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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속은냉죽
작품등록일 :
2024.04.12 16:51
최근연재일 :
2024.05.20 20:00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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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글자수 :
167,261

작성
24.04.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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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001화 – 핵 앤 슬래시

DUMMY

윤리와 도덕의 최소 기준치가 폐기된 시대.

한때 명목상으로나마 평등하던 시민들에게는 1급에서 5급까지의 등급이 매겨져서 각 등급에 따라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제한되었고, 천부인권이니 자연권적 기본권이니 하는 말은 듣기에만 좋은 구시대의 헛소리로 취급되어 웃음거리가 된 지 오래다.

그렇다면 하급 시민에서 상급 시민으로 올라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야 돈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좀 다르다.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기업들에게 상급 시민, 즉 ‘우수 고객’이라 인정받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구매능력과 신용평가니까.

그리고 애초에 상급 시민······ 즉, 1급 시민 이외의 일반인은 직접적으로 ‘돈’을 만지는 일조차 불가능하다.


구시대의 화폐, 올드 달러는 정부가 망한 다음에도 여전히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하나하나 설명하자면 너무나 길어지고, 대충 말하자면 특정 기업이 화폐 발행권을 독점하는 것을 꺼리던 기업연합이 ‘차라리 구시대 화폐를 기준으로 하자.’라며 기업 간 거래에서는 오직 달러화만을 쓰기로 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업이 돈을 독점하게 된 이후 발행되기 시작한 게 바로 신용 점수(Credit Points).

읽을 때는 크레딧, 표기할 때는 CP로 표기하며, 개인의 신용도와 기업의 경영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략 1포인트가 1/1,000달러에 해당하는 전자유가증권이다.

발행 주체는 각 지역의 지배기업.

그러니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쓰레기장······ 딥 래더 시티 6번가에서 통용되는 것은 딥 래더 인더스트리에서 발행한 딥 래더 크레딧이 된다.

물론 크레딧 앞에 어떤 이름이 붙더라도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기업연합에 소속된 7대기업의 크레딧은 서로 1:1 비율로 손실 없이 교환되니까.

그 외에도······ 아니, 이 이상은 됐다.

이 정도면 대충 알아둬야 할 건 다 알게 된 거다.


그런데 내가 왜 이 시점에서 돈 관련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놓느냐고?

지난번에 남의 CT에서 크레딧을 빼내기 위해서는 해커가 필요하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해커가 오늘 휴가에서 돌아왔다.


현대 사회에서의 해커라고 하면 어떤 걸 떠올릴까.

어두운 방 안에서 허리를 구부린 채 빛나는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깡마른 안경잡이?

한 손엔 권총, 한 손엔 고성능 휴대용 컴퓨터를 들고 후드를 뒤집어쓴 채 밤거리를 누비는 불한당?

안전한 곳에서 목뒤의 단자에 플러그를 꽂고 사이버스페이스를 누비는 카우보이?

결론부터 말하자면 셋 다 있다.

그리고 우리 팀 해커는 저 셋 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


* * *


그날 오후.

내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무렵, 거실 한쪽 구석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드론 한 대가 삑삑거리며 부팅되는 소리를 울렸다.

맨-머신 엔지니어링 워크숍제 반중력 부유 드론.

직경 45cm의 완전 구체형, 최대부유고도 40미터, 최대비행속도 시속 120킬로미터.

종합 센서 모듈 6개, 9인치 접이식 디스플레이 1개, 데이터 케이블 겸용 플렉서블 소프트 머니퓰레이터 4개.

간이 보호막 및 은폐장 발생장치, 그리고 도난 방지 기능 포함.

4번가는커녕 벽 너머에서도 보기 힘든 최고급품으로, 이것 하나만으로 B&C를 세 개 반 정도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드론은 B&C의 자산 목록에도, 내 장비 목록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한 달 만입니다. 클라이드 비스펀지.]

이건 우리 팀 해커의 개인 자산이다.

“칼라마리.”

내가 이름을 부르자, 해커 칼라마리는 드론 위쪽을 전개해 그 안에 수납되어 있던 접이식 디스플레이를 펼쳤다.

[네, 뭡니까.]

화면에 표시되는 것은 드론 너머에 있는 해커의 얼굴······이 아니라 그리 퀄리티가 높다고는 할 수 없는 라이브2D로 만들어진 아바타.

까놓고 말해서 별로 안 유명한 버추얼 유튜버 같다.

고급 드론을 사느라 아바타 제작에 쓸 돈이 없다는 건 아닐 거다.

만약 드론 하나에 모든 걸 쏟아부었다면 이걸 한 달이나 내 집에 그냥 방치해두고 있을 리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러너에게 있어 동업자의 세세한 사정을 캐묻는 것은 금기이고, 드론 너머에 있는 게 11살의 천재 소녀이건 54세의 비만 중년 남성이건 눈에 실제로 보이는 건 직경 45센티미터의 커다란 금속 구체뿐이라 별로 신경 쓰이지도 않는다.

그보다 지금 중요한 건······.

“할 일이 있다.”

나는 집 한쪽 구석에 쌓여있는 백여 개의 CT를 가리켰다.

칼라마리는 그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대체 한 달 사이 사람을 얼마나 쳐 죽인 겁니까?]

“해커가 없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러너에게 해커는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멤버다.

해커는 경보장치를 무력화시키고, 전자식 자물쇠를 따느라 소비되는 시간을 극적으로 줄이고, 감시 카메라를 조작해 적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거나 팀원을 안전한 곳으로 피난시킨다.

실제로 2주 전에 있던 마지막 부업에서는 칼라마리가 빠진 덕분에 즉석에서 모집한 총잡이 하나랑 우리 팀에 들어오고 싶어서 예비멤버를 자칭하던 짐꾼 하나만 데리고 일을 뛰었고, 일이 끝난 다음 살아남은 건 나 혼자.

해커가 없다는 건 적과 많이 마주치게 된다는 소리고, 적과 많이 마주치게 된다는 것은 전투가 늘어난다는 소리며, 전투가 늘어난다는 것은 팀의 생존율이 급속도로 낮아진다는 소리다.

뭐, 나는 전부 때려죽이고 혼자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그리고 여기 쌓인 CT는 그 전리품.

적과 많이 마주친다는 건 전리품이 많아진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대체 해커가 없는데 왜 그런 짓을 한 겁니까?]

“그 사정은 내가 설명할 필요 없이 네가 잘 알 거고, 사실 걱정하지도 않으면서 걱정하는 척하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손을 움직이는 게 더 기쁠 것 같다만.”

[알겠습니다.]

칼라마리는 군말 없이 CT 더미로 다가가 드론 하부에 수납되어 있는 기계팔을 꺼내 해킹을 시작했다.


* * *


해커를 경시하는 러너는 오래 못 산다.

러너란 원래 기업을 대신해서 더러운 일을 하는 직업이니만큼 오래 못 사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걸 감안해도 해커를 ‘뒤에서 키보드나 만지작거리며 편하게 돈 버는 포지션’이라고 생각하는 놈들의 수명은 터무니없이 짧다.

당장 내가 리더를 맡고 있는 러너 팀만 해도 방금 말한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전 리더가 해커를 홀대했고, 그 해커는 팀원들을 전부 유류창고로 유도한 다음 리더가 허리에 차고 있던 수류탄에 몰래 붙여놨던 마이크로칩을 작동시켰다.

그게 내가 러너가 된 다음 뛰었던 첫 일이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내가 리더가 된 이후, 우리 팀은 해커에게 일선에서 뛰는 팀원과 동일한 보수를 분배하는 것은 물론이고 CT에서 빼낸 크레딧의 절반은 무조건 해커 몫으로 배당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하면······.

“러너 팀 ‘리퍼즈’에게 의뢰가 있습니다.”

이 구린 이름은 결코 내가 지은 게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우거지상을 지었다.

이름을 지은 놈은 폭사한 전 리더인데 왜 내가 부끄러워해야 하는 건가.

“그거 안 하면 안 될까?”

“미안하지만······ 풉! 이건······ 큭큭······ 정식 절차라서 어쩔 수 없어, 오빠.”

보니는 낄낄거리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나에게 자료를 건넸다.

젠장.

아니, 뭐, 아무튼 일은 일이니 나는 자료를 받아들었다.

“어디 보자. 물류창고 조사 결과······.”


<배달부 연합을 자칭하던 불법 조직이 무단으로 점거하고 있던 B&C 물류창고 조사 결과, 해당 조직의 결성에 아쿠아 비타 주식회사의 개입을 암시하는 자료가 발견.>


뒤에 이것저것 별지가 첨부되어 있긴 했지만 요약하자면 이렇다.

“아쿠아 비타라······.”

아쿠아 비타 주식회사.

5번가의 음료 제조 회사다.

하지만 그 이전까지는 6번가에서 생수를 팔고 있었고.

나도 어릴 적에는 꽤나 신세를 졌다. 당시 구할 수 있던 것 중 유일하게 내부피폭이나 중금속 중독 염려 없이 마실 수 있는 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5번가로 올라간 놈들이 인제 와서 6번가에 손을 댄다는 것은······.

“사다리 걷어차기?”

“그렇겠지. 아니, 그것 말곤 없을 거야, 아마.”

흔히 있는 이야기다.

상급 거주구역으로 옮겨가 자리를 잡은 녀석들이 제일 먼저 착수하는 일은 후발주자의 견제.

B&C는 6번가에서 시작된 기업치고는 이례적으로 빠르게 성장했고, 아쿠아 비타가 위기감을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견제를 하려면 들키질 말았어야지.

7번가 출신 떨거지들이 B&C의 눈을 피해서 5번가의 변호사와 접촉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부터 이미 외부의 개입을 의심하게 되는데, 거기에 친절하게도 증거까지 남겨두신다?

물론 놈들도 순진하게 서류에 아쿠아 비타라는 기업명을 명시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배달부 연합 본거지에서 발견된 서류의 한쪽 귀퉁이에는 하나같이 아쿠아 비타의 로고가 워터마크로 박혀 있었다.

누가 봐도 회사 안의 프린터에 있던 용지를 그대로 출력한 거다.

다만 ‘어떤 미친놈이 회사 내의 비품을 훔쳐 가서 멋대로 한 거다’라고 변명할 수 있기 때문에 심증은 될지언정 물증은 될 수 없다.

따라서 B&C가 기업법에 의거해 업무방해죄로 아쿠아 비타를 고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럴 때 움직이는 게 바로 러너다.


나는 보니에게 자료를 돌려주며 물었다.

“내용은?”

“놈들의 제3공장을 좀 손봐줬으면 해. 너무 심하게는 말고, 그냥 당분간 가동 정지할 정도로만.”

“제3공장이라.”

나는 머릿속에서 그 일대의 지도를 떠올렸다.

“내일 아침까지는 돌아오마.”


* * *


아쿠아 비타 제3공장은 아쿠아 비타가 이 쓰레기장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제1공장이라 불리던 물공장이다.

그러다 아쿠아 비타가 5번가로 옮겨간 이후 생수보다는 기타 음료에 주력하게 되면서 다른 공장을 세우게 되었고, 중요도가 떨어진 제1공장은 제3공장이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중요도가 떨어졌다 한들 6번가에서는 여전히 깨끗한 물을 필요로 하고, 그 판매 수입은 5번가 진출 기업이라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제3공장에 모종의 테러가 일어난다면 아쿠아 비타의 향후 계획에는 꽤나 큰 차질이 생길 것이다.

사다리 걷어차기 따위에 한눈을 팔 여유는 없어지겠지.


하지만 그런 중요한 시설인 만큼 아쿠아 비타도 공장을 그냥 멍하니 방치해두고 있을 리는 없다.

나는 망원경으로 제3공장 근처를 살폈다.

대충 보이는 것만 해도 아홉, 열, 열하나······.

게다가 자칭 배달부 연합 같은 아마추어 집단과는 달리 서로가 서로의 사각을 보완하는 위치에 배치되어 있고, 소지한 무기도 단순한 권총이 아니라 돌격소총이나 스코프 달린 라이플이다.

사병인가? 아니면 경비업체?

어느 쪽이건 정면에서 들이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쪽도 준비를 해왔다.


“곧 돌입한다. 준비는 다 됐지?”

[물론입니다. 제가 언제 준비 안 된 적이라도 있었습니까? 오히려 당신이······.]

“그럼 가자.”

핵 앤 슬래시.

해킹 담당(Hacker)과 전투 담당(Slasher)으로 이루어진 2인조는 러너 팀의 기본단위이자 최소단위이다.

정면에서 총을 갈겨대기에는 터무니없이 모자란 인력이지만, 의뢰자가 원하는 일을 달성하기에는 그 어떤 장애물도 없을 것이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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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제025화 – (언)리즈너블 바이올런스 NEW 13시간 전 3 0 13쪽
26 제024화 – 패밀리 비즈니스 (7) 24.05.19 5 0 14쪽
25 제023화 – 패밀리 비즈니스 (6) 24.05.18 5 0 13쪽
24 제022화 – 패밀리 비즈니스 (5) 24.05.17 6 0 13쪽
23 제021화 – 패밀리 비즈니스 (4) 24.05.16 7 0 13쪽
22 제020화 – 패밀리 비즈니스 (3) 24.05.15 6 0 12쪽
21 제019화 – 패밀리 비즈니스 (2) 24.05.14 6 0 14쪽
20 제018화 – 패밀리 비즈니스 24.05.13 6 0 14쪽
19 제017화 – 스멜스 라이크 사이버펑크 (2) 24.05.12 6 0 13쪽
18 제016화 – 스멜스 라이크 사이버펑크 24.05.11 6 0 13쪽
17 제015화 – 더 퓨처 이즈 낫 아워스 24.05.10 6 0 14쪽
16 제014화 – 리턴 리트라이 리피트 (4) 24.05.09 5 0 13쪽
15 제013화 – 리턴 리트라이 리피트 (3) 24.05.08 5 0 11쪽
14 제012화 – 리턴 리트라이 리피트 (2) 24.05.07 8 0 12쪽
13 제011화 – 리턴 리트라이 리피트 24.05.06 10 0 13쪽
12 제010화 – 허밋 크랩 인 더 셸 (4) 24.05.05 10 0 13쪽
11 제009화 – 허밋 크랩 인 더 셸 (3) 24.05.04 14 0 14쪽
10 제008화 – 허밋 크랩 인 더 셸 (2) 24.05.03 11 0 13쪽
9 제007화 – 허밋 크랩 인 더 셸 24.05.02 12 0 12쪽
8 제006화 – 퓨처 퓨전 판타지 (3) 24.05.02 11 0 14쪽
7 제005화 – 퓨처 퓨전 판타지 (2) 24.05.01 14 0 13쪽
6 제004화 – 퓨처 퓨전 판타지 24.05.01 14 0 12쪽
5 제003화 – 핵 앤 슬래시 (3) 24.04.30 20 0 12쪽
4 제002화 – 핵 앤 슬래시 (2) 24.04.30 17 1 13쪽
» 제001화 – 핵 앤 슬래시 24.04.29 27 2 12쪽
2 튜토리얼 (2) +1 24.04.29 42 3 30쪽
1 튜토리얼 (1) +2 24.04.29 89 4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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