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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별 님의 서재입니다.

드래곤 하트를 삼킨 야만 사냥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윤별
작품등록일 :
2021.12.10 05:00
최근연재일 :
2022.01.05 23:39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3,892
추천수 :
103
글자수 :
80,736

작성
21.12.31 14:35
조회
98
추천
3
글자
11쪽

014. 홀로

DUMMY

콰직!


손목이 아작 날 거라는 모두의 예상을 엎고, 오히려 두터운 몽둥이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나갔다.

구경하던 난민들도, 몽둥이를 휘두른 장본인도, 하나같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뭔 개 같은···.”


처음부터 썩어있던 게 아닐까?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다.


“뭐하고 섰냐, 끝이야?”


대수롭지 않은 듯 내뱉는 이그나의 물음에 건달들이 퍼뜩 정신을 되찾아왔다.


“쳐!”


그럼 그렇지.

이그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눈에 딱 알아보면 좋으련만. 이런 놈들치고 제 주제를 정확히 아는 자가 없었다.


“건방진 꼬마 녀석!”


주먹이 날아들었다.

고개를 빗겨 유려하게 피해낸 이그나가 놈을 지나쳐 뒤따르는 건달의 복부에 발을 꽂아 넣었다.


“억!”


그리고 다시 돌아, 지나친 녀석의 뒤통수를 팔꿈치로 내리찍었다.


콰당!


이놈은 비명조차 내뱉지 못하고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


재빠른 이그나의 동작에 모두들 다시 한번 입을 쩍 벌렸다.

뭐 이런 꼬마가 다 있어? 그런 표정들이었다.


“필립.”

“응?”


생각 이하로 낮은 수준에 혀를 차던 이그나가 대뜸 필립을 불러들였다.


“되겠냐?”

“뭐가? 얘네들?”


필립이 주변을 스윽 둘러보았다. 이내 씨익 웃어 보였다.


“식은 스프 먹기지.”


필립도 한때 북부 뒷골목을 휩쓸었던 싸움꾼이다.

이제껏 괴물들만 만나와서 그렇지, 같은 인간의 범주에서라야 둘이든 셋이든 거뜬히 넘겨낼 수 있었다.


“수저 들어, 그럼.”


이그나가 뒤로 한발 물러섰다.


“진짜?”


제 입방정에 이목이 쏠린 터라 마음이 내내 불편했던 필립이다.

한데 이렇듯 만회할 기회를 주니, 어찌 날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뒤에 이그나도 있겠다, 후일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혹여 자신이 힘에 부쳐 쓰러진다 하더라도 나머진 그가 해결해주리라.


“안 그래도 도망만 다니느라 스트레스였는데. 고맙다, 자식들아.”


한껏 고양된 필립이 바닥을 박차고 나갔다.


“마, 막아!”


갑작스러운 돌격에 건달들도 황급히 반응하였다.

앞선 이그나의 무력이 실로 어지러울 정도였으니, 그보다 큰 덩치의 필립은 더욱 위협적으로 느껴졌으리라.


한데.


퍽!


“억! ···어?”


필립의 주먹에 턱을 가격당한 건달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맞을만했던 것이다.

비록 눈앞에 별이 튀긴 했지만, 이그나에게 맞고 쓰러진 놈들처럼 못 버티고 정신을 잃을 정도는 또 아니었다.


“조, 조져! 물 주먹이야!”

“뭐 인마? 내 주먹이 물 주먹이라고!?”


우당탕!

진정 난장이 시작되었다.

용기를 얻은 건달들이 마구잡이로 달려들었고, 눈이 돌아간 필립은 건달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던졌다.


“가관이네, 가관이야.”


이그나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타고난 힘이 좋아 저리 버티곤 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쓰러질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아직 다 자라지도 못한 소년입니다. 저 정도면 훌륭하지요.”


어른에게도 밀리지 않는 힘. 다수를 상대하면서도 지치지 않는 체력. 무엇보다 날아드는 주먹에도 물러서지 않는 담대함까지.

리그의 눈에는 썩 괜찮은 인재로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이그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저 나이 때 용을 잡았어.”

“···그리 비교하는 건 반칙 같습니다만.”


반칙? 전혀 아니다.

필립에게 거는 기대는 이딴 싸움판이 아닌 더 높은 곳에 있었으니.


“녀석과 함께한 사냥이 벌써 두 번이다. 그 안에서 배운 게 없다면···.”


진즉부터 녀석을 용 사냥꾼으로 키울 생각이었고, 그러기 위해선 스스로가 알을 깨고 나와야 했다.


“그냥 뒷골목에 남아 저리 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군.”


지금 보니 또 잘못된 생각 같기도 하지만.


그때였다.


“에잇!”


돌연 필립이 건달들을 밀쳐내고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이대론 내가 먼저 지치겠어.”


그러더니 무식하기 짝이 없던 전과는 달리 자세를 낮추고 새로운 스탠스를 취하였다.


“오호라. 뭔가 배운 게 있는 모양입니다.”


리그의 눈가가 호선을 그렸다.


“···저 자식 내 말 듣고 있던 거 아냐?”

찝찝한 기분은 뒤로하고, 필립의 다음 행동을 지켜보았다.


“그거 알아? 와이번의 움직임은 직선적이라는 거.”


뜬금없이 내뱉은 필립의 말에 건달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딱 너희들처럼!”


필립이 바닥을 박찼다.

시작은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곧 전혀 다른 움직임을 보여왔으니.


“왼쪽!”


퍽!


건달 패와 주먹을 맞닿기 직전. 신속하게 방향을 튼 필립이 선두에 선 건달을 지나쳐 왼쪽으로 뒤따르던 놈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오른쪽!”


그리곤 다시 오른쪽으로 몸을 틀어, 몰려 있는 건달 패들의 중심에 육중한 몸체를 던져버렸다.


“우왁!”


우당탕!


건달 패가 균형을 잃고 우수수 넘어졌다.


“너지? 아까 물 주먹이라고 했던 놈이!”


그 틈을 놓치지 않은 필립이 건달 하나의 얼굴에 다시 주먹을 꽂아 넣었다.


“끄악!”


놈의 코가 주저앉았다.


“이, 일어나!”


건달들이 우왕좌왕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꼼짝없이 포위당한 신세가 되어버렸다.


“저런.”


리그가 탄식을 내뱉었다.


“앞뒤 생각을 안 하니 저 꼴이 나지.”


이그나는 그럴 줄 알았다며 혀를 쯧쯧 차 내었다.

한데 또 반전이 있었다.


“비켜, 인마!”


필립이 자신을 둘러싼 포위망 중 한 곳으로 몸을 날린 것이다.


“어, 어어···?”

“잡아!”


훤히 드러난 필립의 등을 노리고, 온 건달들이 손발을 휘둘렀다.


퍽! 퍼벅!


주먹이 쏟아지고, 옷 섬이 뜯겨 나가는 와중에도 필립은 멈추지 않고 앞으로만 돌진했다.


탁!


그렇게 닿은 성벽.

녀석은 기어이 모든 건달을 뿌리치고, 포위망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왼쪽!”


퍽!


“오른쪽!”


퍽!


건달들을 이리저리 흔들어 놓았음이라.


“훌륭하지요?”

“······.”


리그의 질문에 이그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할 것.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고,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냥을 하고, 어떻게 살아남을지.


그 기본적인 소양을 실천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였다.

문제는 그 과정이 무식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고.


“애매한 자식.”


달리 할 말이 없었다.

포위망을 빠져나온 건 잘한 일이지만, 그 과정에 몸이 넝마가 되질 않았던가.


“음?”


그러던 중, 바닥을 나뒹굴던 건달 몇이 몸을 일으켰다.

필립에게로 다시 덤벼들 줄 알았건만, 어째 그들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해있었다.


“저놈들 설마···.”


불행하게도, 안 좋은 예감은 대부분 들어맞게 되어있었다.

이미 머릿속에서 인과가 말끔히 정리된 후에야 뒤따르는 것이 예감이란 것이니 말이다.


“인질부터 잡아!”


노인과 여인.

이런 치졸하기 짝이 없는 녀석들에겐 좋은 먹잇감이었다.

그들의 선택은 안나였다.

한없이 가녀려 보이는 그녀에게로 발을 움직인 것이다.


“골라도 하필···.”


실로 용의 아가리 속에 스스로 걸어 들어간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꺄, 꺄악!”


부웅-, 콰직-!


깜짝 놀라 휘두른 안나의 팔이 건달의 가슴팍에 닿았다.

아직 제 힘을 다 제어하지 못하는 그녀였기에, 건달의 몸에선 뭐가 부서져도 제대로 부서진 소리가 퍼져 나왔다.


쉐엑-, 쾅!


그뿐이랴.

허공을 가른 건달의 몸이 필립을 지나 성벽 아래에 박혀 들었다.


“아, 안나?”

“······.”


싸움을 지속하고 있던 필립과 나머지 건달들도 깜짝 놀라 몸을 굳혔다.


“아, 아니. 이게 그러니까···.”


누군가를 상처입힌다는 것. 안나에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울먹이는 얼굴로 사과를 내뱉었지만, 그 대상은 이미 기절한 채 거품을 내뱉고 있었다.

어쩌면 죽었을지도.


진짜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삐-?


허둥지둥하는 안나의 품 아래로, 그리폰이 풀썩 내려앉은 것이다.


“저거 설마···.”


사람들의 눈이 더없이 커졌다.

크기는 작았으나, 그 생김새가 고향을 떠나오게 만든 원흉과 같았으니.


“괴, 괴물이다!”


찢어질 듯한 비명과 함께, 주변이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


괴물 출현 소식이 그새 성벽 너머까지 전해진 모양이다.


“어디냐! 괴물이 나타났다는 곳이!”


이렇듯 병사들까지 출동한 걸 보면 말이다.


“저쪽입니다!”


난민들은 혹여 눈에 들어 입성할 수 있을까, 적극적으로 손가락질을 해댔다.

덕분에 병사들이 당도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창칼로 무장한 일단의 무리들.

이그나 일행 주변은 어느새 병사들로 가득 매어졌다.


“네놈들이냐, 괴물을 끌고 왔다는 것이!”


날카로운 병장기들이 일행을 향해 겨누어졌다.

이그나의 손 또한 반 조각난 검의 손잡이 위로 얹어졌다.


“잠깐. 멈추시게.”


영감이 다급히 손을 휘저었다.


“싸우면 안 되네. 이들은 그저 일부에 지나지 않으니, 아무리 자네라 한들 성 전체와 전투를 벌일 수는 없을 걸세.”


해서 투항하고, 사정을 밝히자. 그리 말하는 영감이었다.

하나···.


“과연 저들이 이해해주고 넘어갈까?”


신세계는 용들에 의해 위기를 맞이했다.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나온 이들이 이렇게나 많았고, 병사들도 앞으로 같은 처지가 되지 말란 법이 없었다.

그러니 티끌만큼의 위협도 좌시하지 않으리라.


“어떻게 생각해, 안나?”

“그냥 다른 곳으로 가면 안 될까요? 여기 머무르지만 않으면 저들도 굳이 저희를 경계할 이유가 없을 거예요.”


그리폰을 품에 안은 안나가 단호히 말했고, 이그나는 그 말 그대로 병사들에게 전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지껄이지 마라! 괴물을 이끌고 다니는 것이 수상하기 이를 데 없는데, 어찌 너희들을 놓아줄 수 있단 말이냐?”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그렇다는군.”

“···이 아이는 못 내줘요.”


아다시피 안나의 고집은 이그나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하니, 그녀가 굴복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리그.”


예언자라면 이 상황을 미리 보았을 수도 있다. 해서 조언을 구했다.


“그저 뜻대로 하시면 됩니다.”


리그가 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언자들의 조언은 늘 이런 식이었다. 속 편히 본 것을 일러주면 될 것을, 그게 되려 미래를 망칠 수 있다나.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도움이 될 때도 있었다. 그의 말마따나 하고자 했던 일을 행하면 될 일이니.


“그래. 어차피 무슨 대답이 나오든, 이러려고 했어.”


스르릉. 검을 뽑아 들었다.


“감히!”


병사들의 기세가 험악해졌다.

고작해야 난민의 행색. 지위로나 상황으로나 이렇듯 반항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던 것이다.


“제압해라! 반항하는 자는 죽여도 좋다.”


지휘관이 강한 어조로 지시를 내렸다.

안 그래도 사람이 몰려 성벽 밖이 혼잡하던 참이었으니, 제대로 본을 보여 질서를 잡을 생각이었다.


척! 척!


병사들이 포위망을 좁혀왔다.


꿀꺽.


영감이 마른 침을 삼켰다.


그런 와중에도 이그나는 산책을 나온 양 평온하기만 했다.


“영감, 긴장 풀어.”


그의 눈엔 난민이나, 건달이나, 병사들이나 매한가지로 보였을 따름이었다.


“이깟 놈들뿐이라면, 홀로 성 전체를 상대하는 것도 일은 아닐 테니.”


이그나의 왼손이 허공을 움켜쥐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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