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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61 님의 서재입니다.

바이올런스 퍼펙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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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61
작품등록일 :
2024.04.02 20:36
최근연재일 :
2024.09.08 00:0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215
추천수 :
0
글자수 :
142,426

작성
24.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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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4화 : 희망

DUMMY

남자가 대부분인 군대에 외계인은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생존자를 찾거나 확인 사살을 하지도 않고, 전투가 끝나자마자 바로 떠났다. 덕분에 동민은 무사히 살아나올 수 있었다. 총과 크로스백을 다시 손에 넣었고 자전거도 되찾았다.


사방이 시체였다. 하지만 피떡이 된 시체도 이제는 그다지 감흥이 없었다. 조금 보기 불편할 뿐, 구토까지 올라오진 않았다. 빨리 도주하기 위해 동민은 군대가 쓰는 차량을 빌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본능이 그러지 말라고 했다.


밤눈이 어두운 외계인들이 굳이 밤에만 공격하는 이유를 동민은 몰랐다. 인간이 밤에 둔해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는데, 아무튼 그 점은 동민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외계인들이 어딘가를 공격하고 있다는 건 동민을 찾아다닐 여유가 없다는 뜻이었다.


차량을 이용하지 않는 것 역시 유효한 선택이었다. 필요할 때 바로 숨기 힘들어 생존에 불리했다. 대신 그만한 수고는 감내해야 했다. 하룻밤 열심히 달리면 도착할 줄 알았던 대전은 아직도 까마득히 멀었다. 다리, 엉덩이, 허리, 팔과 손목까지 다 쑤셔왔다. 쉬지 않고선 도저히 나아갈 수가 없었다. 특히 엉덩이가 못이라도 박힌 듯 아팠다.



“아······씨······.”



자리에 앉는 일조차 괴로웠다. 입도 바짝 말라붙어 말도 못 하게 힘들었다. 그렇지만 동민은 살아날 수 있겠다는 희망을 느꼈다. 서울 바깥은 의외로 멀쩡했기 때문이었다. 차도 사람도 일상적인 느낌으로 돌아다녔다. 서울처럼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으나 당장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군대에 잠시 붙들렸을 때를 제외하곤 외계인과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외계인들은 현재 군부대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중이었다. 저항할 힘을 완전히 꺾어놓은 후 도시를 유린할 속셈이었다. 군대는 도시에서 떨어져 있고 무슨 일이 나더라도 소식이 바로 알려지지는 않기에, 사람들은 며칠 후 자기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조금도 예상치 못하고 있었다.


동민은 달랐다. 비행체 비슷한 소리만 들려도 바로 자전거를 세우고 어두운 곳으로 뛰어가 숨었다. 아무리 몸이 무겁고 아프더라도. 하지만 실제로 나타난 것은 비행체가 아니라 머플러를 불법 개조한 슈퍼카였다. 아슬아슬한 운전으로 다른 차들을 위협하며 순식간에 지나갔다.



“······.”



어쩌면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될지도 모르겠다고 동민은 생각했다. 몸도 마음도 몹시 지쳐 자연스레 그런 쪽으로 사고가 흘러갔다. KTX를 타면 대전까지 한 시간도 안 걸렸다. 자전거로는 8시간도 더 걸리는 길. 도착한 후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사태를 생각하면 여기서 체력을 아껴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마음을 굳힌 동민은 수원역으로 향했다. 엉망진창인 옷에, 머리와 등엔 시커먼 것이 잔뜩 묻은 19살 청소년을 사람들이 흘끔거렸다. 표를 사려고 했는데 직원이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는 복장으로는 기차에 탈 수 없다며 거절했다.



“아······네. 죄송합니다······.”



별것 아닌 일이었다. 하지만 쇠약해져 있던 동민은 정신이 어질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가까운 벽으로 비척비척 걸어가 등을 대고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괜찮냐고 물어봤지만 대답할 기력도 없었다. 무너져가는 청소년에게 손을 내민 사람은 근처에서 설문조사를 하던 대학생들이었다.



“너 괜찮아? 어디 다쳤어?”


“서울에서 왔나 봐······어떡해.”


“얘 보고 있어. 나 먹을 것 좀 사 올게.”



대학생들은 동민에게 햄버거 세트를 사주었으며 물티슈로 몸을 닦아주고 옷까지 새것으로 갈아입혔다. 뜻밖의 친절이었다. 햄버거 세트에 포함된 음료는 제로 칼로리가 아니라 보통 탄산이었는데, 빠르게 흡수된 액상과당이 몸과 마음에 활기를 채워줬다.



“감사합니다.”



동민이 ATM에서 뽑아 온 현금을 대학생들은 정중히 사양했다.



“여기 계시면 안 돼요. 빨리 도망치세요.”


“넌 어디로 가고 있어?”


“대전에······별세계 조사단이요.”


“거기 아는 사람 있어서 가는 거야?”


“아뇨, 그래도 우주선 같은 거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자기가 대전에 가서 뭘 할 수 있는지 동민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하여간 지구인과 친한 외계인도 있으니, 그들의 기술이나 힘을 빌린다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그런 희망을 품지 않고서는 당장 꺾여버릴 것 같았다.


서울이 어떤 상황인지 동민에게 전해 들은 대학생들은 당장 피난 가기로 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동민은 기차표를 끊어 좌석에 몸을 실었다.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고 있었다.



“······방금 막 복정역을 지나 서울로 진입했습니다. 밤중이라 들키지 않고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송파구에 들어가 상황을······저 소리 뭐야? 저쪽으로 돌려봐!”



카메라맨이 아나운서의 지시대로 하늘을 촬영했다. 밝은 빛, 날카로운 비명이 뚝 잘려 나왔다. 뉴스를 보던 남자는 흠칫하다 핸드폰을 놓칠 뻔했다. 동민은 크로스백을 꼭 껴안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애썼다.


잠깐 졸았는데 대전이었다. 동민이 탄 기차는 막차였다. 한산한 대전역을 빠져나오니 멀쩡한 시가지가 펼쳐졌다. 도시가 발하는 빛에 달아오른 밤하늘은 늘 보던 익숙한 색깔이었다. 서울에서 겪은 일이 꿈처럼 느껴졌다. 목에 걸고 있는 부모님 결혼반지가 가슴에 닿는 딱딱한 감촉이 동민을 현실로 끌어당겼다.


별세계 조사단으로 가는 버스는 전부 끊겨 있었다. 조사단 본부는 카이스트에서 북쪽으로 3km 정도 떨어진 위치. 걸어서 갈 만한 거리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동민은 택시를 잡았다. 학생 신분으로 타기에는 비싼 이동수단이었지만 목숨값이라고 생각하니 아깝지 않았다.



“학생은 무슨 일로 이 밤중에 거기까지 가요?”



사람 좋아 보이는 택시기사가 느긋한 어조로 질문했다.



“서울······에서 도망쳐서 왔어요.”


“아이구 저런 세상에. 가족이 여기 살아요?”


“아뇨······다 죽었어요.”


“아이고······.”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한 택시기사는 길게 탄식했다. 그리고 동민이 놀라지 않도록 안전운전했다. 조사단 본부에 도착한 후에는 직접 본부로 달려가 동민을 도와줄 만한 사람이 있는지 알아봐 주었다. 택시비도 받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동민은 억지로 현금을 내밀고 허리 숙여 인사했다.



“사람 금방 나온대요. 더 못 도와줘서 미안해요, 학생.”


“아뇨, 감사합니다.”



택시가 떠났다. 동민은 조사단 본부로 시선을 돌렸다. 인천공항보다 커 보이는 웅장한 건물이었다. 정문으로 통하는 길 또한 광장이라 해도 좋을 만큼 넓었다. 가로등이 켜져 있어 낮처럼 밝았다. 늦은 시간이라 돌아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이쪽으로 오는 조그만 것이 눈에 아주 잘 띄었다. 노랗게 칠한 전자레인지. 기계 종족인 키크였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자기 몸에 달린 작은 바퀴를 돌돌거리며 다가온 외계 종족을 동민은 귀엽다고 생각했다. 목소리도 높아서 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적극적으로 한국을 지원해주고 있기도 해서 키크에 대한 한국인의 호감도는 꽤 높았다.



“저는 별세계 조사단 안내원 디디입니다. 이름이랑 나이를 말씀해주시겠어요?”


“김동민이요. 19살입니다.”


“혹시 본부에 아는 분이 계신가요?”


“어, 없는데······아, 그, 하토르······만났었거든요.”


“그러셨군요! 부당한 폭행을 당하지는 않으셨어요?”


“아뇨, 절 구해주셨어요.”


“다행이네요!”


“근데······하토르······죽었어요, 외계인한테······.”


“아.”



짧게 소리를 낸 디디가 잠깐 멈췄다.



“······우선은 임시 책임자랑 만나게 해드릴게요. 동민이를 어떻게 도와줄지 그분이 결정하실 거예요. 따라오세요!”



디디는 열심히 앞장섰다. 그래도 느렸다. 동민은 조금 답답했지만, 티 내지 않으려고 주의를 기울였다. 본부는 키크가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문턱이 전혀 없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계단도 비탈길이 반드시 포함됐다. 일반적인 장애인 배려 시설에 비해 훨씬 더 접근성이 좋은 설계였다. 대신 그만큼 동선이 길어졌다.



“여기서 일하는 분들은 하루에 1만 보를 너끈히 찍는다고 소문이 자자해요.”


“아······.”


“저희 키크는 발이 없어서 그런 식으로 계산하지 않지만요!”


“······.”



긴장을 풀어주려고 던진 농담이었다. 하지만 동민은 지금 웃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혼자 오셨나요? 가족은요?”


“부모님은······아파트랑 같이 파묻히셨고요, 누나는 제 앞에서 죽었어요.”


“죄송해요. 아무 말 안 할게요.”


“저도 팔이 뽑혀서 죽을 뻔했는데, 하토르가 와서 구해줬어요. 그리고······부모님 반지도 찾아줬어요. 근데, 하토르는 그 새끼들한테 죽어서······장난감처럼······.”



동민은 멈춰 서서 울먹이기 시작했다. 디디가 전기 촉수로 동민의 다리를 가볍게 안아 쓰다듬어주었다.



“죽은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지만요, 그래도 극복할 수 있을 거예요. 저희랑 같이 지내요. 좋은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도 돼요······?”


“네! 임시 책임자도 동민이를 예뻐해 주실 거예요.”



디디의 말을 들었을 때 동민은 정력적인 중년 책임자를 상상했다. 잘 나가는 스타트업 사장 같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분위기를 온몸에 두르고 다니는 인간. 별세계 조사단 본부가 실제 누구 것인지는 몰랐기에 그런 식으로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엘시스 여왕님? 아까 말씀드린 손님이에요.”


“어머나~. 귀여운 애기가 와버렸네.”



기다리고 있던 존재는 가슴이 얼굴보다 큰 서큐버스, 엘시스 여왕이었다. 천시윤 대표와 얽힌 사건 때문에 한국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는 존재였다. 치렁치렁한 붉은 머리카락과 화려한 뿔, 금장식을 단 날개와 꼬리도 사치스럽기 그지없었다. 비싼 몸이라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만드는 외모였다. 그래도 옷은 가릴 데 다 가린 진주색 정장이었다. 벌어진 와이셔츠 틈으로 가슴골이 보였다.



“서울 지금 난리일 텐데 어떻게 혼자 여기까지 왔대. 디디는 밖에서 잠깐 기다리고 있어.”


“네. 이상한 짓 하시면 안 돼요.”


“노동자 계급 주제에 감히 나한테 잔소리야?”


“그건 키크끼리만 적용되는 거예요. 이만 나가볼게요-.”



어찌할 바를 몰라 얼어 있는 동민에게 엘시스가 가볍게 날아와 달라붙었다. 손가락은 이미 동민의 옷 속으로 파고 들어와 젖꼭지 근처를 문지르고 있었다. 동민은 엘시스의 손을 뿌리치려 했으나 생각외로 힘이 엄청나 조금도 저항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굉장히 좋은 냄새가 풍겼다. 온몸이 나른해졌다.



“누나 요즘 젊은 애들을 못 먹어서 좀 쌓여 있거든? 이상한 짓은 안 할 테니까 편하게 있어.”


“가, 갑자기 왜 이러세요······.”


“남자랑 서큐버스랑 단둘이 남았으면 뻔하잖아? 섹스해야지.”


“어······제, 제가 지금 그러고 싶은 기분이 아니라서요······.”


“답답하게 굴지 말고. 진~~~짜 답답한 누구 생각나서 짜증 나려고 하니까.”


“누구요?”


“몰라도 돼~. 아, 너 안 씻었구나. 저기 저쪽 문이 화장실이거든? 얼른 씻고 나오렴?”


“진짜로······지금 하시려는 거예요?”


“당연히 진짜로 하지! 너 동정이잖아! 내 가슴 보자마자 발기했으면서 안 된다고 하기만 해봐.”



귀엽게 볼을 부풀린 엘시스는 동민을 들어 올려 화장실로 옮겨주었다. 옮겨지는 동안 동민은 손으로 아래쪽을 가렸다.



“저 얼마 전에 가족이 다 죽었어요. 이건 진짜 아닌 것 같아요. 절 구해준 하토르도 외계인한테 죽었단 말이에요.”


“응? 하토르가 죽었다고? 뭐에 죽었는지 봤어?”


“아뇨······제가 본 건 시체였어요.”


“잘못 본 건 아니지? 다른 사람이랑 헷갈린 거 아냐?”


“헷갈리기 힘들지 않아요······?”


“하긴~. 일단 섹스는 무조건 할 거니까 빨리 씻고 나와~. 자세한 얘기는 그다음에 들어줄게~.”



동민은 여기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과 흐름에 몸을 맡기고 싶은 본능 사이에서 갈등했다. 19살 청소년이 내린 결론은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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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8화 : 독립 24.08.11 5 0 12쪽
17 17화 : 마왕 24.08.10 7 0 11쪽
16 16화 : 세뇌 24.08.04 7 0 13쪽
15 15화 : 극복 24.08.03 6 0 12쪽
14 14 : 제국 24.07.28 8 0 12쪽
13 13화 : 종말 24.07.26 8 0 13쪽
12 12화 : 간섭 24.07.21 8 0 11쪽
11 11화 : 진보 24.07.20 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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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화 : 감정 24.07.13 7 0 11쪽
8 8화 : 수색 24.07.07 10 0 12쪽
7 7화 : 경쟁 24.07.06 9 0 11쪽
6 6화 : 조사단 24.06.30 8 0 12쪽
5 5화 : 합류 24.06.29 11 0 13쪽
» 4화 : 희망 24.06.23 14 0 13쪽
3 3화 : 본능 24.06.22 11 0 12쪽
2 2화 : 생존 24.06.16 12 0 12쪽
1 1화 : 전쟁 24.06.15 3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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