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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별 님의 서재입니다.

드래곤 하트를 삼킨 야만 사냥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윤별
작품등록일 :
2021.12.10 05:00
최근연재일 :
2022.01.05 23:39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3,895
추천수 :
103
글자수 :
80,736

작성
21.12.20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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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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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3쪽

010. 안나

DUMMY

벌건 대낮이었건만, 모두가 달콤한 잠에 빠져있었다.

며칠간 쉬지도 않고 행군했으니, 고단할 법도 했다.


낮잠은 해가 지도록 계속되었다.

카펫 마냥 바닥에 널브러진 필립도, 약을 제조하던 테이블에 몸을 엎드린 영감도, 의자에 고개를 푹 숙이고 앉은 이그나도. 누구 하나 눈 뜰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자신의 기척이 그들의 단잠을 방해하게 될까 봐.


대신 제 몸을 살펴봤다.

특별히 외형이 변한 것도 아닌데, 완전 다른 몸이 되어있는 듯했다.

영겁 동안 이어질 것 같던 고통은 이미 눈 씻듯 사라졌고, 오히려 이런 적이 있던가 싶을 정도로 힘이 넘쳤다.


“좀 어때?”


그때,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 깨어난 것인지 이그나가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신기해요. 몸이 이렇게 좋을 수도 있는 거구나.”


이그나가 피식하고 웃음을 뱉어냈다.

익히 잘 알고 있던 기분인지라, 그녀의 말에 퍽 공감이 갔다.


“적응할 시간이 필요할 거야.”


갑작스레 생겨난 힘이다.

아직 스스로의 힘을 가늠하지 못했으니 조절 또한 어려울 터. 처음엔 손에 닿는 것마다 모조리 망가진다거나, 무심코 내딛은 걸음에 몇 미터를 뛰어오르는 일들이 발생할지도 몰랐다.


“확실히 눈은 밝아진 것 같아요.”


안나가 눈을 크게 떠 보였다.

어두운 밤중임에도 불구하고, 불에 밝힌 듯 주변이 선명하게 보였음이다.


“그리폰의 기운을 상당 부분 태워버렸으니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지, 온전히 소화해냈으면 숲속의 짐승들마저 바로 보였을 거다.”

“지금도 만족해요. 앞으로 장작을 가지러 나갈 때, 넘어질 일도 없겠네요.”


수수하게 미소짓는 안나였다.


“더 욕심나지 않아?”


이그나가 물었다.


“뭐가요?”

“힘.”


안나의 고개가 갸웃 기울어졌다.

자신 같은 평범한 여인이 무슨 힘을 욕심낸단 말인가.


“비록 완벽하진 않더라도 용의 심장을 소화해낸 몸이야. 앞으로 더 강해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거지.”


많은 이들이 첫 변화를 버티지 못하고 죽어 나간다. 그건 약의 도움을 받고서라도 마찬가지였다.

산산이 부서지는 고통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의지. 그 정도의 정신력이 아니었다면 이겨내지 못했으리라.

안나는 그런 과정을 버텨냈다.

고난에는 항상 보상이 따르는 법이었고. 안나에겐 새로운 가능성이 만들어졌다.

온전히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작은 가능성 말이다.


“그 말은···.”

“더이상 피난길에 오르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다.”


물론 바로 되진 않을 일이다.

밀려드는 용들에게서 제 영역을 지켜낼 힘을 갖추는 것.

그때까지의 여정은 무척이나 고되고, 어려울 테니.


“······.”


안나가 입을 뻐끔거렸다.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였다.

그저 시골에 나고 자란 여인일 뿐이고, 전쟁통에 고향을 떠나온 피난민일 뿐이다.

그마저도 도적들에게 붙잡혀 노예 생활을 해올 정도로 수동적인 삶을 살아온 그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이그나의 제안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무거운 것이었다.


“선택은 네 몫이야.”


이그나의 말에 안나가 흠칫 몸을 떨었다.

이제껏 무언가 스스로 선택해본 일 또한 없었다는 것을 방금 깨달은 까닭이었다.


**


“···안나!”


누군가 속삭이듯 외쳤다.

장작을 챙기던 안나가 뒤를 돌아보았다.

함께 피난길에 올랐던 고향 사람들이 그녀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아! 일어나셨어요?”

“쉿!”


무슨 일이라도 난 것일까. 고향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눈치를 살폈다.


“왜,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당황하는 안나를 이끌고, 사람들은 구석진 창고 뒤편으로 이동했다.


“떠나자.”

“지금요?”

“그래. 최대한 빨리 떠나는 게 좋겠어.”


원래부터 길이 뚫리면 떠날 생각이었으니, 크게 이상할 건 없었다.

하지만 굳이 이렇게 꼭두새벽부터 서두르는 것이 이해되지 않을 뿐이다.


“그래요, 그럼.”


하지만 모두가 그러겠다고 하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안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숙소로 걸음을 옮기려 하였다.


“자, 잠깐!”


그런 그녀의 어깨를 사람들이 급히 잡아챘다.


“깜짝이야! 왜들 그래요?”

“어딜 가는 거야, 바로 떠나자니까?”

“일행들을 깨우려고요. 여태 잠들어 있거든요.”

“그것들을 왜 깨워!”


버럭, 화를 내는 사람들의 반응에 안나의 눈이 달처럼 둥그래졌다.


“위험한 놈들이야. 너도 어제 험한 꼴을 당했잖아!”

“에···, 네?”

“겁에 질린 애한테 괴물을 찾아내라 강요하다니!”

“그건 아저씨가 떠밀어서···.”

“쓰읍! 그렇게 데리고 갔으면 보호라도 해줬어야지. 어떻게 하나 있는 여인을 미끼로 쓸 생각까지 하냐 이 말이야.”


뭔가 큰 오해가 있는 듯했다.

산행을 갔던 일행 중 유일하게 안나만 피를 철철 흘리며 돌아왔으니, 그리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죄송해요, 제가 제대로 말씀을 드렸어야 하는데. 그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자신의 실수를 인지한 안나가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뿐이냐? 치료랍시고 너한테 무슨 짓을 한 건지. 내 세상 그렇게 무서운 장면은 처음 봤지 뭐냐!”

“아니, 그건···.”

“안나, 이 불쌍한 것. 괜찮다, 괜찮아. 이제 괴물도 없고, 제대로 된 영지도 근처에 있으니, 서둘러 달아나면 필시 벗어날 수 있을 거다.”


그렇게 사람들은 안나를 이끌고 산길로 향하려 했다.


“아잇,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참다못한 안나가 자신을 감싼 팔들을 떨쳐내었다.

하지만 그게 더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으어억!”


그녀의 손짓 한 번에 사내, 여인 할 것 없이 모두가 우수수 쓸려나갔다.


“어맛!”


안나가 깜짝 놀라 사람들을 부축하려 했으나, 오히려 그 행동에 한 번 더 놀라 뒤로 나자빠지는 일이 발생했다.


“으허헉!”


사람들이 엉덩이를 끌며 저만치로 떨어져 나갔다.

그녀의 손길에 겁을 먹은 것이었다.


“여, 역시나! 내, 내가 분명 말하지 않았소. 이미 흑마법에 넘어간 거라니까!”


누군가 역정을 냈다.

황당무계한 말에 안나가 즉각 도리질을 쳤다.


“흐, 흑마법이라뇨? 세상에 그딴 게 어디 있단 말이에요!”

“저 보시오. 그 얌전하던 안나가 저리 포악해지질 않았소!”

“뭐, 뭐라고요!?”

“으힉!”


황당함에 저도 모르게 들어간 힘.

품에 쥐고 있던 장작이 지푸라기처럼 바스라졌다.

이쯤 되니 긴가민가하던 이들도 표정을 굳히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이건···.”

“아, 알겠다. 안나야. 그냥, 그냥 우리끼리 떠날게. 옛정을 생각해 그것만이라도 허락해다오.”

“허락이라뇨, 진짜 그런 게 아닌데···.”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던 고향 사람들이 이리 겁먹은 표정으로 눈치를 살피고 있다니.

자신을 버리고 가지 말라 애원하고 싶었으나, 차마 내뱉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해서, 그리 보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가는 고향 사람들을 하염없이 배웅하기만 했다.


“다들 먼저 떠난겐가.”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안나가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


“늙으면 아침잠도 줄어서, 거참···.”


멋쩍은 듯, 영감이 궁색한 변명을 내뱉었다.

그리곤 다가와 그저 등을 토닥토닥 두들겨주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


오후 무렵, 일행들은 다시 산을 올랐다.

급하게 내려오느라 미처 수습하지 못한 전리품들을 챙기기 위함이었다.


“이게 그 그리폰이라는 놈이구만.”


영감은 쓰러진 용의 사체를 보며 감탄해 마지않았다.

각기 생김새는 달랐으나, 뭐든 볼 때마다 경이로운 생물들이었다.


“이놈도 가죽을 벗겨?”


필립이 물었다.


“아니.”


고개를 가로저은 이그나가 놈의 날개깃을 툭 하고 차며 답했다.


“뽑아.”


그리폰의 날개깃은 바람을 타는 데에 특화되어 있다.

적당한 바람에도 수백 보 거리를 날아갈 수 있었으니, 화살을 만드는데 이만한 재료가 없었다.


“영감은 나 좀 따라오고.”


안나와 필립이 날개깃을 뽑는 동안, 이그나는 영감과 재료로 쓸만한 나무들을 살폈다.

활을 만들 계획이었다.


“무기는 만들어 본 적이 없네만.”

“대충 흉내만 내. 그저 손에 익히려는 용도야.”


적당한 크기의 나무를 쪼개고, 조각칼로 형태를 잡았다.

시위는 그리폰의 힘줄로 엮어내면 되리라.


“정말 이 정도로 되겠나?”


고작 다섯 뼘 정도밖에 되지 않는 활이 만들어졌다. 크기가 작은 만큼 부실해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딱 좋아. 어차피 나아가는 건 깃이 할 테니.”


그리폰의 날개깃을 주워다 살까지 만들어 주니, 나름 그럴싸한 무기가 완성되었다.


탁!


시험 삼아 쏘아본 활이 근처 나무에 박혀 들었다.

특이하게도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오질 않았다.


“말했잖아, 이놈은 바람을 가르는 게 아니라 타고 간다고.”


무슨 차이인지 당최 알 수 없었지만, 그러려니 고개를 끄덕이는 영감이었다.


“그리고, 장신구 같은 것도 만들 줄 알아?”

“그렇게 섬세한 것까진 할 줄 모르네.”

“그럼 그건 장인에게 따로 맡겨야겠군.”


안나와 필립의 작업도 끝이 났다.

이그나는 모두를 이끌고 좀 더 깊은 숲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긴···.”


필립이 미간을 찌푸렸다.

안나가 쓰러졌던 바로 그곳이었다.

이목을 끌고자 별 지랄을 다 했는데, 어째서 그녀를 공격한 것일까?

여전히 의문이었다.


“네 잘못은 아니야. 그저 방향이 좋지 않았던 거지.”

“방향?”

“보면 알아.”


조금 더 안쪽으로 이동했다.

울창한 풀숲을 지나, 절벽 아래로 맞닿는 작은 공터에 도착했다.


“이거 설마 둥지야?”


바로 맞췄다.

공교롭게도 그들이 향했던 방향엔 둥지가 숨겨져 있었다. 때문에 죽을 걸 알면서도 이그나를 지나쳐 나아가려 했던 것이었고.


“산짐승이 벌써 다녀간 모양이군.”


알은 깨져있었다.

그리폰이 죽고, 그 기운 또한 사라졌으니, 그동안 밀려났던 짐승들이 다시 제 자리를 찾아온 모양이었다.

어차피 필요한 건 껍데기였으니, 아쉬울 건 없었다. 차라리 다행인지도 몰랐고.


삐-. 삐-.


하지만, 그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작은 울음소리가 귀에 박혀왔다.

그들이 지나온 숲속에서 손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새끼 그리폰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어머나?”


강아지같이 귀여운 모습에 안나가 탄성을 내질렀다.

놈도 그 호의를 느낀 것인지 안나의 다리에 몸을 비비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녀가 소화해낸 기운이 어미의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챈 것일지도 몰랐다.


“먹힌 게 아니라, 부화한 것이었나.”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어느 한쪽으로도 말하기가 애매했다.


스릉-.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기에.


“자, 잠깐만요! 지금 뭘 하시는 거예요?”

“잊었나 본데. 저놈 어미한테 죽을 뻔했어, 너.”

“그게 얘 잘못은 아니잖아요.”


어쩐 일인지, 이그나의 앞을 막아선 그녀의 얼굴이 전에 없이 단호했다.

하긴, 처음 만났던 때에도 이그나를 위해 산적 두목에게 욕지거리를 날렸더랬지.

아무래도 작고, 어린 것들에게 쉬이 연민을 느끼는 듯했다.

평소라면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지금은 경우가 달랐다.

이놈은 사람도 아니고, 마소 같이 온순한 동물도 아니었으니.


“세상에 길들일 수 있는 용은 없어.”

“하지만 이렇게 잘 따르는걸요? 당신 말마따나 절 어미라 여기는지도 모르죠.”


피식-.

이그나의 얼굴에 비웃음이 맺혔다.


“이런 경우가 전혀 없었을 것 같아?”


새끼 용을 길들이려 한 시도는 과거에도 수차례나 있었다.

성공한 자가 있을까? 천만에.

자라면서 본능을 깨우친 용들에 의해 모조리 씹어 삼켜졌다.

심지어 그들 중에는 용을 정말로 제 자식이라 여긴 이도 있었다. 생살이 씹히고 나서야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걸 깨달았을 테고.


“그래도 이렇게 어린아이를 죽일 순 없어요.”


안나가 새끼 그리폰을 감싸 안았다.

놈은 이그나의 살기에 짓눌려 오들오들 몸을 떨고 있었다.


“놈이 자라나면 수십, 수백 명의 인간을 도륙 낼 수도 있다. 아니, 분명히 그리될 거야. 지금 싹을 잘라야 해.”

“안돼요!”


안나가 이그나의 검을 피해 몸을 돌려세웠다.


“제, 제가 잘 교육해 볼게요.”


어쩌면 홀로 된 저 자신을 새끼 그리폰에게 투영하는 걸지도 몰랐다.


“글쎄, 교육이고 나발이고···.”


먹은 귀에 짜증이 치밀어 오른 이그나였다.

그런 모습에 안나도 입술을 꽉 깨물었다.

마냥 고집을 부려봐야, 이그나에겐 씨도 안 먹힐 듯했다.


“마, 만약!”


그래서 결심을 한 모양이다.


“만약 본능이 깨어나서, 사람들을 해칠 기미가 보인다면···.”


알고 쓰는 건지, 그녀야말로 본능적으로 그리된 건지.


“그땐 제가 처리할게요.”


어느새 안나의 주변으로 상승풍이 치솟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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