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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별 님의 서재입니다.

드래곤 하트를 삼킨 야만 사냥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윤별
작품등록일 :
2021.12.10 05:00
최근연재일 :
2022.01.05 23:39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3,894
추천수 :
103
글자수 :
80,736

작성
21.12.15 12:35
조회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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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1쪽

006. 네츄럴 블레이드(Natural Blade)

DUMMY

“어렵네.”


이그나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손 위로 형상화되었던 바람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뭉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기운을 다루어 본 건 처음이었다.

자연은 원체 자유분방한 것들이라, 그저 방향만 제시해 주면 알아서들 몰아칠 따름이었으니.

그런 녀석들을 한곳에 묶어 둔다는 것은 떠올려 본 적도 없는 발상이었다.


그러는 사이.


“말도 안 돼!”


두목의 눈에는 실핏줄이 솟아올랐다.


오러(Aura)는 인류가 이룩한 전투기술의 정수(精髓).

검술의 형식도 갖추지 못한 야만인 따위가 구현해낼 수 있는 능력이 아니었던 것이다.


몸과 정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여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고, 그렇게 얻은 감각으로 마나(Mana)를 그러 모은다.

근육에 스며든 마나는 사용자의 투로(鬪路)를 따라 움직임을 익히게 되는데, 이때 무결(武結)에 가장 적합한 형태의 오러로 정제된다.

이런 정제 과정 시기의 무인을 비기너(Beginner)라 칭했다.


조금 더 경지가 발전하게 되면 무기를 통해 오러를 발산해 낼 수가 있는데, 이는 무기가 인체의 연장선상임을 깨닫고, 실제 그러한 것처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무인만이 실현 가능한 기술이었다.

익스퍼트(Expert). 산적 두목이 십수 년에 걸쳐 이룩한 경지가 바로 이곳이었다.


“새파랗게 어린놈이 어떻게 오러 블레이드를···!”


많이 봐줘야 열다섯쯤 됐을 법한 소년이다.

놈이 살아온 세월보다 자신이 검을 휘두른 세월이 더 길었다.

해서 인정할 수가 없었다.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노력한 지난 세월이 모두 헛된 시간으로 전락할 것 같았기에.

더구나 무기도 없이 허공에 오러를 발현하는 것은 자신조차도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던가.


“개 같은 야만인 새끼. 대체 무슨 사술을 부린 거냐!”


그리하여 부정했다.

저건 오러는커녕 비슷한 그 무엇도 아니라고.

그저 오러를 흉내 낸 눈속임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맞는 말이야.”


이그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그가 사용하는 오러 따위가 아니다.

그저 형(形)만 빌려 왔을 뿐, 그 기운과 운용은 전혀 다른 것이었으니.


“굳이 따지자면 네츄럴(Natural) 블레이드가 되려나.”


어떤 이름이건 간에 말장난일 뿐이었다.

중요한 건 그에게 새로운 무기가 생겼다는 것이고, 대자연의 인간들에게 또 한 번 진화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다는 것이었다.


“잘하면 먹이사슬도 바뀌겠는데.”


전생에도 이룩하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업적이었다.

이를 더 굳건히 하기 위해선, 이 무기를 조금 더 다듬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네가 연습 상대가 되어줘야겠다.”


이그나가 히죽 웃으며 두목에게 오라 손짓하였다.


“이 새끼가 나를 뭐로 보고!”


촤악!


두목의 검이 빠르게 짓쳐 들었다.


공격은 공격으로.

이그나 또한 손 위로 형성된 네츄럴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챙!


검과 검이 부딪혀 날카로운 소음을 만들어냈다.

찰나의 힘겨루기에서 승리한 것은 의외로 두목 쪽이었다.


파스스-.


네츄럴 블레이드의 한 부분이 모래처럼 무너져 내린 것이다.

이그나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바람을 더 끌어와야 하나?”


다시 한번 허공을 움켜쥐었다.

잡을 수 있는 만큼의 바람을 모조리 끌어오고 나서야, 전보다 더 단단한 네츄럴 블레이드를 형성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이것 나름대로 문제가 있었다.


“기운 소모가 너무 커. 몇 합 부딪히지도 못하고 지쳐 쓰러지겠는걸.”


자연은 부리는 규모가 합이 될수록 소모되는 기운은 곱으로 증가한다.

지금 가진 기운으로는 길어야 두 합을 유지하는 게 최대였고, 그나마도 목숨을 걸어야 가능할 정도였다.


“사냥을 거듭할수록 기운은 더 쌓일 테니 차차 해결될 문제겠지만, 당장 쓰기엔 확실히 무리가 있네.”


묶어두었던 바람의 일부를 놓아주자, 네츄럴 블레이드는 다시 연기처럼 흩어졌다 뭉치길 반복했다.


“날 무시하는 거냐!”


그때를 놓치지 않고, 다시 두목이 달려들었다.


대결에는 하등 관심이 없고, 기운을 운용하는 일에만 몰두하는 꼴이 그의 자존심을 짓밟아 놓은 것이다.


“죽어!”


또다시 두 검이 맞부딪혔다.


후두둑!


두목의 검이 네츄럴 블레이드를 가르고 지나갔다. 더 나아가 이그나의 손에 긴 자상을 남겼다.


후두둑.


끈적한 피가 손가락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렇군!”


눈살을 찌푸릴 법도 하건만, 이그나는 되려 환한 미소로 두목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그가 쥔 검과 거기에 피어오른 오러를 보고 있었다.


“형을 이루는 건 무기에 맡기고, 그 위로 기운을 올려 태우기만 하면 되는 거구나. 맞지?”

“······.”


두목이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이그나가 찾은 해답이 자신의 오러 운용 방식과 정확하게 일치했던 것이다.


“테스트를 한 번 해봐야겠는데.”


이번엔 이그나가 먼저 바닥을 박찼다.

하지만 그 경로가 두목을 향하진 않았다.


“어? 어억!?”


부하 산적이 기겁하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그나가 순식간에 자신 앞으로 다가온 이유에서였다.


“저, 저리가!”


부하 산적이 뒤늦게 녹슨 검을 뽑아 휘둘렀다.

이그나의 손도 그의 검을 따라 같은 방향으로 휘둘러졌다.

허공에 긴 선이 그어지고, 그 마지막 점에 도달한 부하 산적의 손엔 거짓말처럼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어라?”

“좀 쓸게.”


대체 언제 뺏어 든 건지.

이그나는 녹슨 검을 들고 다시 두목에게로 몸을 날렸다.


‘이리와!’


달리는 도중, 왼손을 펼쳐 지나는 바람을 낚아챘다. 그리고 녹슨 검을 향해 바람을 인도했다.


휘이이-!


바람이 검날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한 바퀴, 두 바퀴. 검을 순환할수록 바람은 더 거세고 날카롭게 변해갔다.


그렇게 이그나와 산적 두목의 세 번째 검격이 서로 맞부딪혔다.


캉!


녹이 슬고 이가 나간 이그나의 검이 산산조각으로 깨져나갔다.

하지만 그게 패배를 의미하는 건 아니었으니.


스겅-.


오러를 두른 산적 두목의 검 또한 반으로 갈라졌다.


“거봐, 이렇게 하는 거 맞다니까.”

“야만인 따위가 대체 어떻게···!”


산적 두목이 피를 토하듯 외쳤다.

경험, 기술, 하다못해 검의 상태까지. 어느 것 하나 모자란 게 없거늘.


촤아악-!


뒤늦게 피 분수가 솟아올랐다.

정수리부터 허벅지 아래까지 길게 이어진 선을 따라, 두목의 신체가 미끄러져 분리되었다.


털썩.


**


필립이 헛구역질을 했다.


“우욱!”


숲속에 남아 있던 필립과 영감을 산채로 데려왔는데, 그들을 가장 먼저 반겨준 것이 바로 산적 두목의 갈라진 시체였던 것이다.


“진심, 네가 한 거냐?”

“힘 조절을 잘못했어. 젠장! 검은 살렸어야 했는데.”


이그나가 갈라진 철검을 발로 툭 차내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사람이 아니라 검을 말이지?”

“사람이 어딨어?”

“······.”


계속 같이 다녀도 괜찮은 걸까? 필립이 꽉 막힌 가슴을 두들겼다.


“저들은 누군가?”

영감이 한쪽에 모인 인물들을 가리켰다.

산적들에게 잡혀 와 여러모로 착취를 당하고 있던 이들이었다.


“산적은 다 처리했으니 걱정말고 떠나라 일렀는데, 아직도 안 갔네?”


그러거나 말거나.

이그나는 저들 같은 건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갈라진 검만 하염없이 아까워하고 있었다.


“저···.”


그때. 일전에 이그나에게 말을 걸었던 그 여인이 가까이로 다가왔다.

여전히 검만 바라보는 이그나를 대신해, 영감이 앞으로 나섰다.


“무슨 일인가?”

“저흰 앞으로 어찌하면 좋을까요?”


여인의 물음에 영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 대장 말로는 고향으로 돌아가라 일렀다던데?”

“그게···.”


여인이 쭈뼛거렸다.

그들 또한 북부에서 밀려난 피난민들이었으니, 돌아갈 고향은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허어. 그럼 원래 가던 대로 피난을 계속하든 하면 되질 않겠나? 우린 자네들의 자유를 빼앗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으니 말일세.”

“그러니까 그게···.”


그 또한 하지 못할 이유가 있었다.


“피난민들을 받아준다는 영지가 근처에 있긴 해요. 하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목에···.”

“길목에?”


잠시 뜸을 들이던 여인이 침을 꼴딱 삼키며 말했다.


“괴물이 살고 있거든요.”

“괴물?”

“네, 수해에서 넘어온 사나운 괴물이요.”

“허어-. 그렇단 말이지?”


영감의 시선이 이그나에게로 향했다.

대화 내용이 이미 귓속에 들어갔던지, 이그나 또한 동태 같던 눈깔을 벗어 던지고 반짝이는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

“네, 네?”


이그나의 부름에 여인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그저 모자란 부랑아라고만 생각했던 아이.

하지만 그 아이가 이뤄낸 전적과 그 과정의 잔혹함을 직접 목격한 바 있었으니, 전처럼 감히 반말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그나가 물었다.


“괴물이 나타나는 곳이 어딘지 알아?”


알긴 안다만, 선뜻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눈치로 보아 안내를 맡게 될 클리셰가 아니던가.


“제가 압니다!”


머뭇거리던 사이. 같이 붙잡혀 있던 이들 중 한 명이 번쩍 손을 들어 올렸다.

어찌나 안심이 되던지. 대신 내어준 용기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오, 진짜?”

“예! ‘쟤’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의 검지가 자신을 가리키기 전까진.


“저놈은 어쩌지?”


필립이 남은 산적 놈을 가리키며 물었다.


“포로들에게 넘겨. 죽이든 살리든 당한 만큼은 갚아줘야지.”


어찌나 부려먹었던지. 산적의 얼굴을 새파랗게 질렸고, 포로들의 얼굴은 환하게 빛났다. 그러면서도 살기가 등등했으니 중재에 나선 건 다름 아닌 영감이었다.


“살려두는 게 좋을걸세.”

“···왜죠?”

“어느 영지나 도적은 골칫거리이니, 경비대에 넘기면 분명 보상을 해주지 않겠는가? 어차피 자네들도 피난 중이었고, 공이 있다면 좀 더 수월히 입성할 수도 있겠지.”


영감의 말에 포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산적을 가두기만 할 생각은 아닌 모양이었다.


“일단 볼일 좀 보겠습니다. 물론 죽이지는 않고요.”

“그러시게.”


포로들은 산적을 건물 뒤로 끌고 갔다. 그리고 한동안 매타작 소리와 비명이 산채에 가득 울려 퍼졌다.


그러는 사이, 이그나는 산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함께할 인원은 안내를 맡은 여인과 미끼 역할의 필립이었다.

비록 필립 본인은 제 역할에 대해 모르는 눈치지만 말이다.


“영감은 여기 있어.”

“그리 하겠네. 잠시 머물면서 이것저것 손이나 좀 봐야겠군.”


영감이 산채를 쭉 둘러보았다.

사람은 살았으나, 관리가 부실했던지 영 엉망이었다.


“여기 터를 잡을 것도 아닌데 뭐하러.”

“늙으면 이런 소일거리가 다 즐거움이 되거든.”


비록 떠나갈 장소이지만, 같은 처지의 피난민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고쳐 놓으면 참 좋을 것 같았다.


“그럼 다녀들 오시게.”


영감의 배웅과 함께 일행이 발을 움직였다.

새로운 용 사냥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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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6. 네츄럴 블레이드(Natural Blade) +1 21.12.15 229 8 11쪽
6 005. 오러(Aura) 21.12.14 247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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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003. 변화 21.12.12 346 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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