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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속은냉죽
작품등록일 :
2024.04.12 16:51
최근연재일 :
2024.05.17 20:00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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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9,527

작성
24.04.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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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튜토리얼 (1)

DUMMY

<튜토리얼 : 의뢰 수주 페이즈>


최근 들어 내가 착한 사람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 것 같다.

만약 그게 내 새하얀 인성을 소리 높여 칭송하는 것이었다면 굳이 하나하나 언급할 필요도 없겠지만, 문제는 이 일대에서 ‘착한 사람’이라는 것은 곧 ‘호구’를 뜻하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이건 확실히 좋지 않았다.


문제는 대체 어디서 그런 소문이 났느냐 하는 점이었다.

아니, ‘어디서’보다는 ‘왜’가 더 중요했다.

대체 왜?

최근 1년간 본업보다 부업에 중점을 둬서?

아니면 길 잃은 관광객을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내준 것 때문에?

“······.”

어느 쪽이건 가능성이 있다.

아니, 가능성 정도가 아니라 백 퍼센트 그것 때문에 호구 소릴 듣는 게 분명했다.

만약 나였어도 다른 놈이 그런 짓을 하는 걸 보면 단번에 호구로 낙인찍었을 테니까.


하지만 어제부로 부업을 끝내고 오늘부터 본업으로 복귀하려는 지금, 그 소문이 앞으로 계속 이어지는 것은 곤란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문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 * *


과거 수많은 지식인들은 제3차 세계대전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해왔다.

가라사대, 알려진 모든 국가가 참전한 거대한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가라사대, 핵의 불길이 지구를 휩쓸 것이다.

가라사대, 그 모든 것이 끝나면 인류의 문명은 완전히 붕괴해 석기시대로 돌아갈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경고 중 제대로 들어맞은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인류는 지식인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멍청했고, 인류 문명은 ‘세계대전의 전조’라며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국지적 충돌 단계를 채 마치기도 전에 거대한 잿더미 위에 올라앉았다.


하지만 지금 내가 멀쩡히 살아서 이 더러운 쓰레기장을 걸어 다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겠지만, 인류는 결코 그런 걸로 멸망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내가 눈을 돌리는 곳마다 온통 번쩍거리는 광고판이 보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겠지만, 인류 문명이 완전히 붕괴한 것도 아니었다.


[헬리오스 레이저 툴즈. 당신이 원하는 모든 광학무기.]

[기쁠 때도 슬플 때도 당신과 함께하는 화이트 베일 제약.]

[가장 빠르게. 가장 값싸게. B&C 푸드몰.]

[딥 래더를 기억하라.]


지구의 곳곳이 불타 사라지고 구시대의 정부는 붕괴해 소멸했다.

하지만 기업은 여전히 남아 구시대와 마찬가지로······ 아니, 구시대보다 더 활기찬 모습으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 * *


모든 일은 지구 곳곳에서 정체불명의 게이트가 열리고 괴물이 쏟아져 나온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무슨 헌터물 프롤로그 같다고?

맞다.

게이트 너머에서 나온 괴물들에게는 총알과 수류탄을 비롯한 대부분의 현대무기가 먹히지 않아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

하지만 그 희생자 중 극히 드물게 엄청난 힘을 발휘해 오히려 괴물을 희생양으로 만드는 이가 있었으니, 이들은 잠시 시들했다가 그 당시(※2050년쯤)가 되어 갑자기 다시 크게 유행하기 시작한 헌터물 웹소설의 용어를 따와서 ‘헌터’라고 불렸다.

농담 같지만 진짜다.

후술할 러너나 워커 등의 용어도 그렇지만, 지금 시대에 사용되는 용어의 상당수는 구시대의 소설이나 게임 등에서 따온 것들이다.

아무튼 이제 헌터가 등장했으니 슬슬 인류의 반격이 시작될 거다······라고 생각했나?

미안하지만 그건 전혀 아니다.

확실히 헌터가 등장한 다음부터 인류는 무력하게 죽어가는 신세를 면하게 되었다.

하지만 헌터는 등장했어도 정작 중요한 인물은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괴물을 몰아내는 것은 지지부진했다.


그렇다.

‘주인공’이 없었다.


게이트 너머로 용감하게 나아가 그 너머에 있는 원흉을 쓰러뜨리는, 아니면 최소한 당분간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피해라도 입혔을 영웅은 존재하지 않았다.

미래에 대한 지식과 오랜 세월의 경험을 가지고 눈을 감았다가 전성기의 나이에 눈을 뜬 역행자도 없었다.

무림에서 최고봉에 올랐다가 죽어서 이 세계에 다시 태어난 전생자도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판타지 세계에서 마왕을 물리치고 지구로 돌아온 귀환자도 없었다.

이 세계를 미리 소설로 읽었고, 작가가 숨겨둔 복선이나 이스터에그 등을 줄줄이 다 꿰고 있는 열혈 독자도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세계를 소설로 써서 인터넷에 연재하던 작가도 없었다.

하다못해 이 세상 모든 행운과 우연이 다 한 사람에게 쏠려있는 듯한 럭키가이마저 없었다.


말하자면 헌터물 세계이긴 한데 주인공은 없는 세계다.

대부분의 헌터물 주인공이 이기적인 사이코패스에 사이다패스라고는 해도 남들에 비해 뚜렷하게 뛰어난 능력이 있는데, 그런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인물이 없었기 때문에 무엇 하나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게 없었다.


새로운 헌터가 나타나는 만큼 새로운 괴물도 나타났다.

헌터가 괴물을 사냥해 점점 강해지는 만큼 새로 나타나는 괴물도 점점 더 강해졌다.

결국 인류가 되찾을 수 있던 것은 게이트가 열리기 전과 비교하면 절반이 조금 넘는 정도의 영역뿐.

그리고 인류가 되찾은 영역과 한때 인류였던 것의 영역의 경계에서 무수한 헌터와 괴물이 서로 죽고 죽이며 피를 흩뿌린 끝에······.


기업연합은 게이트 억제기를 개발했다.


억제기는 게이트에서 나오는 특수한 파장을 중화하는 장치로, 게이트가 더 크게 성장하는 것을 막을 뿐만 아니라 게이트와 동일한 생체 파장을 가지고 있는 괴물들을 접근하기만 해도 입자 단위로 분해시켰다.

또한 억제기의 원리를 응용한 무기 또한 속속들이 개발되어, 이젠 딱히 헌터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괴물을 잡아 죽일 수 있게 되었다.


헌터?

민간인도 훈련받으면 괴물을 쏴 죽이는 시대다.

이젠 필요 없지?


헌터에 대한 토사구팽은 매우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루어졌다.

초창기의 혼란으로 붕괴한 정부를 대신하여 인류를 지배하던 기업들은 게이트 억제기로 확보된 인류의 생존권 바깥에 헌터 격리수용 시설을 지었고, 그때까지 살아남아 있던 헌터들은 전원 그곳에 강제 수용되었다.

반항?

할 수 있을 리가.

게이트 출현과 동시에 나타났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겠지만 헌터가 가진 힘의 근원은 괴물의 근원과 같았다.

애초에 이 세계의 존재인 만큼 입자 단위로 무너지지는 않았으나, 게이트 억제기의 반경 안에 들어가면 신체능력이 보통 인간과 그리 다를 바 없는 수준까지 떨어졌다.

한편 그 앞에 버티고 서 있는 기업의 사병들은 그동안 게이트 괴물을 연구해 얻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만든 파워 아머를 껴입고 구시대의 전차보다 훨씬 튼튼한 장갑차를 끌고 왔다.

몇몇 리더격 헌터들이 저항하긴 했지만, 그 저항은 대중들에게 ‘헌터는 강력한 힘을 가진 통제불능의 존재’라는 선입견만을 깊게 새겼을 뿐이었다.


* * *


그리하여 지금의 시대가 열렸다.

게이트 억제기는 그 특성상 게이트와 가까운 곳에서는 무용지물이기 때문에 인류의 생존권은 여전히 구시대의 절반에 지나지 않았고, 붕괴한 정부의 위치를 차지한 기업들은 규제와 단속을 걸어오는 정부가 사라진 덕분에 마음껏 날뛰고 있었다.


조금 전 보인 광고판 이야기를 좀 해볼까?


헬리오스 레이저 툴즈.

기업법에 의거해 출력이 최저수준으로 고정된 ‘호신용’ 레이저 무기를 취급하는 회사다.

어디까지나 호신용이기 때문에 구매자가 어떤 조직에 속해있건 과거에 어떤 범죄를 저질렀건 간에 상관없이 무제한으로 구매할 수 있으며, 레이저 권총의 출력 제한은 에너지 안정기에 클립 한 번 찔러 넣는 걸로 해제할 수 있다.


화이트 베일 제약.

이익을 위해 품질과 타협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제약회사 중 하나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화이트 베일 직영 약국에서는 병이나 부상을 치료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약’도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살 수 있다.


B&C 푸드몰.

구시대 영토 전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위의 두 회사와는 달리, 이쪽은 이 지역에만 영향력을 보유한 지역밀착형 식품 유통업체다.

그나마 눈속임으로나마 체면을 차리는 대기업과는 달리 이쪽은 ‘식품 운송 트럭 운전대를 잡은 갱’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딥 래더 인더스트리.

광고판에 뭘 하는 회사인지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다고?

그야 당연했다.

이 일대의 정식 명칭은 ‘딥 래더 시티 6번가’.

기업연합의 구성 기업 중 하나인 딥 래더 인더스트리가 소유한 4등 시민 거주지이다.

여기 주민 중 딥 래더를 모르는 녀석은 아무도 없다.


* * *


딥 래더 시티 6번가.

주민들이 부르는 통칭은 ‘쓰레기장’.

썩은 합판과 녹슨 철판을 싸구려 시멘트로 뭉쳐서 만들어 낸 건물이 무질서하게 늘어선 모습에 딱 알맞은 통칭이다.

하지만 이 정도면 지금 시대에는 그나마 나은 편에 속하는 거주지였다.

딥 래더 인더스트리 본사가 있는 1번가에 그나마 상대적으로 가까운 구역이니만큼 여기 있는 건물들에는 지금 내리는 중금속 산성비를 막을 지붕이라도 있고, 방사능에 오염된 곳도 생각보다는 적기 때문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서 심각하게 눈에 띄는 기형이나 돌연변이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6번가가 아무리 살 만한 곳이라 해도 정도가 있지, 지금 눈앞에 있는 B&C 푸드몰 본사 사옥은 그 ‘적당히 살 만한’ 수준을 큰 폭으로 넘어 있었다.

중금속 산성비를 맞으면서도 전혀 부식되지 않는 특수한 도료로 칠해진 새하얀 벽.

깨지지 않은 걸로도 모자라 말끔하게 닦여 있는 유리창.

단층집이 대부분인 6번가에서 눈에 확 띄는 8층짜리 건물.

“분명 작년까지는 6층짜리였을 텐데. 대체 쓰레기장에서 얼마나 뜯어낸 거야?”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사옥 입구로 접근했다.


그리고 문이 열린 순간, 나는 그 너머에서 나온 수많은 손에 붙잡혀 안쪽으로 끌려갔다.


* * *


B&C의 사장, 보니 크랙페이스는 장신에 쭉 빠진 몸매를 가진 젊은 미인이다.

그러나 눈은 크지만 눈동자는 작은 탓에, 눈을 가리고 보면 미인이지만 눈을 포함해서 보면 사이코패스 킬러 같은 인상이었다.

게다가 장례식에라도 가는 것처럼 새까만 양복을 입고 양옆에 덩치 큰 떡대를 두 명 거느리고 있으면 단순한 킬러를 넘어서 암흑가의 두목 같은 인상이 된다.


아니, B&C가 실제로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면 딱히 암흑가의 두목이라는 게 틀린 말도 아니다.

6번가의 주민들은 다들 가난해도 그럭저럭 먹고 사는 데에는 문제가 없고 새 발의 피 정도지만 약간의 여유 자산도 있으니, 그걸 노리고 온갖 갱이 난립한다.

하지만 그 어떤 갱이라 해도 기업법에 의해 보장된 각종 권리를 휘두르는 기업을 이길 수는 없는 법.

6번가에서 기업 연합에 정식적으로 가입되어 ‘기업’이라 인정받은 사업체는 B&C 푸드몰밖에 없고, 알 카포네나 펫 숍 같은 거물 마피아가 되살아난다 해도 여기에서는 B&C 푸드몰의 하청업체······ 아니, 업체도 아니고 그저 일개 용역 일용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좀 더 간단히 말하자면 한마디로 축약할 수 있다.


‘6번가에서 살아남고 싶다면 보니 크랙페이스에게 개기지 마라.’


중요한 말이니 명심해둬야 한다.

얼마나 중요한가 하면 밑줄 쫙 긋고 형광펜으로 한 번 더 표시해두고 옆에 별을 세 개 그려놔도 모자랄 정도로 중요하다.

이 쓰레기장 주민들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하는 모든 활동은 전부 B&C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연관되어 있으며, 지금 이런 말을 하는 나 역시 지금까지 크랙페이스에게 고용되어 일해 왔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 자신은 이 회사의 발전에 꽤나 공헌했다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B&C에서의 대우도 다른 어중이떠중이들보다는 훨씬 높았다.

문제는······.

“잘도 여기까지 왔군요, 클라이드 비스펀지.”

문제는 내가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지난 1년간 본업인 B&C 푸드몰보다는 다른 부업을 더 중시했다는 점.

B&C 푸드몰의 사장, 보니 크랙페이스는 마치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이를 바라보듯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 * *


나는 러너(Runner)다.

물론 육상선수라는 뜻은 아니다.

어떤 직업인지 설명하면 꽤나 복잡해지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대충 이세계물의 모험가나 대여점 전성기 소설 속의 용병 같은 거다.

조금 복잡하게 설명하자면 구시대의 TRPG인 섀도우런에 나오는 그거다.

즉 생명의 위기에 노출되는 대신 돈을 버는 직업이고, 이런 종류의 직업이 다 그렇듯 신용을 잃으면 그날로 영원히 장사 접어야 한다는 소리다.

하지만 B&C 푸드몰은 창설 당시부터 나와 인연이 있었고, 엄밀히 말하면 남이라고 불러야 할 관계도 아닌지라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래, 지난 1년간 이쪽에서 불러도 귓등으로 들은 척도 안 하더니 인제 와서 자기가 급해지니까 어슬렁어슬렁 기어 오신다? 하! 낯짝이 두꺼운 데에도 정도가 있지.”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았다.

보니 크랙페이스는 그 사이코패스 킬러 같은 눈을 희번덕거렸다.

그와 동시에 내 등짝과 뒤통수에 들이대진 총구가 한층 더 가까이 접근했다.

“······.”

변명을 하자면 못 할 것도 없고, 저항하자면 못 빠져나갈 것도 없다.

하지만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나에게 있는 이상 함부로 그럴 수는 없다.

이 쓰레기장의 통념에 비추어봤을 때 하루 이틀도 아니고 1년씩이나 소집에 불응하는 건 신뢰를 배반한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설령 가족이나 친구라 해도 그렇게나 오랫동안 일을 내팽개친 놈팡이가 원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보통 사람은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해내지 않고서야 불가능하다.

오히려 대가리에 총알을 박아 넣지 않고 얌전히 데려와 보스와 대면시키는 것만 해도 옛 인연을 생각해 온정을 베풀어준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보니 크랙페이스는 한참 동안 이어진 불평불만을 간신히 마무리 짓고 살짝 숨을 골랐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마침 당신에게 맡길 일이 하나 있습니다.”

“보수는?”

“신용.”

즉, 무보수.

하지만 지난 1년간 본업을 방치해둔 걸 일 하나 하는 걸로 해결할 수 있다면 훨씬 남는 장사다.

“오케이.”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동시에 내 뒤통수와 등에 겨눠져 있던 총들이 일제히 치워졌다.

조금 전 나를 반강제로 잡아끌고 왔던 덩치들이 이번에는 나를 정중하게 일으켜 세우고, 어깨와 무릎에 묻어 있던 먼지를 털어주고, 보니 크랙페이스가 앉아있는 소파보다는 한 단계 급이 떨어지지만 등받이와 팔걸이가 확실히 붙어있는 고급 의자를 가져왔다.

나는 그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물었다.

“그럼 자세한 사항을 들어볼까.”

보니 크랙페이스는 돌변한 내 태도에 쓴웃음을 짓고는 입을 열었다.

“최근 배달부 연합이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배달부 연합.

이름 그대로 B&C에 소속된 배달부들이 모여 만든 작은 조직이다.

하지만 그런 놈들이 불온한 움직임이라고?

대체 어떻게?

작년까지만 해도 그냥 술자리 모임이었던 놈들이 대체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태업이라도 하는 건가? 아니, 그럴 리 없지. 대놓고 그런 걸 했다간 대가리에 바람구멍이 날 테니까. 그럼 불온한 움직임이라 할 만한 게······.”

“놈들의 수장이 최근 5번가의 은퇴한 변호사와 접촉했습니다.”

“과연. 대체로 알았다. 독립이구만.”

지난 1년간 B&C에서 멀어져 있었다 해도 상식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는 개인 집단이었기 때문에 B&C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던 배달부 연합이었지만, 일단 기업으로 인정받으면 실제 규모나 보유 전력에 상관없이 기업법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지금까지처럼 함부로 부려 먹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새로 기업을 설립하는 데 필요한 것은 자본도 있지만, 수많은 서류를 오차 하나 없이 완벽하게 갖춰서 낼 수 있는 법률지식 또한 중요했다.

변호사와 접촉했다는 것은 분명 그런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6번가의 유일한 기업으로서 이 쓰레기장을 지배하고 있던 B&C 입장에서는 새로운 경쟁자의 출현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 경쟁자가 원래 발 닦는 걸레로 쓰던 일회용품의 집단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다행히 배달부 연합은 이제야 겨우 변호사와 접촉했을 뿐, 아직 제대로 된 ‘경쟁자’로 등극하지는 못했다.

법인 설립에 필요한 서류는 워낙 많아서 아무리 실력 좋은 변호사라도 한두 달은 걸리니까.

그러니 지금 내가 가서 놈들의 지도층을 박살 내고 은퇴한 변호사의 손가락을 분질러도 법률적으로는 그 어떤 문제도 없다.

하지만 잠깐.

현재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무력의 상황은 어떤가?


러너는 결코 단독으로 움직이지 않고, 최소 두 명 이상이 팀을 이루어 움직인다.

그리고 작년까지 한 팀이었던 동료는 몇 달 전에 대박을 터뜨려서 3번가로 이주.

얼마 전까지 그 대타로 뛰던 친구는 귀향.

팀의 해커는 장기 휴가 중이라 다음 주에나 귀환.

예비멤버랍시고 굴리던 놈은 마지막 부업 때 사망.

번외멤버가 하나 있긴 한데 지금은 행방불명.

최소 두 명 이상이 팀을 이룬다는 말이 무색하게도, 현재 실질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건 나 혼자라는 소리다.


한편 적이 될 배달부 연합은 작년까지만 해도 50명이 넘었고, 독립을 생각할 정도라면 그때보다 훨씬 규모가 커졌을 것이다.

그리고 6번가의 ‘호신용’ 무기의 보급률을 생각하면 적어도 그중 반 이상은 사람 몸통에 직경 수 센티미터의 구멍을 뚫기에 충분한 레이저 권총으로 무장하고 있을 것이다.


즉, 전혀 문제없다.


“저녁 먹기 전까지는 돌아오지. 내 장비는?”

“늘 있던 자리에.”

보니 크랙페이스는 말을 마치고 자리를 떠났다.

나도 더 이상 여기 있을 이유가 없기에 장비를 챙기러 움직였다.


자, 그럼 여기서 의문이 생겼을 것이다.

‘어째서 이 자식은 수십 명의 무장 인원을 혼자서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걸까?’ 같은 의문이.

그리고 그건 내가 어째서 백 년도 더 전의 일인 구시대의 대여점이니 헌터물이니 이세계물이니 하는 단어를 알고 있는가에 대한 해답이기도 하다.


까놓고 말해 나는 전생자다.

그리고 전생자는 보통 사람에게는 없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게 국룰이잖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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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제020화 – 패밀리 비즈니스 (3) 24.05.15 4 0 12쪽
21 제019화 – 패밀리 비즈니스 (2) 24.05.14 5 0 14쪽
20 제018화 – 패밀리 비즈니스 24.05.13 5 0 14쪽
19 제017화 – 스멜스 라이크 사이버펑크 (2) 24.05.12 5 0 13쪽
18 제016화 – 스멜스 라이크 사이버펑크 24.05.11 5 0 13쪽
17 제015화 – 더 퓨처 이즈 낫 아워스 24.05.10 5 0 14쪽
16 제014화 – 리턴 리트라이 리피트 (4) 24.05.09 4 0 13쪽
15 제013화 – 리턴 리트라이 리피트 (3) 24.05.08 4 0 11쪽
14 제012화 – 리턴 리트라이 리피트 (2) 24.05.07 7 0 12쪽
13 제011화 – 리턴 리트라이 리피트 24.05.06 9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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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제005화 – 퓨처 퓨전 판타지 (2) 24.05.01 13 0 13쪽
6 제004화 – 퓨처 퓨전 판타지 24.05.01 12 0 12쪽
5 제003화 – 핵 앤 슬래시 (3) 24.04.30 18 0 12쪽
4 제002화 – 핵 앤 슬래시 (2) 24.04.30 15 1 13쪽
3 제001화 – 핵 앤 슬래시 24.04.29 24 2 12쪽
2 튜토리얼 (2) +1 24.04.29 39 3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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