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윤별 님의 서재입니다.

드래곤 하트를 삼킨 야만 사냥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윤별
작품등록일 :
2021.12.10 05:00
최근연재일 :
2022.01.05 23:39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3,896
추천수 :
103
글자수 :
80,736

작성
21.12.10 16:35
조회
562
추천
9
글자
12쪽

001. 깨어나다

DUMMY

죽은 듯 잠들어있던 이그나의 눈이 번쩍 뜨였다.


“···!”


살아있다.

당장에 몸이 터져나갈 줄 알았건만, 다행스럽게도 팔다리 멀쩡하게 살아있었다.


한데,


“뭐야, 몸이 왜 이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더듬더듬 쓸어내린 몸이 영 예전 같지 않았던 탓이다.

굳은살 하나 배기지 않은 손과 피골이 상접 하여 갈비뼈가 훤히 드러난 가슴, 여리디여린 목소리까지.

대자연(大自然)의 한 영역을 차지했던 이의 것이라곤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볼품없는 몰골이었다.


삐그덕, 삐그덕.


“······.”


뼈다귀같이 덜그럭거리는 제 몸을 한참 바라보던 이그나가 작게 읊조렸다.


“···이건 내 몸이 아니야.”


정확했다.

시간이 거꾸로 가는 것이 아닌 이상에야, 청년의 몸이 소년의 몸으로 줄어들 일도 없을 테니.


“이게 대체 무슨···.”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했다.

당장 떠오른 건 하나였다.

드래곤 하트.

생사의 고비에서 선택한 유일한 길이었다.


‘아무리 장담할 수 없는 도박이었다곤 하나, 몸이 바뀌다니?’


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상황이란 말인가.


“잠깐. 몸이 바뀌어?”


불안함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급히 눈을 감고, 온 정신을 집중했다.

안으로, 안으로. 은은한 박동을 따라 생명의 근원에 닿을 때까지.


“···없다.”


절망이 목구멍을 비집고 새어 나왔다.

그의 심장은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던 양 텅하니 비어있었다.

평생을 바쳐 사냥했던 용들의 기운이 한 줌의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진 것이다.


“뭐 이런 빌어먹을 경우가···!”


이그나가 떨리는 손으로 심장을 부여잡았다.

하나, 잡히는 건 그저 지독한 상실감뿐.

이래선 안 된다.

그간 쌓아 올린 명예와 업적이 이런 식으로 물거품이 될 순 없었다.


그때.


“뭐 하냐, 약골 새끼야?”


누군가 멍하니 있던 이그나를 강하게 밀쳤다.


“···?”


충격을 따라 돌린 시선엔, 한 무리의 소년들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이그나를 둘러싼 모양새를 보아, 주변에 시비를 걸고 다니는 것이 일상인 듯했다.


게 중 대장으로 보이는 놈이 험악한 표정을 지어왔다.

덩치가 산 만 한 것이 과연 주변 소년들과는 급이 다른 위압감을 풍기고 있었다.


“귀먹었냐? 왜 혼자 벌떡 일어나서 품을 살피냐고. 뭐 빵이라도 숨겨놨냐?”


놈이 우악스러운 손길로 이그나의 상의를 들췄다.

하지만 빵조각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대신 가죽끈으로 이어진 은반지 하나가 빛을 반짝이고 있을 뿐.


“와, 씨. 뭐야 이거.”


갑작스럽게 등장한 은붙이에 덩치의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그리곤 탐욕스러운 미소와 함께 잽싸게 손을 뻗어왔다.


탁!


하지만 그런 녀석의 손을 쳐낸 이가 있었으니.


“건들지 마.”


이그나였다.


사실 반지건 목걸이건 있는 줄도 몰랐고, 진정 몸의 주인도 아니었으니 그와는 상관없는 재물이었다.

하나, 그렇다고 제 몸이 지니고 있던 것을 생면부지 알지도 못하는 인물에게 넘겨줄 이유도 없었다.

그가 지금껏 써 내려왔던 역사에서 무언가를 빼앗겼던 기록은 단 한 줄도 쓰여있지 않았다.


‘아니지.’


이그나가 고개를 저었다.

죽기 직전의 일이 떠오른 것이다.


‘시구르드, 이 개 같은 배신자 새끼.’


그때 그 육신도 아니건만, 놈에게 찔린 심장이 다시금 욱신거리는 듯했다.


이그나가 이를 으득 가는 사이, 움찔했던 덩치가 인상을 양껏 찌푸린 채 자세를 가다듬었다.


“내놔.”


놈이 뜨거운 콧김을 내뱉었다.

한쪽 소매를 걷어붙이는 것이 곧장 이라도 주먹을 휘두를 기세였다.


우스웠다.

고작 덩치만 믿고 패악질을 부리는 상대의 꼴이 그랬고, 이런 같잖은 시비의 대상이 된 자신의 처지가 그랬다.


“이 새끼가 좋게 말로 하는데도 안 내놓네. 꼭 처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여전히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는 이그나에게로, 결국 놈은 주먹을 휘두르고야 말았다.

어찌나 힘이 좋던지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선명히 들릴 정도였다.


부웅!


이그나는 허리를 살짝 트는 것만으로 가볍게 주먹을 흘려보냈다.

엉성한 자세나 멍청할 정도로 정직한 시선이 공격 궤도를 훤히 일러주고 있었기에,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덥썩!


이그나는 지나간 팔뚝을 얼른 겨드랑이 아래로 끼워 넣었다.

그리고 넘어지듯 온몸으로 놈의 어깨를 찍어 눌렀다.


“어엇?”


휘청이던 덩치 놈이 당황한 신음을 냈다.


우득!


“끄, 끄아악!”


놈의 어깨에서 무시무시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 저···!”


덩치 놈을 따르던 소년들이 눈앞의 상황이 믿기 힘들다는 듯 입을 떠듬거렸다.

바닥을 뒹굴고 있는 덩치는 북부의 군 지휘관까지 탐낼 정도로 소문난 장사.

어디서 빌어먹지도 못한 듯 보이는 말라깽이가 제압할 수 있을 인물이 아니었던 탓이다.

심지어 약골이라니? 그는 이곳 소년 중 어느 하나 신경 쓰는 이가 없을 정도로 하찮던 아이가 아니던가.


···하지만 그건 어제까지의 이야기였고.

지금은 전혀 다른 알맹이를 가지고 있었다.


‘이깟 덩치는 덩치도 아니야.’


자연을 닮아 하나하나가 태산 같던 용들이다.

그들에 비하면 이깟 꼬마는 고작 발톱만도 못한 존재였으니.


“끄윽! 이 새끼들아, 어떻게 좀 해봐!”


이그나의 아래에 깔린 덩치가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그럴수록 심해지는 통증에 섣불리 이그나를 밀어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떼, 떼어내!”


덩치의 비명 섞인 외침에 그를 따르던 소년들이 퍼뜩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몇 발자국 움직이지도 못한 채 덜컥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움직이지 마.”


번뜩!


차갑게 빛나는 푸른 눈동자.

이그나의 시선이 그들을 향했기에.


꿀꺽.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한 주먹 감도 돼 보이지 않는 작은 소년이건만, 그들의 눈엔 그 어떤 짐승보다도 더 사납게 느껴진 것이다.


“움직이는 놈들은 모가지를 뜯어 놓을 테다.”


소년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날카롭게 드러난 송곳니가 이미 그 살결을 뜯어낸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소년들은 저마다 자신의 목을 쓸어내렸다.


“······.”


으르렁 울리는 그의 목울림 또한 도저히 인간의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니.


“지, 짐승.”


그래. 그건 짐승의 울림이었다.


“헉!”


어쩌다 이그나와 눈을 마주친 녀석은 재빠르게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이런 눈빛은 본 적이 없었다.

뒷골목을 전전하며 온갖 범죄자들과 뒤섞였던 그때에도, 이렇게까지 무서운 기운을 마주한 적은 없었다.

압도적인 존재감.

소년들은 저 자신이 한낱 먹잇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반면.

얼어붙은 분위기에 의아함을 느낀 이그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아무리 목소리를 깔고, 살기를 실었다 한들, 인간이 담을 수 있는 기세의 크기는 한계가 있는 법.

몇 줄 위협을 가하긴 했다만, 이런 비루하기 짝이 없는 몸뚱어리로 내뱉은 말이 얼마나 효과가 있겠는가.

그러니 이들의 반응엔 무언가 다른 것이 개입된 게 분명하다.

그리고 오랜 시간 용의 기운을 다뤄왔던 이그나는 그들 사이에 개입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지할 수 있었다.


‘피어(Fear).’


말이나 행동 따위로 피어나는 두려움이 아니다.

조금 더 본능적인 공포.

바로 먹이사슬의 고저에서 결정되는 격의 차이였다.


‘하지만 어떻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소년의 몸이었고, 아무것도 담아내지 못한 소년의 심장이었다.

어느 구석으로 봐도 포식자의 면모는 찾아볼 수 없었으니, 이딴 몸뚱어리가 가질 수 있는 기운은 결코 아니었다.


‘그저 몸만 바뀐 것은 아니라는 건가?’


이 모든 상황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단서. 드래곤 하트.

아무래도 그것이 남긴 특전인 듯했지만, 아직은 뭐가 뭔지 알 길이 없었다.


‘자세한 것은 차차 알아가도록 하고.’


이 문제는 잠시 제쳐 두기로 했다.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는 따로 있었기에.


“야, 덩어리.”

“으, 응?”


피어가 발산된 이후, 덩치의 성질은 한없이 누그러져 있었다.


“여긴 어디냐?”


고분고분한 태도에 입꼬리를 말아 올린 이그나가 질문을 던졌다.


**


전쟁이 터졌다.

국경 너머의 야만인들이 수해(樹海) 밖으로 쏟아져 내려온 것이었다.

평화롭던 북부는 한순간에 쑥대밭이 되었고, 힘없는 농민들은 화를 피해 남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소년 무리도 그들 중 하나였다.



“그러니까 우린 게 중 동부로 가는 피난 행렬의 일부다, 이 말이지?”

“그, 그렇지.”

“허약한 놈들이로군. 제 영역을 다 빼앗긴 것으로도 모자라 줄줄이 도망가는 꼴이라니.”


비웃음 섞인 이그나의 말에 덩치가 발끈하고 나섰다.


“다, 단순히 야만인들만의 문제가 아니야.”

“그럼 또 뭐가 문젠데?”

“괴물!”


비명처럼 터져 나온 대답에 이그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허무맹랑한 소리였다. 괴물이라니.

순간 이놈이 장난을 치는 건가 싶었지만, 같이 표정을 굳히는 주변 소년들의 반응을 보아 아주 허튼소리까지는 아닌 듯했다.


“설명해봐.”


덩치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원래라면 야만인들이 북부로 쏟아지는 일도 없었어야 했어. 국경의 벽은 결코 낮지 않으니까.”


맹렬하다 한들 맨몸으로 거대한 벽을 무너뜨릴 순 없는 노릇.

때문에 초기엔 그 누구도 이 침략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두드려도 국경이 무너지지 않자 놈들이 다시 수해로 물러서는 듯했지. 근데 그건 착각이었어. 보란 듯이 괴물들을 이끌고 나타난 거야!”


세상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짐승들이었다.

놈들은 땅으로, 강으로, 하늘로 몰아쳤고, 굳건하다 여긴 국경이 금세 무너지기 이른 것이다.


설명을 듣던 이그나가 맨들맨들한 턱을 쓸어냈다.


“괴물이라···.”


산과 같은 덩치. 대적할 수 없는 힘. 몰아치는 바람과 땅을 울리는 발돋움이라.

어째 익숙한 것들이었다.


그때.


쿵!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크게 흔들렸다.


“뭐. 뭐야?”


모두가 휘청이며 자세를 가다듬는 사이, 저 멀리서 찢어질 듯한 비명이 들려왔다.


“괴, 괴물이다!”


외침을 들은 소년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국경의 벽도 막아내지 못한 것들. 아무리 힘깨나 쓴다는 소년들이라곤 하나, 감히 그것들을 상대할 순 없었다.


“도망쳐야 해!”


패닉에 빠진 소년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숲속 깊은 곳으로 달음박질을 쳤다.

덩치 또한 그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덥썩!


“켁!”


누군가 그런 덩치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어딜 가?”


이그나였다.


“무, 뭐. 왜?”

“구경 가자.”

“···뭘 하자고?”

“괴물.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잖아.”

“이런 미치···, 켁!”

“잔말 말고 따라와.”


이그나는 질색하는 덩치를 끌고 숲의 경계로 나아갔다.

힘이야 덩치가 더 셌지만, 이그나의 피어에 주눅이 든 덩치는 제대로 된 반항도 하지 못한 채 걸음을 옮겨야 했다.


“끄아악!”

“살려줘!”


숲을 벗어날수록 혼란은 더 가까워졌다.

짙은 피 냄새가 코를 찔렀고, 절망에 빠진 울음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그리고 드디어 짙은 나무 그늘에서 빠져나온 순간.


[캬아아악-!]


귀를 찢을 듯한 울음소리가 둘을 덮쳤다.

나무만큼이나 높이 솟은 덩치와 하늘을 다 가릴 것 같은 날개까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괴물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 이런 씨···.”


압도적인 괴물의 자태에 덩치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반면.


“하!”


이그나는 달랐다.


“어쩐지 익숙하더라니.”


기가 막힌다는 듯 내뱉은 코웃음.

그는 웃고 있었다.


“괴물이라고?”


한쪽 입꼬리를 귀 아래까지 끌어 올린 채.


“다 자라지도 못한 새끼 와이번 따위가?”


먹잇감을 발견한 굶주린 짐승처럼.


작가의말

잘 부탁 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드래곤 하트를 삼킨 야만 사냥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잠시 재정비 좀 하고 오겠습니다. 22.01.16 33 0 -
16 015. 문양 22.01.05 108 3 12쪽
15 014. 홀로 21.12.31 99 3 11쪽
14 013. 성벽 21.12.26 116 4 12쪽
13 012. 예언자(Seer) 21.12.23 100 3 11쪽
12 011. 소식 21.12.21 129 4 12쪽
11 010. 안나 21.12.20 124 5 13쪽
10 009. 이이제이(以夷制夷) +1 21.12.18 166 8 12쪽
9 008. 모성(母性) 21.12.17 179 6 12쪽
8 007. 그리폰(Griffon) 21.12.16 208 7 12쪽
7 006. 네츄럴 블레이드(Natural Blade) +1 21.12.15 229 8 11쪽
6 005. 오러(Aura) 21.12.14 247 7 12쪽
5 004. 바람 21.12.13 285 8 13쪽
4 003. 변화 21.12.12 346 9 11쪽
3 002. 첫 사냥 +1 21.12.11 432 9 12쪽
» 001. 깨어나다 21.12.10 563 9 12쪽
1 000. 프롤로그 21.12.10 566 10 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