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진실은 언제나 하나 (1)
“왜 이렇게 늦었어?”
좀더 늦었으면 도망간 줄 알았겠다.
“어어, 그, 밥 먹고 왔어.”
“그래? 뭐 먹었는데?”
매니저가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더니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뭐, 대충?”
밥 대신 연기를 먹었나.
온몸에서 담배 냄새가 진동을 한다.
“내가 머리 다친 애한테 이런 말하기 뭣한데.”
‘그럼 하지 말던가.’
“너 진짜 많이 다쳤냐?”
왜 이렇게 멀쩡해? 하고 묻는데, 픽 웃음이 나온다.
“형이 발견했다며. 봤을 거 아냐?”
“ㅇ, 어? 그렇, 지! 내가 봤잖아. 피바다인 거!”
매니저의 목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알면서 왜 물어봐. 죽었다 깨어났다잖아.”
말과는 달리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러게.
죽었다 살아났는데···
왜 멀쩡해졌지?
‘설마, 무슨 초능력이라도 생겼나···?’
머리를 다치긴 한 모양이다.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드는 걸 보니.
“어??? 어, 어디서 들었어???”
“뭘?”
“너, 그, 죽었, 아니 잠깐 숨 안 쉰 거 그거.”
매니저가 눈에 띄게 당황하며 물었다.
얼굴이 다시 또 탈색되는 중이다.
그게 무슨 비밀이라고.
“비밀이었어? 다들 말하던데.”
어깨를 으쓱하며 되물었다.
“형은 왜 말 안 해줬어?”
입으로 말한 건 아닌데.
그것까지 말할 필욘 없고.
“야, 말을 왜 그렇게 하냐!? 아픈 사람 놀랄까봐 그런 거라고!!!”
“좀 전엔 멀쩡해보인다며.”
거기까진 생각이 안 미친듯.
매니저는 우물쭈물 대답을 미뤘다.
용의자가 별 생각이 없어서 다행이다.
조금만 더 파볼까.
“-야! 오늘따라 X나 이상하다? 갑자기 말을 놓질 않나.”
매니저가 갑자기 허벅지를 짝! 내리치며 외쳤다.
‘그걸 이제 알아채냐.’
“수술 전에는 안 이랬나봐? 몰라. 이게 편하네.”
“어? 가끔 하긴 했지. 했는데··· 에휴, 내가 아픈 애한테 뭔 소릴 하는 거냐.”
모른 척 대답하자 금방 의심을 거뒀다.
뒤통수를 벅벅 긁던 매니저가 내 눈을 빤히 쳐다봤다.
“그래서, 괜찮을 거래?”
머리 말이야 하며 제 머리를 툭툭 두드린다.
이제 좀 걱정되기라도 하나보다.
“경과 봐가면서 치료하자던데. 워낙 특이케이스니까.”
“하긴. 분명히 죽었다고 사망선고까지 받았지.”
깨어날 줄 몰랐는데 하고 중얼거린다.
“왜. 별로 안 반가워?”
“또! 말 이상하게 하네!!! 야 내가 널 왜 반가워하냐??? 맨날천날 사고치는 새낄?!”
언뜻 듣기엔 친하니까 할 법한 소리다.
하지만 내 귀엔 다르게 들렸다.
‘과하다.’
매니저 평소 성격대로면,
“아프더니 돌았냐?”
정도로 끝났을 거다.
“왜 발끈하고 그래. 깨어날 줄 몰랐다면서 아빠한테 연락도 안 했길래 해본 소린데.”
“야, 그건 내가 잘못, 했지. 그래 잘못했다!”
매니저가 과장되게 손을 모아 싹싹 빈다.
“어. 잘못했지. 일주일이나 시간 있었는데 전화 한 번을 안 헀더라.”
내 말에 손이 뚝 멈췄다.
“거 되게 뭐라하네. 아버님은 뭐라시냐? 너 말 안 했지? 어? 멀리 계신데 걱정하게 만들고 그럼 너 완전 불효자야. 알지?”
이젠 아예 태도를 바꿔 캐묻기 시작했다.
“조만간 오신대.”
“말했냐?!!!”
“그게 왜 궁금해? 형이랑 무슨 상관이라고. 형 얘긴 안 했으니까 걱정마.”
또 우물쭈물 내 눈치를 살핀다.
어쩐지 조금 안도하는 듯도 하다.
“···그래. 큼! 너 근데 아무 것도 기억 안 나서 어떡하냐. 당장 활동은-”
“머리 깨졌는데 활동은 무슨.”
목숨에 지장없는 거지 앞으로 어떤 후유증이 나타날 진 장담 못 한다더라고.
덧붙인 말에 매니저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의사는, 말을 멀쩡하게 하는 것부터 기적이라고 했다.
‘지금 제일 중요한 순간인데.’
날려 먹어야 하다니.
속이 쓰리다.
“지금 멀쩡해보이는데 왜 그런 소릴 한대? 에이··· 괜히 환자 겁주는 거 아냐?”
“글쎄. 지금 기억이 좀 뒤죽박죽이라. 이것도 후유증이라더라.”
아직까지 잘려나간 기억이 안 돌아왔다.
그것만 떠오르면 바로 신고하는 건데.
“그, 앞으로, 생활하는데 지장은, 없다 그러지? 어?”
매니저의 눈이 사정없이 떨렸다.
“아. 의사가 그 말도 하더라. 누가 민 건 아니냐고. 기억 안 나니까 잘 모르겠는데, 의사 눈엔 다르게 보이나봐.”
“야!!!!!”
“왜 소릴 지르고 그래. 나 환잔거 몰라?”
소리 질러놓고 아차 싶었는지 또 눈을 뒤룩뒤룩 굴린다.
“아니, 무슨 돌팔이가 한 말 가지고 그런 개소릴 해?!”
“여기 한국대 병원이야. 똑똑한 사람들만 모인 덴데. 돌팔이라고?”
죽어가는 사람 살리는 게 돌팔인가봐?
덧붙인 말에 매니저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여기 병원인데 목소리 낮춰.”
“아, 그, 되도 않은 소릴 하니까 그렇지! 너 회사 계단에서 넘어졌잖아. 회사 안에 너 해코지할 사람이 어딨냐? 너 우리 회사 아티스트야! 누가 감히 밀어???”
‘아티스트? 만년적자라고 난리칠 땐 언제고.’
반응이 너무 투명해서 무슨 생각 중인지 뻔히 보인다.
이상한 능력이 나타나지 않아도 충분했다.
“그러게. 의사 말론 경황없이 뒤로 넘어가서 머리부터 정통으로 부딪친 거 같다는데.”
물론 이것도 입으로 한 말은 아니다.
사정 모르는 매니저는 입을 꾹 다물었다.
손을 연신 꿈지럭거리는데 계속 신경쓰인다.
모르면 난 모른다 하고 넘어갈 일이잖아?
하다못해 걱정을 하던가.
“형, 나 발견했을 때 이상한 거 못 봤어?”
“어, 어??? 이, 이상한 거 뭐.”
“그냥 그런 거 있잖아. 인기척이 있었다던가, 발소리 같은 걸 들었다던가.”
뭐든 좋아, 라는 말에 얼굴이 점점 탈색된다.
“아무도 없었다니까??? 너 말고 아무도 없었다고!”
“그래? 이상하네. 조문혁이랑 옥상에서 만났는데. 조문혁 못 봤어?”
매니저가 크게 휘청이며 침대 난간을 붙잡았다.
“너, 너! 기억하고 있었어?!!!!!”
아. 월척이다.
손맛이 묵직한데, 왜 이렇게, 기분이.
‘더럽냐.’
“왜 모르겠어. 근데, 기억하면 안 되나봐? 많이 놀라네.”
“기, 억! 기억 안 난다며. 그건 기억하니까! 놀라서 그랬지!”
놀라 한 발짝 뒤로 물러났던 매니저가 이내 정신 차리고 변명을 늘어놨다.
“아아. 그거. 내 폰 박살 안 났더라.”
고개가 홱 돌아갔다.
매니저의 눈이 병실 안 곳곳을 빠르게 훑었다.
“이상하지. 머리는 박살났는데 가슴에 넣어둔 폰은 금만 갔어. 켜니까 딱, 주고 받은 문자가 있더라고.”
“···!!!”
“왜 그렇게 놀라? 눈 튀어나오겠다.”
“아, 아니. 너 기억 찾은 줄 알았는데 아니래서···.”
궁색한 변명을 주워삼키면서도 끝까지 사실은 털어놓지 않는다.
참 열심히도 보호해준다.
범인을 찾아서 기뻐야 하는데, 입 안만 쓰다.
“형은 알지. 나 이상한 인간 붙어서 고생했던 거.”
“그거야 잘 알지···.”
“그래서 폰도 녹음되는 걸로 바꿨잖아. 증거 남긴다고.”
“어, 그랬지······?”
갑자기 바뀐 주제에 매니저가 눈을 끔뻑였다.
“조문혁이랑 통화한 것도 자동녹음 됐더라?”
“어···? 통화를, 했어?”
나는 대답 대신 통화 내용을 재생했다.
<야, 미쳤냐? 사장이 다시는 안 그럴 거라고 해서 넘어가줬더니 니가 감히 날 까? ··· >
녹음 파일이 끝난 뒤.
매니저가 창백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그래서, 옥상에 간 거냐···?”
“응. 사장이 계속 싸고 도니까, 얼굴 보기도 쉽지 않잖아?”
만나서 욕이나 실컷 퍼부어 주려고 했지.
“책임감 없는 새끼 때문에 평생 바친 꿈이 박살나게 생겼는데 욕 정돈 할 수 있잖아.”
사실 어쩌려고 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말이 술술 흘러나왔다.
내가 원래 이럴 생각이었나?
잘 모르겠지만 내가 할만한 생각인 것도 같고.
“···넌 그럼 말싸움이나 할 생각이었던 거네?”
“걔랑 주먹질해서 뭐해. 내 손만 더러워지지. 싸우려고 하면 도망치려고 했는데?”
“······조문혁 이 새끼가!!!!!!!”
매니저가 침대 난간을 틀어쥐고 소리쳤다.
순간 귀가 멍해질 정도로 굉음이었다.
“왜. 조문혁이 뭐래?”
“니가 선빵쳐서 방어하다- ···!!!”
홉뜬 눈, 한껏 벌어진 턱, 핏대솟은 목.
광분해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순식간에 희게 질렸다.
“거짓말도 못하면서 조문혁 편은 왜 들어줘. 사장이 그러래?”
“사장님은 아냐!!!”
고개를 내저으며 손사래까지 친다.
조문혁이구나.
“조문혁이 얼마 줬어?”
“······! 주, 주, 주긴 누가 얼마를 줘!”
“받았어, 안 받았어.”
“아, 아니야! 안 받았어!!!”
받았네.
매니저 얼굴 옆에 뜬 숫자 1이 말했다.
[내가 미쳤지. 3억에 눈이 멀어서!!! 이 새낀 그대로 죽어버리지 왜 하필 살아나!!!!! X발!!!!!]
3억.
큰 돈이다.
‘혹했을 순 있지. 있긴 한데.’
은폐까지 도운 건 선 넘었지.
“얼마 받았냐고. 형 거짓말하면 온몸에서 티나. 그냥 사실대로 말하고 속이라도 편해지지 그래?”
매니저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바닥만 쳐다보다가 고개를 든다.
“···ㅅ, 신고 안 할 거지?”
돈 받아먹고 은폐해주는 건 쉽고.
감옥가는 건 무섭고?
나는 대답 없이 매니저를 빤히 쳐다봤다.
얼굴에 죄책감 한 점 없어서, 내 미련도 서서히 옅어진다.
이 바닥에 있으면서 사람 밑바닥 많이 봤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최악이 아니었나보다.
“대답부터 해.”
“···일 억.”
사람은, 안 변하는 구나.
“형, 잘 기억해. 죄는 형이 잘못해서 생긴 거야. 나 때문이 아니라. 어떻게 되건 내 원망하지마.”
양심은 없어도 염치는 있어야지.
“······미안하다···.”
띵!
매니저 얼굴 옆으로 숫자 2가 나타났다.
울상이 되어 나를 쳐다보는 매니저의 눈을 피해 2를 주시했다.
숫자가 곧 말풍선으로 바꼈다.
[하··· X발. 괜한 짓 했네. 조문혁 개X끼 사고라며!!! 죽이려고 작정한 거네 싸이코X끼]
[미X놈 나까지 X되게 만드네 X발!!! 돈 이미 썼는데. 다시 달라고 하진 않겠지??? X바. 어케 메꾸냐???]
‘한 달을 누워있었던 것도 아닌데. 벌써 썼다고?’
“앞으로 다신 마주치지 말자.”
“그, 선처 부탁할게···. 정말 미안하다···.”
마음 같아선 당장 경찰서로 가 자수하라고 하고 싶다.
“좀 있으면 친구 올 거야. 빨리 가줬음 하는데.”
그러지 못한 건.
‘미X놈.’
매니저의 말풍선이 바꼈기 때문이다.
[어차피 한 번 죽었는데 다시 죽이면···]
‘굳이 자극할 필요 없다.’
손이 바르르 떨린다.
이불 속으로 손을 밀어넣으며 말했다.
“나 깨어난 거 조문혁한텐 비밀로 하고. 살아있는 거 알면 또 죽이려고 할지 누가 알아.”
“·········알았다.”
한참 망설이던 매니저가 사라지고.
나는 우리 팀 막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재이야, 형인데.”
“형!!!!!!!!”
기사 봤구나.
“기사 봤어?”
“엉? 무슨 기사?”
아닌가?
“못 봤어?”
“나 열흘 매달려서 드디어 막퀘 깼어!!!!!!!!!”
이 녀석, 활동 막힌 뒤에 집에 박혀 게임만 하는 건 알지만.
뭐? 열흘?
“···유재이. 내가 막 기절했다 깼는데-”
“기절????? 형이?????”
“어. 한 오일 쯤-”
유재이가 뻥치지 말라며 종알거린다.
“귀신의 집에서 혼자 웃으면서 나온 사람이 무슨 기절????? 어디서 사람만한 바퀴라도 봤어? 웩 근데 그건 기절해도 인정. 암튼 이번 껀 개노잼임.”
“진짜거든.”
“아 그럼 뭣 땜에 기절했는지 말해보시던가!”
‘···초딩이냐?’
머리가 아까보다 훨씬 지끈거린다.
“매니저가 아무 말 안 해? 나한텐 너 왔다갔다던데.”
“엥? 내가? 아니, 아무 말 없었는데???”
짧게 상황을 설명하자 수화기 너머로 난리가 났다.
“뭐어?!?!?! 미친 거 아냐??? 형 괜찮아?????”
“유재이 진정하고. 너 소리 지를 때마다 머리 울려.”
“어어··· 미안···. 형 그래서 지금 어디야.”
유재이가 소곤거렸다.
“고도진한테 연락해서 같이 와. 의논할 거 있어.”
“알았어. 형, 나 뭐 사갈까?”
“씻고 오기나 해.”
“칫.”
전화를 끊고, 가슴에 얹힌 한숨을 토해냈다.
후우우우.
아무리 깊게 내쉬어도 콱 얹힌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
‘쟤들은 아무 연관 없을까.’
한 번 싹튼 의심이 순식간에 덩치를 키웠다.
멤버들보다 더 오래 본 매니저다.
함께 고생한 건 마찬가진데.
멤버들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최악이네.’
오늘따라 모든 게 허무했다.
- 작가의말
오늘도 감사합니다.
유재이는 그냥..해맑은 앱니다.
다음화 주말 내로 2화 정도 더 올릴 것 같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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