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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님의 서재입니다

곤륜환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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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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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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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수라궁(3)

DUMMY

※※※



[천영진(天影陣)]


촤르르륵!


사방에 울려퍼지는 육합전성과 함께 하령의 손끝을 따라 허공에 수십장의 종이가 펼쳐졌다. 그곳에 새겨진 각기 다른 글자들. 일제히 빛을 뿜어내며 사방에 거대한 기의 파동을 뿜어낸다.


“흐읍!”


동시에 거인이 기합성을 넣으며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쥔 주먹에 모여드는 기파. 대기가 깨지듯 일렁이는 모습이 눈에 선연했다. 천하 고수들의 싸움이었다. 거대 방파의 장로급에 달한 고수들. 손짓 하나 하나가 완전한 격살의 묘리를 짙게 담고 있었다.


[금쇄장(金鎖掌)]


카가각!


하령이 손바닥을 내침과 동시에 허공을 따라 쏟아지는 새하얀 빛줄기의 벼락. 어떤 원리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아보기도 쉽지 않다. 술법무공이란 그러했다. 그 본질을 영물들의 신비한 기예에 두고 있는 탓이다. 인외의 힘이다. 혹자는 무공이라는 범주에 집어 넣지도 않는 일도 허다했다. 저런 것은 무공이라 부를 수 없다면서.


거대한 진을 그려가며 거인을 공격하는 빛줄기들. 그에 재빠르게 움직이며 권격 연타로 받아치는 거인의 신형이 흐릿했다. 재빠르게 진을 벗어나며 사선으로 보법을 밟는 거인의 뒤를 따라, 바닥을 가볍게 박찬 하령의 신형이 날듯이 따라붙었다. 계속해서 백광을 투창처럼 꽂아넣는 와중이었다.


일대의 지천이 흔들리고, 부서지는 경파가 바람에 실려 얼굴을 스쳤다.


끼어들 공간이 없었다.


“......저게 성화방주.”


어느새 백연의 곁으로 와 선 유성이 중얼거렸다. 무언가 허망한 듯한 목소리였다.


“정신 차려.”


백연이 중얼거렸다. 그의 시야는 주변을 눈에 담고 있었다.


“아직 많이 남았어.”


직전 거인이 대지에 내려친 주먹. 그 여파로 패인 분지 너머로 스멀스멀 올라오는 인영들이 보였다. 기백에 달하는 수라궁도들. 아직 가득 남아 있었다.


그들이 거인과 싸우고 있었기에 덤벼들지 않았을 뿐. 하령이 거인을 상대하고 있는 지금은 이야기가 달랐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검을 치켜올렸다. 거인의 경파로 진탕이 된 내부. 잠깐의 여유가 있는 동안 운연동공을 돌려 몰아낸 참이다. 한결 호흡이 편해졌다.


“매화검법, 가능해?”

“충분해.”


그 사이 정신을 차렸는지 또렷해진 시선으로 앞을 응시하는 유성. 검을 치켜든 그가 내기를 끌어올리는 것이 느껴졌다. 검신을 타고 흐르듯 묻어나는 연분홍빛 검기. 전보다 기세가 약해져 있었다. 연이은 전투로 크게 지친 탓이다.


매화검법은 절세의 상승 무학이다. 아무리 검룡이 천재라고 한들 마구잡이로 계속 펼쳐낼 수 있을리가 없다. 하물며 나이도 어리다. 아직 축기량이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부족한 축기량을 적양공의 특이한 공능으로 채우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이제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다. 검에 달라붙는 불꽃이 곧 꺼질 듯 약하게 일렁였다.


“멀리 떨어지지 말고.”


난전 속에서 각자 적을 상대하는 것은 손해다. 서로 방위를 맡아 붙어서 싸우는게 더 효율적이다. 가뜩이나 부족한 내공을 아끼기 위해서는 필수적이었다.


검을 들고 등을 맞댄 두 소년이 기세를 끌어올렸다. 각기 피어오른 불꽃과 매화가 허공에 새겨지려 할 때였다.


“음?”


백연이 먼저 반응했다. 뒤이어 유성의 시선도 따라붙었다. 갑작스레 바람을 타고 사방에서 기운이 불어닥쳤다. 동시에 허공에 옅은 향이 퍼졌다.

사방을 점하며 속속들이 나타나는 무인들. 검은 도포 자락이 월광 아래 흩날렸다. 검을 들고 선 대여섯의 검객들. 기세가 잘 벼려진 칼날과도 같았다. 검은 도포 자락을 따라 새겨진 매화 무늬가 한층 짙었다.


일제히 검을 빼든 검객들이 손을 내치는 순간, 허공을 타고 매화가 만개했다. 월광 아래 피어난 연분홍의 검기가 사방을 가득 점하며 대기를 채웠다. 일순 달큰한 향이 훅 풍겨왔다. 드높은 성취를 이룬 매화검법이었다.


구파의 각 무력대중, 난전에 있어서 만큼은 최강에 가깝다는 화산의 최정예.


“매화검수?”


화산의 검이 자리에 당도했다.

번뜩이는 검격이 수라궁도들을 무자비하게 격살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살아남은 화산파의 무인들도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검을 들어올리는 모습.


그 매화검수들 중 한명이 가벼운 보법으로 도약해 소년들의 곁으로 떨어져 내렸다. 날카로운 인상의 눈매를 지닌 검객. 몸의 기도가 한자루 검과 같았다. 그를 본 유성이 외쳤다.


“천월 사숙조!”

“유성아! 괜찮느냐?”


유성을 발견하자마자 휘어지는 눈매가 부드러웠다. 퍽 아끼는 듯 했다.


“사숙조, 여긴 어떻게......”

“하오문의 급보를 받았다. 방주 본인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따라왔지. 곧 있으면 다른 이들도......아, 마침 저기 오는구나.”


촤륵.


공간을 격하며 빠르게 나타나는 무인들이 있었다. 백색 장포 자락이 검은 하늘을 배경으로 흩날리는데, 경공의 걸음 끝자락에 피어나는 빛무리가 북두칠성과 같았다.


도착하자마자 별다른 말도 없이 수라궁도들을 향해 달려드는 모습. 치켜든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무겁기 그지없었다. 각자가 궁도들 한 가운데에 떨어져 둘러쌓인 채로 검을 휘두르는데 사방 방위 어느곳도 빈틈이 없었다.


종남파의 검객들이었다.

기세가 드높은 것이 천군만마와 다름이 없었다. 그제서야 백연은 검끝을 천천히 내렸다.


그때였다.


“잠깐 안 봤다고 그새 또 성장했군. 네놈은 사람이 아니라 괴이라도 되는 것이냐.”


후우욱!


일순 주변의 월광이 휘어지며 흐릿해진 듯 했다.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꿈틀거리듯 움직이더니 한 인영이 기척도 없이 나타났다. 큰 키와 펄럭이는 흑색의 장포. 냉막한 얼굴의 무인이 백연을 보고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수라궁의 사냥개를 상대로 용케 살아남았군. 잘했다.”

“흑랑?”


그에게 다가온 무영방의 방주 대리.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짚더니 미간을 좁힌다.


“화기? 그딴걸 어떻게 몸에 담았는지 모르겠군.”

“잘 하면 됩니다.”


백연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제서야 긴장이 조금 풀렸다. 순식간에 피로가 몰려왔다. 흑랑이 이곳에 왔을 정도라면 하오문의 그림자들도 나타나고 있을 것이다. 수라궁의 전력이 작지 않다고는 하나, 여기 모인 모두를 상대하기에는 부족했다.


“사형들은......?”

“오고 있다. 상황이 급해 최대한 정예들만 추려 먼저 달려왔지.”


이야기하면서 소매에서 비도를 꺼내 가볍게 쥐는 흑랑. 그가 손을 까딱이는 순간 빛살같이 날아간 비도가 반대편의 궁도 둘을 꿰뚫어 즉사시켰다. 공격받고 있던 종남파의 무인이 잠깐 이쪽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헌데, 이리 급박하게 부른 것은 아니었는데요.”


의문이었다. 사형들에게 지원을 요청하라 한 것은 혹시 모를 소요전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길을 가다 거대한 수라궁의 무리와 마주칠 것까지 예측한 것은 아니었다.


“지원 요청을 받아 움직이던 도중 네 사형을 만났다. 직접 수라궁의 무리를 눈으로 보고 왔다더군. 설명을 듣자마자 사냥개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때문에 급히 하령까지 불러냈지.”


시야 저편에서 수없이 번뜩이는 백색의 빛줄기. 하령이 여전히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사냥개들이요? 하나가 아니군요.”

“그래. 수라궁에 속한 사냥개는 셋. 부궁주의 명을 직접 하달받고 움직이는 놈들이다. 개중 권격술에 특화된 자가 네가 방금 싸운 놈이고.”


저런 괴물이 셋. 강대한 전력이다. 부궁주와 궁주를 제하고도 드높다 할만 했다. 그에 더해 일반 궁도들의 수마저 압도적이다. 화산과 종남으로써도 쉬이 궤멸시키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저놈의 별호는 금안나찰(金眼羅刹). 정파 무림에서도 유명한 괴물이다. 목을 원하는 구파의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니.”


전에도 자주 나타나 구파와 충돌을 빚었다 한다. 그 과정에서 죽은 정파 무인이 한둘이 아니라고. 그럼에도 잡힌적이 없다 했다.


“오늘도 하나 늘었나.”


천암 진인. 일격에 죽었더랬다. 하얗게 멀어있던 한쪽 눈이 멀쩡했다면 조금 달랐을까. 그러나 무림에 만약은 없었다.


흑랑이 냉막한 시선을 들어 주변을 살폈다. 사방 가득한 수라궁도들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종남과 화산의 무인들, 그에 더해 언제 도착했는지 하오문의 그림자들이 날뛰고 있다. 전장을 제압하기에 충분한 무력이었다.


“놈들이 이리 움직이는 것을 보니 정말로 목표를 찾았나보군.”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찾았습니다. 수라궁의 목표는 백철 야장이에요.”


흑랑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실존하기는 하는 사람이었나?”

“만나고 왔습니다.”

“호오.”


흥미로운 듯 시선을 빛내는 흑랑이다.

그럴만도 했다. 백철 야장의 존재를 알고 있는 무인이라면 호기심이 동하지 않을리 없었다.


그때였다.


[젠장!]


땅을 울리는 목소리. 신령하게까지 느껴지는 소년의 음성이 사방을 진동시켰다. 말투까지 신령스럽지는 않았다.


이윽고 허공을 따라 한줄기 빛무리가 쇄도하더니 가볍게 백연의 뒤편에 내려앉았다. 소매를 펄럭이며 착지한 하령의 표정은 잔뜩 구겨져 있었다.


“왜 그러지?”

“또 놓쳤어. 또!”


이를 가는 모습. 옷 군데군데가 해져 있는 것이 격렬한 전투를 치뤘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놓치셨단 말입니까?”


백연이 반문했다.

믿기지 않았다. 하령의 신위는 괴물같았다. 금안나찰도 강하다지만, 하령이 질거라는 상상은 들지도 않았다. 그런 그가 금안나찰을 놓쳤다니.


“응. 저놈 보신경이 무진장 빠르거든. 그래도 이번에는 팔뚝에 왠 부상을 입었길래 잡나 했더니, 결국 놓쳤어.”


하령이 한숨을 뱉었다.


“마음 같아서는 계속 추적해서 잡고 싶은데.”

“위험하다. 방주. 네 위치를 망각하지 마라.”

“나도 알거든?”


흑랑의 말에 하령이 얼굴을 잔뜩 구겼다. 한숨을 푹 뱉은 소년의 시선이 백연에게로 옮겨왔다.


“괜찮아?”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그래도 잘 살아남았구나. 대단해. 그 덩치놈의 권격은 나도 신경써서 받아쳐야 하는 수준인데.”

“놈이 여유를 부려서 할만 했습니다.”

“원래 그런 성격이야. 거만하기 짝이 없지. 그런 주제에 질 것 같으면 뒤도 안보고 도망가는게 자존심이라곤 하나도 없는 쓰레기야.”


신랄하게 말을 뱉는다. 잡지 못한것이 신경 쓰이는 듯 했다.

호흡에 자꾸만 한숨이 섞이는 것이 외양과 영 어울리지 않았다.


“너무 신경쓰지 마시죠.”

“응?”

“다시 만나면 상대할만 할 것 같아서.”


하령이 눈을 깜빡였다. 그가 백연을 빤히 올려다보다 이윽고 웃음을 터트렸다.


“하핫, 네가?”


진심이었다. 그러지 못할 것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금안나찰의 권격은 자신과 상성이 나쁘지 않았다. 화신풍의 보법이 권격에 무효화 되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해볼만 하다는 느낌이 왔다.


지금 당장 싸우면 몰라도 다음번이라면.


‘검법, 분명 닿았어.’


화염의 검격. 싸우는 도중에 머릿속에 새겨넣은 미완의 검법이다. 그럼에도 금안나찰의 호신기를 부수고 팔뚝에 상처를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 조금만 다듬는다면 충분히 유효한 공격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하령이 금안나찰을 잡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성화방주와의 전투를 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안나찰이 백연 자신과의 전투를 피할 이유는 없었다. 아니, 외려 적극적으로 달려들 것이다.


‘죽이려 했으니까.’


자신을 죽여 후환을 없애려는 자이다. 기회가 만들어진다면 적극적으로 덤벼들겠지. 금안나찰의 권격은 강대했으나 맞지 않으면 그만이다. 동시에 그의 호신기는 권격만큼의 강함은 아니었다. 외공을 지나치게 믿는 듯 했다.


“그놈 목을 선물해드리죠.”

“아하핫.”


웃어대는 하령의 모습. 이윽고 그가 손을 뻗어 백연의 어깨를 툭 쳤다.


후욱.


갑자기 들어온 차가운 기운이 어깨에서부터 몸을 따라 휘돌았다. 이질적인 기운에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 기운은 혈맥을 따라 자연스레 섞여들며 몸 안에 녹아들었다. 동시에 몸의 체온이 서서히 낮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화기를 너무 과하게 끌어썼네. 조심해. 내가 기운으로 잠깐 눌러놨으니 한결 편할거야.”

“아, 감사합니다.”

“전투 직후에는 운공부터 해. 네가 몸에 담은 화기는 잘 통제해야 하는 기운이니까.”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싸우면서 화기가 점점 커져가는 느낌이 들었다. 주의할 필요성이 있다. 주변을 집어삼키며 크는 기운이니.


“정리도 거의 끝났나보네.”


하령의 시선이 주변을 향했다. 사방에 넘쳐나던 궁도들이 전부 흩어져 도망가거나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다. 검을 흩뿌리는 화산과 종남의 검객들. 구파의 검이 드높았다.


“아, 그리고 저기 왔다.”


하령이 한곳을 가리켰다. 그쪽을 보자 익숙한 인영들이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백연아!”

“괜찮냐?”


멀리서부터 부르는 목소리.

백연은 한숨을 내쉬고는 손을 들어 저었다.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은채였다.



※※※



“천암을 비롯한 화산의 무인 넷이 죽었소.”


임시로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다섯의 무인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백연도 함께였다.


손을 모으고 앉은 화산의 매화검수 천월. 그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대로 좌시할 수는 없소. 무리를 해서라도 뒤를 쫓아 전부 쳐 죽여야 하오.”

“사숙조.”


천월의 옆에 앉은 유성이 말을 꺼내려 했으나 매화검수는 손을 들어 막았다. 그가 모인 사람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말을 이었다. 적잖은 분노가 서린 목소리였다.


“만일 그대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화산은 독단적으로 수라궁을 쫓을 것이오.”

“진정해 보시오, 천월. 그대가 분노하는 마음은 알겠소만.”

“그대 종남 무인들은 죽지 않았으니 그리 말하는 것이지. 홍유각.”


그에 반대편에 앉아있던 백의의 검객이 미간을 좁혔다. 홍유각이라는 이름의 종남 검객이었는데, 훨씬 차분한 인상이었다. 그가 한숨을 내뱉고는 입을 열었다.


“천월. 지난 수개월간 종남의 무인도 여럿 귀천했소. 나라고 수라궁을 쫓고 싶지 않겠소이까?”


그렇게 말하며 시선을 돌리는 홍유각. 그 눈이 향한 곳은 백연의 옆, 팔짱을 끼고 앉은 흑랑을 향해서였다.


“다만, 무영방 방주 대리의 의견은 어떠하신지.”

“내 의견?”


흑랑이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그의 눈이 냉담하게 주변을 훑었다.


“없다. 쫓고 싶으면 쫓아라. 그것을 왜 나한테 묻는 것이지?”

“......하오문이 조력해주었으니 묻는 것이오.”

“나는 네놈들을 조력하러 온게 아니다. 이놈이 도와달라 해서 온거지.”


그 말에 세 쌍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백연이 앉아있는 방향이었다.


뚫어져라 그를 보는 눈길들이 약간은 당황스러웠다.


‘어쩌자는 건지.’


홍유각의 시선은 놀라움이 담겨 있었다. 천월의 눈도 크게 다를 것 없었다. 유성의 시선만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어려울 정도로 투명할 뿐이었다. 직접 옆에서 같이 싸웠기 때문인지.


“이 녀석이 쫓자 하면 그리 하겠다. 그러니 이놈을 먼저 설득하도록.”


그렇게 말하는 흑랑의 목소리. 분명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백연이 시선을 번쩍 들어 흑랑을 쳐다보았다. 이 사람이 지금 무슨 소리를.


“그러고 보니, 성화방주도 본디 이리 움직일 사람이 아닌데.”


말하는 홍유각의 목소리에 뭔가 깨달은 듯한 느낌이 담겨 있었다.


이미 돌아간 하령이었다. 서안지부를 오래 비울 수 없다 했다. 짧게 설명하고 간 것이, 하오문의 적은 외부에만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오문 내부의 세력 다툼이 아직 한창인듯 했다. 암야서고가 자리한 서안지부를 함부로 비울 수는 없겠지.


“공자는 무엇 하는 사람인지 물어도 되겠소?”


조심스레 물어오는 홍유각. 백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곤륜파 삼대제자 백연이라 합니다.”

“곤륜파?”

“곤륜이라?”


홍유각과 천월이 동시에 미간을 좁혔다. 구파의 사람들에게도 그리 익숙한 이름이 아닌 듯 했다. 잠시 고민하는 행색이 그랬다.


“허면 백연 공자는 어찌 생각하오? 수라궁을 쫓는 것에 대해.”


진중하게 자신의 의견을 물어오는 모양새. 흑랑의 말 한마디에 이리 대하는 것이 퍽 우스웠다. 하지만 동시에 좋은 기회였다. 백연은 이것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에게도 계획이 하나 있었으니까.


“쫓을 필요 없습니다.”


수라궁의 주력이 많이 남아있는 한, 백철 야장과 그 후인인 선아는 위협을 받는다. 지금까지 이리 쫓아왔으니 순순히 놔줄리가 없을 터.

그러나 만약 그 위협을 여기에서 대부분 제거하고 갈 수 있다면?


“쫓을 필요 없다니, 그 무슨 소리지?”


순식간에 날카롭게 백연을 노려보는 천월. 살기가 느껴졌다. 신경쓰지 않았다. 이보다 수십, 수백배에 달하는 살기도 숨쉬듯 마주했었다.


“말 그대로 입니다. 어차피 쫓지 않아도 수라궁은 오게 되어 있습니다.”

“......온다?”

“예. 수라궁은 그저 아무 의미 없이 섬서를 들쑤시고 다닌게 아니니까요. 그들에겐 목표가 있습니다.”


옆에서 흐음, 소리를 내며 자세를 고쳐앉는 흑랑.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챈 듯 했다. 백연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러니 제 생각은, 그 목표를 미끼로 이용해 수라궁을 끌어들여 괴멸시키자는 것.”


기왕 마련해준 판, 잘 써먹어야지 않겠나.


“간단히 말해 섬서에서의 수라궁 멸살(滅殺)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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