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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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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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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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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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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신강(2)

DUMMY

※※※



천마신교. 본디 신교 시절에는 교주를 중심으로 열두 장로가 모여 세력을 이루고 있던 교의 세력은 세월의 흐름 아래 거대하게 불어났다.


교주 아래로 호법들과 장로들, 태사를 위시한 수많은 고수들이 즐비하다 했지만, 개중에서도 호법은 특별한 위치에 있다 했다.


“우호법과 좌호법은 교주의 오른팔과 왼팔이오. 적어도 세간에 드러난 것은 그렇소. 교 안에 들어가보지 않는 이상 얼마나 더 많은 것이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팔영이 뇌까렸다.


거대한 불길을 본 직후, 그대로 말머리를 돌려 한참을 달려온 상황이었다. 본디 향하던 경로에서 조금 방향을 틀었는데,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교가 지닌 전력중 막대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대호법을 비롯한 세 호법인 것은 확실하다오.”

“그 정도로 강한겁니까?”


무진의 물음에 팔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제를 아시오?”

“당연하지요. 공동파의 현천검제. 서제라 불리시는 분 아닙니까. 정파에서도 그 위명이 자자하신데.”

“십여년 전, 그 검제를 맞상대한 인물이 마교의 현 우호법이지.”

“패퇴했다 하지 않았습니까?”

“패퇴라.”


팔영이 수염을 쓸었다. 오랜 기간 무영방의 그림자로 살아온 외팔의 노인은 아는 것이 많았다. 특히 이런 쪽에 있어서는 정보를 다루는 천라방의 일원인 루주조차 한 수 접어줄 정도로.


“큰 부상을 입고 자취를 감추었던 것은 맞소. 하지만 그 전에 사흘 밤낮으로 검제와 싸우며 수백리에 달하는 평야를 새까맣게 불태웠다는 말이 들어가야 하겠지.”

“......구파의 장문인에 비견되는 힘.”


듣고 있던 검룡이 나직히 중얼거렸다.


백연은 그 말을 들으며 검을 매만졌다. 호법이 셋이라 했다. 검제에 비견되는 힘이 셋이라는 말과도 비슷하다. 좀 더 실감나게 생각하면, 검왕이 셋.


‘그것도 교주를 제하고.’


일개 방파가 지니고 있을 힘이 아니었다. 마도 영역을 지배하는 교의 세력은 백여년간 차원이 다르게 거대해져 있었다.


그 당시에도 엄청난 세력이었건만, 이 정도로 불어났을 줄이야.


“절대 마주치면 안되오. 어째서 그자가 이리 멀리까지 나와 활동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소만. 하나는 확실하오.”


바위에 걸터앉은 팔영이 일행을 둘러보았다. 노인의 시선이 루주와 사형들을 훑고, 검룡에 이르렀다 마지막으로 백연 자신에게 와 닿았다.


“혹여나 우호법과 마주치는 순간이 온다 하면, 우린 모두 죽소.”


단언하는 모습. 확고한 어조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먼저 입을 연 것은 루주였다.


“가늠하건데, 우호법은 우리가 있던 장소에서 북서쪽으로 최소 수십리 이상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리 가까운 위치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리 불꽃을 피워댈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군요.”


유성의 물음에 루주가 미간을 좁혔다.


“아마 그건......우호법의 무공이 지닌 특성 때문일거에요.”

“염혈신공 말입니까?”

“예. 이름 그대로 피로 불꽃을 피우는 무공이라 알려져 있어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언제나 불을 지르며 학살을 자행하죠. 과거에도 그랬는데.”


일행들 사이에 피워진 모닥불이 일렁였다. 어느새 깊어진 밤하늘 위로 떠오른 달이 루주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녀가 낮은 어조로 중얼거렸다.


“우호법은 그럴수록 강해져요. 십여년 전에도 수십개의 마을을 불태우고 가공할 양의 화염을 휘두르고 있었는데, 검제께서 펼쳐낸 검은 하늘이 그 불을 남김없이 집어삼켰죠.”

“그럼 지금도 힘을 모으고 있을 가능성이 높겠군요.”

“그렇겠죠.”


검룡과 루주의 대화. 듣고 있던 백연은 단휘와 시선을 교환했다.


그들이 천주산에서 보았던 것. 마교가 준동하고 있을지 모른다 어렴풋이 생각하긴 했지만, 이렇게 눈으로 목도하게 될 줄이야.


“위험한데.”


백연이 중얼거렸다.


신강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이 그의 생각보다 훨씬 클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교가 몸을 일으키려 힘을 축적하고 있다하면, 그에 휘말린 흑랑이 빠져나오지 못할법도 했다.


“그럼 이제 어찌 하는것이 좋겠소?”


팔영의 물음이었다. 그가 수염을 쓸며 일행을 둘러보았다.


“우호법이 저리 나와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마교의 세력이 상당히 강성해졌다는 의미요. 신강이 지나치게 위험할 가능성이 높소.”


말을 하며 쳐다보는 시선이 백연을 향한다. 자연스레 그의 의견을 구하는 듯한 눈치.


“팔영의 말이 맞아요. 마교가 이리 움직이고 있다 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져요. 근래 신강 언저리에서 흘러들어오는 정보가 전부 사라졌다 싶더니 이런......”


그에 동조하듯 거드는 루주의 말. 백연은 잠시 두 사람을 응시했다.


“두 분은, 하오문의 일원 아니십니까.”


묘한 상황이었다. 모닥불 하나를 두고 둘러앉은 무인들. 사형들이나 검룡이면 몰라도, 먼저 나서서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이 하오문의 두 사람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다. 물론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이라지만, 두 사람은 당연히 흑랑의 구출을 우선시 할 줄 알았는데. 말하는 어투가 그렇지 않았다.


“그렇지요. 헌데 그건 무슨 의미로 묻는건가요, 공자?”

“흑랑의 안위를 우선할줄 알았습니다만. 특히 팔영께선 무영방의 일원이시니.”

“그건 틀렸소.”


노인이 말했다.


“지금의 노부는 곤륜의 객이오. 방주 대리의 밑에 있을때는 그분의 안위를 최우선에 놓는 것이 옳지만, 그분께서 직접 암화 그대를 모시라 했지. 이후 별다른 명이 떨어진 적이 없으니 노부는 일전 받은 명대로 행동하는 것일 뿐이오.”


단호한 어조였다. 백연이 명령하는대로 따르겠다는 의지가 묻어나는 어투. 설령 그것이 흑랑을 포기하고 돌아가자는 것이라 해도 달리 토를 달지 않을듯 했다.


“저는 조금 다르네요.”


불가에 다리를 모으고 앉은 루주였다.


움직이기 편한 흑색 바지와 무복을 걸쳐입은 루주의 눈매가 날카로웠다. 몸을 타고 흐르는 기도가 뚜렷했다. 주루를 운영하던 여인의 직책에서 벗어난 루주, 선화. 옥수에서와는 달리 한층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다.


“처음부터 이 의뢰를 받아들인 것은 공자. 누구와 갈지 정한것도 공자에요. 이번 신강행의 모든 선택은 백연 공자의 손에 달려 있다는 의미죠.”

“맞는 말이오.”

“그런고로, 저는 공자의 선택이 무엇이든 따를 생각이에요.”

“무엇이든 말입니까? 너무 과한게 아닌가 싶군요.”


백연의 반문에 선화가 고개를 저었다.


“성화방주께서 선택한 사람을 믿지 않으면, 누구를 믿겠어요. 그리고......”


선화가 또렷한 시선으로 그를 응시했다.


“제가 보고 들은 것이 있는데.”


조금 다르다 했지만 결론은 같았다. 하오문의 두 사람이 백연을 쳐다보는 모습. 그의 결정을 기다리는 모습이다.


곁에 앉은 사형들과 유성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모여든 시선이 다같이 자신을 향하는 것이 왠지 익숙한 감각이었다.


선택. 어깨가 무거워지는 기분이었다. 우호법은 그가 상정한 것 이상의 위험이었다. 당장 돌아가 마교의 준동을 알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터.


생각에 잠긴채로 일렁이는 모닥불을 눈에 담았다. 시야 끝에 흔들리는 불꽃.


고민은 길지 않았다.


“......우리는.”


시선을 불꽃에 고정한채로 백연이 말했다.


“계속 갑니다.”


위험성은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가야 한다 느껴졌다. 마교의 준동. 그 동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살아나와 정보를 가져올 수 있다면 큰 이득일터.


아니, 흑랑만 구할 수 있더라도 그가 얻어낸 정보들이 있을 것이다. 방주 대리는 모든 시간을 허투루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위험한 상황에 처했더라도 얻어낸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럼, 직진?”


여태껏 잠자코 앉아있던 소홍의 목소리. 사형의 물음에 백연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경로는 조금 수정할거야. 서남으로 길을 튼다.”

“서남?”

“예. 서장 외곽을 거쳐 신강의 남쪽에서 들어갑니다. 두개의 산맥 사이로 가야 하는데. 본래 진입하려던 동북쪽 산이 아닌, 반대편으로 진입하면 되는 일.”


조금 돌아가는 경로가 되겠지만 이게 더 안전했다. 직진상에 놓인 경로에는 마교가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서장을 경유하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새외무림은 마도와 별개의 세력. 정파에 호의적이지 않은 것과 별개로 마교와 한통속인 것도 아닙니다.”

“본래 계획보다 칠주야 정도 더 소요되겠구려.”

“그렇겠지요.”


시선을 들어올린 백연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들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 그들의 몸짓에 묻어있는 것은 신뢰였다.


묘한 기분을 느끼며 백연이 중얼거렸다.


“잠시 눈을 붙이고 바로 출발하도록 하지요. 출발 시간은......”


백연이 눈을 가늘게 뜨고 허공을 가늠했다. 아까 전 피부로 느껴졌던 우호법의 내공 기파는 더이상 느껴지지 않는 거리였다. 차가운 겨울 밤공기를 느끼며 몸에 기운을 일으켰다. 조금이라도 주변에 열기를 흩뿌릴까.


“동이 틀 때입니다”



※※※



파라락.


거칠게 휘날리는 바람이 품을 파고들었다. 차가운 겨울 돌풍이 말을 타고 질주하는 무인들의 뺨을 베어낸다.


강행군이었다. 이틀째 멈추지 않고 말을 타고 내달리는 중이었으나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신강으로 직진하던 경로를 틀어 서장을 경유하는 과정. 추가로 소요될 시간이 적지 않았다. 만회하기 위해서는 쉼없이 달리는 방법 뿐이었다.


“이대로면 나흘로 줄겠구려.”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팔영의 목소리에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군요.”

“헌데, 말이 지쳐가고 있소.”


푸르륵.


팔영의 말에 화답하듯 고개를 흔드는 준마의 숨결이 거칠었다. 중간 중간 들러 말을 갈아탈 곳이 없는 탓이었다. 아무리 튼실한 준마를 준비했다 해도 며칠 내내 내달리는 것은 무리였다.


“가는 길에 마을이 있습니까?”

“작은 성도가 하나 있을거요. 이 근방일 터인데.”


팔영의 말에 화답하듯 채 반시진이 지나지 않아 눈앞에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태껏 달려온 길과는 다르게 형태가 제대로 갖춰져 있는 관도. 그와 함께 저편에 야트막하게 자리잡은 흙벽이 눈에 들어왔다.


“자, 다들 이걸 걸치시오. 이런 장소에서 외지인은 눈에 띄기 마련이니.”


도시 근처에 다가가자 말에서 내린 팔영이 언제 준비했는지 회갈색 장포 하나씩을 던졌다. 길게 늘어져 머리까지 덮을 수 있는 옷의 모습. 잠시나마 사람들의 이목을 피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오히려 이걸 쓰는게 이목을 끌지 않겠습니까?”


무진의 물음에 팔영이 고개를 저었다.


“이곳에는 낭인이 많소. 더해 천축이나 서장의 승려들도 이런 복식을 하고 다니니 얼굴을 내놓고 다니는 것 보다는 이목을 덜 끌것이오.”


그렇게 말하는 팔영의 시선이 백연과 유성, 그리고 소홍을 힐끗 스쳤다.


“......특히 세 사람은 꼭 얼굴을 감추고 다니고.”

“무슨 문제라도 있는건가요?”

“혹여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오.”


검룡의 물음에 이어지는 팔영의 짤막한 설명. 백연도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새외 무림에는 각양각색의 문파와 세력들이 많은데, 개중에는 인신공양을 하는 문파들도 존재한다 했다. 특히 미색이 뛰어난 소년 소녀들을 잡아다 바치는 집단들이 있다고.


“그런 천인공노할......!”


눈을 휘둥그레 뜨며 경악한듯 중얼거리는 유성의 모습에 팔영이 고개를 저었다.


“검룡 그대의 마음은 알지만, 이곳은 중원이 아니오. 갈길이 바쁜데 괜한 분쟁으로 시간이 끌리면 아니되지.”

“하지만......”

“유성.”


백연이 끼어들었다. 어느새 검파에 손을 올리고 있는 유성의 팔목을 슬며시 붙잡으면서였다.


“진정해. 팔영의 말이 맞아. 여기서 함부로 문제를 일으켰다간 새외 무림과 정면으로 맞서야 할지도 몰라.”

“......”

“네가 정명한 무인인 것은 잘 알아. 그러니까, 만일 그런 일을 직접 목도하게 되면 그때가서 생각해보자고.”


백연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필요하면 가면이라도 쓰고 움직여 보지 뭐.”

“......알았어. 미안해.”

“이야기가 다 끝났으면 슬슬 들어가볼까요, 여러분?”


그 사이 장포를 푹 뒤집어쓴 선화가 말을 끌고 백연의 곁에 와 섰다. 자연스레 백연의 움직임을 기다리는 눈짓이다. 백연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장포를 뒤집어썼다.


성도로 들어서는 길은 아무런 제지가 없었다. 입구를 지키는 이도, 그들의 행색을 보고 눈을 부라리는 이들도 없었다.


대명의 관할에 닿지 않는 지역이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에 들어찬 사람의 수는 엄청났다.


“사람, 많아.”


소홍의 말대로였다. 사방의 길을 따라 꽉꽉 들어찬 사람들이 수백에 달했다. 제각기 목소리를 높여 대화하고, 흥정하고, 싸우며 호객했다. 여태껏 거쳐온 삭막한 서장의 평야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


“사람들 털끝도 안보이기에 다 어디갔나 했더니, 이런 곳에 몰려 있었던건가?”


단휘의 말에 팔영이 화답했다.


“맞소. 겨울이니 전부 이런 도시로 몰려든 것이지.”

“겨울의 칼바람은 혹독하죠. 특히 대명과 구파의 눈 아래 보호받지 못하는 새외의 사람들에게는.”


선화의 눈길이 주변을 훑었다. 장포 아래로 드러난 그녀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저들이 자신들을 지켜줄 황실이고 구파일테니까요.”


문득 그녀의 시선이 한군데에 멈춰섰다. 백연도 그쪽으로 눈길을 던졌다.


시야 저편, 사람들이 모인 사이로 지나가는 무인들이 눈에 보였다. 갈색과 주홍이 섞인 장포를 걸친 승려들. 그러나 그들이 흘리는 기파가 짙었다. 단박에 무공을 익힌 승려들임을 알 수 있었다.


허나 소림사의 승려들은 아니었다. 그들이 몸에 지닌 기운은 더없이 맑고 거대한 법력(法力)이다. 눈앞의 승려들이 흩뿌리는 날카롭고 번뜩이는 기운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힘. 기질부터가 불도(佛道)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패도에 가까운 기세다.


그 광경을 눈에 담으며 일행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노부는 말을 바꿔오겠소.”


팔영이 말들을 끌고 인파들 사이로 사라지고, 일행은 객잔에 자리를 잡았다. 밤을 묵고 갈 생각은 아니었으나 기왕 마을에 들어온 김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도 겉으로는 중원과 크게 다른 것은 없군요.”


음식을 주문하고 자리에 둘러앉은 일행. 구석진 자리에 앉은 유성이 중얼거렸다. 쉼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그의 눈에 경계가 서려있었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까.”


백연이 어깨를 으쓱였다. 사형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나 청해나.”

“한두해 전만 해도 옥수가 훨씬 심하지 않았습니까? 무진 사형.”

“흐음. 청해는 아직도 만금장이랑 천살문을 비롯해 문제가 많지. 당장 지금도 옥수를 벗어나 위쪽으로 가면 여전할거다.”

“백연, 물.”


가만히 앉아 대화를 듣고 있던 백연의 앞으로 물잔이 내밀어졌다. 곁에 앉은 소홍이 건넨 물잔을 받아든 백연이 웃었다.


“고마워.”

“그나저나 확실히 사람이 많네요. 본디 이 정도는 아닐텐데.”


객잔 안을 둘러보던 선화가 말했다.


“뭔가 조금 이상한 것 같기도 한데......”

“그건.”


물을 한모금 삼킨 백연이 답했다.


“이 지역 사람들이 아닌 이들이 많이 보이는듯 합니다.”

“아, 공자도 눈치채고 있었나 보네요?”


백연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전부터 주변을 확인한 그였다. 과거 새외에 걸음했던 적이 몇번 있는 그였는데, 당시의 기억을 기반으로 보았을때 이 지역 사람이 아닌 이들이 간간히 눈에 보였다. 본래는 저 남쪽에 있어야 할 무인들부터, 신강과 서장을 더 넘어선 서편에서 온 이들까지.


몰려들어 있는 것이다. 작은 도시에 꽉꽉 들어찬 모양새가 그랬다.


“무인들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그러게요. 이유가 뭔지.”


그때였다.


“여기 주문하신 음식입니다!”


양손에 접시를 가득 든 점소이가 다가와서 그릇을 내려놓았다. 생글거리는 미소를 건 소년. 외양이 독특한 아이였는데, 하얀 피부와 더불어 녹빛을 띈 눈이 서역의 색목인인 듯 했다.


‘이 나이에 서장까지 온건가.’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보통 중원에 간간히 나타나는 색목인은 대부분이 상인이었다. 서역에 중원의 물건을 내다 팔면 큰 돈이 된다고. 어린 아이를 볼 일이 없는 것이다.


“이건 여기 분 거고......”


바쁘게 손을 놀리는 것이 일에 익숙한 듯 했다. 건너편에 앉은 선화의 눈도 더없이 호의적인 빛을 띄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하오문의 일원인 선화다. 천라방이 주로 운영하는게 객잔과 주루인데, 점소이들은 곧 하오문의 근간 그 자체중 하나인 것이다. 밝은 웃음을 지으며 바쁘게 일하는 눈앞의 소년이 기꺼울 수 밖에 없었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백연.


“그럼, 맛있게 드세요!”


이윽고 소년이 음식을 전부 내려놓고 돌아가려던 그때, 백연이 입을 열었다.


“혹시, 괜찮다면 식사 좀 같이 하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네?”

“물어보고 싶은게 몇가지 있어서 말입니다.”


정보를 구하는 기본적인 방법. 애시당초 하오문이 정보 조직인 가장 큰 이유다. 객잔에서 일하는 점소이들은 보고 듣는 것이 엄청나게 많으니까.


이곳에서는 따로 정보를 구하기 어려운 바, 길을 오가는 사람을 아무나 붙잡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중원인은 새외 무림에서 배척받기 마련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일인 점소이는 조금 달랐다. 특히 눈앞의 소년처럼 서역에서 온 사람이라면.


‘이 소년도 외지인이니.’


정보를 얻기 가장 제격이라 할 수 있을터.


그러나 그의 말에 소년은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게......”

“싫다면 괜찮습니다.”

“아뇨! 얻어먹는게 싫은건 당연히 아닌데 말이죠......”


점소이 소년의 시선이 슬쩍 한쪽을 향했다. 객잔 주인이 이쪽을 쳐다보며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방향. 그에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객잔 주인은 당연히 점소이가 손님들 음식을 얻어먹으며 노는 것을 좋아할 리가 없는 바. 해결책은 간단했다.


“이 정도면 될까요?”


백연이 손을 슥 움직여 탁자를 쓸자 그 위에 반짝이는 은자가 하나 놓였다. 그것을 본 소년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으, 은......”

“충분할런지 모르겠네요.”


그렇게 말하며 객잔 주인의 방향을 응시했다. 어느새 찌푸린 얼굴에서 환히 미소를 건 모양이 퍽이나 우스웠다. 변검이라도 하듯 휙휙 바뀌는 표정. 하지만 은자 한냥은 그럴만한 돈이었다.


“자, 잠시만요!”


은자를 들고 후다닥 달려간 소년이 이윽고 날듯이 돌아왔다. 손에는 언제 가져왔는지 술병 하나를 들고 온 채였다.


“그건 뭐죠?”

“아하하......주인 어른께서 맨입으로 받아먹으면 안된다고 주셨어요. 손님들께 드리라며.”


나름 양심적이라고 해야 할까. 어떤 면에서는 속셈이 훤히 보이는 객잔 주인이었다. 이리 쉬이 주머니를 여는 손님에게 잘 대해서 나쁠것이 없는 일이니.


술병을 받아든 백연이 이번에는 소년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건 당신거.”

“아, 아니. 무슨......”


하나 더 딸려나온 은자에 소년이 정신을 못차리고 말을 더듬었다.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홍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돈, 어디서?”

“얌마, 너 그렇게 부자였냐?”


무진도 거들었다. 백연은 가만히 어깨를 으쓱였다.


“내 돈 아니야.”

“훔쳤어, 사제? 안돼.”

“아니. 천주산에 갔을때 당소하가 준 돈인데.”


더럽게 부자인 녀석이라 그랬는지 다시 돌려주려고 해도 필요 없다 말하던 놈이었다. 덕분에 지금 여윳돈이 잔뜩 있었다.


정보를 구하는데 쓴다면 이것도 나름의 쓰임새를 다하는 일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백연은 술병을 흔들었다.


이윽고 정신을 차렸는지 조심스레 옆에 앉은 점소이가 손을 매만졌다.


“저, 그래서 뭐가 궁금하신건가요?”


왠지 비장하게까지 느껴지는 표정에 백연이 피식 웃었다.


“별건 아니에요. 다만, 이곳에 외지의 무인들이 많이 모여든 것 같아서.”

“......아하? 저, 무례한 물음이 될지 모르지만, 손님 분들은 동쪽 산맥 너머에서 오신게 아닌가요?”


소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중원에서 왔죠.”


선선히 답하자 소년이 눈을 반짝였다.


“그럴 것 같았어요. 그런데 그럼 소문을 듣고 오신게 아니셨군요? 저는 당연히 다른 분들과 같은 이유로 이곳에 오신줄 알았거든요.”


소년의 대답에 백연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다른 사람들과 같은 이유라고? 그 말은 여기 모인 무인들이 전부 비슷한 이유로 모여들었다는 소리. 허투루 흘릴 말이 아니었다.


“그 이유가 대체?”


소년이 주변을 살풋 두리번거렸다. 이쪽을 향하는 눈길이 없는 것을 확인한 소년이 비밀을 풀어내듯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근래에 소문이 쫙 돌았거든요. 이 근방에 무덤이 있다는 소문이.”

“......무덤?”


백연과 일행이 시선을 교환했다.


당황스러운 소리였다. 검귀의 무덤은 방법을 모르면 결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그리 어설프게 공개된 장소도 아니고. 무엇보다 그 지역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백연 자신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무덤을 아는 사람은 전부, 그때 죽었으니까.


그러나 이어진 소년의 말에 이전까지의 생각은 머릿속에서 싹 지워졌다. 한껏 낮춰진 목소리에 어린 흥분이 강렬했다.


“바로 천마(天魔)의 무덤이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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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설화(雪花)(3) +9 23.08.30 6,356 116 23쪽
84 설화(雪花)(2) +6 23.08.28 6,563 109 21쪽
83 설화(雪花) +8 23.08.25 6,866 118 17쪽
82 선택(5) +6 23.08.23 6,996 122 21쪽
81 선택(4) +5 23.08.21 6,831 123 20쪽
80 선택(3) +8 23.08.18 7,352 127 22쪽
79 선택(2) +6 23.08.16 7,310 121 24쪽
78 선택 +6 23.08.14 7,476 128 21쪽
77 검귀의 검, 곤륜의 검(6) +8 23.08.11 7,545 141 19쪽
76 검귀의 검, 곤륜의 검(5) +8 23.08.09 7,242 126 20쪽
75 검귀의 검, 곤륜의 검(4) +7 23.08.07 7,370 132 21쪽
74 검귀의 검, 곤륜의 검(3) +6 23.08.04 7,635 135 18쪽
73 검귀의 검, 곤륜의 검(2) +4 23.08.02 7,852 135 19쪽
72 검귀의 검, 곤륜의 검 +5 23.07.31 8,190 140 16쪽
71 검왕(4) +10 23.07.30 7,687 121 13쪽
70 검왕(3) +7 23.07.29 7,442 138 12쪽
69 검왕(2) +7 23.07.28 7,462 134 15쪽
68 검왕 +8 23.07.27 7,557 142 16쪽
67 마기 +5 23.07.26 7,580 133 14쪽
66 금원방(2) +5 23.07.24 7,748 142 16쪽
65 금원방 +4 23.07.23 8,205 137 17쪽
64 용봉지회(9) +6 23.07.22 8,209 141 20쪽
63 용봉지회(8) +4 23.07.21 7,933 137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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