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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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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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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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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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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남궁세가(2)

DUMMY

백연이 눈을 깜빡였다. 이리 흔쾌히 수락할 줄 몰랐던 탓이다.


“내 말을 믿어?”


가볍지 않은 말이다. 남궁세가의 가주가 마기에 잠식되었다 의심하는 것. 만약에 들킨다거나 하면 그를 도와준것 만으로도 잃을것이 많았다.


그에 당소하가 술병을 들어올린 손을 까딱였다. 가벼운 몸짓이다.


“섬서에서 금안나찰을 격살한 신성, 암화. 대부분은 거기까지 밖에 모르지만, 나는 좀 더 자세히 들었다. 명문세가 소가주의 특권이라 해야 할까. 네가 검룡의 목숨을 구했다더군.”

“서로 구했지.”

“나름 검룡과 교분이 있는 몸이다. 놈의 성정을 잘 알아. 그 녀석에게 호의를 얻어낼 사람이 이런 일로 거짓을 말하리라 생각되진 않는군.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견해다만.”


그렇게 말하며 입꼬리를 끌어 올리는 모습이었다. 당소하의 시선에 담긴 호의가 옅지 않았다. 섬서에서 일어난 일이 이런 결과를 가져오리라 예상하지는 못했는데. 강호 무림의 은원은 알기 어려웠다. 적어도 지금은 좋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렇다면 네가 거짓을 말한다는 걸 제외하고 생각해보지. 네가 제대로 감지했거나, 혹은 잘못 느꼈거나 둘 중 하나인데.”


그의 시선이 남궁세가의 장원을 훑었다. 저 멀리 안쪽에 있는 본가를 향하는 눈빛이다.


“만약에 잘못 느낀 것이었다면, 의심한 것을 걸리지 않으면 그만일 문제다. 만일 이 일로 남궁세가와 사이가 좀 틀어져도 큰 일은 없을거다. 검왕은 역대 남궁가주중에도 성품이 인자하기로 소문난 사람이니. 크게 틀어져 봐야 내가 당가 소가주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끝이겠지.”

“그건 큰 일 아닌가.”

“하지만 네가 느낀게 정말이었다고 하면.”


당소하가 입술을 살짝 베어물었다. 그의 목소리가 약간 낮아졌다. 그 속에 실린 것은 옅은 불안함이었다.


“그래서 검왕께서 마교에 붙었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진정 재앙이다. 확인하고 넘어가는게 맞겠지.”


납득할 만한 이유였다. 이미 여러가지 고려가 끝난 듯했다.


“그러니 이제 계획을 들려주었으면 좋겠군.”

“계획이라.”


아까부터 머릿속에 생각해 두었던 것.

지금 우선적으로 알아야 할것은 남궁산의 변절 여부이다. 그것을 확인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역시 마기가 유입된 경로를 확인하는 것.


남궁세가 밖에서 유입되었다 보기 어렵다. 체내에 마기를 집어넣는 것은 휘발성이 강한 일이다. 타인의 내공을 주입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기에 마기는 세가 장원 내에서 주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 하면 어떤 장소에 단서가 남아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을 것인가.


“검왕 남궁산. 집무실이 있겠지.”

“당연히.”

“거기서부터 시작하려고 생각중인데. 뭔가 있다 하면,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개인적인 공간에 단서가 남아있을 확률이 높지 않겠어?”


당소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어떻게 그곳에 침입할 생각이지? 위치도 모르지 않나.”

“그래서 네 도움이 필요한거지. 집무실의 위치, 혹시 알아?”


당소하가 미간을 좁혔다.


“......모른다. 애초에 검왕과 독대를 청하지 않으면 들어가기도 어려운 공간이야. 대부분의 세가가 그렇듯이 남궁의 장원도 하나의 성이자 미로이다. 설계부터가 그렇게 되어 있으니.”

“좋아. 그럼 네 비도 하나만 줘 볼래?”

“비도는 왜?”


그렇게 말하면서 당소하가 품에서 묵색 비도를 꺼내들어 건넸다.

받아들자 묵직한 무게감이 팔을 끌어내렸다. 그것을 붙잡은 백연이 철의 상태를 가늠했다.


“묵철(墨鐵)이군. 사천당가쯤 되면 비도도 이렇게 비싼 금속으로 만드나보네.”

“병장기에는 아끼지 않는 편이지.”


백연이 비도를 쥐고 정신을 모았다. 금속 내에 새겨진 구조. 뛰어난 명인이 만들어낸 비도이다. 다루기 쉽지 않은 묵철을 비도로 가공하며 안에 담긴 진기가 오랫동안 남을 수 있도록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비도는 던지는 병기인 탓이다. 신체를 타고 뻗어나오는 진기가 끊어지고 난 이후에도 내력을 담고 있어야 한다. 그런 것에 얼마나 특화되어 있느냐가 상품(上品)과 하품(下品)을 결정한다.


‘딱 좋아.’


그가 사용하고자 하는 목적에 더없이 알맞았다.


잠시 눈을 감고, 동시에 내력을 일으킨다. 일순 피어오른 적양공의 짙은 불꽃이 몸을 타고 내달려 손바닥 위에 올려진 비도를 향해 질주했다. 과하다 싶을 정도의 내력. 짙은 염열의 불꽃이 비도에 주입되는 순간 묵철의 표면이 천천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백연이 눈을 떴을때 흑색의 비도는 옅은 붉은 기운이 눈에 보일 정도로 뜨거워진 상태였다. 안에 그의 내력이 제대로 담긴 것이다.


지금부터 내력이 흩어지기까지 약 반나절간은, 비도가 어디로 움직이든 근처에 있다면 추적할 수 있다. 기감에 더없이 예민한 그만이 쓸 수 있는 방법이었다.


“자, 여기.”


그것을 본 당소하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지금 이것을 나보고 들고 가라고?”


백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들고, 지금 남궁산과 독대를 청해줄 수 있겠어?”


당소하가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윽고 한숨을 내쉰 그가 비도를 받아들었다.


“술 한번 얻어먹은 값이 비싸군.”



※※※



“들어오거라.”


묵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이윽고 작은 문이 열리며 녹빛 장포를 걸친 한 소년이 휘적휘적 걸어들어왔다. 약관을 막 넘긴 소년과 청년 사이의 앳된 얼굴. 날카로운 눈매와 냉막한 외양이 그 부친을 쏙 빼닮은 모습이었다.


“검왕을 뵙습니다.”


포권을 올리며 예를 취하는 몸가짐이 정갈했다.

사천당가의 소가주, 당소하를 바라보며 검왕 남궁산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많이 컸구나. 전에 인사를 하러 왔을때는 네 형들이 있어 따로 말하지 못했다만.”


남궁세가의 가주 집무실이었다. 남궁의 드높은 위명과는 다르게 검소한 모양새였다. 벽면을 타고 들어오는 햇살이 방 전체를 적실 수 있을 정도의 작은 크기.


그러나 그 가운데에 앉은 검왕의 존재감은 전혀 작지 않았다.


“검왕께서는 평안하셨습니까.”

“언제나 비슷하지. 네 아비, 천독(千毒)은 어떠하더냐? 만난지도 몇해가 넘었구나.”


가벼운 말투에 대기가 떨렸다. 호흡 한번에 대기의 기운이 동하는 것이다. 의식하지 않은 범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검왕의 무지막지한 공력. 인간의 형상을 취한 재해라 봐도 옳은 존재다.


이런 검왕이 마교의 세에 붙었을 가능성이 있다 했다.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온몸이 공포로 굳어버릴 일이었다. 그러나 당소하는 그런 생각을 머릿속 한곳으로 치워두며 여상한 말투로 답했다.


“가주께서는 여전하십니다.”

“아직도 만천(滿天)을 넘어서겠다 집착하고 있는 것이냐? 놈의 오성이 천하를 질타하는 것은 잘 아나, 신공절학은 그리 쉬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거늘. 허송세월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그리 전하라 하시면.”

“되었다. 비무제전이 열리면 직접 보게 될 테니.”


끌끌 혀를 찬 남궁산이 당소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는 소년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도가 강했다.


“독룡이라. 네가 내 무릎에 오지도 않을 정도로 작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과분한 별호입니다. 당가의 위명을 등에 업은 것 뿐이지요. 세간에는 저보다 강한 후기지수들이 많습니다.”

“지나친 겸손은 좋지 않다. 네 아비가 아무에게나 소가주의 위를 줄 사람이더냐.”


당소하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당가 가주의 성정은 유명했다. 자신의 부친은 무학에 미쳤지만, 동시에 더없이 냉정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정이나 인연으로써 움직이는 법이 없었다. 당가의 소가주 자리를 적장자와 배다른 자식이자 삼남인 당소하에게 준 일만 해도 그랬다.


“네 아비의 방식이 옳다 생각하지는 않지만, 자신감을 가지거라.”

“아직 부족합니다.”

“헛허. 네가 누구를 시선에 두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혹 검룡이나......그래. 그 암화 같은 녀석을 생각하는 것이냐?”


당소하가 고개를 움찔하며 시선을 들어올렸다. 남궁산의 시선이 웃음기를 띄고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암화......”

“그래. 나도 눈과 귀가 있으니 섬서의 일은 들었다. 어디서 그런 천고의 재능이 나타났는지 놀랄 따름이야. 곤륜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것이 얼마만인지.”


당소하가 침을 삼켰다. 무슨 이유에서 저 이름을 꺼낸 것인지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단순히 자신이 목표를 높은곳에 두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 말한 것일까.


“......암화를 알고 계십니까?”

“보았다. 아까 전 개회식에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당돌한 놈이 있더군. 시선이 어찌나 강렬한지 몸에 구멍이 뚫리는 줄 알았다.”


남궁산이 허허 웃으며 턱을 쓰다듬었다.


“네 반응을 보아하니 아는 사이인가 보구나?”


당소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검왕의 앞에서 거짓을 말하는 것은 더 위험한 짓이었다. 그 정도 되는 고수가 말의 진실 여부 하나를 간파하지 못할리가 없는 일이다.


“어쩌다 보니 만나 안면을 트게 되었습니다.”

“좋은 일이다. 사람의 연(緣)은 어찌 이어질지 모르는 일. 그런 아이와 좋은 방향으로 교분을 쌓아두는 것은 나중에 네게 있어 큰 힘이 될 것이다.”

“만나보니 소문이 진실임을 알겠더군요. 검룡을 본 이후 더는 놀랄 일이 없다 생각했는데, 제 시야가 좁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더없는 진심이었다. 그만큼 백연이라는 존재는 놀라웠다. 자신보다 대여섯은 어릴 연배다. 그러면서도 행동과 움직임은 거침이 없다. 연배에 비해 초월적인 무위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 생각과 행동이다.


“곁에서 많이 보고 배우거라. 그 검룡도 무언가를 얻어 폐관에 들어가게 만드는 자질의 아이이다. 능히 목표로 삼고 뒤따를만 하겠지.”

“그러려 노력 중입니다.”


당소하가 고개를 숙였다. 다행히 남궁산은 백연에 대해 더 할 말은 없는 듯 했다.


“그래, 안부는 이쯤이면 되었고. 이제 네가 독대를 청한 이유를 듣자꾸나.”


당소하가 숨을 가다듬었다.


백연의 요청으로 남궁산에게 독대를 청하긴 했으나, 명분은 있어야 했다. 아무런 말이나 가져다 댈 정도로 가볍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당소하가 입을 열었다.


“당가의 후계 자리. 확고히 하려 합니다.”


그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울렸다. 앞에 앉은 남궁산의 기운이 살풋 바뀌었다.


“......뜻을 세운 것이냐?”

“형님들에게 양보할 만큼 여유있는 자리가 아니더군요.”


짧게 끊는 말. 그러나 그 속에 담긴 뜻을 간파한 남궁산의 시선이 가라앉았다. 그가 미간을 좁히며 이마에 자글자글한 주름을 만들었다.


“안타깝구나.”

“저도 그리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선택지가 별로 없는지라.”


당소하가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번 여름에 들어 다섯 차례 죽을뻔 했습니다. 물론 물증은 하나도 남지 않았지요. 당가 내의 파도 여럿으로 갈렸는데, 이러다가 장로들까지 합세해 내전이 일어날 기세입니다.”

“허어.”

“제 목숨만 걸렸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가 않아서.”


남궁산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 새겨진 안타까움과 걱정의 감정이 진했다. 감정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사람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혹시 저것도 연기인 것일까.


“그래서, 내게 무엇을 원하는 게냐?”

“......소가주의 위. 확고히 공표할 겁니다. 그때가 오면 힘을 보태주셨으면 합니다. 검왕의 위명이라면 무게감이 남다르겠지요.”

“자칫하면 외부인인 내가 당가의 내부에 개입하는 처사로 보일지도 모른다.”

“대놓고 말로 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간단한 증표 정도면 충분할테니.”


남궁산이 침묵에 빠져들었다. 그가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듯 눈을 감았다. 당소하는 가만히 호흡을 가라앉히며 남궁산을 응시했다.


여러모로 위험한 일이었다. 남궁산이 정말로 마교의 사람이라면, 그의 말에 뭔가 반응을 보일지도 모른다. 당가가 분열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 더없는 호재일테니.


하지만 이 정도 위험은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남궁의 가주를 독대하기는 불가한 일이다. 그만한 명분과 이유가 필요했다. 그것도 진실로만 이루어진.


본디 청하려 했던 일이기도 했다. 그 시기가 조금 앞당겨졌을 뿐이다.


그때였다.


“가주님.”


문 밖에서 앳된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변성이 오지 않은 소년의 여린 목소리였다. 그에 남궁산이 눈을 감은채로 답했다.


“들어와도 된다.”

“예.”


당소하가 고개를 돌려 뒤에 시선을 던지는 것과 동시에 문이 스르륵 열렸다. 집무실에 들어온 것은 백색의 장포를 입은 소년이었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를 지닌 소년이었는데, 백연과 맞먹거나 그보다 어리다 느껴질 정도였다.


“유진아, 인사하거라. 이 녀석이 당가의 소가주이다.”

“당가 소가주께 인사 드립니다.”


포권을 취하는 모습이 약간은 어설펐다.


남궁세가의 삼남, 남궁유진. 남궁산이 늦은 나이에 얻은 자식이라고 이야기 들었는데 직접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차기 당가의 가주가 될 녀석이니 서로 친하게 지내면 좋겠구나.”


이어진 말에 당소하가 시선을 홱 돌렸다. 여전히 눈을 감고 앉은 남궁산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 방금 자신이 요청한것에 대한 분명한 승낙의 의미였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다. 남궁세가의 소가주는 이미 따로 존재한다. 장자인 남궁혁이다. 그런데 하필 삼남 앞에서 이런 공표를 하다니.


당소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검왕님. 방금 그 말씀은 혹 이 자제분께서......”

“아니다.”


남궁산이 눈을 떴다. 그가 자신의 삼남을 바라보는 시선이 부드러웠다.


“네 아비를 욕하는 것은 아니다만, 나는 천독과는 생각이 다르다.”

“......”

“유진이는 내 아들들 중 가장 무재(武才)가 뛰어난 녀석이다. 때문에 내 검을 물려주려 생각하고 있지. 혁이를 보필할 검이 될 것이다.”


단호한 남궁산의 어투. 당소하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절대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그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를 일이다. 남궁산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는 어려웠지만, 이 자리에서 토를 달 만큼 그가 어리석지는 않았다.


“향후 이 아이에게 내 증표를 들려 보내겠다. 이 정도면 되겠느냐.”


당소하가 고개를 숙였다.


“충분합니다.”

“그래. 이제 가보아도 좋다.”


남궁산이 당소하를 향해 말했다.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감사드립니다.”


매무새를 가다듬은 당소하가 더욱 공손한 몸가짐으로 포권을 올렸다.



※※※



남궁세가의 드넓은 장원 한 구석이었다.


여상한 표정으로 산책하듯 걸음을 옮기는 백연은 주변의 소음을 무시하며 기감을 펼쳐내고 있었다. 운연동공을 활성화한 몸에서 쉴새없이 바람이 일었다.


‘복잡하군.’


기감 저 멀리 느껴지는 화기. 남궁세가의 장원을 복잡하게 돌고 돌아서야 닿는 깊숙한 위치에 들어갔다 다시 나오는 중이다. 그만큼 남궁산의 집무실은 찾기 어려운 곳에 자리했다.


‘됐어.’


이미 가는 길을 전부 기억했다. 복잡하긴 했으나 한번 찾아낸 기감을 잃어버릴 정도는 아니었다. 화기가 움직이는 경로를 따라 그의 머릿속에서 하나의 지도가 그려지고 있었다.


그 사이 주변에 서성이는 사람이 꽤나 늘어 있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는 그를 흘끔흘끔 바라보는 무인들. 암화라는 별호가 곳곳에서 속삭임처럼 들려왔다. 간간히 그에게 인사를 건네오는 무인들도 있었다.


백연은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러면서도 정신은 움직이는 화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때 저편에서 한줄기 신형이 날듯이 걸음했다. 한순간에 펼쳐낸 경공이 길거리에 가득한 사람들을 지나쳐 가볍게 백연의 곁에 내려앉았다.


당소하였다.


“후우. 죽겠군.”


도착하자마자 한숨을 내쉬는 모습이다.


“찾긴 했나?”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기억했어.”

“한번에 해서 다행이군.”


그가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남궁산을 독대하는 일이 심력소모가 컸는지.


그럴만 했다. 남궁산이 배신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제외하고서라도, 검왕의 호흡은 너무 무거웠다. 그가 남궁세가를 상징하는 가전무공인 제왕검형(帝王劍形)의 극의에 달한 검객인 탓이었다. 무형지기를 지배하는 무인의 몸에서는 의식하지 않아도 언제나 패도적인 기운이 사방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래. 언제 시작할 생각인가?”

“토벌이 내일 아침에 시작되지?”

“맞다.”


집무실 위치를 확인한 이상 더 시간을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백연이 무의식적으로 허리춤의 검파를 매만지며 답했다.


“내일 아침, 남궁산이 세가를 떠나는 즉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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