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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님의 서재입니다

곤륜환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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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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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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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귀환

DUMMY

※※※



천관은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선아를 돕다가 사라진 야장은 초가집 안의 방에서 앉은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숭산의 고매한 법승마냥 좌탈입망(坐脫立亡)한 것이었다.


천관의 시신을 묻어주고 정리를 했다. 꼬박 반나절에 걸친 시간이었다.


그 사이 선아는 두 자루 검을 마무리해 들고 나왔다. 검을 완벽하게 만들지 않으면 할아버지가 화낸다면서.


지극히 야장다운 행동이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새하얀 검신의 검과, 옅게 표면이 일렁이는 백연의 검.

두 자루 검 모두 검파까지 깔끔하게 마무리 되어있는 모습이었다.


“이건 네가 맡고 있어.”


백색의 검은 선아에게 내밀었다. 그녀가 의아한 눈길을 보내었다.


“천관께서 만드신 검은, 그분의 제자가 백의께 직접 전해드리는게 맞으니까.”


그에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검을 받아들었다.


초가집과 화로는 그대로 두었다. 집 옆에 만든 작은 무덤에는 비석 대신 모루를 세웠다. 내공을 끌어올리지 않고서는 사형들까지 세 명이 달라붙어도 옮기는 것이 쉽지 않은 무게였다


그 모습을 보고 선아가 웃었다.


“할아버지가 좋아하시겠네.”


그렇게 하산했다. 이름없는 산에 자리한 천관의 무덤. 혹 나중에 장문인이 오고싶어 하실지 모르니 위치를 잘 기억해 두었다. 그는 이런 것을 쉬이 잊어버리지 않았다.


“이제 어디로 가는거야?”


선아가 물었다.


“우선은 서안으로 갔다가, 옥수로 돌아가야지.”


서안으로 향하는 걸음은 한결 가벼웠다. 걸음은 느렸지만 수라궁과 쫓고 쫓기는 상황이 아니니 더할 나위가 없었다.


늦은 오후에 출발한 걸음은 여유로운 이동과 맞물려 거리의 밤을 맞이했다.

간만의 노숙이었다.


바닥에 놓은 불길 앞에서 백연은 선아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눴다. 올해로 약관에 이르렀다는 그녀는 천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간간히 다가온 사형들과 사숙도 함께였다.


그렇게 모닥불이 잦아들고 밤이 짙어질 무렵, 선아가 백연에게 물어왔다.


“네 검의 검명(劍名)은 뭐야?”


백연이 눈을 깜빡였다.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없는데?”


그는 무공을 제외한 무언가에 이름을 붙이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검귀 시절 사용하던 검도 직접 이름을 붙인적이 없었다. 대다수가 검귀의 검이라고 불렀을 뿐.


간간히 그의 검을 묵령검(墨靈劍)이라 부르는 이들도 있었으나 소수였다. 검귀 자신이 붙인 이름도 아니었고.


“없다고? 아니, 잠깐만. 나랑 할아버지가 힘을 합쳐 수리해준 검이 이름도 없는 무명검(無名劍)이었단 말이야?”

“따지고 보면 그런 셈이지.”


어쩌면 이름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만, 알 수 없었다. 자루 밑동에 새겨진 백연이라는 이름 외에는 검의 이름을 추측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렇다고 백연검일 리는 없을테고.


‘......설마 아니겠지.’


아무리 검의 주인이 미친놈이라도 검 이름으로 백연같은 뜻을 지닌 이름을 쓸 리는 없을테니까 말이다.


“안돼. 용납할 수 없어.”

“응?”

“내 첫 백철 작품을 무명으로 둘 수는 없다고.”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시선이 단단했다. 꼭 이름을 붙여야 하겠다는 의지가 타오르고 있는 듯 했다.


“이름 지어줘. 나중에 내가 검면 밑동에 음각해줄테니까.”

“......꼭 해야 하는건가?”

“당연하지! 너네 무인들이 무공에 이름 안 붙이는거 봤어? 무공을 그냥 무명(無名)-종(縱)베기 같은 이름으로 짓지는 않잖아. 그런거라고.”

“음.”

“왜 웃어?”


무명 종베기라. 검귀 시절 사용했던 그의 무공 이름을 여기서 들을줄은 몰랐다.


‘나름 절초였는데.’


그 검으로 신교의 장로중 하나를 격살하기까지 했는데.


여기서 말을 꺼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믿어줄리도 없고. 더해 그가 알아본 바 검귀의 무공은 실전된 듯 했다. 애초에 그가 남긴적이 없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웃지만 말고, 이름 생각해봐.”

“네가 짓는건 어때?”

“무슨 소리야. 검 주인이 지어야지. 그것까지가 검의 완성인걸. 검을 만드는 건 야장 혼자 하는게 아니라, 그것을 사용할 무인이 함께 해야 하는 거라고 하셨어.”


백연이 머리를 쓸었다. 곤란한 기분이었다. 이름을 짓는 것에는 그다지 재주가 없는 몸인데.


고민하며 검을 뽑아들었다. 흑단목 검집에 잠들어 있던 검신이 스르륵 뽑혀나왔다. 수리하기 이전보다 조금 무거워진 느낌이었다. 백철과 기존의 검신을 합쳐가며 수리했으니 일어난 일이다.


모닥불에 비쳐 일렁이는 검신. 전체적으로 은빛이지만 불빛이 닿을때마다 붉은 듯, 푸른 듯, 모호한 빛이 일렁이는 검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말없이 검을 쳐다보던 백연이 문득 머릿속에 스치는 한마디를 내뱉었다.


“......여휘.”

“으응?”

“여휘검(餘輝劍)으로 하자.”

“나중에까지 남아있는 빛이라.”


선아가 여휘, 하며 입안에 굴리듯 발음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이름같네. 무슨 의미로 지은거야?”


백연은 물끄러미 검신을 바라봤다. 일렁이며 반짝이는 빛이 누군가를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그냥, 말 그대로의 뜻이야.”

“마음에 들어. 검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이름인걸.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다니.”


백연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무인들은 별 것 없는 미신에 집착한다. 검의 이름도 그 중 하나였다. 스스로는 언제나 그런것에 신경쓰지 않고 살아온 백연이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그랬으면 좋겠네.”



※※※



다시 도착한 서안은 여전했다. 거리를 누비는 수많은 행인들과 물류들.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인파 속에서 일행은 제각기 흩어졌다.


“객잔을 정리하고 와줘.”


하오문 속하의 객잔에 남겨두고 온 짐이 있었다. 근 며칠간 자리를 비웠지만 아직 객잔에 보관되어 있을터였다.


“그래. 너는 하오문 지부에 다녀올테지?”

“그래야지. 흑랑이 들르라고 한 것도 있고.”

“알았다. 볼일 끝나면 객잔으로 와라. 정리해놓고 식사좀 하고 있을테니.”


그렇게 사형과 사숙, 선아가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그들의 모습을 확인한 백연은 발길을 돌려 하오문 서안 지부로 향했다.


길거리를 걷는 와중 군데 군데에서 느껴지는 시선들이 있었다. 인파 사이에서 그를 정확히 짚어내는 눈길들. 적대적이지는 않았다.


‘소문이 빠른건가.’


그 시선들의 주인은 하나같이 길거리에 앉아 허름한 옷을 걸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매듭끈. 개방의 거지들이다.


눈길이 그를 따르는 것이 단순히 쳐다보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는 눈치이다. 개방에서 그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것인지.


백연은 무시하고 걸음했다.


하오문과 개방이 비슷한 일을 하나, 적대 관계는 아니다. 무림에서 가장 큰 두 정보단체는 의외로 공생하는 관계에 가까웠다. 각기 얻을 수 있는 정보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천하 어디를 가도 개방과 하오문의 눈길 아래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란 어려웠다. 쫓아다니는 눈길을 죽여 없앤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살인멸구를 한 것 자체로 그 사람이 그곳을 지나갔다는 의미가 되니.


‘종남과 화산이 먼저 왔을 터.’


아마 그 무인들에게서 흐른 정보일 터다.


더해 그가 객잔에서 유걸과 비무를 벌이는 모습을 본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 전으로 가면 첫날 진무와 송하가 비무를 벌이던 장소에서 대놓고 흑랑과의 친분을 드러낸 것도 있었다.


개방도들이 그를 주시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인 것이다.


그렇게 시선을 잔뜩 받으며 한동안 걸음을 이어나가니 하오문 서안지부가 나왔다. 근처에 이르자 하령의 술법진의 영향인지 눈길이 전부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뭐야, 왔네?”


서안지부 안에 들어선 그를 맞이한 것은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하령이었다. 오늘따라 유달리 소매가 길어보이는 장포를 걸치고 있었다. 땀 한방울 흘리지 않고 있는 모습이 덥지도 않은 듯 했다.


“들었어. 금안나찰을 격살했다고.”

“그렇게 되었네요.”

“고마워. 내가 두번이나 놓쳐서 진짜 죽여버리고 싶었는데. 덕분에 한시름 덜었어.”


말하며 생긋 미소짓는 모습이다.


“하령님 덕분에 이길 수 있었습니다. 술법진이.”

“아, 그거? 잘 썼으면 된거지.”


마지막까지 숨겨놨던 한수였다. 하령의 술법진. 믿고 목숨을 던졌는데 통한 것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한번 더?”

“미안. 안돼.”


단칼에 거절하며 하령이 웃었다.


“농이었습니다. 애초에 그런걸 두번 해달라고 하는것도 말이 안되고.”

“아하하. 선천진기를 쓰는건 문제가 아니야. 내 몸은 타인이랑은 조금 달라서. 하지만 그 술법진은 한 사람에게 평생 한번밖에 해줄 수가 없는거라. 나도 가능하다면 막 해주면 좋지.”


백연이 어깨를 으쓱였다.

술법무공은 그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였다. 하령이 그렇다 하면 그런 것이겠지.


“그나저나 흑랑이 오라 해서 왔습니다만.”

“걔? 아직 안왔어. 조금 늦으려나. 우선 들어와.”

“불러놓고 어딜 간겁니까.”


하령이 손을 가벼이 휘저었다. 늘어진 소매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손이 가리키는 대로 전각의 문이 열리고 닫혔다.


“원래 제멋대로인 놈이야. 뭐, 근래에는 무영방주의 일을 거의 대신하고 있으니 참작해줘야 하겠다만.”


무영방주의 일을 거의 대신한다라. 그렇잖아도 바빠 보이는 흑랑이었다. 월영비도도 아직 회수하지 못한 듯 보이는데. 몸이 여러개라도 모자랄 듯 했다.


“올때까지 여기서 좀 기다릴래?”

“좋습니다.”

“그럼 그 사이에 네 무공 이야기 좀 해줘.”

“그러도록 하죠.”


백연은 흔쾌히 허락했다. 자신의 독문무공을 타인에게 내보이는 것을 꺼리는 이들도 많았으나 백연은 그런 부류는 아니었다. 본다 해서 구결 없이 따라할 수 있는 이도 없다.


“가장 궁금한건 귀안인데.”

“......엄밀히 말하자면 그건 제 무공은 아닙니다만.”

“그럼?”

“검귀라는 자의 것입니다.”


하령은 좋은 청자였다. 그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는 모습이 학구열에 미쳐버린 사람 같았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한마디 할때마다 그의 뒤편에 날아오른 수십장의 종이와 붓이 제각기 움직이며 무언가를 기록하는 것이 재밌었다.


“이게 안법이라고?”

“네. 귀안을 쓰고 보는 세상의 풍경은.”


백연이 손으로 허공을 그어냈다.


“뭉개진 면과 선들입니다. 기파를 선으로 인식해 전장에서 명확하게 움직일 수 있게.”

“......듣도보도 못한 공능이야. 이 검귀라는 놈은 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백연이 피식 웃었다.


“검에 미친놈이죠.”

“헌데 이런 식으로 하면 세맥에 부담이 엄청날텐데.”

“맞습니다. 그래서 저는 왠만하면 쓰면 안되는 무공입니다. 실명할 위험도 있어서.”


흑랑이 도착한 것은 한시진쯤 지난 후였다. 무공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의 곁에 훅 떨어져 내린 검은 그림자가 차가웠다.


검은 장포를 갈무리하며 머리를 쓸어넘기는 모습이 여전히 냉막한 인상의 사내였다. 한여름에 혼자만 겨울을 살고 있는 듯 했다.


백연은 보면서 다른 생각을 했다.


‘안 덥나.’


경지에 이른 무인의 신체는 한서불침이 된다 했다. 그 경지는 생각보다 높았다. 검귀 시절에도 추위와 더위를 아예 못 느끼지는 않았다. 기막으로 둘러 차단했을 뿐이다. 흑랑이라고 더위를 느끼지 않을리 없었다.


“덥군.”


자리에 앉으며 흑랑이 내뱉은 첫 마디였다.


“그 검은거 벗고 다니면 되잖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방주.”


팔짱을 끼고 앉은 흑랑의 시선이 백연을 향했다.


“빨리 왔군. 더 늦을줄 알았는데.”

“그렇게 되었습니다. 근데 보자고 한 이유가?”


흑랑이 턱을 매만졌다. 말끔한 그의 얼굴이 잠시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그려냈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하오문 내의 정세가 어지러워지고 있다. 다른 네 방이 점차 움직이고 있어.”


하오문의 일곱 방. 차기 문주를 두고 두 세력으로 갈라진 이들의 싸움이 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문주는 뭐합니까?”

“자리에 없다. 있다 하더라도 그는 중재하지 않을 사람이다.”


이어지는 설명이 간략했다. 현 하오문주는 애초에 후계 구도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했다. 그 본인부터가 바닥에서 올라온 인물이라고. 자신이 그렇게 문주에 올랐으니 후계도 마찬가지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해서, 내가 자리를 조금 비울 생각이다.”

“지금 말입니까?”

“그래. 월영비도를 찾으러 갈 것이다.”


담담히 흘러나오는 선언. 그에 하령이 당황한 듯 몸을 일으켰다.


“야, 너. 지금 자리를 비운다고?”

“그래.”

“잠깐만. 그러면 어떡하게? 무영방주 그놈은 코빼기도 안 비추고 있는데.”

“한시적으로 일영(一影)에게 대리의 권한을 맡겼다. 가급적이면 빨리 돌아오도록 하지.”


백연은 머리카락을 꼬며 고민에 잠겼다.


지금 흑랑이 자리를 비운다? 자신과 곤륜파에게 당장 미칠 영향은 미미했다. 하지만 그의 부재가 하오문 내 세력 다툼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지가 중요했다. 하령의 반응을 보건데 흑랑이 총괄하고 있는 일이 적지 않은 듯 했다.


‘문제가 될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월영비도는 중요했다. 백연도 그것은 인지하고 있었다. 그가 협상패로 써먹을 만큼 중요한 물건이다. 무영방주 자체를 상징하는 기물이기에.


“월영비도를 되찾아야 세력전에서 유리해진다. 성화방주, 당신도 알고 있을텐데.”

“......그래. 알았어. 일단은 내가 잘 처리해볼게. 여차해서 급하면 무영방주 놈이라도 찾아내 끌고 와야지 뭐.”


하령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흑랑은 신경쓰지 않고 백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팔영은 네게 붙일 생각이다. 네 하수인이라고 생각하고 쓰도록.”

“당사자는 괜찮답니까?”

“그놈도 너를 마음에 들어하는 듯 하니 데리고 다녀라. 도움이 될 것이다.”


백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팔영의 실력은 낮지 않았다. 살수로써는 상위였다. 더해 잡다하게 알고 있는것이 많았다. 함께 다녀 나쁠 것은 없었다. 의원의 실력도 있고.


“곤륜의 객으로 받지요.”

“그리고 하오문과 관련된 소식은 백야루주를 통해 받으면 될 것이다. 그녀에게도 일러두었다. 역으로 네가 하오문이 필요할때도 루주에게 요청하면 된다.”


편리한 일이었다. 옥수의 백야주루를 관리하는 여인은 그에게 왠지 모르게 호의적이었다. 곤륜파에서 왔다갔다 하기에도 좋을 거리였으니 문제될 것은 없었다.


‘다만.’


문제는 한가지였다.


“얼마나 생각하고 있습니까?”


신강은 마도의 영역이다. 지금은 신교, 세간에서는 마교라 일컫는 이들이 세력을 뻗치고 있는 곳이다. 그들의 무력과 세력이 자신이 기억하는 것의 반이라도 된다면 위험하다.


청해부터 산동, 절강에 이르는 중원 무림과 비교할 바가 아닌 것이다.


온 사방이 적지(敵地)라 봐야 옳다. 흑랑 정도의 무인이라도 쉬이 논할 수 없는 지역이다.


흑랑의 손가락이 탁자를 두드렸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삼 개월.”


그가 입매를 비틀었다.


“그 안에 돌아오도록 하지.”



※※※



귀환하는 길은 더없이 여유로웠다.

올때보다 한 사람이 늘어난 길. 마차의 공간은 넉넉했다. 본디 커다란 마차였던 탓이다.


“우와, 저건 뭐에요?”


눈을 빛내며 창문에 달라있는 선아가 연신 감탄을 터트렸다. 그녀의 곁에 앉은 청율은 지치지도 않는지 모든 질문에 일일이 답해주었다.


“저게 감숙의 공동산입니다. 구파의 일익인 공동파가 자리잡고 있는 명산이죠.”

“와, 끝이 안보여요. 얼마나 높은거에요?”

“구름 위까지 이어져 있답니다.”

“우리 곤륜산이 더 높아.”


끼어드는 사형들의 목소리도 요란했다.

그에 마차를 몰던 팔영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보기 좋소.”

“그러게요.”


마차 위 지붕에 앉은 백연이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띄었다. 따가운 햇빛 아래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아, 그러고 보니 난주에 들르기로 했는데.”

“어이쿠. 노부가 잊어버렸구려. 지금이라도 그쪽으로 돌릴수 있소만.”

“뭐, 다음에 갑시다. 이번만 날도 아니잖습니까.”


사형들과도 안면을 완전히 튼 팔영이었다. 소란스러운 여정은 군데 군데 도시에 들러 객잔에 머물며 이어졌다. 가는 곳마다 자리한 하오문의 객잔은 대체 얼마나 많은지 알기도 어려웠다.


청해에 들어서고도 여정은 마찬가지로 여유로웠다. 전처럼 내달릴 필요가 없었다. 사형들의 무력도 워낙 출중해진 탓이었다.


몇차례 마적을 소탕하고 나니 더 이상 달려드는 이들도 별로 없었다.


“오히려 큰 문파는 덤벼들지 않을 것이오. 대놓고 하오문 루주의 마차인데.”


그렇게 왔던 시간보다 나흘을 더 이동한 끝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지평선을 가득 채우는 거대한 벽이었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오른 길다란 산맥.


“우, 우와. 저게 설마 산이에요? 저게?”

“공동산보다 더 높다고 했잖아.”

“세상에.”


드높은 곤륜 산맥의 모습이었다. 백연은 작게 미소지었다. 그때까지 저도 모르게 몸에 들어있던 미미한 긴장감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묘한 반가움이 일어났다. 그리 오래 머문 장소도 아니건만.


“노부는 정리하고 따라 가겠소.”


옥수 외곽에 이르러 마차에서 내렸다. 전과 달리 활기찬 도시 거리가 반가웠다. 만금장이 득세하고 있을때와 전혀 달라진 분위기다. 사파 무림의 땅임에도 드나드는 상행들이 많았다.


곁에서 걷는 사형들의 걸음도 한층 밝아져 있었다. 익숙한 거리에 내딛는 발걸음인 탓이었다. 더운 여름에 길거리를 점하고 물건을 파는 상인들. 번잡한 서안의 거리보다는 작았지만, 나름의 맛이 있었다.


“기분이 새롭네요.”


청율이 옆에서 걸으며 중얼거린다. 바깥에 외유를 많이 나갔다 왔다는 그로써도 이런 여정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이윽고 일행의 걸음이 옥수를 가로질러, 곤륜산의 초입에 닿았다.


그 앞에는 한 인영이 서 있었다. 새하얀 장포를 걸치고 있는 큰 키의 사람. 희끗희끗한 머리를 지닌 초로의 사내가 일행을 보고 입가에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백연이 먼저 자연스레 포권했다. 가벼운 몸짓이었다.


“다녀왔습니다. 장문인.”

“고생했구나.”


긴 섬서 여정의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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