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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환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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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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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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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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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야장(2)

DUMMY

※※※



“......왔어?”


산 위에 올랐다. 그들을 맞이한 것은 잔뜩 먹구름을 담은 얼굴로 바깥에 웅크려 앉은 선아였다. 적갈색 눈동자가 사방을 왔다갔다 하는 것이 불안한 모습이었다.


“야장께선?”

“안에 잠들어 계셔. 아직까지는 괜찮으신데......”


그녀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러던 그녀가 이윽고 뒤의 사형들을 보고 일어나 가벼이 포권하며 인사했다.


“곤륜의 무인들이군요.”

“안녕하십니까.”

“지금 정신이 없어서,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사정은 사숙께 전부 들어서.”


그에 선아가 어색한 미소를 띄웠다.


“밤새 사파를 상대로 싸워주셨다고. 정말로 감사합니다. 산 위에서도 전부 들렸어요.”

“감사는 이놈한테 하십쇼. 얘가 제일 고생했으니까.”


가볍게 웃으며 이쪽을 가리키는 단휘. 자신을 쳐다보는 사형들의 시선에 백연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세상에, 너 몸이 왜 그래?”


선아가 숨을 훅 들이키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때까지 정말로 정신이 없었는지 무복 아래로 붕대에 칭칭 싸인 그의 몸을 이제서야 발견한 듯 했다.


그리 놀랄 정도로 많이 다친 것은 아닌데. 괜히 외상을 보호하겠다고 과하게 감아놓은 것이 누가 보면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다친 줄 알 모양새였다.


“주먹에 좀 스쳤어.”


담백한 사실이었다. 만일 스친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맞았다면 지금 여기 서 있는 것은 백연이 아니라 금안나찰이었을 터다. 그러나 다가와서 그를 살피는 선아는 그의 말이 귀에 들리지 않는 모양새였다.


“괜찮아? 당장 의원을 찾아가야 하는 것 아니야?”

“이 정도면 충분해.”


팔영의 솜씨가 왠만한 의원보다 뛰어났으니. 의원한테 치료 받은것과 진배없었다. 찾아간다 해서 더 나아질 것도 없었고. 지금 이대로 무리하지 않고 며칠 가만히 있으면 다 나을 터다.


그의 대답에 선아의 눈썹이 팔자로 휘어들었다. 그녀가 표정을 구겼다.


“의원은 찾아갈 수 있을때 가란 말이야.”

“근데 너, 왜 사형들한테는 존대하고......”

“그나저나 네 검, 어디갔어?”


선아가 그의 허리춤을 가리켰다. 항상 검을 차고 다니던 왼편 허리춤. 언제나 매여있던 흑단목 검집만 달랑일 뿐, 검이 꽂혀있어야 할 공간은 비어있었다.


“아, 부러졌어.”


어깨를 으쓱인 백연이 오른손에 들고 있던 보자기를 가리켰다. 길쭉하게 감겨있는 천이 안에 검을 담고 있었다. 그것을 마주한 선아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부러졌다고?”

“싸우다보니.”


부러진 검은 임시로 보자기에 넣어서 들고 다니고 있었다. 두 조각으로 깔끔하게 잘려나간 검. 버릴수가 없었다. 이번 삶에서 단 한번도 손에서 놓은적이 없던 검이다. 검 손잡이 밑동에 희미하게 음각된 백연이라는 이름.


이 몸의 본래 주인이었을 소년이 남긴 유일한 징표다. 과거에 이어진 끈이라고 해야할까. 막연히 좋은 검이어서 들고 다니는 것이 아니었다. 낡은 자루와 밑동에 새겨진 이름의 무게가 남달랐다.


‘검 자체도 좋긴 했지만.’


백철로 만든 검이나, 묵철, 한철로 이루어진 병장기에 댈 바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백연은 이 검을 버릴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왜인지 알 수 없지만 이 검이, 그를 현실에 매어두는 무언가라 느껴졌기에.


“수리해서 써야지.”

“......부러진 검을 수리해서 쓴다고? 하지만.”


반문하는 선아.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잘 알았다. 한번 망가진 병장기를 다시 이어붙여 쓰는 것은 그리 선호되지 않는 행위이다. 결합이 부서진 것은 다시 수리한다 해도 처음의 그 강도를 재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다시 강한 충격을 받으면 이어붙인 자리가 재차 부러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도.’


부러뜨리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가 충분히 고강해지면 검에 진기를 불어넣어 보호할 수 있었다.


여건이 되면 서안에서 한번 알아볼 생각이었다. 드넓은 도시인만큼 뛰어난 야장들이 많을테다. 종남에게 물어 검을 어디서 공수하냐 물어봐도 되는 일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눈앞의 선아에게 부탁해도 괜찮을 일이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야.’


천관이 위독하다 했다. 지금 검을 수리해주고 할 정신이 없을 것이다.


그때였다.


[왔군.]


대기를 울리며 진동하는 목소리. 자그마한 집에서부터 공력이 실려 증폭된 목소리가 뻗어나왔다. 짙은 내공에 담긴 굵직한 목소리는 천관의 것이었다. 선아가 몸을 번쩍 돌렸다.


“할아버지!”

[다들 들어와라.]


시선을 돌려 그를 응시하는 선아.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마구 뒤섞여 있었다. 백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가자.”



※※※



“딱 맞춰 올라왔군.”


눈을 감고 방 한켠에 곧게 앉은 거구의 야장. 달리 허허로운 모습이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처음 만났을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데, 어째서인지 무언가 줄어든 듯 했다. 텅 비워내기라도 한 듯이.


“위독하다 들어서 급히 올라 왔습니다만, 멀쩡해 보이시는군요.”


그의 말에 서서히 눈을 뜨는 천관이다. 안에 담긴 깊은 눈동자가 변함없이 강렬한 시선을 담고 그의 몸을 위아래로 훑는다.


“화기가 넘치는군.”

“그런것 까지 보이십니까?”

“이래봬도 기운을 다루는 것에 있어서는 천하에 이름을 내걸 수 있는 몸이다. 지금은 늙어빠져 죽을 시간만 받아놓고 있다만, 지학(志學: 열다섯 살) 언저리의 애송이 몸에 깃든 기운을 살피지 못하겠느냐.”


말하며 그를 살피는 모습이 느릿하다. 강렬한 시선은 여전히 그를 꿰뚫어 보는 듯 했다. 실제로도 꿰뚫어 보고 있을지 모른다.


고절한 경지에 오른 내가고수는 그러한 존재들이다. 사람보다는 신선이나 영물에 가깝다 해야 할까. 무인이 아니더라도 야장이라는 분야에서 경지에 오른 천관이니 똑같을 것이다.


“그렇잖아도 조금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혹 일러주실 것이라도 계신지.”

“네가 화기를 어떻게 몸에 담았는지 생각해라.”

“......수극화(水剋火) 입니다.”


수기로 화기를 억누르는 것. 사람의 몸에 담아내기 어려운 파괴적인 기운을 상반되는 수기로 억눌러 담은 것이다.


“너는 지금 수극화의 이치로 화기를 잡아놓고서 한쪽만을 다루고 있지 않느냐.”

“아.”


짧은 감탄. 야장의 말이 핵심을 정확히 짚고 있었다. 수기로 화기를 붙잡아 적양공을 엮어내었다. 그러나 적양공을 쓸때마다 화기가 넘쳐흘러 몸을 상하게 한다면, 그것을 붙잡을 수기의 위력도 같이 강해져야 균형이 맞아들어간다. 간단한 이치였다.


“무인의 몸은 검이다. 검을 만들때 균형이 무너지면 그것은 결합이 약해져 가벼운 충격에도 쉬이 깨지거나 부서지게 되지. 걸음부터 기운까지, 균형에 깨짐이 없도록 몸을 벼리거라.”

“명심하겠습니다.”


고수의 조언이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던지는 말 한마디가 적지 않은것을 담고 있다. 언행 하나하나가 새로운 무공과 영감의 단초가 되는 인물. 백연은 머릿속에 그의 모습과 말을 잘 새겼다.


그 사이 천관의 시선이 옆을 향했다.


“곤륜의 후인들인가.”

“야장을 뵙습니다.”


사형들의 얼굴을 훑은 천관이 얼굴에 미소를 띄었다.


“백의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는군. 놈과 나눈 소흥주(紹興酒)의 맛이 떠오르는 기분이다. 다시 한번 잔을 나누고 싶을 정도로.”

“그리 말씀하셨다 전하겠습니다.”

“되었다. 놈의 성격에 내 이야기를 들으면 몇날이고 골방에서 울적해 할 터이니.”


짧은 대화를 나눈 천관. 이윽고 그가 사형과 사숙, 백연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고맙다. 갚을 수 없는 큰 빚을 졌다.”


담담한 목소리. 깊은 울림이 자리했다.


“덕분에 무도한 사파의 손길에 명을 다하지 않고, 이리 떠날 수 있게 되었다.”


말의 무게가 무거웠다. 경지에 이른 이들은 말이 곧 업이라 했다. 담아내는 언어 자체에 힘이 깃드는 것이다. 그만큼 짙은 진심이 새겨져 있었다. 그랬기에 곤륜의 무인들은 함부로 입을 열어 답하거나 손을 내젓지 않았다. 감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더 무도하기에.


이윽고 천관의 시선이 다른 방향을 향했다. 자리에 앉아 잔뜩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는 선아. 유난히 깊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본 야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선아야.”

“네, 할아버지.”

“네가 모루 앞에 서게 된지 십여년이 지났다.”


선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간 너는 나에 닿았느냐.”

“......전혀요.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입술을 깨무는 모습이다. 그에 야장의 시선이 깊어졌다.


“너는 앞으로 계속 망치를 들 생각이더냐.”

“......”


답이 즉각적으로 나오지 않았다. 천천히 떨리는 눈동자. 고민이 깊어 보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야장이 말을 이었다.


“네가 망치를 든 이유는 나 때문인 것이냐? 그렇다면 이 자리에서 놓아도 좋다.”


본디 후인을 남기지 않을 생각이라 했던 야장이다. 자신의 기술이 실전되는 것에 미련이 없어 보였다. 더해, 그 안에는 선아를 향한 걱정도 섞여 있었다. 백철 야장이라는 능력은 위험한 탓이었다. 천하 무림인들의 표적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그 질문을 들은 선아는, 이윽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하면?”

“처음에는 멋모르고 멋있어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그녀의 시선이 야장과 마주쳤다.


“이 일이 즐거워요.”

“그럼 왜 고민하는 것이냐.”

“......할아버지의 이름에 누를 끼칠까봐요. 저는 아직 백철을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고. 반쪽짜리 야장인걸요.”


잠시간 선아의 눈을 마주하던 천관. 이윽고 그의 만면에 웃음이 떠올랐다.


“선아야.”

“네.”

“너는 이미 훌륭한 야장이다. 허나 생각이 너무 많구나.”

“예?”

“따라오거라.”


그렇게 말한 천관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기세좋게 일어난 그의 형체가 앞서 움직였다.


“마지막으로 수업을 하자꾸나.”



※※※



바깥은 해가 높이 올라간 오후였다. 산 위임에도 후끈한 열기가 사방을 덥히고 있었다. 백연 자신도 더운 기분에 무복을 매만질 정도였다.


그러나 야장과 선아는 더위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듯이 모여 대장간 안에 서 있었다.


“곤륜의 아이야, 손에 들고 있는 것을 이리 주거라.”


천관이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백연이 오른손에 움켜쥐고 있는 보자기였다.


“......이걸 말입니까?”

“그래. 전에도 말했지 않느냐. 이것이 야장의 감사이다.”


눈을 깜빡인 백연이 손에 든 보자기를 천관에게 내밀었다. 큰 손이 조심스레 그것을 받아들었다. 보자기를 펼쳐든 천관. 부러진 무기를 다루는 모양새가 보물을 다루는 것만 같았다. 검을 집어들어 날의 부러진 면을 살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검이다.”


햇빛 아래 드러난 검 조각. 두 조각의 검신을 나란히 내려놓은 천관이 능숙한 손길로 검파를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이윽고 자루에서 완전히 풀려나온 검신. 자루를 이루고 있던 나무를 모아 한쪽에 가지런히 정리해둔 야장이 선아를 향해 손짓했다.


“지금부터 이 검을 수리할 것이다.”

“네.”

“네가 할 것이다.”

“......예?”


눈을 휘둥그레 뜨는 선아. 놀람이 가득 담긴 모습이다.


“하지만, 저는 아직.”

“백철로 수리할 것인데, 우선 단면을 잘 보거라. 그리고 검의 형질을 잘 기억해라. 부러진 무기를 수리할 때에는 처음 무기가 만들어질때 단조된 과정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철이 지니고 있는 성질에 맞추어 똑같은 방식으로 다듬으면 그 강도를 유지할 수 있지.”


천관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처음에는 잔뜩 놀란 행색이던 선아도 이윽고 집중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백연은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한 노인과 소녀가 부러진 검을 사이에 두고 열띠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새 미간을 좁힌 선아가 중간 중간 끼어들며 무언가 질문하는 것도 보였다. 평시 그들이 수련하던 방식이리라.


이윽고, 소녀가 입술을 깨물더니 한켠에 놓인 망치를 집어들었다.

그녀가 잠시 백연을 바라봤다.


“괜찮겠어?”


백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믿어.”


본래도 검의 수리를 맡길 생각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 더해 지금 선아의 눈에 서린 열기는 강인했다. 그리고 백연은 저런 눈빛을 한 사람을 몇번 본 적이 있었다.


-대장, 이렇게 하는겁니까? 뭐 별거 없네요.


가르쳐준 적도 없는 검귀의 검술을 보고 기어코 따라하던 놈. 악착같이 따라붙는 눈빛이 딱 저러했더랬다.


그다지 실패할 것 같지가 않았다.


“걱정 말거라. 내가 옆에서 이끌어 줄 터이니.”


천관의 목소리와 함께 선아가 심호흡하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검 조각을 끌어당긴 그녀가 숨을 내쉬는 순간.


불꽃이 일어났다.


강력하게 몸에서 발출된 화염이 대장간을 가득 채웠다. 강력하게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화염이 되어 짙은 열기를 줄줄 내뿜었다. 그 속에서 천관의 목소리가 울렸다.


“생각을 내려놓아라. 네 감각을 믿고.”


동시에 시야를 가득 채우던 불꽃이 천천히 줄어들었다. 화염이 잦아들며 모습을 인식할 수 있을 정도가 되자, 우반신 전체에 불꽃을 휘감은 선아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손에 닿은 검 조각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신중하게 움직이는 손. 검 조각을 화로에 집어들어 넣는다. 동시에 야장이 백철 덩어리를 꺼내들어 그녀에게 건냈다.


치솟는 화기와 달아오르는 백철 광석. 그 속에서 묵묵히 선 야장이 균형을 잡고, 녹아내린 백철 광석이 달아오른 검 조각을 뒤덮었다. 검의 형태를 유지하며 금속을 더하는 일이었다.


이윽고 화로에서 짙게 달아오른 검신을 꺼내든다. 동시에 짙게 사방을 물들이는 한랭하고 습한 기운이 강렬했다. 자신이 부족하다 말하던 선아의 말이 우스울 정도였다. 그녀는 이미 뛰어난 기량을 지니고 있었다.


“균형을 잡는 것은 네 손끝의 감각이다. 머리로 생각하려 들지 마라.”


망치를 휘두르는 모습이 천관과 같았다. 불꽃을 휘감고 검신을 두들기는 모습이다. 사방에 울리는 소리가 강인했다. 어느새 소매를 뜯어내고 어깨를 드러낸 상태였다. 반복되는 근맥의 움직임마다 새겨진 감각이 전부 달랐다. 놀랍게도 망치를 내려칠때마다 미세하게 달라지는 검의 상태를 확인해 그에 맞춰 내리치는 세기를 달리하고 있는 듯 했다.


‘감각이 놀라워.’


깡! 까앙-!


우습게도 그 속에서 백연은 천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듯 했다. 저런 자질을 가진 아이가 제발로 나서서 자신의 일을 계승하고 싶다 하는데, 가르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정오 즈음에 시작된 망치질은 해가 땅에 떨어지고 암청색 하늘이 사방을 뒤덮을때 까지도 멈추지 않았다. 사형들과 사숙이 눈을 좀 붙이겠다며 어디론가 사라지는 와중에도 백연은 가만히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단순하게 보이는 반복의 작업. 그러나 백연의 눈에는 그리 보이지 않았다.


선아의 망치질은 무인의 수련과 닮아 있었다. 똑같은 삼재(三才)의 검을 수련한다 해도, 백번 검을 내칠때마다 담는 의념을 전부 달리할 수 있는것이 검객이다. 누군가의 눈에는 똑같은 검격이라 보일지 모르나 백연에게는 아니었다.


그녀의 의념. 망치를 다루는 감각. 전부 짙어져 가고 있었다. 망설임과 불안함이 섞여있던 모습에서 점차 스스로의 감각에 빠져드는 것이다.


천관이 옆에서 일러주었듯이.


‘야장 천관.’


어느새 선아의 곁에서 사라져 있었다.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며 하나씩 일러주던 늙은 야장은 언젠가 모습을 감추고 들어간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움직임은 점차 강해져 가고 있었다. 옆에서 천관이 없어진 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어린 야장은 홀로 일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사방이 고요해졌다.


동녘 하늘을 따라 점점이 박힌 별빛이 점차 옅어지는 시간이었다.

시야의 바깥을 따라 희끄무레하게 밝아오는 빛이 여명을 알리고 있었다.


짙은 열기가 서린 적갈색 눈동자가 뒤를 향하다가, 백연을 발견하고 멈춰섰다.


그녀가 말 없이 손에 든 검을 내밀었다.


은빛 검신을 따라 옅게 더해진 빛이 선연했다. 백철로 다시 단조해낸 검. 면을 따라 희미하게 일렁이는 빛은 언뜻 붉은 것 같기도, 푸른 것 같기도 했다.


백연은 손을 뻗어 검신에 가져다 대었다. 가볍게 진기를 담아 표면을 건드리는 순간, 짙은 울림이 검신을 따라 피어났다.


“닿았네.”


새로운 백철 야장이 그를 향해 옅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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