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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61 님의 서재입니다.

바이올런스 퍼펙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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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61
작품등록일 :
2024.04.02 20:36
최근연재일 :
2024.09.08 00:00
연재수 :
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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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2,426

작성
24.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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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화 : 생존

DUMMY

전쟁을 시작하고 몇 시간이 지났다. 탈진한 동민은 가까운 편의점에 숨어들었다. 아무도 없었다. 꾸역꾸역 카드를 꺼내 물과 음식을 결제했다. 시원한 물과 짭짤한 김밥이 뱃속으로 들어가니 살 것 같았다.



“으으······누나······.”



누나가 좋아하는 맥주를 본 동민은 주저앉아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울었다. 부모님에겐 말 못 하는 고민도 허물없이 나눌 만큼 친했던 유민 누나. 누나가 얼마나 끔찍하게 죽었는지 떠올리기만 해도 복수심이 끝없이 솟아났다. 한 놈이라도 더 많이 죽이고 싶었다. 정체가 뭔지, 왜 쳐들어왔는지, 저토록 잔인한 이유가 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30분 정도 쉰 동민은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도망갈 만한 체력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하늘이 서서히 밝아왔다. 이제 싸우면 안 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동민의 본능은 복수심을 강하게 억눌렀다. 먹을 걸 더 구매한 다음 지하철역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



역은 피바다였다. 무참히 유린당한 국군과 일반인의 시체가 사방에 전시되어 있었다. 분명 어떤 의도를 갖고 늘어놓은 것이었다. 외계인들은 시체를 벽에 매달아 알 수 없는 문자를 만들어놓기까지 했다. 뽑아낸 척추를 물고기 말리듯 줄줄이 걸어놓은 장면도 눈에 들어왔다. 지옥을 마주한 동민은 잠시 얼어붙었다. 그러나 여기서 가만히 있으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생각하기 전에 몸이 움직였다.


서울에 안전한 곳은 없는 듯했다. 사방에서 비행체 소리가 들려왔고 총소리도 끊이질 않았다. 어디로 가야 좋을지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동민은 다리를 멈추지 않았다. 우선 상가 화장실로 들어가 머리를 감았다. 피곤해 기절할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되기 전에 안전한 장소를 찾아야 했다.



“야.”



하토르의 목소리였다. 찬물 덕분에 졸음이 잠깐 달아난 동민은 목소리 역시 얼굴만큼 예쁘다고 생각했다.



“여기······남자 화장실인데요.”


“어쩌라고. 너 이름 뭐야?”


“김동민이요.”



대답을 들은 하토르는 메고 있던 큼직한 크로스백을 쿵 내려놓았다. 안에는 외계인의 총과 탄창이 가득 들어있었다.



“하루만 더 버텨. 대전 쪽 정리되면 애들 올라올 테니까.”


“애들이요······?”


“이것도 챙겨라.”



하토르가 동민에게 넘겨준 것은 똑같이 생긴 결혼반지 두 개였다. 부모님 것이 틀림없었다.



“이······이거······!”


“시체는 찾지 마. 없어.”


“어어······어떻게······.”


“내 인맥.”


“으······으으······.”


“잘 싸워놓고 왜 징징거려?”


“엄마······아빠아······누나······.”


“시끄러우니까 닥쳐.”


“끅.”


“낮에는 외계인 새끼들이 유리하니까 싸우지 마. 국군은 의지하지 말고.”


“네······.”


“지하철역 가라는 말은 실수였어. 병신들이 하룻밤도 못 버티면 어쩌자는 거야. 대피소 가지 마. 사람 없는 데로 가서 숨어있어.”


“네.”


“나도 오늘은 못 도와줘. 여의도에 외계인 우주선 착륙했는데 그거 조지러 갈 거야. 내일 아침까지만 버텨. 알았어?”


“네, 가······감사합니다.”


“죽지 마라.”



할 말을 끝낸 하토르는 빠른 발걸음으로 떠났다. 동민은 좋은 모양으로 흔들리는 하토르의 엉덩이와 허벅지에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빼앗겼다가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왜, 왜 이래 진짜······.”



동민은 억지로 총을 만졌다. 탄창 교환하는 법을 알아내어 새 탄창을 끼웠다. 외계인 탄창은 희한했다. 총알이 들어있지 않고 구멍만 하나 뚫려 있었다. 이제 슬슬 움직일 시간이었다. 그런데 크로스백에 든 것을 전부 들자니 너무 무거웠다. 동민은 굳이 다 가져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토르가 싸우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용물을 대부분 비운 가방을 가볍게 어깨에 걸쳤다.


서울은 오전부터 갑자기 조용해졌다. 수도방위군이 괴멸당했기 때문이었는데 동민이 그걸 알 길은 없었다. 하토르가 시킨 대로 몸을 숨겨가며 외계인이 적은 곳으로 이동했다. 외계인 병력은 인구가 많은 곳에 집중됐다. 동민은 자연스레 한적한 동네로 들어섰다.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물어뜯던 고양이 한 마리가 동민을 보자마자 달아났다.


들고 있는 총도, 걷고 있는 몸도 천근만근이었다. 길바닥에 쓰러져 자고 싶었다. 그래도 동민은 계속 걸었다. 온몸의 감각이 이대로는 위험하다는 것을 알려왔다. 달아난 고양이를 무의식적으로 따라간 동민은 가스통을 넣어두는 작은 창고를 발견했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아늑해 보였다. 크로스백을 깔개 삼아 등을 기대고 앉자마자 눈이 스르륵 감겼다.


몇 시간이 지났다. 추위를 느낀 동민은 잠에서 퍼뜩 깼다. 깨자마자 버릇처럼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찾았다. 어디에도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 기념으로 누나가 사준 최신 모델이었다. 동민은 핸드폰을 찾으러 가는 길에 누나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길바닥에 버려져 있는 누나를 그냥 둘 순 없었다. 온몸이 쑤시고 아팠지만, 힘을 내어 일어서서 자기가 온 길을 되짚어 돌아가기 시작했다.


서울은 여전히 조용했다. 태양의 위치로 봐서는 오후였다. 거리에 외계인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살아있는 인간도. 멀리 여의도 쪽에서 비행체들이 하늘을 지저분하게 수놓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여의도에 외계인 우주선이 착륙했으니 조지러 가겠다, 하토르가 했던 말을 동민은 떠올렸다.


걸으면서 몸에 열이 돌자 조금 기운이 났다. 계속 움직이며 물과 음식을 먹었다.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삼각김밥만 골라오길 잘했다고 동민은 생각했다. 거리마다 널려 있는 시체 때문에 여러 차례 구역질이 올라왔지만, 어제처럼 심하진 않았다. 이런 끔찍한 상황에도 사람은 적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동민은 부도덕하게 느껴졌다.


누나가 사준 핸드폰은 편의점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멀쩡했고 배터리도 아직 여유가 있었다. 동민은 목에 거는 비닐 주머니를 하나 구매해 핸드폰과 반지를 넣었다.



“살려주세요······.”



사람 목소리였다. 창고에서 들려왔다. 안에는 편의점 직원이 피를 흘리며 앉아 있었다. 왼쪽 무릎 아래가 없고 배에도 피가 흥건했다. 바닥에 깔린 피가 그제야 동민의 눈에 들어왔다. 살아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었다.



“어······어떡하지. 잠깐만요.”



동민은 화장지를 가져와 직원의 상처를 틀어막았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죽어가는 직원을 앞에 두고 동민은 어떡하지라는 말만 반복했다. 직원이 품속에서 자기 핸드폰을 꺼내다 떨어뜨렸다.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입술이 움직이는 듯하다가 멈췄다.


잠깐 머리를 쥐어뜯던 동민은 직원의 지문으로 핸드폰 잠금을 풀고 SNS 계정을 훑어봤다. 가족 단톡방에 들어가 봤는데 서로 위치를 물어보는 내용이 다였다. 그마저도 일찍 끊긴 상태였다. 직원이 마지막으로 보낸 메시지 옆엔 2라는 숫자가 찍혀 있었다. 죄송하다, 사랑한다라고 보낸 메시지였다.


동민은 죽은 직원 앞에 앉아 자기 핸드폰을 꺼냈다. 아무런 전화도, 메시지도 없었다. 뭘 하기에는 모든 일이 너무 순식간에 일어났다. 핸드폰이 있다는 생각조차 여태 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것이 동민은 이를 악물게 될 만큼 서러웠다.



“흑······끄흐······으으······.”



눈물보다 콧물이 더 많이 흘러나왔다. 왜 갑자기 이런 일을 당해야 했는지 동민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억울해서 미칠 것 같았고 가족들이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그래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이제 겨우 하룻밤을 살아남은 19살 청소년 곁엔 식어가는 시체 한 구뿐이었다.


먼 곳에서 폭탄이 터진 충격이 묵직하게 바닥을 울렸다. 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게 동민의 몸을 밀어붙였다. 밤새 혹사당한 손목이 찌릿하게 쑤셔왔다. 총을 잡기 힘들다고 느낀 동민은 무기를 크로스백에 넣어 뒤로 고쳐 맸다. 낮에는 절대 싸우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개방된 곳을 피해 뒷골목으로만 다녔다.


사람도 외계인도 마주치지 못했다. 어느 쪽을 둘러봐도 시체뿐이었다. 부서진 자동차나 붕괴한 건물이 계속해서 동민의 앞길을 막았다. 분명히 어젯밤에 지나온 길이었는데 지형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래서 알아보기 힘들었고, 오래 헤맸다. 동민이 살았던 아파트 단지도 완전히 무너져 낮은 언덕이 되어 있었다. 누나의 시체는 거기서 멀지 않은 길 한복판에 완전히 방치된 상태였다.



“욱······.”



햇살 아래 선명하게 드러난 시체는 똑바로 보기 힘들 만큼 끔찍했다. 차게 식어 검게 변한 누나의 양 젖꼭지가 동민에게는 이상하게도 사람 눈처럼 보였다. 얼굴이 부서지고 없는 시체에서 유일하게 눈을 닮은 부위였다.


편의점에서 쓰는 커다란 비닐봉지에 누나의 시신을 담은 동민은 근처 작은 공원에 누나를 묻어주려고 했다. 하지만 땅이 딱딱하게 얼어 있어 맨손으로는 전혀 파낼 수가 없었다. 힘들게 찾아낸 삽으로도 무리였다. 너무 화가 난 동민은 삽을 멀리 던져버렸다. 누나를 묻어주지도 못하는 이 상황이 치가 떨리도록 싫었다. 성질을 내고 나니 갑자기 허무한 느낌이 들었다. 누나가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눈앞에 두고, 나무둥치에 등을 기댄 채 땅바닥에 앉아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지나가던 고양이가 겁도 없이 가까이 왔다. 비닐봉지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더니 갑자기 이빨로 물어뜯기 시작했다. 정신이 번쩍 든 동민은 고양이에게 나뭇가지를 홱 집어 던졌다.



“꺼져!!”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동민은 편의점에서 라이터 기름과 라이터를 샀다. 공원 나무 밑에 떨어져 있는 잔가지를 모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누나를 눕힌 다음 불태웠다. 누나를 산 채로 불태우는 기분이 든 동민은 무릎을 꿇고 미안하다는 말을 되뇌었다. 본능이 뒤통수를 쿡쿡 찔렀다. 이대로 있으면 외계인한테 발각되어 죽는다. 동민은 일어나 눈물을 닦고 누나 곁을 떠났다.


동민의 패딩 점퍼는 찢어지고 더러워져 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도 체온은 잘 지켜주었다. 짧았던 겨울 해가 저물었다. 따뜻한 음식과 물은 편의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계속 창고에 숨어있었던 동민은 어두워진 후 밖으로 나왔다. 자기처럼 밖에 나온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그리고 멀리서 비행체 소리가 들려왔다. 제트엔진 달린 스포츠카 같은 소리였다.



“숨으세요······!!”



동민이 필사적으로 팔을 휘둘렀지만, 사람들은 하늘에서 뭐가 오는지 보느라 도망갈 기회를 놓쳤다. 푸른 광선이 내리꽂혀 표적을 증발시켰다. 외계인들도 다시 나타나 어젯밤 했던 짓을 그대로 반복하기 시작했다. 그때쯤 동민은 이미 캄캄한 골목에 몸을 잔뜩 쑤셔 넣은 채였다.


이번에 외계인들은 건물을 하나하나 뒤지며 숨어있는 사람을 찾아다녔다. 너무 어리거나 늙은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죽여버리고, 젊은 사람만 생포해 비행체에 실었다. 동민은 자리에 박혀 숨을 죽이고 있느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조용해질 때까지 참고 또 참았다. 기온이 떨어져 손가락이 아파 왔고 엉덩이도 쑤셨다. 그래도 버텼다. 소리가 잦아들고 한참을 기다린 다음 천천히 움직여 거리를 살펴봤다. 발에 짓밟혀 납작해진 아기 몸에 동그란 머리가 달린 것이 보였다. 동민은 그 아기와 눈이 마주쳤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황급히 시선을 떼고 어둠 속으로 돌아왔다. 방금 본 장면이 눈앞에서 사라지질 않았다. 밟혀 죽은 아기가 부서진 몸을 질질 끌며 자기를 향해 기어오는 착각이 들었다. 동민은 온 얼굴을 찌푸리고 머리를 때리며 끔찍한 상상을 떨쳐냈다. 실제로는 아기도, 다른 어떤 것도 동민에게 오지 않았다.


작가의말

야옹이는 세상이 망해도 냥성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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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화 : 극복 24.08.03 6 0 12쪽
14 14 : 제국 24.07.28 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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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화 : 생존 24.06.16 12 0 12쪽
1 1화 : 전쟁 24.06.15 3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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