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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별 님의 서재입니다.

드래곤 하트를 삼킨 야만 사냥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윤별
작품등록일 :
2021.12.10 05:00
최근연재일 :
2022.01.05 23:39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3,891
추천수 :
103
글자수 :
80,736

작성
21.12.23 21:05
조회
99
추천
3
글자
11쪽

012. 예언자(Seer)

DUMMY

대자연에 나고 자란다 해서 모두가 사냥꾼이 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어딜 가나 능력의 차이는 있게 마련이고, 용이란 생물은 어중간한 능력으론 상대할 수 없는 것들이었으니.


해서 차마 심장을 구해 삼키진 못하고, 버려진 피륙 따위를 목에 넘겨 힘을 얻은 자들이 있다.

눈앞에 스캐빈져(Scavenger)가 바로 그들이었다.


“대자연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구나, 꼬마야.”


놈들이 입꼬리를 틀어 올렸다.

비록 자연은 얻어내지 못했지만, 그들에겐 용을 닮은 두 팔이 있었다.

이곳 신세계의 사람들을 상대하기엔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하! 자신만만하기에 얼마나 대단한 놈들인가 했더니.”


이그나가 코웃음을 쳤다.


“반푼이 새끼들이었잖아.”


주제도 모르고 입을 놀리는 저들의 모습이 몹시 가당찮았기 때문이라.


스캐빈져와 사냥꾼의 차이는 아득히 먼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다.

용이 가진 진정한 힘은 육체가 아닌 자연에 있었으니, 스캐빈져가 발휘하는 힘은 그저 겉모습을 흉내 내는 것에 그칠 따름이었다.


“건방진 놈이로군.”


이그나의 비웃음에 놈들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 차이는 스스로에게도 자격지심으로 남아있던 터.

아픈 구석을 콕 찌른 이그나의 말이 결국 그들을 화나게 만든 것이다.


“흉내뿐이라 한들, 네깟 놈이 감당이나 할 수 있을 성싶으냐?”

“덤벼봐. 기꺼이 감당해줄 터이니.”


이그나의 손이 까닥, 접혀졌다.

기다렸다는 듯 스캐빈져들의 신형이 앞으로 쏘아졌다.


콰드득!


아래로 늘어뜨린 두 쌍의 팔이 바닥에 큰 궤적을 남겼다.

그 거친 발톱은 곧 이그나의 몸을 찢어발길 듯 솟구쳤다.


촤아악!


공격이 맞물리는 한 점.

그곳으로 이그나가 검을 찔러 넣었다.


챙!


도저히 검과 피부가 맞닿았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소음이 울려 퍼졌다.

비늘이 검을 튕겨낸 것이다.


“역시나 운이 좋은 녀석이군!”


스캐빈져들은 이그나의 검격이 그저 우연히 들어간 요행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피골이 상접 한 여린 몸으로 삐그덕대고 있으니, 그리 볼 법도 했다.

하지만 놓치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놈들이 자랑스러워해 마지않는 용의 근력에도, 이그나는 한발 물러섬이 없었다는 것을.


챙! 챙챙! 콰드득!


공방이 거듭되었다.

주변엔 발톱 자국이 점차 늘어, 땅이 거의 뒤집힌 수준이 되었다.

그쯤 되자 스캐빈져들의 표정이 당황으로 일그러져갔다.

그 어떤 우연도 이리 연속적으로 일어날 순 없는 법.


“너···, 정체가 뭐냐.”


스캐빈져의 질문에 이그나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아직도 모르겠어?”


그리곤 한 손을 허공에 뻗어 살랑이는 바람들을 그러모았다.


“서, 설마!”

“말도 안 돼!”


놈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그나의 손에 모인 것은 자연.

대자연에서 나고 자란 이들도 감히 쉽게 쓸 수 없는 힘이었다.

이런 꼬마가. 그것도 신세계의 사람이 어찌 그 힘을 부리고 있는 것인지···.

두 눈으로 직접 보았음에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그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눈치도 없고, 당면한 문제 또한 부정하기 바쁘니.”


휘이이-.


바람은 점점 크기를 불려 이그나 주위를 가득 메울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네놈들이 스캐빈져에 머무르는 거다.”


거대한 바람의 흐름에 스캐빈져들이 몸을 굳혔다.

이미 여기서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다. 승부의 결과가.


“그딴 정신머리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사냥꾼이 되지 못해.”


멈춰 있는 자들은 절대로 사냥꾼이 되지 못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을 감지하고, 나아갈 길을 찾아내는 것.

그 능력을 갖추어야 비로소 사냥꾼이 될 수 있었다.

스캐빈져들에겐 이런 기본적인 소양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저 부는 대로, 치는 대로. 그렇게 휩쓸리며 살아가는 놈들.

스스로 구하지 못하고, 버려진 것들에 눈길을 돌린 어리석은 녀석들.


“주체적으로 생각해라.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뭔지, 해야 하는 게 뭔지. 어떻게 사냥을 하고, 어떻게 살아남을 건지.”


설마라느니, 말도 안 된다느니. 그딴 소리를 지껄일 시간에 놈들은 이미 생각을 마치고 행동으로 옮겼어야 했다.

실제 사냥이었다면, 이렇게 대화를 주고받는 틈도 없었을 테니.

한 번 놓친 틈은 또 다른 위협을 동반하게 마련이고, 그 위협들이 모여 결국 목숨을 잃게 되는 법 아니겠는가.


쏴아아아-!


바람의 인내심이 절정에 다다랐다.

녀석들은 당장이라도 몰아칠 수 있게, 길을 열어달라 아우성치고 있었다.


“뭐하냐?”


이그나는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한 스캐빈져들에게 힌트를 던져 주었다.


“도망 안 치고?”


만약 살아남으면, 그들에게도 사냥꾼이 될 수 있는 일말의 희망이 피어나리라.

물론 그럴 일 없겠지만.


스륵.


바람을 붙잡고 있던 주먹이 활짝 펴졌다.


콰과과-!


산채에 돌풍이 몰아쳤다.


**


상황이 정리되자, 일행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한곳으로 몰렸다.


“······.”


코 아래까지 후드를 푹 눌러쓴 세 번째 야만인.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가운데에서도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서 있던 사내였다.


“이름이 진짜 이그나입니까?”


침묵을 깨고 그가 입을 열었다.


“누가 지어준 이름입니까?”

“스스로 지었다.”


이그나의 담담한 대답에 그가 이어서 질문했다.


“하면, 죽은 이들의 말처럼 대자연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따라 지은 이름입니까?”


이그나가 이를 갈았다.

자신의 지난 삶이 거짓으로 마무리되었다니, 생각할수록 열 받는 일이었다.

이그나의 분노를 바라보던 사내가 나지막이 물었다.


“화를 내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거짓된 이야기가 세상에 퍼져있으니 화가 날 수밖에.”

“거짓임을 어찌 아십니까?”


이걸 어찌 설명해야 할까.

스스로의 이야기였으니 모를 수가 없다고 말해야 할까? 그럼 바뀌어버린 지금의 모습은 어찌 설명해야 하는 것일까. 설명한다고 한들 과연 믿어주기나 할까?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모두 헛된 것들이었다.


“혹, 그대가 이그나입니까?”

“그렇다고 말했잖아.”

“아니, 제 말은 그대가 이야기 속 이그나냐는 소리입니다.”

“···?”


상대가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가려운 부분을 정확히 긁어왔기에.


“그렇다면 정말로 드래곤 하트를 씹어 삼킨 겁니까?”

“···!”


심지어 감춰진 진실까지 꿰뚫어 보고 있었다.


“너 뭐야.”


이그나의 물음에 그가 후드를 젖혔다. 잿빛 머리의 훤칠한 미남자였다.


“마지막입니다. 드래곤 하트는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아주 작은 구슬이었다. 하지만 감히 담지 못할 자연이었지.”


부르르.


사내가 돌연 몸을 떨었다.

그의 입에서 알 수 없는 언어가 흘러나왔다.

그제서야 사내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룬(Rune). 꿈을 통해 미래를 보는 자들이 쓰는 언어가 바로 그것이었으니.


“드디어 뵙습니다, 위대한 용 사냥꾼이시여.”


이그나의 앞에 무릎 꿇은 이는 바로 예언자(Seer)였다.


**


“벌써 수년도 더 지난 꿈이지만, 생생히 기억합니다.”


예언자 리그가 눈을 감았다.

세상을 뒤집어 놓았던 위대한 사냥을, 당사자인 이그나보다도 먼저 담아낸 바로 그 눈이었다.


한번이 아니었다.

그 뒤로도 그는 세상을 호령하는 이그나의 모습을 미리 목격했음이다.


“당신의 미래가 제 꿈에 있으니, 그날 이후로 줄곧 당신을 찾아다녔습니다.”


예언자의 운명은 자신이 뱉은 예언을 따라 흘러가게 되어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리그의 운명은 꽤나 명확한 편이었다.

모든 예언이 단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었으니.


“그렇게 헤매던 중, 위대한 사냥이 시작되었죠.”


천지가 진동하는 백일동안, 그는 단 하루도 편히 잠들지 못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기에.

정말로 자신이 본 미래가 실현되고 있었기에.


“하지만 어딜 가도···.”

“찾을 수 없었겠지.”


말문이 막힌 리그의 모습에 이그나가 뒷말을 이어주었다.

리그는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저를 가짜 예언자라 손가락질했습니다.”


들려오는 소문은 죄 이그나의 오만함에 관한 이야기뿐이었고, 그의 예언은 잠에 취한 자의 헛소리로 치부되고야 말았다.

이그나가 없으니 예언의 진위도 확인할 수 없었다.

해서 종국엔 저 스스로마저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예언할 것이 없는 예언자는 존재할 이유가 없으니, 하루하루 그저 폐인처럼 살았습니다.”


절망이 그의 마음에 한가득 차올랐음이다.


그러던 어느 날.


“문을 걸어 잠그고, 세상과 단절해도, 큰 흐름에는 결국 휩쓸리기 마련이더군요.”


대격변이 시작되었다.

용 사냥꾼 시구르드가 흩어져있던 대자연의 부족들을 통합하고, 신세계로 모두를 인도한 것이다.


“그때 문득 깨달았습니다. 당신이 호령할 세상이, 사실은 대자연 땅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문을 열고 나와, 행렬에 가담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저 떠도는 이야기로 제 예언의 가부를 결정하긴 싫었습니다.”


그가 목격한 이그나의 위업은 다시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렇기에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만 했습니다.”


그런 자가 죽어 사라졌다니. 믿기 어려운 말이었다.


“무엇보다 분해 죽을 것 같았습니다.”


헛된 예언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삶이 아니었다.

자신의 가치가 고작 그 정도에 머물 것이었다면, 처음부터 나지도 않았으리라.


“해서 무작정 이리 왔습니다.”


물론 쉬운 길은 아니었다.

대자연에서 신세계까지 닿는 그 먼 길과, 북부를 지나 이곳까지 오기까지의 고난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험난했었다.


하지만. 죽을 만큼 힘들지언정 멈춰설 순 없었다.

멈춰 서는 순간, 그의 인생은 앞서간 스캐빈져들 보다도 더 초라해질 터이니.


“와보니 어때. 스스로의 예언에 확신이 드나?”


이그나가 물었다.


“사실 반반입니다. 그저 내 예언이 맞았다, 그리 믿고 싶을 뿐.”


신세계에 들어선 이후로, 한동안 꾸지 않았던 꿈을 다시 꾸게 되었다. 거기서 본대로 길을 걸었고, 결국 이그나에 다다랐다.

여기까진 좋았다.


“문제는 제가 꿈에서 본 당신의 모습이 지금과 같지 않다는 겁니다.”

“어찌 생겼던데?”

“장대했으나, 날렵했고. 단단했으나, 부드러웠습니다.”


리그의 답에 이그나는 씨익 웃어 보였다.

과연 예언자다웠다.


“좋아. 앞으로 나는 잘못된 내 이야기를 바로잡을 생각이다.”


이그나가 선언했다.


“그러니 네가 길을 제시해라.”


또한 소명(召命)했다.


“그리하면 자신마저 동조해버린 세상의 의심을 내가 모조리 거두어줄 테니.”


대가는 그의 명예와 운명을 바로잡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그 첫 번째 증명이다.”


두근!


이그나의 심장이 크게 박동하였다.

그와 함께 짙은 기운이 밖으로 폭사 되었으니.


“아, 아아···!”


리그가 경외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그건 바로 드래곤 피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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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011. 소식 21.12.21 129 4 12쪽
11 010. 안나 21.12.20 123 5 13쪽
10 009. 이이제이(以夷制夷) +1 21.12.18 166 8 12쪽
9 008. 모성(母性) 21.12.17 179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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