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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님의 서재입니다

곤륜환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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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최근연재일 :
2024.06.29 18:10
연재수 :
3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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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3.09.0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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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설화(雪花)(4)

DUMMY

“방주 대리가 말입니까?”


저절로 반문할 수 밖에 없었다. 눈앞에 떠있는 종이조각.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토해낸다. 신강에 흑랑이 월영비도를 회수하러 가겠다 한지가 시일이 꽤 흘렀다. 돌아올 시간이 지났건만.


[그래. 삼개월이 되던 때에 연락이 왔어. 생각보다 오래 걸릴 것 같다고. 그 이후로 간간히 소식을 전해왔는데, 얼마전을 기점으로 완전히 끊겼고.]

“무덤을 찾은것은 맞습니까?”

[산등성이에서 협곡과 커다란 마을 같은 것을 찾았다고......]

“찾긴 했군요.”


대략적인 묘사만을 듣고도 알 수 있었다. 흑랑은 제대로 도착한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연락이 끊겼다니.


“별달리 남긴 말은 없었는지요.”

[조사를 해야겠다 했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면서. 월영비도의 회수를 잠시 후순위로 미룬다고 했지.]

“그럴만한 일이 있습니까? 무영방주의 기물인데.”

[내 생각에는.]


종이 위를 뒤덮은 붉은 물결이 한번 파문을 그렸다. 감정의 동요를 나타내듯이.


[마교와 연관이 있는 것 같아.]

“마교......말입니까.”

[그래. 네가 천주산에서 알려온 정보는 이미 들었어. 그걸 듣고나니 그런 생각이 들던데.]


종이 너머에서 들려오는 하령의 목소리. 어린 외양의 성화방주가 짓고 있을 표정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백연은 종이를 쳐다보며 입매를 굳혔다.


무영방 방주 대리 흑랑. 일신의 무위가 드높다. 일대의 절대자만큼 지고하다 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강자의 반열에 들 괴물. 특히나 그가 사용하는 월영신공은 몸을 움직이는 것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무공이다.


그가 작정하고 몸을 숨기거나 도망치려 하면 잡으려 들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말이다. 언제고 원하는대로 몸을 뺄 수 있다. 그랬기에 그가 홀로 신강에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그다지 걱정할 생각이 들지 않았건만.


“......그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흑랑을 찾아줘. 부탁할게.]


백연은 종이를 응시하며 시선을 가라앉혔다. 이윽고 그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하오문에서 움직일 사람이 없습니까?”


무턱대고 수락할 수가 없었다. 당장 사형들에게 가르칠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문파의 힘을 축적하고 있는 겨울. 하오문과 곤륜은 협력 관계이나 별개의 문파이다.


신강으로 가는 것에 온 힘을 쏟을 여력이 없다는 소리다. 그 혼자의 몸이라면 검 한자루만 매고 훌훌 신강으로 걸음해도 괜찮건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곤륜이라는 문파를 등에 업고 있는 상황이다.


그것을 하령도 모르지 않을 터.


이윽고 침묵을 유지하던 종이가 파르르 떨리며 재차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소집령이 내려졌어. 지금 나도 서안을 비운 상황이야.]

“소집령?”

[응. 천주산의 일 덕분에 문주가 지금 하오문 수뇌부 전체를 소집했어. 그래서 지금 여기에 와 있는데......잠깐만. 너 방해하지 말고 꺼져. 술법이 흔들리기라도 하면......!]


잠시 종이가 흔들리며 하령의 목소리가 불안정하게 흩어졌다. 무언가 중간에서 웅얼거리는 듯한 소리가 울리더니 이윽고 다시 하령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후. 여하간 그런 상황이야. 그리고 네가 알려준 무덤의 위치인 만큼, 그것에 대해 너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더 없을테니까.]

“......”

[내 이름을 걸고 이렇게 부탁할게. 흑랑은 하오문에 꼭 필요한 인재이고, 무엇보다 내가 아끼는 녀석이야. 적어도 생사만큼은 반드시 확인해야해.]


백연이 고민하듯 검파를 두드렸다.


그렇게 짧은 침묵이 이어지고. 이윽고 백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다만 조건을 하나 걸죠.”

[조건? 뭐든 좋아. 다 들어줄게. 하나가 아니어도 되는데.]


다급함과 반가움이 묻어나오는 목소리에 백연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거기까진 필요 없습니다.”


위험한 일이다. 그 대가로 하령에게 많은 것을 요구할 수도 있겠으나 백연은 그럴 생각까지는 없었다.


검귀의 무덤. 언제고 한번 가려 했던 장소이다. 그 안에 잠들어 있는 것이 적지 않다. 단순히 흑랑을 찾아내는 것을 넘어서 얻을 것이 상당한 곳이다. 거기에 더해 마교가 준동하고 있다 하면 미리 파악해 놓는 것은 중요한 일일 터.


그랬기에 백연은 한가지만을 입에 담았다.


“하령께선 술법무공에 대해 잘 알고 계시죠.”

[술법무공? 그야 당연하지. 제갈의 눈깔괴물이나 모산의 음침한 늙은이도 나보다 많이 알고 있다고 확신하지 못할텐데. 특히 세간에서 실전된 술법무공은 대부분 내가 익히고 있다고.]


자부심이 뚝뚝 묻어나오는 목소리. 그에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심상세계에 대한 술법무공에 대해서도 잘 알고 계시겠죠. 일전 저를 심상에 집어넣은 적도 있으시니.”

[그렇......지?]

“심상세계에 들어가는 술법. 그걸 알고 싶습니다.”



※※※



화르륵!


맹렬한 열기와 함께 불꽃이 피어올랐다. 새빨간 보석을 집어삼킨 화염.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하령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나를 통째로 다 써버렸네.”


하령이 침울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이윽고 불꽃이 사그라들자 보석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본디 보석이 놓여있던 자리 주변으로 복잡하게 뻗어나간 문자와 술식이 가득했는데, 하나같이 제 빛을 잃고 침잠한 모습이었다.


술법무공의 대가 성화방주 하령. 공능과 구결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수백, 수천가지의 술법무공을 다룬다. 그런 그로써도 드넓은 중원을 반 이상 가로지른 장소에 목소리를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것은 어려운 기예였다.


단순히 몸에 담긴 내공만으로는 이뤄내는 것이 불가능한 기적.


그 술법을 사용하기 위해 희생한 것이 적지 않았다. 단순히 말을 전달하는 것 뿐임에도.


“그냥 문도들을 시켜 전달하면 될 일 아닌가? 굳이 스스로의 힘을 깎아먹으면서 까지 술법을 사용한 이유를 모르겠는데.”


뒤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하령이 미간을 좁혔다.


“내가 말했잖아. 믿을 사람이 없다고.”

“지고한 성화방주의 눈이 믿을 사람 하나 가려내지 못하는군.”

“그리고 설령 믿을 사람을 찾더라도 중간에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는 일이야. 이렇게라도 직접 말을 전할 수 있다면 해야지.”


소매를 길게 늘어뜨린 하령의 뒤에서 흐음, 하는 목소리가 흘렀다.


커다란 방 안이었다. 벽과 기둥, 천장을 이루고 있는 장식이 화려하기 그지없었는데, 그와 대비되게 방 내부는 텅 비어있었다. 대신 하령의 술법진을 구성하는 복잡한 문양만이 방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편, 방 입구에 서있는 그림자가 있었다. 길쭉하게 솟은 기둥에 기댄 형상. 입가에 길쭉한 무언가를 물고 연기를 내뿜고 있었는데, 그로 인해 얼굴을 정확히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그렇다 해도 네가 소모한 피의 양이 너무 많은데.”

“걱정해주는거야? 많이 상냥해졌네.”


피식 웃는 하령. 그에 잠시 입을 다물었던 목소리가 재차 이어졌다.


“네 회복까지 일이 생길것을 우려하는거다.”

“지금도 힘은 충분해. 모아둔거 조금 썼다고 크게 약화되는 건 아니니까.”

“쯧. 말은 번드르르 하군.”


이윽고 기둥에 기댄 형상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왔다. 길게 늘어진 검은 장포가 부드럽게 흔들렸다. 벽을 따라 일렁이는 불빛이 사내의 얼굴을 비췄다. 그러나 그 불빛은 사내가 내뿜고 있는 연기를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단순한 연기가 아니었다. 마치 일렁이는 그림자가 얼굴을 덧씌우고 있는 듯한 기묘한 형상. 그 광경을 보며 하령이 얼굴을 찌푸렸다.


“야, 그것 좀 여기서 안 피우면 안되는거야?”

“안된다.”

“그게 고통 경감에 효과가 있다는건 알겠는데......감각도 무뎌질테고. 무엇보다 향이 지독하다고.”

“네가 후각을 차단하면 되는거 아닌가.”

“내가 말을 말아야지.”


한숨을 내쉰 하령이 손을 뻗었다. 그에 반응해 사방에 펼쳐져 있던 술법진의 도구들이 일제히 떠올랐다. 자유자재로 공간 내의 물건들을 다루는 하령의 술법. 그것을 보며 사내가 흥미롭다는 듯이 고개를 기울였다.


“암화라고 했나? 마음에 들었나 보군.”

“응?”

“네가 그리 친절하게 대하는 사람이 몇 없는 것으로 아는데. 술법무공까지 알려주고 말이다.”

“흑랑의 일을 맡아준다 하니 알려준거지. 그저 호의로 알려준건 아닌데.”


답하는 하령의 손짓이 잠시 느려졌다. 그에 사내가 코웃음을 쳤다.


“네 피를 그렇게 소모해가면서? 마지막에 술법무공을 알려주겠답시고 소모한 힘이 적지 않을텐데. 나중에 따로 알려줘도 될 것을.”


하령이 시선을 돌려 사내를 응시했다. 어린 소년의 맑은 눈동자가 사내의 얼굴을 가린 연기를 꿰뚫을 듯이 또렷했다.


이윽고 하령이 어깨를 으쓱였다.


“틀린 말은 아니네. 내 마음에 들었나보지.”

“의외로 순순히 인정하는군.”

“애초에 이번 일을 그 꼬맹이한테 부탁할 상황이 온것 자체가 문제야. 실력을 믿고, 흑랑을 반드시 구해야 하니 맡긴거지만......”


하령이 표정을 구겼다.


곤륜파의 백연. 뛰어난 재능을 지닌 것은 알고 있다. 그 녀석이 가지고 있는 비밀이 많다는 것도. 하령은 그 소년의 실력을 믿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번 일은 지나치게 위험하다. 그로써도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면 결코 백연에게 일을 맡기지 않았을 터. 본디 직접 서안을 비우고 신강에 갈 생각까지 한 하령이었다.


“하필이면 지금 소집령이 떨어지다니.”

“금원방주가 일을 거하게 쳐놨으니 어쩔 수 없지.”

“그 돼지가 진짜 미쳐서.”


이를 아드득 간 하령이 재차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사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니, 애초에 네가 자리에 있었으면 될 일이잖아. 신강에 흑랑이 간 것 부터가 문제야. 그간 심산유곡에 처박혀서 노니까 좋았어? 응?”


따지듯 추궁하는 하령의 모습. 그에 사내가 고개를 기울였다.


“내가 놀고 있었다고 말한 적은 없는데.”

“그럼 뭘 했는데?”

“그건 문주에게 물어라.”


사내의 말에 따지려던 하령이 입을 다물었다. 문주의 명. 하오문 내에 속한 모두에게 절대적인 말이다. 사내가 문주에게 물으라 했다면 그와 연관이 있는 일. 하령으로써도 더 따져 물을 수는 없었다.


“젠장할.”

“하령.”


사내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는 잔재다. 아직까지 이 자리에 버티고 있는 것이 우스운 일. 문주도 그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내 역할을 흑랑이 물려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의미다. 대리라 칭하고 있으나 실질적인 방주이지.”

“그래. 네놈보다 백배는 믿음직하지.”


투덜거리는 하령의 모습을 보며 사내가 웃음을 흘렸다. 동시에 한순간 그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연기와 그림자가 흔들렸다. 언뜻 스친 불빛 아래로 시리도록 새파란 눈동자가 찰나 드러났다.


이윽고 사내가 몸을 돌렸다. 그의 뒤편으로 펄럭이는 검은 장포가 그림자처럼 늘어졌다.


“이만 가지. 문주가 기다리고 있다. 다른 방주들도 이미 도착했을 터.”

“금원방주는?”

“방주 대리가 임시로 참석했을 것이다. 재미있군.”

“......좋아. 가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했어.”


사내의 뒤를 따라 걸으며 하령이 중얼거렸다. 그에 사내가 하령을 힐끗하곤 입을 열었다.


“너는 그 소년을 믿나?”

“백연을?”

“나는 흑랑을 믿는다. 내가 선택한 후계이니.”


키 큰 사내의 발치를 따라 그림자가 흔들렸다. 성큼성큼 걸어나가는 걸음걸이에 실린 무게가 강렬했다.


“암화라는 소년이 네 후계는 아니지만, 네가 선택한 녀석 아닌가.”


술법무공을 알려주는 것. 그 의미가 가볍지 않다. 사내는 하령의 성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이렇듯 선선히 술법무공을 내주었다 하는 것은 그만큼 소년을 인정했다는 것.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어떤 면에서 자신의 술법무공을 이어줄 사람으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믿어라.”


단호한 사내의 말에 하령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미 선택했다. 신강의 일은 백연에게 맡겼다. 그가 지금 이 자리에서 더 고민한다 해서 달라질 것이 없는 상황. 지금은 눈앞의 일에 집중할 시기이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의 걸음이 한 커다란 문 앞에서 멈춰서고.


“성화방주님. 그리고......”


문을 지키고 선 하오문도가 침을 꿀꺽 삼키더니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무영방주님. 안으로 드시지요.”

“흐음.”


쿠구궁.


사내의 목소리와 함께 거대한 문이 느릿하게 열렸다. 바닥을 끄는 소리가 천둥처럼 사방에 메아리쳤다. 안쪽을 따라 드러난 커다란 공간. 그 안에 커다란 석탁을 중심으로 둥글게 둘러앉은 사람들이 있었다.


도합 여덟개의 자리. 그 중 여섯은 이미 차 있었고, 두 자리만이 남아 기다리고 있는 모습.


“왔구려.”


그 사이에서 늙수그레한 인상의 노인이 몸을 일으키더니 두 사람을 마주했다. 고개를 살풋 까딱여 인사를 마친 백발의 노인이 이윽고 선언하듯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전부 모였으니, 시작하도록 하지요.”



※※※



손에 잡힌 종이. 직전까지 허공에 떠서 하령의 목소리를 뱉어내던 종이는 이제 얌전히 백연의 손에 놓여 있었다.


“신기하네요.”


백연이 중얼거렸다.


눈앞에서 목도한 하령의 술법무공. 전에도 몇차례 하령이 술법무공을 부리는 것을 견식한 적은 있었으나 이러한 것을 본 적은 없었다.


파괴력이 강한 무공은 많다. 허나 중원을 가로질러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무공은 거의 없다. 그만큼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단순히 몸을 쓰고 검을 휘두르는 파괴의 행위에서 벗어나, 대자연의 기운을 자유자재로 부리고 불가능해 보이는 이적을 일으키는 무공. 술법은 그 자체로 매력적인 무공이었다.


“술법무공을 부리는 문파가 크게 둘이 있던가요.”

“맞아요. 제갈세가와 모산파가 있죠. 각기 다루는 힘의 성질에는 차이가 있지만.”


루주의 답에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받은 종이를 품에 챙기면서였다.


직전까지 붉게 물들어 있던 종이는 이제 다시 흰빛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러나 이전의 백지는 아니었다. 종이 위에는 붉은색으로 새겨진 문자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마치 핏물로 적어내린 혈서같은 모습.


하령이 남긴 물건이었다. 스스로의 피를 매개로 술법무공에 사용할 뿌리를 만들어준 것이라고.


본디 술법무공은 지고한 고수가 아닌 이상 괴황지와 같은 매개체를 기반으로 펼치는 것이 기본이다. 백연은 술법무공에 조예가 없는 바, 심상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술법을 배운다 해도 제대로 써먹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렇게 만들어준 것.


“필요할때 잘 써먹어야겠군요.”


머릿속에 떠도는 술법무공의 구결이 난해했다. 검법이나 심법의 구결과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존재했다. 잘 갈무리해 머리 한 구석에 새겨두며 백연이 루주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흑랑의 소식이 언제쯤 끊겼는지 아십니까?”

“오늘로 일 개월이 되었어요.”


일 개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천주산에서 일이 일어난 시점과도 얼추 겹치는 시점. 하령이 즉시 행동에 나서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금원방주의 일로 하오문 내부도 어지러울 테니.


“......함께 갈 사람이 필요하겠군요.”


잠시 고민하던 백연이 말했다.


본디 혼자 갈 생각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자유롭게 몸을 빼기에는 당연히 혼자가 용이하겠지. 흑랑도 그러한 이유로 혼자 신강에 걸음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조금 달랐다. 만일 흑랑이 부상당했거나 위독한 상태라 하면 혼자서 그를 구출하기는 어렵다. 그를 도와줄 다른 사람들이 필요할 터.


그리고 그와 더불어 검귀의 무덤 내에 파묻힌 물건들이 있었다. 그것들을 회수하면 곤륜파에 도움이 될 것이다. 도와줄 사람 몇이 있는 편이 좋았다.


“소수 정예로.”


너무 큰 무리를 끌고 가면 많은 이목이 집중될 터. 신강에서 적의 눈길을 과하게 끄는 것은 좋지 않다. 마교는 위험한 종자들이니.


“그 여정, 노부가 함께해도 되겠소?”


그때 백연의 곁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곤륜파의 정문 바로 옆. 늙수그레한 외팔의 노인이 수염을 쓸고 있었다.


무영방의 그림자 팔영. 여태 곤륜과 옥수를 오가며 머물고 있던 객이다. 백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요.”


그 무위가 낮지 않다. 사형들과 실전에 가까운 대련을 하며 지도해주는 경우가 자주 있었는데, 갈수록 팔영 본인의 무위도 오르고 있는 듯 했다. 팔 하나를 잃고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인지.


“나머지는......”

“그, 본의 아니게 엿들었는데.”


후욱.


시야 위편에서 옅은 암향이 일었다. 코끝을 간지럽히는 감각에 백연이 눈을 깜빡였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그의 앞에 착지한 흑색 무복의 유성. 어색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이고 있다.


“갑자기 이쪽에서 강렬한 기파가 일어서 와봤더니, 목소리가 들리더라고.”


검룡의 감각. 깜빡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만한 술법무공이 일었는데 그가 느끼지 못할리가 없었다. 나무 위에서 듣고 있었나.


하령과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다곤 해도, 백연이 알아채지 못한 몸놀림이었다. 화산파 암향표의 움직임이 신출귀몰했다.


“일행이 필요한거지?”

“그렇지.”

“나도 가도 될까?”


물어오는 시선이 티없이 맑았다. 백연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검룡 유성의 실력은 당연히 큰 도움이다. 이보다 좋은 사람을 찾기는 어려울 터. 하지만 문제는 그가 화산파의 사람이라는 데에 있다. 이런 일에 동행했다 다치기라도 한다면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


그때 유성이 재차 입을 열었다.


“혹시 화산파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거라면 신경쓸 필요 없어. 스승님께선 오히려 이런 기회를 원하실걸.”

“흐음.”

“처음에 나한테 노을을 내쳤다고 했잖아. 실전으로 담금질 할수록 강해진다고 생각하시는 분이야. 나도 동의하고. 물론 문파의 다른 어르신들이 자꾸 나를 보호하려 드셔서 문제지만.”


그 말에 백연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좋아.”


더없이 좋은 일이다. 검룡이 있는 이상 왠만한 강자가 나타나도 감당할 수 있을 터.


“그리고......”


백연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팔영과 검룡 둘로는 손이 부족할지 모른다. 적어도 두엇은 더 필요할 일인데.


그때 백연의 시야에 누군가가 다가오는 모습이 들어왔다. 곤륜파 안쪽에서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인영들이 있었다.


“백연!”


무진과 단휘, 소홍. 사형들 셋이 이곳으로 약속한 듯이 달려오는 모습.


“후. 갑자기 검룡이 이쪽으로 사라지길래 따라왔다. 무슨 일인거냐?”


놀란 표정으로 묻는 무진을 보며 백연이 턱을 매만졌다.


본디 반년전의 그라면 어떤 일이 있어도 사형들을 이런 위험한 일에 동행시키지 않았겠지만, 지금의 백연은 조금 달랐다. 사형들의 실력도 그때와는 달랐고.


“사형들.”


백연이 운을 떼자 세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모여들었다. 그 얼굴들을 보며 백연이 미소를 지었다.


“응?”

“신강에 잠시 다녀올 계획인데, 생각 있어?”

“......그게 무슨?”

“흑랑이 실종되었어. 찾으러 가야 하는데.”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시간이 짧게 흐르고, 백연의 말이 끝났을 때 사형들의 반응은 전부 한결같았다.


“당연히 가야지. 네가 간다는데 혼자 가게 내버려두겠냐?”

“그......혼자 가도 크게 문제는 없는데.”

“마음의 문제다 이놈아.”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반응에 백연이 피식 웃었다.


“그럼, 다같이 가는걸로 하고.”


사형 셋과 검룡, 그리고 팔영까지. 충분한 인원이었다. 각기 지니고 있는 무위도 낮지 않은 상황. 마교를 맞닥뜨리더라도 그와 검룡이 가장 강한 적들을 맡는다면 충분히 버틸만 하다. 무엇보다 검귀의 무덤이 그들의 목적지인 이상에야.


‘왠만한 적은 상대할 수 있어.’


백연 자신보다 무덤을 잘 아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언제 출발할 생각인가요?”


끼어든 루주의 목소리가 물었다.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한 표정. 그에 백연이 잠시 시간을 가늠했다.


이곳에서부터 신강까지. 상당한 거리이다. 당장 출발해도 꽤 시일이 걸릴 터지만, 그렇다 해서 백연은 서두를 생각이 없었다.


“아직 정리할 것이 좀 있습니다. 아마 칠주야쯤 뒤에 출발하겠군요.”


서두른다 해서 일이 잘 풀리는 것이 아니다. 곤륜에서 마무리 할 것을 마무리 지어놓고, 철저하게 준비를 하고 갈 생각이었다. 물론 그 시간으로 인해 흑랑이 잘못될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으나.


‘믿어야 해.’


그것 때문에 죽을 사람이었다면 이미 목숨을 잃었을 터. 백연은 흑랑의 무위와 판단력을 믿었다. 애초에 백연 자신에게 투자하는 도박을 건 사람이니. 그 결단력과 행동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 말을 곱씹듯 입술을 베어문 루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칠주야 뒤라.”

“더 당기라 하면 당길 수는 있습니다만, 크게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군요.”

“아니요. 공자의 선택을 뭐라 하는 것이 아니에요. 다만 제 일을 인계해놓을 시간을 가늠하고 있었을 뿐.”

“무슨 뜻입니까?”


백연이 되물었다. 그에 루주가 눈매를 휘며 미소를 지었다.


“이번 일. 저도 동행하려 하는데, 가능할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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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설화(雪花)(2) +6 23.08.28 6,574 109 21쪽
83 설화(雪花) +8 23.08.25 6,880 118 17쪽
82 선택(5) +6 23.08.23 7,008 122 21쪽
81 선택(4) +5 23.08.21 6,842 123 20쪽
80 선택(3) +8 23.08.18 7,363 128 22쪽
79 선택(2) +6 23.08.16 7,320 122 24쪽
78 선택 +6 23.08.14 7,485 129 21쪽
77 검귀의 검, 곤륜의 검(6) +8 23.08.11 7,556 141 19쪽
76 검귀의 검, 곤륜의 검(5) +8 23.08.09 7,255 126 20쪽
75 검귀의 검, 곤륜의 검(4) +7 23.08.07 7,384 133 21쪽
74 검귀의 검, 곤륜의 검(3) +6 23.08.04 7,647 135 18쪽
73 검귀의 검, 곤륜의 검(2) +4 23.08.02 7,866 136 19쪽
72 검귀의 검, 곤륜의 검 +5 23.07.31 8,202 140 16쪽
71 검왕(4) +10 23.07.30 7,702 121 13쪽
70 검왕(3) +7 23.07.29 7,453 138 12쪽
69 검왕(2) +7 23.07.28 7,472 135 15쪽
68 검왕 +8 23.07.27 7,569 142 16쪽
67 마기 +5 23.07.26 7,594 134 14쪽
66 금원방(2) +5 23.07.24 7,759 142 16쪽
65 금원방 +4 23.07.23 8,219 137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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