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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별 님의 서재입니다.

드래곤 하트를 삼킨 야만 사냥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윤별
작품등록일 :
2021.12.10 05:00
최근연재일 :
2022.01.05 23:39
연재수 :
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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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98
추천수 :
103
글자수 :
80,736

작성
22.01.05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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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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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015. 문양

DUMMY

“더 부를 놈 있으면 어서 불러와. 후딱 치우고 내 일도 좀 보게.”


이그나가 말했다.

병사들을 엉덩이 아래 깔고 앉은 것이 이제껏 본 그 어떤 불한당보다도 더 위험하게 느껴졌다.


“······.”

“없어?”


맥스가 어렵사리 고개를 저었다.

이그나의 시선이 마치 날카로운 검과도 같아, 몸을 움직이기조차 힘겨운 지경이었다.


“그럼 빨리 튀어가서 대장장이나 데리고 와.”


으르렁!

분명 사람의 말을 하고 있건만, 맥스의 귀엔 짐승의 포효로 들려왔다.

해서 꽁지가 빠지게 뛰었다.

조금이라도 머뭇거렸다간 날카로운 송곳니에 살점이 뜯겨 나가리라.


“수배가 내려질 거야.”


필립이 말했다.

영감과 마찬가지로 그의 얼굴에 불안이 가득했다.

후일이 걱정된 것이다.


“어딜 가도 환영받지 못할걸.”


환영은 둘째치고, 평생 쫓겨 다닐 판이었다.

그는 애초에 피난민이었으니, 동부로 온 것도 새롭게 뿌리내릴 땅을 찾기 위함이었다.

이제 어느 구석으로 보나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음이다.


“그렇다고 진짜 야만인 편에 설 수도 없고···. 돌겠네, 진짜.”


필립이 제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 넓은 땅에 네놈 쉴 곳 하나 없을까.”


별 시답잖은 고민이라며, 이그나가 혀를 쯧쯧 찼다.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오르면, 영역은 자연스레 생기기 마련이야.”

“또 짐승 같은 소리 한다.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라고 이 땅에선.”


법이니, 계급이니 뭔가 잔뜩 떠들어대는 필립이었으나, 이그나는 귓등으로 쳐내었다.

무슨 근거를 가져다 대든, 자연법칙에 앞설 순 없었다.


“그냥 지금이라도 도망치는 게 어떨까?”


필립이 바닥에 떨어진 병사의 검을 주워들어 이그나에게 건넸다.


“네가 찾던 검도 여기 있겠다. 얼굴이 더 알려지기 전에 뜨자.”

“싫어.”

“아 왜!”

“길이만 멀쩡했지, 이 반쪽짜리 검보다 못한 것들이니까.”


차라리 반쪽짜리 검을 쓰는 게 나을 정도로 품질 차이가 어마어마했다.

고작 병사들에게 지급되는 보급형 싸구려 무기를 구하자고 예까지 걸음 한 게 아니다.

용의 비늘을 가를 수 있는.

용의 손톱을 견뎌낼 수 있는.

그런 튼튼한 녀석이 필요했다.


“잠자코 좀 기다려. 검만 구하면 이 근처엔 다시 발붙일 일도 없을 테니.”


이그나가 손을 휘휘 저었다.

필립의 얼굴이 똥 씹은 듯 구겨졌다.


**


“여, 영주님!”


동부와 북부를 잇는 성 마운트레인의 대회당.

병사 하나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문을 열어젖혔다.


“손님도 와 계신데, 이 무슨 소란이냐!”


영주가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아랫것들의 행동거지는 주인의 모범에 따른다.

한데 귀한 손님을 모셔 두고 품위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평소 같으면 바닥에 엎드려 용서를 구할 법도 하건만, 병사는 개의치 않고 영주 앞으로 다가섰다.


“야만인이 나타났습니다!”

“뭣이!”


영주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병사가 가져온 소식이 결코 가볍지 않았다.


“남부로 향하는 멀쩡한 길을 놔두고 어찌 이곳으로 왔단 말인가!”


북부가 쑥대밭이 되었다는 소식이야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다음 행선지가 이쪽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바였다.

북부와 가장 가까운 영지이기는 하나, 사이에 큰 산맥이 있어 군대의 통행에 제한이 있던 까닭이었다.


“수는 얼마나 되더냐? 백? 아니면 천?”

“다섯입니다.”

“뭐? 다섯?”

“예, 정찰대로 추측됩니다.”

“그나마 다행이로군.”


한시름 놓았다.

군대가 온 것이 아닌 이상에야 성이 무너질 일은 없으리라.


“어서 잡아들여라. 놈들이 무슨 생각으로 이곳에 기웃거리는 것인지, 직접 들어봐야겠다.”

“그것이···.”


영주의 지시에 병사가 난감하다는 듯 말을 흐렸다.


“무슨 문제라도 있더냐?”

“놈들을 제압하러 나갔던 병사들이 모두 당했습니다.”

“무, 뭐? 몇이나?”

“서른입니다.”


황당한 말이었다.

서른이라면 한쪽 성문을 지키는 경비 병력의 대부분. 고작 다섯으로 이겨낼 수 있는 수가 아니었다.


“그걸 지금 날더러 믿으라고 하는 소리냐?”

“사, 사실입니다.”


영주가 번뜩이는 눈으로 추궁하자, 병사가 급히 손을 내저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바람. 바람입니다. 놈들이 바람을 움직였습니다.”


과연 그런 소문이 있긴 하였다. 야만인들은 저마다 자연을 부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영주는 믿지 않았다.


“그건 다 북부인들이 만들어낸 헛소문일 뿐이야!”


그저 영지를 빼앗겨버린 패배자들의 변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인간이 어찌 자연을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오만하기 짝이 없는 소리였다.

하지만.


“헛소문이 아닙니다.”


뒤에서 난입한 목소리가 그의 생각을 부정하고 나섰다.


“밀라트 경?”


감정이 없는 듯 무표정한. 해서 날카로운 인상이 더욱 차갑게 느껴지는 사내였다.


영주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눈앞에 선 사내는 결코 빈말을 하는 자가 아니었다.


“···정말 그들이 자연을 부린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스릉-.


밀라트 가문의 사내가 허리춤에 멘 검을 반쯤 뽑아 올렸다.

손잡이 가까이에 그려진 문양이 그가 오랜 시간 전쟁의 한복판에 근무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었다.


“제가 돌아온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세, 세상에.”


영주의 다리에 힘이 풀어졌다.

그가 직접 소식을 전할 정도라니.

작금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이제사 피부에 와닿았다.


“경께선 야만인들이 이쪽으로 몰려올 거라 여기시는 게요?”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의 고향은 끝을 알 수 없는 숲의 바다입니다. 이곳 산세가 아무리 험하다 한들, 그들에겐 아무런 장해물이 되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반길 일이지.


뒷말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경고하고 대비하면 그만. 괜히 불안을 키울 필요까진 없다 생각한 것이다.


“내가 어찌하면 좋겠소?”


영주가 바짓가랑이라도 붙들 기세로 물었다.


“우리 영지엔 그대 같이 특출난 무인이 없질 않겠소. 당장 문밖의 야만인도 막아낼 도리가 없소.”


스릉, 탁!


밀라트 가문의 사내가 검을 다시 밀어 넣었다.


“오늘은 제가 나서겠습니다만, 후에 있을 일들엔 직접 대비를 하셔야 할 겁니다.”

“고, 고맙소!”


닥친 일을 해결해야 뒷일도 있는 법이다.

눈앞의 사내라면 야만인 다섯쯤은 단칼에 베어 넘기리라.


“무엇 하느냐! 어서 안내해드리지 않고!”


그의 마음이 바뀔세라, 애꿎은 병사를 재촉하는 영주였다.


**


“왔군.”


저 멀리로 맥스가 모습을 보였다.

꼬장꼬장한 청년을 한 손에 잡고, 이리로 허겁지겁 뛰어오고 있었다.


“듣던 것보다 훨씬 젊은데?”


필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알기에 장인은 일행 중 영감만큼이나 나이가 많았다.


“어찌 된 일인지는 물어보면 알겠지.”


어느덧 가까이에 다가온 청년을 보며 이그나가 맨들맨들한 턱을 쓸어내렸다.


“무슨 일로 저를···.”


주변에 널브러진 병사들을 둘러보며 당황한 티를 내던 청년이 조심스레 물었다.


“북부 출신의 유명한 대장장이가 있다던데. 네가 바로 그 장인이냐?”


이그나의 물음에 청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저는 도제일 뿐, 찾으시는 분은 제 스승님이십니다.”


아하. 필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 스승은 어디 있지?”

“돌아가셨습니다.”


이그나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피난길이 험해 그리 되었습니다.”


청년이 침울하게 말을 이었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청년에게도, 이그나에게도.


“헛걸음을 했네.”


이그나의 시선이 리그에게로 향했다.

이 상황을 보지 못한 것일까?


“그에게 맡겨보시지요.”


그건 또 아닌 듯했다.

저리 생글생글 웃고 있는 걸 보면.


이그나의 시선이 다시 청년에게로 향했다.

순박한 얼굴. 과연 망치나 제대로 휘두를는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이런 놈이 값어치만큼 제대로 된 검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청년의 눈이 동그랗게 뜨여졌다.


“거, 검이요? 제가 말입니까?”


당황하는 것이, 멀쩡한 대장장이가 보일 반응은 아니었다.


“제가 검을 제작하다니요, 가당치도 않습니다.”


청년이 손을 내저었다.


“도제라곤 하나 잡일을 도운 정도입니다. 농기구나 만들어봤지, 무구는 제작해본 적도 없습니다.”


청년의 말에 이그나의 얼굴도 덩달아 당황으로 물들었다.

이런 자에게 무기 제작을 맡기라고? 필립에게 용 사냥을 맡기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얘 확실해?”


다시 묻는 말에도 리그는 여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 예언자의 말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찝찝한 마음이 한 가득이었으나, 일단 일을 맡겨보긴 해야 할 듯싶었다.

결과물이 좋지 않으면, 그때 가서 다른 이를 구하는 것도 늦지 않으리라.


“아니, 정말 저는···.”


자신의 의사와는 반대로 흘러가는 상황에 청년이 도리질을 쳐댔다.


“일단 저랑 얘기 좀 나누시지요.”


하지만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리그의 손에 이끌려 갔다.


“혼란하다, 혼란해.”


이그나 또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 한편에 서 있던 맥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야.”

“어, 어?”

“더 부를 놈 없다며.”

“···?”


무슨 소리인지 당최 이해할 수가 없어, 맥스는 그저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했다.

그러다 알았다.

이그나의 시선이 자신보다 더 뒤로 향해있음을.


“뒤에 뭐가 있···. 으헉?”


훤칠한 키. 뽀얀 피부와 눈부신 머리칼. 무엇보다 한눈에 보아도 고급스러운 복장까지.

귀족이 분명했다.


“비켜라.”

“죄, 죄송합니다!”


맥스가 허겁지겁 걸음을 옮겼다.

귀족의 앞길을 막았다가 목이 베였다는 아무개의 이야기가 떠올랐음이다.


“나 잡으러 왔냐?”


이그나가 물었다.

귀족을 상대로 내뱉은 말치고는 몹시 불경하였기에, 주변 모두 놀라 헛바람을 들이켰다.


“그렇다.”


하지만 상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무심히 대꾸할 뿐이었다.


“너 그거구나.”


위아래로 상대를 훑던 이그나가 입꼬리를 씨익 말아 올렸다.


“소드 익스퍼트.”


이 기세. 전에 만났던 산적 두목과 꽤 닮아 있었다.


한편, 밀라트 가문의 사내도 이그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짐승이 따로 없군.”


병사를 깔고 앉은 오만한 자태.

미소 위로 날카롭게 번뜩이는 송곳니.

권태로운 듯 보이나 실상은 살기 가득한 눈까지.

야만인들의 특징은 물론이거니와, 국경을 무너뜨린 괴물의 분위기마저 가지고 있었다.


“생긴 것만 빼면.”


다만 의아한 것은 그 외형이다.

때가 탔음에도 곱상한 외모를 모두 감출 수 없었고, 반짝이는 금빛 머리칼은 자신의 것과 닮은 듯한 착각이 일 정도.

이곳 출신이 분명하다. 그것도 귀족의 피를 이은.


“이름이 무엇이냐.”

“이그나.”

“이곳 출신인가?”

“그럴 리가.”


이그나의 손가락이 북쪽을 건성으로 가리켰다.


“대자연 출신이다.”

“···그렇군.”


의아하긴 하나, 깊게 알 바는 아니었다.

스스로가 수해 출신이라 말하고, 행동하길 그들과 같게 행동하니, 그저 야만인으로 대하면 될 것이라.


스릉-.


사내가 검을 뽑아 들었다.

바로 베어버릴 생각이었다.


“오호라.”


하지만 재밌다는 듯 감탄사를 내뱉는 이그나의 모습에 잠시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너도 그 검이야?”


이그나가 발 옆에 놓인 반쪽짜리 검을 들어 앞으로 내보였다.


“나랑 같네.”


손잡이 가까이로 새겨진 성벽 문양.

두 검은 마치 부모 자식처럼 똑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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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008. 모성(母性) 21.12.17 179 6 12쪽
8 007. 그리폰(Griffon) 21.12.16 208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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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005. 오러(Aura) 21.12.14 247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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