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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별 님의 서재입니다.

드래곤 하트를 삼킨 야만 사냥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윤별
작품등록일 :
2021.12.10 05:00
최근연재일 :
2022.01.05 23:39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3,900
추천수 :
103
글자수 :
80,736

작성
21.12.18 11:35
조회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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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2쪽

009. 이이제이(以夷制夷)

DUMMY

덜컥!


안나의 몸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변화의 전조였다.


“괜찮은 거 맞지?”


필립이 불안한 얼굴로 물어왔다.

괜찮냐고? 괜찮을 리가.


“쉽게 품을 수 있는 힘이었다면 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났겠지.”

“그 말은···, 괜찮지 않다는 소리야?”


애초에 인간에겐 허락되지 않은 힘이다. 아니, 인간 아닌 다른 짐승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자연은 너무나도 광활하여, 좁디좁은 신체에 다 담아낼 수가 없었다.

타고난 용마저도 성체가 되고 나서야 그 힘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평범한 인간에겐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이라 보아도 무방했다.


“당장에 몸이 터져나가도 이상하지 않을걸.”

“그게 무슨 개소리야! 터져나가다니!”


필립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걸 알면서도 안나에게 심장을 먹였다면, 그건 곧 죽으라 등을 떠민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의아한 부분도 있었다.


“너는? 너도 삼켜냈잖아.”

“나야, 뭐···.”


피어(Fear)가 있었으니까.

자연마저 굴복시킨 드래곤의 존재감이다.

와이번의 기운 따윈 무릎을 꿇리고도 남을 만큼 거대했고, 단단한 힘이었다.

그러나, 그런 피어의 도움을 받고서도 죽음의 고비를 여럿 버텨내야 했다.

그릇이 허약한 탓이었다.


안나의 몸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을 터.

피어와 같은 무언가가 그녀를 돕지 않는다면,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리라.


“그러고 보니 네가 돕는다고 그랬지! 빨리 어떻게 좀 해봐!”


필립이 다그쳐왔다.


“안 그래도 그러는 중이니까, 좀 닥쳐. 정신 사납게 하지 말고.”


도움은 진즉부터 주고 있었다.

옅게 피어 올린 존재감이 그리폰의 기운을 억제해주고 있었으니.

하지만 그것도 임시방편일 뿐이다.

스스로가 이겨내지 않으면 언제고 다시 날뛸 기운이었다.


들썩!


그를 증명하듯 안나의 몸이 다시 발작을 시작했다.

그리폰의 기운도 자신을 억제하는 힘이 그녀의 것이 아님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안나도 슬 적응했겠지.”


이그나가 본격적으로 피어를 끌어올렸다.

아마 처음부터 모든 존재감을 드러냈더라면, 그리폰의 기운은 둘째치고 안나까지 까무러쳤을 것이었다.


“업어.”


이그나의 말에 필립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했다시피, 외부에서 기운을 억제해주는 건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실제 싸움은 안나의 몸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으니, 도움 또한 내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일단 산채로 돌아가자.”


그러려면 영감이 필요했다.

분명 지난 세월만큼의 재주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 약초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있겠지.


**


“이게 무슨 일인가?”


영감이 버선발로 뛰어나왔다.

안나가 업혀 오는 걸 미리 본 모양이었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용에게 당했어. 죽게 둘 수 없어서 심장을 먹였고.”

“저런···.”


영감 또한 이그나의 변화 과정을 지켜본 사람 중 하나였다.

해서 발작하는 안나의 상태를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처자가 버텨낼 수 있을는지···.”


보는 이가 다 고통스러워질 정도로 격한 과정.

영감이 보기엔 평범한 이가 견뎌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안나 또한 비범해 보이는 인물은 아니었고.

하지만, 방법이 없다면 이리 하지도 않았을 터.

영감은 이그나를 믿었다. 그라면 해법을 제시해주리라.


“일단 안으로 옮기시게. 집 안을 손봐두었네.”


영감이 침실로 그들을 안내했다.

실낱처럼 이어진 호흡과 계속되는 경련이 그녀의 상태를 대변하고 있었다.


“그래. 내가 뭘 해야 하나?”


영감이 물었다.

산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진즉 해결하고 왔을 터다. 이그나는 눈앞에 닥친 일을 뒤로 미루는 이가 아니었으니.

그런 그가 구태여 이곳까지 안나를 데리고 왔다면, 분명 이유가 있어서일 것이다.


“약초를 볼 줄 알아?”


이그나의 물음에 영감이 환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전문 분야일세.”

“다행이군. 난 다듬어진 약재만 보았지, 자연에서 그게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모르거든.”


이그나가 필요한 것들을 읊기 시작했다.


“붉은 장대 꽃 한뿌리, 주름 코 버섯, 그리고 하늘가지 잎이랑 또···.”

“잠깐, 잠깐.”


쉴새 없이 이어진 리스트에 영감이 손을 들어 보였다.

그리곤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대체 뭔가, 그것들은?”

“······.”


생전 처음 듣는 약초들이었다.

잠시 당황한 듯하던 이그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씹을수록 시원한 향을 내뱉는 잎이 있어.”

“박하 잎을 말하는 모양이군.”

“갓이 사람 코 모양을 닮았고, 자글자글 주름이 나 있는 버섯은?”

“음, 글쎄. 주름 사이가 구멍이 난 듯 송송 패어있던가?”

“맞아.”

“그렇다면 곰보버섯을 말하는 것 같은데.”

“좋아, 다음은···.”


서로 아는 이름은 달랐으나, 그 특징으로 무얼 말하는지 유추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이그나가 설명해 주는 재료들을 받아적었다.


“끝이야.”

“알겠네, 내 구해옴세.”


마침표를 찍은 영감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다 문득 메모의 한 지점을 가리키며 물었다.


“근데 이 마귀 풀, 아니. 붉은 장대 꽃이란 거 말일세.”

“왜? 구하기 어려워?”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알기로 이건···.”


곤란한 듯 뜸을 들이는 영감에게 이그나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꼭 필요한 거야.”


나름 약초에 조예가 깊은 영감이었지만, 선뜻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다 생각이 있겠거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바로 출발하겠네.”

“필립, 영감을 도와. 업고 뛰든, 나눠서 찾든 무조건 아침까진 다 구해와야 해.”


당황한 필립이 손을 내저었다.

다시 산행을 하기엔, 그는 너무 지쳐있었다.


“그렇게 급한 거면 네가 가는 게 좋지 않아?”


사실상 이 산채에서 이그나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내가 지금 놀고 있는 거로 보이냐?”


짜증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이그나가 물었다.

온몸을 적신 식은땀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왔다.

퍼뜩 깨달았다. 이그나는 지금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행하고 있다는 것을.


“아, 알았어. 다녀올게.”


필립과 영감이 부리나케 밖으로 나섰다.


“다녀오면 성격부터 바꿔놔야겠군.”


영감을 들쳐 업고 산으로 내달리는 필립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그나가 그리 중얼거렸다.

힘도 좋고, 재능도 있는데 사사건건 따지고 드는 것이 아주 답답하기 그지없는 놈이었다.


“그나저나, 아침까지 내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네.”


땀으로 흥건한 이마를 훔쳐내며, 이그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드래곤 피어는 스스로에게도 버거운 힘이었다.

이게 원래 이런 건지, 아니면 아직 격을 갖추지 못한 몸이라 그런 건지 알 수는 없었다.

이제껏 그 누구도 얻어본 적 없던 힘이었으니.


그래도 버텨야 한다.

그는 이미 안나의 이름을 들어 버렸고, 그녀 또한 사냥에 충분한 역할을 했음이다.

그러니 책임을 져야 했다.


“밤이 무척 길군.”


다시 한번 이마를 훔쳐냈다.

그리고 빌었다. 제발 해뜨기 전에 도착하기를.


**


우당탕!


“이그나!”


정신이 오락가락해질 무렵, 영감과 필립이 돌아왔다.


“여기 자네가 말한 약재들일세.”


영감이 가방을 벌려 내용물을 보여주었다. 급히 캐온 것들인지라 흙조차 제대로 털지 못한 듯하다.


“···끓는 물에 우려.”


이그나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아, 알겠네.”


처음 보는 모습에 영감이 당황하며 발을 움직였다.

그런 그를 이그나가 다시 붙잡아 세웠다.


“붉은 장대 꽃은···, 후-. 으깨서 헝겊이랑 따로 가져오고.”

“···후딱 가져오겠네.”


그 말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영감이 준비된 약을 담아왔다.


“붉은 장대 꽃부터.”


이그나의 지시에 따라 으깬 붉은 장대 꽃을 헝겊에 감쌌다. 그리고 막대로 틀어 안나의 입 위로 가져갔다.


“······.”

“영감.”


이그나가 머뭇거리는 영감을 재촉했다.

진짜 맞느냐고 묻는 눈빛에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다음은 이걸 먹이면 되겠나?”


즙을 충분히 흘려 넣은 후, 나머지 재료를 우려낸 약물을 들어 올렸다.

이그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쿨럭!


사레가 들린 것인지 안나가 작게 기침을 하였지만, 영감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기지 않고 입안으로 흘려보냈다.


“다 되었네.”


준비는 끝났다. 나머지 일은 안나에게 달려 있을 따름이다.


“후-.”


이그나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시작한다.”


그리곤 끌어올렸던 드래곤 피어를 다시 거두어들였다.


울컥!


그리폰의 기운을 억제하던 힘이 사라지자, 안나가 곧바로 몸을 들썩였다.


까드득! 까드드득!


“끼, 끼아아악-!”


산채로 불에 태워진다면, 이런 비명이 튀어나올까?

엄청난 고통에 안나가 몸을 뒤틀었다.

뭐라도 좀 해줬으면 좋겠건만, 이그나는 그저 그녀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옆에서. 묵묵히.


“무, 뭡니까, 이 소리는?”


비명을 들은 포로들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그리고 곧, 방문 너머로 몸부림치는 안나의 모습을 발견해냈다.


“아, 안나?”

“이게 지금···!”


그들을 막아선 것은 필립이었다.


“치료 중이야.”

“저게 어딜 봐서 치료란 말입니까!”


허리를 활처럼 세우고, 양손으로 제 몸을 뜯어내고 있다. 누가 봐도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까드드득!


게다가 뼈가 뒤틀리는 소리까지 선명하게 들려왔으니, 이건 치료가 아닌 고문에 가까워 보였다.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필립이 포로들을 밀어냈다.

그의 마음 또한 포로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믿기로 했다.

이그나가 했던 결정 중 그른 것 하나 없었으니. 자신과는 다르게 말이다.


거의 반나절이 지났다.

안나는 그 긴 시간을 전부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으로 보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 우웩!”


검은 피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


반가운 일이었다. 분명 죽은 피를 토해내는 것일 테니.


“콜록! 켁!”


구토가 잦아들고, 들썩임도 이내 멈춰 섰다.


“정신이 좀 들어?”


이그나가 묻자, 안나가 서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마주친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제, 제가 지금 지옥에 와있는 건가요?”

“현실인데.”

“너, 너무. 너무 아파요.”

“지금도?”


안나가 황급히 제 몸을 훑었다.

아프긴커녕 상쾌한 기분이었다.


“아···.”


안심이 되었던 것일까.

안나의 고개가 다시 침대 위로 떨어져 내렸다. 그녀는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끝났군.”


이그나가 일이 마무리되었음을 알렸다.

필립도, 영감도. 모두 긴장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다행이구만.”


영감이 껄껄 웃음을 내뱉었다.

그리고 내내 담아두었던 말을 꺼내었다.


“난 자네가 고통 없이 그녀를 보내주려는 줄 알았네.”


듣고 있던 필립이 깜짝 놀라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고통 없이 보내주다니?”

“처음 먹인 마귀 풀. 그건 약초가 아니라 독초거든.”

“뭐, 뭣?”

“게다가 나머지 재료로 우려낸 약도···. 글쎄, 처음 본 배합이긴 한데. 약초들의 특성을 묶어 생각해보자면, 처음 먹은 마귀 풀의 독성을 온몸으로 퍼져나가게 도와주는 역할이지 않았을까.”


답을 구하는 듯, 영감의 시선이 이그나에게로 향했다.

바로 맞췄다.


“붉은 장대 꽃의 독성으로 그리폰의 기운을 일부 태워버린 거야.”

“독성이 어찌 그 기운만 찾아 태울 수 있단 말인가?”

“용은 자연에 가장 가까운 생물이니까. 자연에서 난 것이라면 응당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할 테지.”

“어렵군.”


다른 세상의 지식처럼, 아득하기만 한 설명이었다.

하지만 마냥 소득이 없던 건 아니었다.


“···어려워.”


턱을 쓰다듬는 영감의 눈이 아이처럼 반짝이고 있었으니.

아무래도 철 지난 공부를 다시 시작하려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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