있었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았던 가면의 검객이 펼친 검격. 그것은 분명 백연이 예측했던 궤적이 아닌, 그의 뒤를 갈라버렸다.


“죽었을거야, 대부분.”

“쫓아오던 다른 사람들?”

“응.”

“하지만 이유를 모르겠네. 그렇다고 하면 마치 두번째 검격은......”


말끝을 흐린 백연이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표정이 안좋아.”


걱정 섞인 소홍의 말에 백연이 한숨섞인 웃음을 흘렸다.


“예측이 틀려버려서.”


자령안 안법으로 보았던 검격의 궤적. 분명 자신은 먼저 보았고, 먼저 움직였다.


그의 안법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검객이 그의 생각보다도 고강했을 뿐.


잠시간 머릿속에서 검격을 재현하던 백연이 생각을 털어버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선은 슬슬 움직여야겠네. 여긴 어디야?”

“강가 동굴. 그런데, 움직인다고?”

“응. 빠르게 이동해야 할 것 같아. 지금 당장 쫓아오는 사람은 없겠지만, 밤이 되면 달라질거야.”


소홍이 두시진이라고 말했다. 살수 훈련을 받은 사형의 시간 감각이라면 정확할 터. 그렇다면 정오가 한시진 정도 남았을 것이다. 겨울이라 해가 일찍 지는 것을 감안하면 석양까지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 전에, 무덤의 중심부에 들어가야지.”


중얼거리며 백연이 읏차, 하고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이었다.


“잠깐!”


다리를 타고 찌르르 올라오는 통증에 몸이 휘청였다. 한순간 그대로 옆으로 넘어질 뻔한 백연의 몸을 다급히 일어난 소홍이 붙들었다.


“아하하.”

“사제. 진짜 혼날래?”

“운기요상을 좀 해야 할 것 같긴 한데.”


눈을 가늘게 뜬 백연이 스스로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무리 동공을 익힌 몸이라 회복이 빠르다지만 지금은 몸 안에서부터 손상된 곳이 많았다. 근맥이 찢어지고 뒤틀린 것은 예사고, 세맥이 기파를 버티다 못해 조금씩 끊어져 있었다.


꽤 큰 내상을 입은 것이다.


“우선은 다른 사람들하고 합류부터 하자.”


잠시간 앉아서 운기를 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그럴 바에야 모두 합류한 다음 제대로 몸을 돌보는게 나을 터. 저녁까지는 시간이 있으니 그 전에만 만나면 될 것이다.


“합류는, 어떻게?”


소홍이 그를 부축하며 물었다.


“걱정마. 이곳에 떨어진 이상 한곳으로 모일 수 밖에 없을거니까.”


그렇게 말한 백연이 절뚝거리며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소홍에게 기댄채였다.


모닥불이 밝히고 있던 어두컴컴한 동굴을 벗어나 바깥으로 나오자 울창한 산기슭의 풍경이 그를 반겼다.


“여기서?”


여기서 어떻게 모일거냐는 의미였다. 불신이 가득한 사형의 얼굴을 보며 피식 웃은 백연이 한 방향을 가리켰다.


“저쪽이야.”


그렇게 걷기를 잠시, 울창했던 나무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동시에 탁 트인 시야 너머 양쪽으로 깎아지른 듯한 산맥이 웅장한 자태를 드리웠다. 대체 얼마만큼 깊이 내려왔는지 짐작도 되지 않는 협곡 지형.


그리고.


“......와아.”


여태껏 걱정이 묻어있던 소홍의 목소리에서 맑은 탄성이 울려퍼졌다. 순수한 감탄이 섞인 사형의 목소리를 들으며 백연이 웃었다.


“보이지? 저기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을테니까.”

“도시야. 벽에도, 바닥에도.”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말 그대로 하나의 도시였다.


협곡 사이로 길다랗게 죽죽 이어진 성벽은 마치 누군가가 검으로 잘라낸 듯한 바위들의 집합체였다. 그럼에도 기묘한 모양과 형태를 이루며 단단한 벽을 조성하고 있었다. 그 너머로 비스듬히 보이는 것은 수없이 많은 건물들. 제각기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 마을은 작다하기 어려운 규모였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눈에 보이는 수직으로 가파른 협곡. 그 벽면을 따라 다닥다닥 얼굴을 내민 집들이 한가득이었다. 묘기를 부리듯 벽에 달라붙은 수많은 건물들. 사이사이를 길게 엮은 줄과 나무판자가 멀리서도 언뜻 언뜻 보인다.


협곡 안의 도시.


“여기가 바로, 검귀의 무덤이야.”

“......엄청나.”


소홍이 연신 탄성을 흘렸다.


그 목소리를 귀에 담으며 도시를 바라본다. 이곳에 다시 돌아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설령 언젠가 돌아오더라도 분명 혼자일 줄 알았건만.


묘한 기분 속에서 백연이 중얼거렸다.


“이곳, 귀도(鬼都)에 온걸 환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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