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진실은 언제나 하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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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하태!!!!!”
“하태형!!!!!!!!”
덜컥 열린 문 너머, 익숙한 얼굴들이 드러났다.
하나는 이미 눈물바람이고.
어째, 하나는 잔뜩 화가 났는데···?
“왔냐.”
“왔냐??? 왔냐아아????? 그래 왔다!!!”
고도진이 성큼 걸어들어오며 사자후를 질렀다.
키가 커서 몇 걸음만에 금방 들어온다.
“형···? 하태형!!! 죽으면 안돼!!!!!”
유재이가 훌쩍이며 외쳤다.
날 보자마자 커다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벌써 댐이 터졌네.’
누가 공식 울보 아니랄까봐.
“벌써 우냐?”
“형!!! 머리는 또 왜 그래!!!!!”
곱슬거리는 머리를 나부끼며 달려온 녀석이 침대 옆에 찰싹 붙었다.
“죽긴 누가 죽어. 기껏 살아돌아왔더니 다시 죽이냐.”
“아니 그게 아니고···.”
녀석이 쩔쩔 매며 내 눈치를 본다.
“뭐. 왜.”
“형 지금 얼굴이 이래.”
호옵.
유재이가 숨을 들이마셔 볼을 홀쭉하게 빨아들였다.
“반쪽, 아니, 반반쪽 됐어!!! 괜찮은 거 맞아?!”
“아.”
‘그 정돈 아니던데.’
계단에서 굴렀단 말을 들었을 때, 거울부터 찾긴 했다.
큰 상처가 안 보여서 안도했었고.
“검사 다 했어. 멀쩡하대. 수술도 잘 됐고.”
얼굴이 꽤 수척해지긴 했다.
조문혁 때문에 살이 빠지긴 했는데, 의식이 없는 동안 가속화된 모양이다.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다- 내는 형 그런 줄도 모르고 게임이나 쳐하고 있었는데!!!”
나보다 덩치도 큰 놈이 와락 달려들었다.
엉엉 우는 걸 밀어낼 수도 없고···.
빨리 그치라고 등을 두들겼더니 울음소리가 더 커졌다.
환장하겠네.
“야. 비켜봐. 계하태 너 진짜 제정신이야?”
고도진이 내 양볼을 쥐고 오열하는 유재이를 밀어냈다.
코가 빨개진 녀석이 침대 구석에 박혀 훌쩍거린다.
“아닐걸? 기억이 좀 없긴 한데.”
“···?”
“농담이야.”
거짓말은 아니고.
고도진의 표정이 괴상해졌다.
“···진짜지?”
“어. 기억은 일부 없는데, 제정신은 맞아.”
“······.”
“도진아. 주먹은 풀자.”
꽉 쥔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내가 부고, 보고 얼마나, 놀라고, 당황하고- 그 새X 만나러 가면서 문자 하나 달랑 보내?!”
“미안하다. 믿을 사람이 너뿐이라.”
고도진이 눈을 크게 떴다.
저거, 그런 말해도 안 봐준다는 표정이다.
“위험할 줄 알면서! 나랑 쟨 뒀다 뭐에 쓰냐?! 넌 애가 생각이 있어, 없어?!”
고도진은 대충 눈치챈 것 같다.
최소한 조문혁을 의심 정도는 해본 모양인데.
“나도 설마 그렇게 개X낀 줄은 몰라서.”
“대체 거긴 왜 갔어???”
“욕이나 해주려고 그런 건데···.”
고도진의 표정이 점점 험악해진다.
“안그래도 전화로 할 걸 후회 중이다.”
조금 펴졌다.
“그래서, 범인 봤어? 기억나?”
침대 난간을 꽉 움켜쥔 고도진이 눈을 부릅 떴다.
“-조문혁 그 새X 짓이지?”
“뭐어어어어???????”
펄쩍 뛰어오른 유재이를 끌어다 앉히며 답했다.
“아마도.”
“···기억은 안 나나보네. 심증은 있는 거야?”
어쩔까.
나는 눈을 내리깐 채, 이불 속에 넣어둔 폰을 매만졌다.
‘믿어도 될까.’
좀 전에 두 사람 얼굴 옆으로 숫자가 나타났다.
바라보면, 누굴 믿어야할 지 확실해질 거다.
‘···봐도 될까?’
생각을 읽어보려 불러놓고, 이제와 망설이고 있다니.
믿고 있는 사람의 생각은 읽기 무섭다.
양손 넘치게 배신당해봤으면서 아직도 무뎌지지 않은 걸까.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고도진의 숫자가 언어로 바꼈다.
[조문혁 XXXX. 이상하다 했어. 니가 그랬냐고 했을 때 분명 한 박자 느렸다고! 사장은 그딴 XXX XXX를 XX 쳐감싸고 XX이야! 그 XXXXX XX 두들겨 팼어야 하는데.]
‘···그새 조문혁 만났나?’
비속어로 도배된 내용을 보는 순간.
웃음이 픽 나왔다.
“웃어??? 웃어어어?!?! 넌 지금 웃음이 나오냐?!!!”
“어.”
날뛰는 고도진을 무시하고 유재이에게 시선을 뒀다.
[다시는 무음 안할 거다··· 그러다 또 큰일나면 어떡할라고··· 난 그것도 모르고 클리어했다고 자랑이나 하고 이 XXXX··· 니가 이래 띠리하니까 형들이 못 믿는다카지···]
흐.
입술 새로 자꾸 웃음이 샌다.
“형 머리 많이 다쳤어? ···왜 자꾸 웃어 무섭게! 웃긴 얘기 아닌데!”
“계하태. 의사 불러줘? 얘 상태 이상하네.”
고도진이 내 눈앞에 대고 손을 흔들어댄다.
“그런 거 아냐.”
손을 잡아내리는데 전혀 안 믿는 눈치다.
‘고맙다고 하면 당장 의사부터 호출하겠지.’
블랙밤 하면서 다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얻은 것도 있었다.
“표정 왜 저래??? 야 너 열 나?”
이마에 손을 얹는 고도진과,
“아냐. 지금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는 거야!!! 하태형이 웃을 땐 누구 조지러 갈 때뿌··· 악!!!”
“까분다?”
“형 머리 깬 게 나야? 왜 날 때려!”
정수리를 감싸쥔 재이를 보며 고도진이 낄낄 댄다.
“야 더 때려. 쟤 픽업해오다 내 고막 찢어지는 줄 알았다.”
“내가 뭘!!! 형은 안 그랬어?! 계~속 리더 없어지면 우리 어떡하냐 그래놓고!!!”
“얼씨구.”
그 고도진이 그랬다고?
아. 다시 웃음이 터질 것만 같다.
“유재이 너 나가서 보자.”
“응. 안 나가. 여기서 잘 거야.”
둘은 한참 투닥거렸다.
난 고도진이 사온 과일이나 까먹었다.
“방금 뭔가 생각났는데-”
“뭔데.”
분명 유재이 뒷목을 쥐고 흔들던 놈이 어느새 내 옆에 바싹 다가와있다.
유재이도 반대편으로 와 쳐다본다.
“오. 부담스러운데.”
이불 속 폰을 꺼내려는데, 고도진이 빨리 말하라며 재촉했다.
“장난하지 말고. 뭔데. 봤어? 뒤통수 다친 거 보면 뒤로 제대로 넘어간 건데, 그럼 미는 놈 얼굴 봤을 거 아냐.”
“···형들. 농담이 너무 살벌하네. 나도 조문혁 싫어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농담이라고 말하는 유재이의 턱이 바짝 조여들었다.
“아무리 또라이여도- 에이 설마. 그렇게까지.”
“진짜야.”
길게 말할 것도 없다.
나는 녹음해둔 매니저와의 대화를 들려줬다.
대화가 진행될수록 주먹을 꽉 쥐던 재이가 일 억 소리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미친 거 아냐? 형한테 어떻게 이래???”
“일단 이거나 마저 듣게 앞으로 좀 돌려봐.”
고도진은 아예 폰을 들고가 대화를 앞으로 돌렸다.
<그, 선처 부탁할게···. 정말 미안하다···.>
“맞네. 이 새X 확실하네. 야. 대단타. 이 새X 인성 직이네! 사람도 막 밀쳐뿌고.”
잔뜩 흥분한 유재이 입에서 사투리가 튀어나왔다.
“내는 조문혁이 라방에서 사고칠 때 개가 개짓거리했다 하고 넘겼거든? 그 인간 입버릇이잖아. 해달라는 거 다 해주면 배 불러서 기어오른다, 버릇없어진다 카고.”
고도진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근데 팬들 등쳐먹는 거 보고 내가 잘못 생각했다 했지. 저거는 인성이 폐기물이야. 글러먹은 거 인간 취급해주다 큰일나겠다.”
고도진이 끄덕이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그니까 형보고 뭐라카는 문디자슥 있으면 내가 가서 혼내주께. 나이 똥꾸멍으로 쳐먹은 놈 정신차리라고 한마디 한 거 갖고 계단에서 밀차뿌면 그기 똘갱이지. 어데 사람을 밀 생각을 하노?”
“동감.”
고도진이 재이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너 본 이래로 오늘 제일 말 잘한다.”
“아 형! 이와중에 놀리고 싶나?”
둘이서 2차전 하는 사이, 불쑥 딴 생각이 들었다.
‘다들 말릴 때 그만 뒀어야 했나.’
그럼 이럴 일도 없었을 테고···.
“···니들도 내가 너무했다고 생각하냐?”
머리가 깨지면서 멘탈도 같이 깨졌나.
이상하게 자꾸 확인받아야 안심이 된다.
원랜 안 이랬는데.
“뭘 너무해.”
“뭐가 너무한데? 형이 한 말 중에 틀린 말 있나? 솔직히 겁나 착하게 말해준 거 아니가? 조문혁 그 미친갱이 확 대갈빡을 빠개삐야 하는데.”
싸울 땐 언제고, 질문 끝나기 무섭게 대답이 튀어나온다.
“팬들이 너 욕하는 거 보면 기절한다. 그만 흥분하고 앉아봐.”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쒸익.
콧김 뿜어댈 기세로 재이가 열변을 토했다.
“앉으라고. 너 올려다보니까 목 아파. 내가 나 대신 화내달라고 너 불렀겠냐.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상의하려고 부른 거지.”
“어어, 알았어···.”
목 뒤가 뻣뻣해져, 자리에 기대누워 생각해둔 계획을 말하기 시작했다.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우선 조문혁이 자백하게 만드는 게 제일 좋은데. 역시 힘들겠지.”
“안될 걸.”
고도진은 내가 의식이 없던 엿새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털어놨다.
“이미 찾아가봤어. 물어보기도 전에 난 모르는 일이라던데.”
“만났다고?”
무슨 수로 그 어려운 걸 해냈냐.
“어. 싸우다 여기 멍들음. X만한 새X가 의자 밟고 올라가서 치더라.”
“신고했어?”
“아니? 난 열대쯤 때려서.”
“···.”
고소 안 당한 게 다행이다 진짜.
“못 깨서 다행이라길래.”
“잘했는데 좀더 패주지 그랬냐.”
“영원히 재우고 싶었는데 도망가서 놓쳤다. 미안.”
머리가 다시 지끈거린다.
‘자백은 죽어도 안하겠네.’
“언론에 제보하면 안 되나??? 안되면 인터넷에 글이라도 쓰자. 팬이나 기자인 척 하면 되잖아.”
“뭐라고 쓸건데. 조문혁이 나쁜 놈이니까 그랬을 수도 있다, 혹시 그런 거 아니냐 하게?”
증거도 없이 그랬다간 명예훼손으로 고소 당하고 내가 쓴 것만 밝혀질 걸.
덧붙인 말에 유재이가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아예 실명까고 나는 억울합니다! 하고 글을 쓸 순 있겠지만, 글쎄.
은퇴 생각하고 개싸움할 거 아니면 피해야 할 방법이다.
“인터뷰 해보는 건 어때?"
고도진이 불쑥 꺼낸 말에 머릿속에 불이 깜빡 켜졌다.
그럴싸한데?
- 작가의말
오늘도 감사합니다.
계속 작업중인데 언제 다음편이 올라올 지 모르겠습니다.
끝나는 대로 바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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