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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님의 서재입니다

곤륜환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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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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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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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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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수라궁(2)

DUMMY

‘무슨 힘이......!’


주먹에 실린 권격 경파가 어마어마했다. 받아내는 순간 뒤로 화신풍의 걸음을 밟지 않았다면 검과 팔이 함께 박살났을 것이다. 그렇게 힘을 줄여 받아냈음에도 백연의 신형이 뒤로 포탄처럼 날아갔다.


“커헉!”


길쭉하게 미끄러지며 간신히 두 발로 멈춰섰다. 속에서 비릿한 핏물이 울컥 올라왔다. 일순 몸을 저미는 듯한 경파가 온몸을 뒤흔들었다. 내가중수법을 시전한 것도 아닐터인데 순간 적양공의 불꽃이 흩어질 뻔 했다.


백연은 정신을 붙들었다. 시선을 아래로 떨구면 안된다. 적의 모습을 놓치는 순간 죽음이다.


그의 눈이 억지로 정면을 향했다. 시야에 분홍빛 검기가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검룡 유성의 매화검법이었다.


하늘하늘 일어나며 대기를 뒤덮는 연분홍의 꽃잎. 기세가 지극히 날카로웠다. 찢어질 듯한 살기가 여기까지도 느껴졌다. 사숙조의 죽음에 분노한 것인지.


‘하지만 저걸로는.’


다음 순간, 대기가 찢어졌다. 허공으로 뻗어올린 거대한 주먹. 거인의 손짓 한번에 피어나던 매화들이 한순간에 사그라들었다.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검격 경파가 달빛 아래 비산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 앞에서는 허초와 변초가 의미가 없었다.


‘화신풍.’


하단전에서 강렬한 화기가 일었다. 적양공을 시전하고 있는 도중에 화신풍을 일으킨 탓이었다. 그것까지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한줄기 불꽃이 그의 걸음을 휘감았다. 걸음을 내딛음과 함께 그의 뒷발꿈치를 타고 길다란 불꽃이 피어올랐다.


“매화검법. 나쁘지 않군. 하지만 살아남기엔 부족하다.”


이를 씩 드러내고 웃는 거인. 한번의 권법으로 매화검법의 검기를 박살내버린 그가 다시 한번 주먹을 움켜쥐었다.


“죽어라.”


주먹이 유성의 몸을 내리치기 직전.


화르륵!


거친 불꽃을 휘감은 검이 거인의 손목을 향해 파고들었다. 검에 담긴 기세가 파괴적이기 그지없었다.


“흠?”


그 기세에 거인이 반응했다. 뻗어가던 주먹이 펼쳐지며 급작스레 장법으로 바뀌었다. 그 덩치에서 나올 수 없는 어마어마한 속도였다. 눈으로 인식하기 어려울 정도의 쾌속. 우악스레 펼쳐진 손아귀가 백연의 검을 붙잡아 부러뜨리려 들어올 때였다.


‘성공.’


백연의 걸음이 직선에서 사선으로 틀어졌다. 화신풍의 걸음. 사방을 자유자재로 격하는 보법의 방향이 거인이 아닌 그 옆을 향했다. 검격은 미끼였다. 비스듬하게 그어진 검이 아슬아슬하게 거인의 손아귀를 빠져나가고, 백연의 신형이 거인의 뒤를 점했다.


“검룡!”


얼빠진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유성의 어깨를 붙잡았다.


“암향표, 극성으로!”


말을 길게 잇지 않았다. 짧은 찰나에 유성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동시에 백연은 화신풍을 다시 전개했다. 뒤를 돌아볼 새도 없이 오른편으로 걸음을 떼며 도약하는 순간.


콰앙!


직전까지 서 있던 자리가 박살났다. 스치듯 지나친 거인의 권격 여파가 둘러입은 그의 백색 장포 끝자락을 먼지처럼 소멸시켰다. 백연은 급히 고개를 돌려 반대편을 확인했다. 마찬가지로 허공에 떠오른 검은 도복의 소년이 보였다. 암향표였다.


“재미있는 쥐새끼들이군.”


거인의 목소리에 묻어나오는 웃음기가 섬뜩했다. 강자의 말투였다. 손속에 여유를 두고 있는 것이다.


굳이 귀담아 듣지 않았다. 부릅뜬 백연의 눈에 새파란 불꽃이 일었다.


‘귀안. 또 쓰게 되다니.’


투둑. 눈의 실핏줄이 터져나가며 핏물이 눈가를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의 몸에 맞는 안법을 하루빨리 만들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여기서 살아나가는 것이 우선이었다.


‘가능할까.’


순간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 곧바로 털어내며 검을 들었다.

그 사이 검신을 타고 흘러내리는 불꽃이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적양공으로 다룰 수 있는 화기는 이리 많지 않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주변의 기파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잠깐 집중하니 느껴졌다. 화기는 사방을 잡아먹고 크는 힘이었다. 몸 안에 갇혀있을 때는 그가 수기로 억눌러 놓았기에 커지지 않았던 것이, 바깥으로 풀려나오자 외부의 기운을 잡아먹고 커지고 있었다.


‘오히려 잘됐어.’


지금은 필요한 일이었다.

백연은 정신을 모으며 집중했다. 몸에서 풀려나온 화기를 검의 끝자락에 더했다. 타오르는 불길의 기운이 검을 집어삼키며 혀를 날름거렸다.


동시에 하나의 심상이 마음 속에서 피어났다. 직전에 검룡이 보여주었던 매화검법. 화려하기 그지없는 수백, 수천장의 꽃잎이 마음 속에서 움트기 시작했다.


그 순간.


‘온다.’


파박!


이번에는 소리를 듣기 전에 눈으로 인식했다. 흐릿한 선으로 뒤바뀐 세상 속에서 한줄기 거대한 인영이 재빠르게 공간을 격하고 있었다. 그의 주먹이 허공의 선을 뭉개며 오른편에서 짓쳐 들어왔다.


검은 어둠으로 휩싸인 주먹. 휘감긴 경파가 여러 중첩이었다. 거인의 권각술. 주먹 자체의 외공도 단단한데 여러겹으로 겹쳐진 호신기(護身氣)가 갑옷처럼 덧대어져 있었다. 정면으로 맞붙어 깨트리기란 불가능이었다.


‘빗겨내야 해.’


손에 힘을 빼고 검파를 길게 늘여잡았다. 그의 몸에서 일어난 화기가 검신에 추력을 더해주었다. 비스듬히 왼편으로 걸음을 내딛으며 검을 사선으로 휘둘렀다.


카각!


팔뚝에 부딪힌 검이 만년한철로 만든 벽을 마주한 것 마냥 튕겨나왔다. 하지만 백연은 멈추지 않았다. 주먹이 몸에 닿기 전에 검이 똑같은 각도와 추력으로 거인의 팔을 재차 가격했다. 허공에 길게 이어진 화기가 수많은 잔상을 남겼다.


일순 수십 차례에 달하는 극한의 쾌검이 거인의 팔을 격하고.


후욱!


거인의 주먹이 허공으로 빗겨 나갔다. 그의 팔에 휘감긴 경파가 주변에 돌풍과도 같은 여파를 일으켰다. 도복과 살갖을 베고 들어오는 경파 조각들. 순간 볼에 화끈한 감각이 느껴졌다.


백연은 개의치 않았다. 튕겨내지 못했다면 지금쯤 그는 천암과 똑같은 운명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대로 검을 재빠르게 거두며 앞을 향해 보법을 밟았다. 어차피 뒤로 물러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었다. 거인의 걸음이 자신보다 훨씬 빨랐기에.


동시에 그의 왼손을 타고 적양공의 화기가 움텄다. 삼원검은 보신경과 권각을 가리지 않고 이어낼 수 있었다. 그에 이번 생에 유일하게 배웠던 권법(拳法)의 구결이 머릿속에서 뒤바뀌며 풀려나갔다.


‘낙안권(落雁拳).’


분명 시초는 고절한 무공이다. 곤륜의 상승 무학을 뿌리에 두고 있던 권법. 구결 요체가 나쁘다 할 수 없었다. 거기에 더해 거인의 권격. 단순하고 직선적이었지만 파괴력은 비할것이 없었다. 나선으로 회전하는 기파. 귀안으로 강화된 눈에는 거인이 기파를 다루는 방법이 엿보였다.


머릿속에서 구결이 뒤섞이고 마음대로 뒤바뀌었다. 제멋대로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와 함께 왼팔을 따라 나선으로 휘감긴 화기가 맹렬하게 회전했다.


그렇게 주먹을 내지르기 직전.


‘부족해.’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여기서 한발짝 더 나아가야 했다. 그 순간, 마음속에 스친 매화 꽃잎이 있었다. 수백 수천장의 매화꽃잎. 연속된 허초와 변초로 적을 격하는 검격. 권각술이라고 재현하지 못할 것이 없었다.


심상을 담는것과 동시에 구결이 온몸을 따라 풀려났다. 화신풍으로 일으킨 추진 경파가 짧은 힘을 더했다. 나선으로 불길이 휘감긴 주먹이 바르르 떨리며 꽃잎처럼 분열했다. 붉은 불꽃이 여러줄의 꼬리를 남기며 나아가는 형상이 마치 밤하늘에 떨어지는 별의 줄기인듯 보였다.


콰콰콱-!


폭발하는 듯한 소리가 귀를 찢었다. 거인의 복부에 틀어박힌 주먹의 연격. 화기를 휘감은 주먹 끝자락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겹겹이 덧대어진 거인의 호신기가 부서진 것이다.


그와 거인의 힘의 차이는 까마득했다. 그만큼 믿기 어려운 성과였다. 순간 상대가 놀라 멈춰설 정도로.


하지만.


“대단한 재능이다. 그 연배에. 십 년......아니, 오 년만 늦게 만났어도 이 자리에서 네 명이 다하지는 않았을 것을.”


그를 굽어보며 웃는 거인. 호신기를 몇겹 부수는 것 까지는 성공했으나, 거인의 복부를 파고 드는 것에는 실패한 것이다. 기본적인 힘의 차이가 너무 현저했다.


“나를 만난것을 불운으로 여겨라.”

“뭐래.”


백연이 담담한 표정으로 거인을 올려다보았다. 일순 그의 얼굴에 의문이 스쳤다. 하지만 백연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은 거인의 얼굴이 아니었다.


“낙매분분(落梅紛紛).”


옅은 분노가 서린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렸다. 동시에 거인의 등 뒤에서 연분홍빛 검기가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허공에 새겨지는 수백겹의 검기. 하나 하나의 검로에서 피어난 꽃잎이 더없이 치명적이다.


“네놈들이......!”


흠칫 눈을 부릅뜬 거인이 몸을 움직이는 순간, 백연은 뒤로 몸을 날렸다. 화신풍의 걸음이 후퇴 보법을 자유롭게 펼쳐내었다. 동시에 하늘에 가득 피어난 매화가 그대로 거인을 향해 낙화(落華)했다.


파바바박!


수없이 많은 꽃잎이 떨어지며 거인의 몸을 난자했다. 눈앞을 가득 가리는 연분홍의 검기에 거인의 신형이 일순 가릴 정도였다.


귀안을 유지하고 있는 백연의 눈에는 조금 다르게 보였다.


‘저런거구나.’


매화검법. 드높았다. 상승의 무학이 지닌것은 단순히 위력만이 아니었다. 검로 하나 하나에 새겨진 고찰과 고민. 그것을 담아내는 구결의 형식과 기를 다루는 방식까지. 무엇 하나 가벼운 것이 없었다.


구파의 도가 검문(劍門)들. 검으로써 신선에 닿으려 하는 도인들의 집단이다. 그가 삼원검을 처음 만들때 느꼈던 정파의 검격. 검으로써 오롯이 구도에 이르고자 하는 고매한 이상이 모든 검로에 담겨 있었다.


동시에, 그러면서도 한 귀퉁이는 현실에 닿아있었다. 눈을 홀릴 정도로 아름다운 꽃잎의 검격은 사방 공간을 제압하고 적을 멸살하는데 특화된 검법이었다. 일각에서는 요사하다고까지 표현하는 화산파의 검.


‘전장을 제압하기에 좋아.’


그것을 마주하는 백연의 머릿속에 새로운 심상이 마구잡이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직전 펼친 권법에서 얻어낸 감각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에게는 매화 꽃잎이 없었지만, 대신 적양공의 불꽃은 있었다.


‘불꽃으로 공간을 격하면.’


검로 하나 하나를 전부 머릿속에 담았다. 그의 검끝에 이어질 영감이었다.


“괜찮아?”


후욱.


옅은 향이 감각에 닿았다. 암향표의 보법으로 그의 옆에 착지한 유성이었다. 검을 잡은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직전의 일격으로 무리한 듯 보였다.


“괜찮은데, 저거 안 죽었어. 알지?”


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격으로 잇자. 검룡이 오른쪽, 내가 왼쪽.”

“유성이라고.”


중얼거리면서도 검을 들어올린다. 그의 검신을 따라 옅게 맺히는 연분홍의 검기.


백연도 검을 들어올렸다. 좌수로 바꿔쥔 상태였다. 그의 몸에서 피어난 화기가 일렁이며 검을 뒤덮었다. 화기가 점차 뜨거워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온다.”


길게 말을 이을 필요가 없었다.

다음 순간 꽃잎이 찢어지며 퍼져나온 기파가 사방을 짓눌렀다. 하늘로 내뻗은 거인의 주먹에서 뻗어나온 기운이 피부를 저미듯 강렬했다.


“따끔하구나!”


광소를 흘리는 거인. 목소리에도 기파가 넘쳐 흘렀다. 한걸음의 도약으로 두 소년을 향해 짓쳐 들어왔다.

동시에 백연과 유성이 각자의 걸음을 내딛었다. 화신풍의 바람과 암향표의 향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양측으로 퍼지는 소년들의 손에 들린 검이 월광 아래 번뜩였다.


백연은 아슬하게 몸을 붙이며 검파를 쥔 왼손을 움직였다. 그의 검이 빛살처럼 늘어났다. 궤적에 불꽃을 이은채였다. 삼원검의 구결이 흐르듯 펼쳐지며 거인의 왼편을 격했다.


카가각!


어느새 다시 펼쳐진 호신기와 검이 부딪혔다. 이번에는 재차 연격을 펼치지 않았다. 검을 부딪힌 반탄력을 발판삼아 몸을 한번 뒤로 날렸다. 그와 거의 동시에 백연이 있던 자리를 묵직한 권격이 지나쳤다.


반대편에 스치는 연분홍빛 검기가 언뜻 보였다. 오른편에서 들어오는 유성의 매화검법이었다. 그것을 눈에 담으며 백연이 허공에서 몸을 비틀었다.


‘적양공을 일으키면서.’


검끝에 화기를 담아 허공에 검로를 그린다. 미완의 심상. 그 속에 담겨있는 것은 거칠게 세상을 수놓는 화염의 폭풍이었다.


‘연격을 기본으로 하자.’


자신보다 강한 적을 상대할때도 통해야 했다. 지금의 검격은 파괴력이 약했다. 연격을 통해 화기의 파괴적인 위력을 극대화 시키는 방법을 추구하고자 했다. 직전 거인의 호신강기를 부쉈던 권법처럼.


동시에 백연의 검이 환상처럼 흩어졌다. 처음 보았던 유성의 매화난만. 그 검격 초식을 비슷하게 담아낸 것이다. 바르르 떨리듯 흩어지는 검로마다 짙은 적색의 화염이 피어올랐다.


후욱!


허공을 격하는 주먹의 소리가 들렸다. 그와 함께 산산조각나는 연분홍빛 검기가 눈에 들어왔다. 기회였다.


백연은 지체없이 걸음을 내딛었다. 왼손에 들린 검이 허공을 가득 수놓은 검로를 이끌고 앞으로 나아갔다. 휘몰아치는 화염의 검로가 일제히 거인을 향해 쏟아졌다.


“놈......!”


기파를 느끼고 자신을 향하는 거인의 얼굴. 샛노란 눈동자에 처음으로 여유가 아닌 감정이 떠올랐다. 그 반응에서 느낄 수 있었다.


‘들어간다.’


다음 순간, 백연의 검격이 거인의 왼편을 격했다.


쾅!


검로가 선이 되어 시야를 가렸다. 짙은 열기를 가득 품은 화염이 한줄기 폭풍이 되어 거인을 집어삼켰다. 연속해서 이어지는 검격이 호신기를 연타하고, 그 끝에 이르러 무언가 부서지는 감각이 손끝에 닿았다.


그리고.


푸욱!


화염의 끝자락에서 내지른 검격. 직선으로 찌르고 들어간 그의 검끝에서 피륙음이 울렸다.


“......잘못 보았군. 오 년이 아니라 일 년으로 정정하지.”


팔을 들어올린 거인. 정확히 심장이 자리한 옆구리를 뚫어냈어야 할 백연의 검은, 거인의 팔뚝에 틀어박혀 있었다. 한 마디 정도 검이 파고 들어간 자리. 붉은 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반드시 죽여 없애야겠다 생각이 든 적은 오랜만이건만.”


미소가 사라진 거인의 표정. 그가 오른 주먹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진심을 다하지.”


백연이 눈을 부릅떴다. 귀안이 극성으로 피어올랐다. 거인의 손을 타고 휘감기는 거대한 기파. 여태까지와는 전혀 달랐다. 지금까지 여유를 부리던 거인의 모습은 사라지고, 극성으로 전개되는 권법의 기파가 사방을 짓눌렀다.


‘피해야......!’


일순 휘감긴 바람의 걸음이 그의 신형을 뒤로 끌어당겼다. 검을 뽑아내며 재빠르게 후퇴보법을 밟으려는 순간.


“육합(六合) 괴산(壞山).”


콰아앙!


거인의 주먹이 발밑의 대지를 격했다. 지진이었다. 일순 대지가 바다라도 된 양 지면이 흐르며 요동쳤다. 작은 영역 내에 자리한 땅이 뒤집히고 갈라졌다. 거대한 기파가 물결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커헉!”


엄청난 경력에 속이 진탕 뒤집혔다. 펼쳐내던 보법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순간적으로 공력이 뚝 끊어져 일으킬 수가 없었다. 울컥 올라오는 핏물을 뱉어내고 나서야 앞이 보였다.


‘무슨.’


거인을 중심으로 땅이 움푹 패여있었다. 반대편에는 유성이 검을 짚고 비틀거리며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한번의 권격으로 두 소년의 보법을 전부 무력화 시킨 것이다. 그들의 걸음이 그리 쉬이 잡힐것도 아닐진데.


‘일정 공간을 한번에.’


검파를 움켜쥔 백연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일어섰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거인의 모습. 이미 보법을 쓰기는 어려웠다. 지면을 박살내며 동시에 대지에 자신의 기파를 흘려 내가중수법과 비슷한 기예를 사용했다. 다리에 쌓인 경파가 적지 않았다.


‘이대로는.’


백연이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었다. 천천히 호흡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검귀의 검.’


몸이 망가질지도 모른다. 아니, 거의 확실하게 망가진다. 혈령쌍귀와 싸울때 보법 한 걸음을 재현했던 걸로도 오랜 기간을 정양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필요하다면 선천진기를 끌어내서라도 상대를 격할 일검을 짜내야 했다.


“후.”


호흡에 내공을 섞었다. 그와 함께 뽑아낸 진기를 오른팔에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음?”


거인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동시에, 눈부신 백광이 백연의 시야 한켠에 들어왔다.


‘달빛?’


아니다. 그보다 훨씬 밝은 빛이었다. 마치 하늘을 점하는 은하수를 한줄기 떼어내 대지에 떨군듯한 흐르는 백색의 빛줄기. 그 빛을 따라 주변의 대기가 찌그러지듯 일렁이는 모습이 눈에 선명했다. 본 적 있는 모습이었다.


다음 순간.


콰아아앙!


하늘을 가르고 쇄도한 빛줄기가 정확히 백연과 거인의 사이에 내리찍혔다. 대기를 찢어발기며 들이닥친 인영. 착지한 자리에서 거친 경파가 주변을 훑으며 퍼져나갔다. 착지의 여파만으로 주변의 돌덩이가 흩날리고 바닥이 갈라지며 신음할 정도였는데, 백연의 곁으로는 그다지 영향이 오지 않았다. 따로 신경이라도 쓴 듯이.


“수라궁의 사냥개. 꼬맹이한테서 더러운 손 치워. 안그러면......”


앳된 목소리와 가벼운 말투. 길게 늘어진 장포의 소매가 손을 덮고도 남아 바닥에 끌리는 모습. 작은 키와 체구가 한없이 가냘퍼 보이는 형상이다.


그러나 그 목소리에 서린 것은 섬뜩할 정도로 짙은 살기였다.


“죽여버리고 싶어지니까.”


거인이 눈매를 가늘게 좁히며 침음성을 흘렸다.


“성화방주.”


하오문의 일곱 방주. 그 중의 일좌를 차지하고 있는 소년같은 외양의 무인.

술법무공의 고수 성화방주 하령이, 사형들의 지원 요청을 받고 이 자리에 당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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