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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운입니다

천재 배우로 전직을 명 받았습니다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쥬운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11.27 17:58
최근연재일 :
2021.01.19 21:40
연재수 :
57 회
조회수 :
740,193
추천수 :
16,589
글자수 :
437,739

작성
20.12.24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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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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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
글자
20쪽

Act 30. 액션은 이렇게 하는 겁니다 - (2)

DUMMY

표리부동(表裏不同).

양두구육(羊頭狗肉).

겉바속촉······ 아, 이건 아닌가?


중간에 이상한 게 끼어있긴 했지만, 이 말들이 의미는 모두 같았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말은 그 누구보다도 마상범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었다.


“···이렇게 하면 되겠습니까?”

“좋아요! 딱 그렇게. 우리 정 배우님 액션 잘하는 거야 원래 알고 있었지만, 상범 씨도 곧잘 하시네. 우리 촬영 때도 딱 이대로만 갑시다!”


나와 마상범은 대기실에서 인사 후 곧장 무술 감독에게로 향했다.

촬영에 앞서 합을 맞추고 미리 연습을 하기 위함이었는데, 마상범은 정말 외견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마음씨를 갖고 있었다.


허벅지만 한 팔뚝으로 주먹을 내지르면서도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감독이 주문한 액션은 훌륭하게 수행한다.

거구의 덩치와는 몸놀림은 액션 연기를 지도하던 무술 감독으로 하여금 연신 감탄을 터뜨리게 만들었다.


“격투기 선수 출신이라더니 동작도 깔끔하니 기가 막히네. 특히 저 단단한 팔뚝이 아주 예술이야. 브라운관에 비치는 임팩트도 있고, 실제로도 한 대 맞으면 그냥 골로 갈 것 같은데? 정 배우님 생각은 어때요?”

“감독님 생각과 같습니다. 동작에 불필요한 군더더기도 없고, 힘도 적절하게 끊어주시는 덕분에 훨씬 절도 있어 보입니다. 이대로 합만 좀 더 맞추면 될 것 같습니다.”

“캬, 역시 정 배우님이라니까. 보는 눈도 기 깔 나!”


무술 감독은 환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연달아 나를 추켜세웠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무술 감독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자리를 빼앗긴 탓에 처음엔 나를 원망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연출한 장면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았다고.

병상에서 회복한 그는 복귀와 동시에, 막혀있던 시야를 넓혀주어서 고맙다며 내게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날부로 지금에 와선 서로 알고 있는 정보도 공유하며 의견도 잘 합치시키며 120%의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었다.


“감독님이 연출을 잘하신 덕분입니다. 저는 그저 감독님의 연출대로 연기할 뿐인걸요.”

“하하하, 다 정 배우님이 도와준 덕분이죠. 상범 씨도 이렇게 잘해주니 오늘은 전혀 걱정 없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감독의 말에 마상범의 입가에도 은근한 미소가 번졌다.


“자, 이대로 합만 한번 맞춰 봅시다.”


무술 감독이 한껏 기대심 가득한 눈빛으로 말을 잇는다.

그와 동시에 나도 그의 앞에 마주 서고, 마상범 역시 내 앞쪽으로 다가온다.

험악한 인상과 함께 다부진 몸과 굵직한 팔뚝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중압감을 불러 일으킨다.


“자, 상범 씨가 오른손 스트레이트 날리고 정 배우님이 주먹 피하면서 손목 관절 꺾으면서 팔꿈치로 가격하는 겁니다.”

“예, 옛!”


마상범은 큰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어쩐지 좀 이상하다.

홀로 액션을 펼칠 때와는 다르게 한층 더 긴장한 목소리다.

애초부터 떨림은 있었지만, 지금은 그 떨림이 훨씬 더 강해진 느낌이다.


“상범 씨.”

“예, 예!”

“너무 긴장하셨어요. 그렇게 긴장하면 연기도 자연스럽게 안 나오고 자칫 부상으로도 이어집니다. 긴장하지 마시고 격투기 할 때처럼 차분하게 해요.”

“···알겠습니다.”


마상범의 목소리가 한결 가라앉았다.

조금은 긴장이 풀린 것일까?


“자, 시작합시다!”


감독의 시작 선언과 동시에 나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새롭게 뜬 눈동자는 기존과는 전혀 다른 기색이다.

잘 벼린 칼날과도 같은 기세의 북한군 상위 리태홍, 그의 눈빛이다.


“동무도 날 죽이러 왔네?”

“······”

“정신 차리라우! 조국을 배신한 반역자 손에 놀아나고 있다는 거 모르네?”


서슬 퍼런 욕지기가 마상범.

아니, 김필성을 향한다.


“반역자는 교관 동지입네다.”

“뭐라?”

“현 시간부로 조국을 배신한 반역자 리태홍을 여기서 처단합네다.”

“···간나새끼. 많이 컸구만 기래.”


김필성의 주먹이 곧장 나를 향한다.

총상을 당해 몸 상태가 말이 아니라지만, 여기서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

나는 있는 힘껏 가드를 올렸다.

이대로 한번 막고 그대로 복부를 걷어찰······


쾅!


“저, 정 배우님!”


눈 깜짝할 새였다.

무슨 폭탄 터지는 굉음이 들린 것 같다.

과연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예상은 됐지만, 실제로도 마주하는 그 힘은 상상 이상이었다.

가드를 취하고 예정대로 반격할 계획이었는데, 몸이 그대로 튕겨져 날아갔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크게 힘을 주고 있진 않았다지만, 내가 뒤로 날아갈 줄이야.

팔에서 시작된 얼얼함 덕분에 몰입하고 있던 리태홍의 의식이 산산이 부서진다.


“아이고, 지혁 씨! 지혁 씨, 괘, 괜찮아요?”

“전 괜찮습니다.”

“아니, 이 사람아! 실제 상황도 아니고 그렇게 힘을 주면 어떡해! 누구 사람 잡을 일 있어!”


황급히 내게로 달려온 무술 감독이 고개를 돌려 마상범에게로 성을 냈다.

마상범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헌데 마상범의 상태가 좀 이상하다.

시선은 물론 그의 손끝이 파리하게 떨리고 있다.

마치 잔뜩 겁을 집어먹은 모습이다.


“감독님 그러지 마세요. 제가 상범 씨 들어올 때 너무 가까이 다가섰나봐요. 죄송합니다.”

“아이고, 조금 쉬었다 일어나시지··· 몸은 좀 괜찮아요?”

“저 괜찮습니다. 멀쩡해요. 상범 씨, 상범 씨도 걱정 마세요. 저 정말 괜찮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선배님.”


마상범의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 간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죄송합니다.”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술 감독은 서슬 퍼런 기세로 쥐잡듯 마상범을 몰아세웠다.

덕분에 곰 같은 덩치가 바짝 움츠러든다.

나는 한껏 기가 죽은 그에게로 자세를 낮추었다.


“정말 괜찮아요. 하다보면 힘 조절 실패할 수도 있죠.”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그런 소리 말아요. 누구 탓이 어디 있어요? 아직 촬영장하고 익숙해지지 않아서 그런 거죠. 그러니까 우리 힘내서 다시 한번 가봅시다.”

“···예, 알겠습니다.”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자 그가 다시금 몸을 일으킨다.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눈동자에 가득 찬 불안감과 긴장감은 여전한 채이다.

정말 괜찮을까?


“상범 씨 일단 한 번 더 가볼게요.”

“네, 알겠습니다!”


처음과 같은 우렁찬 목소리.

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 가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니, 이번엔 왜 자꾸 멈추는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끝내 종일 웃음을 띠던 무술 감독의 언성이 한층 높아졌다.

걱정의 감정은 이내 분노로 치환되었고, 무술 감독은 씩씩거리며 마상범에게 분을 풀어댔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첫 실수에서 마주한 죄책감 때문인지 손가락과 발가락의 개수를 아득히 넘어가는 횟수의 연습 동안.

마상범은 단 한 번도 무술 감독의 연출대로 주먹 한번 휘두르지 못했다.

홀로 연습 때 보여주었던 프로다운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나와 합을 맞추려고 연습을 시작하려고만 하면, 그는 어느새 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파르르 몸을 떨었다.

결국 1시간이 넘도록 제대로 된 연습 한번 하지 못했으니, 무술 감독이 저렇게 역정을 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니, 할 맘 없으면 얼른 말해요. 괜히 엄한 사람 시간 뺏지 말고!”

“죄송합니다, 감독님. 정말 죄송합니다.”


마상범은 변변찮은 핑계조차 대지 않았다.

그저 죄송하다는 말을 끝없이 반복하며 허리를 숙일 뿐이다.

그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감독의 분을 더욱 끓게 만들었다.


“아유, 내가 정말!”

“감독님, 고정하세요.”

“아니, 정 배우님 아무리 그래도······”

“저희 잠깐 쉬었다 가시죠. 제가 잠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그러니 절 보고서라도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정 배우님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딱 30분입니다. 그 이상은 저도 못 기다립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직접 만류하고 나서야 무술 감독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감독은 자리를 비웠지만 이미 커다란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소심한 그의 속마음은 한도 끝도 없이 작아진 상태였다.


“상범 씨.”

“죄송합니다, 선배님. 저 때문에 정말 죄송합니다.”


당장 눈물이라도 뚝뚝 흘릴 것 같은 그의 모습이, 마음 한편에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상범 씨.”

“네, 선배님.”

“저희 커피나 한잔하러 갈까요?”


***


나는 일단 그를 촬영장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건물 밖 자판기와 의자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공터로 그를 데려오고서 나는 자판기로부터 음료를 꺼내왔다.

하지만 마상범의 손에는 이미 다른 것이 들려 있었다.


“그건 뭐예요?”

“아, 평소 가지고 다니는 텀블러입니다.”


마성범은 가지고 있던 텀블러를 보며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조폭 10명은 족히 잡아먹을 것 같은 인상이지만, 가지고 있는 텀블러엔 귀여운 곰 무늬가 가득하다.

외견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 모습에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것 같다.


“역시 좀 이상합니까?”

“아뇨, 이상하긴요. 그보다 텀블러가 있는 줄 모르고 사버렸는데 이것도 받으세요.”

“가, 감사합니다.”


나는 씨익 웃으며 그에게로 캔 커피를 내밀었다.

마상범이 캔커피를 받고 나서야 나는 그의 옆에 앉아 캔 뚜껑을 뜯었다.

힘든 시기에 이시환이 내게 그리해주었던 것처럼.


“꿀꿀할 땐 시원한 캔 커피 한잔이 딱입니다. 정신도 바짝 들고, 피로도 싹 날아가니. 상범 씨도 얼른 한 모금 해보세요.”

“예, 예!”


마상범은 여전히 경직된 모습으로 자신의 텀블러를 내려놓고 캔 커피의 뚜껑을 뜯었다.

그리고는 술도 아닌데도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두 손으로 커피를 마신다.

그 모습에 괜히 웃음이 터질 것 같다.


“시원하죠?”

“네··· 무척 시원합니다.”


커피 한 모금과 동시에 굳어졌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인상은 제법 험악하지만, 아직 위축되어 있는 모습을 보니 역시 속은 여리다.

나는 슬며시 입가에 미소를 띠운 채, 말을 덧붙였다.


“액션 씬이 무서운 거··· 맞죠?”

“······눈치채셨습니까?”

“혼자 연습할 때나 대사만 이어지던 장면은 잘하시던데, 합을 맞추려고 할 때는 유독 굳으시더라고요. 처음에 힘 조절에 실수한 것 때문이죠?”


마상범의 눈꼬리가 더욱 쳐졌다.

역시 그게 트라우마였던 모양이다.

나는 커피 한 모금을 더 기울이고 다시금 말을 이었다.


“괜찮아요. 할 수 있어요. 상범 씨 잘했잖습니까. 아까 혼자 연습할 때처럼 정말 잘 할 수 있어요.”

“선배님은··· 화나시지 않습니까?”


마상범이 처음으로 질문을 건넸다.

애써 아무렇지 않게 말을 꺼냈지만, 그의 손은 여전히 떨림이 남아있다.

더불어 눈동자 역시 바람 앞의 촛불처럼 불안하게 일렁였다.

그 모습이 어쩐지 옛날 연주의 모습과 많이 겹쳐진다.


“화요? 안 난다면 솔직히 거짓말이죠.”

“···죄송합니다.”

“못해서 화가 나는 게 아닙니다.”

“예?”

“잘하시는 분이 자꾸 숨기셔서, 그게 안타까워서 화가 납니다.”


마상범의 눈동자가 화등잔만 하게 커진다.

요동치던 눈동자가 제 자리를 되찾는다.


“자세에 군더더기도 없고, 대사에 담긴 감정도 저보다 더 잘하시던데. 특히 그 팔 보십시오. 정말 남들은 갖고 싶어도 못 갖는, 상범 씨만이 갖고 있는 최고의 무기이지 않습니까? 그 무기가 액션으로 이어지지 못해서, 그게 안타까워서 화가 났습니다.”

“······”

“무슨 사연이 있는 겁니까?”


축 처진 눈꼬리가 다시금 캔 커피로 향한다.

한참 동안 손에 쥐고 있던 캔 커피를 바라보던 그는 마침내 그 입을 열었다.


“제가 왜 격투기 선수를 포기했는지 아십니까?”

“아뇨.”

“저는 상대 선수의 선수 생활을 망가뜨렸습니다.”


무거운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늘 그래왔던 대로, 배운 대로 상대 선수에게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그 선수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이미 정신을 잃었던 그 선수는 결국 제 공격을 버티지 못했습니다. 그날 저는 승리했지만, 그 선수는 선수로서의 생명을 빼앗고 말았습니다. 이 두 손으로요.”

“······”

“죄책감에 도망치듯 선수를 관두고 허송세월이 이어지던 찰나. 제 은인 중 한 분이 고생고생해서 몸도 만들었는데 이대로 포기하긴 아깝다고 자기랑 같이 배우를 해보자는 제안을 해주셨습니다.”

“상범 씨.”


마상범은 쥐고 있던 커피를 마저 입으로 털어 넣었다.

이윽고 텅 비어버린 캔을 쥐고서 그는 다시금 말을 이었다.


“그 말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게다가 흥미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배우로 전향한 선배 선수도 몇 분 계셨거든요. 그분들이 스크린에서 활약하시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멋져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의에 따라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번엔 제대로 하고 싶어서 남들보다 배는 더 연습하고 노력 했는데······”


우드득.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캔 커피가 종잇장처럼 찌그러졌다.

마상범은 파르르 떨리는 손을 애써 누르며 다시금 말을 이어나갔다.


“그때 그 연락을 무시했어야 하는데······”

“잘 안 된 겁니까?”

“아까 영화 엑스트라가 된 적이 있었다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사실 그 엑스트라도 벌써 1년 전입니다. 1년 전 그 촬영에서 선수 때와 똑같은 짓을 벌였기 때문입니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잘하려는 마음에 의욕이 넘친 저는 또다시 상대 배우에게 부상을 입히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마상범의 몸을 굳어버리게 만든 원인이었다.

죄책감.

그의 몸과 마음을 좀먹은 죄책감이, 그의 몸을 굳게 만들고 그의 마음을 병들게 만든 것이다.


“무섭습니다. 액션 연기를 펼치는 게 두렵습니다. 또다시 사람을 다치게 만들까, 그게 무섭습니다.”


두려움과 죄책감에 잡아먹힌 독백이 공터 가득히 울려 퍼졌다.

다시 시작해도 괜찮을지, 괜히 내 선택이 피해가 되는 것은 아닌지.

새로운 시작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몇 번이고 고민하고 고민했던 사람으로서 그의 말이 가슴 속에 깊게 와 닿았다.


가만히 그의 목소리에 집중하던 나는 슬며시 몸을 일으켰다.

왜 그렇게 섣불리 팔을 내뻗지 못했는지 알았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

남은 건 하나뿐이다.


“상범 씨.”

“예, 선배······”


무심코 대답하던 마상범의 양팔이 얼굴 위를 교차했다.

그리고 간발의 차로 그 부분을 주먹이 강타한다.


“서, 선배님?”


화들짝 놀란 마상범은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되묻는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연달아 몸을 움직였다.

특수부대 요원으로서 근무하던 당시의 살기.

진심으로 죽일 기세로 피어오른 살기가 그의 전신을 덮친다.


“···선배님?”


담담히 독백을 늘어놓던 그가 황급히 몸을 일으키고는 뒷걸음질 친다.

하지만 오랜만에 진심으로 들어간 나는 장작 패듯 가차 없이 그의 몸을 후려친다.


퍽!


“컥!”


일단은 복부에 크게 한방.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팔꿈치와 그의 가드를 부수고 무릎으로 다시 한번 그의 복부를 걷어찬다.


“컥, 커헉!”


순간적으로 숨이 막힌 그의 가드가 완벽하게 무너진다.

그와 동시에 얼굴이 그대로 노출된다.

나는 자세를 낮추고서 그의 인중을 노렸다.

하지만.


휙!


애꿎은 주먹이 허공만을 갈랐다.

마상범은 곰 같은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날렵한 움직임으로 내 정권을 피해냈다.

그리고 이윽고 그는 반사적으로 나를 향해 자신의 주먹을 내뻗었다.


퍽!


마상범의 주먹은 내게 닿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내지른 주먹은 내 왼손에 가로막혔다.

원하는 반응이 튀어나오고 나서야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차! 죄, 죄송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반격해 버린 마상범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나를 향해 허리를 숙인다.

먼저 공격한 건 나인데도 그는 도리어 미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서 태연하게 입술을 떼었다.


“뭐가 죄송해요. 제가 먼저 공격했는데. 그것보다 뭐 느낀 점 없어요?”

“······예, 예?”

“방금 뭐 느낀 점 없냐고요.”


반복되는 질문에 마상범은 눈썹을 일그러뜨리고 고심에 잠긴다.

한참 동안 이어지던 고심 끝에 마상범의 눈이 내 왼손으로 향한다.


“서, 선배님 손이!”

“멀쩡합니다.”


충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야 늘 있던 일 중 하나다.

특수살상무술 훈련 때는 이보다 더한 일도 심심치 않게 벌어졌다.

그러나 이를 모르는 마상범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한번 자세히 보세요.”


나는 태연히 웃으며 그에게로 왼손을 내밀었다.

마상범은 두 눈을 크게 뜨고 왼손을 이 잡듯이 살펴보지만, 달라지는 건 없다.

내 왼손은 멀쩡했으니까.


“어, 어떻게?”


입을 쩍 벌린 그를 향해 나는 다시금 말을 덧붙였다.


“이제 좀 아시겠어요? 상범 씨가 실수를 범해, 전력으로 공격한다고 해도, 다치지 않을 자신 있습니다.”

“······”

“상범 씨가 오랜 선수 생활에 의해 굳어진 습관으로 힘 조절과 동작을 끊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점은 잘 알았습니다.”

“선배님.”

“그러면 다시 배우면 되지 않습니까?”


마상범의 눈동자가 또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다는 말을 들은 것처럼

나는 요동치는 그의 눈동자를 마주하며 다시금 말을 이어나갔다.


“힘 조절이 서툴고 동작을 끊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면 차근차근 다시 처음부터 배우면 되지 않겠습니까? 제가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습니다. 누구나 그 시작이 두렵고 무섭습니다. 하지만 무섭다고 포기하면 거기서 끝인 겁니다.”

“선배님.”

“걱정하지 말고 하나씩 배우면서 우리 다시 해봐요.”


마상범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그는 당장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은 모습으로 힘겹게 입술을 떼었다.


“선배님은··· 제게 왜 이렇게 잘해주시는 겁니까?”


그 한마디가.

옛날 모습과 겹쳐지며 익숙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그냥 좀. 내 옛날 보는 모습 보는 거 같아서.’


피식 웃음을 터뜨리던 그의 모습이.

오늘따라 계속 생각이 난다.

가볍지만 따뜻하고, 서툴지만 상냥하던 그날의 미소가.

어느덧 내 입가에도 미소를 그렸다.


“그냥, 제 옛날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요.”


그날의 이시환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힘든 시기에, 별거 아닌 이유로 그가 나를 배려해 준 것처럼.

나는 조용히 웃었다.


***


잠시 후, 나는 마성범을 데리고 촬영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무술 감독과 모든 스태프들이 지켜보는 곳에서 나는 마성범과 함께 연기를 펼쳤다.

모든 연기가 끝난 순간.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아까 그 30분 사이에 사람이라도 바뀐 겁니까? 세상에 사람이 달라졌네! 정 배우님 무슨 조화를 부린 겁니까? 정 배우님도 우리 상범 씨도 완전 기가 막히네!”


그 말이 떨어지고 나서야.

긴장감으로 얼룩져 있던 마성범의 입가에 미소가 피었다.

험악한 인상과 거구의 덩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 누구보다도 순수한 미소가.


작가의말

이 글도 벌써 30화에 이르렀네요.

그와 동시에 일일 조회수, 추천, 선호작이 모두 1000을 넘어섰습니다.

30화까지 함께 달려주신 독자님들이 계셨기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더욱 최선을 다해 초심으로 돌아가 더욱 달려보겠습니다.

매순간 정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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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0

  • 작성자
    Lv.86 인생뭐잇냐
    작성일
    20.12.24 20:48
    No. 1

    마동석+김동현 느낌나는데 ㅋㅋㅋㅋ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99 럽쮸
    작성일
    20.12.24 20:58
    No. 2

    25페이지 실수로 범해-실수를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8 쥬운
    작성일
    20.12.24 21:03
    No. 3

    안녕하세요 작가 쥬운입니다.
    짚어주신 부분 확인후 바로 수정 조치 완료하였습니다. 항상 주의깊게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루하루 완벽한 회차로 보답드리고 싶은데 꼭 이렇게 한두군데씩 오타가 있네요. 읽으시는데 불편함을 드려 죄송하고 또 정말 감사드립니다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27 레쥬
    작성일
    20.12.24 21:33
    No. 4

    잘 보고 갑니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99 의지
    작성일
    20.12.24 21:48
    No. 5

    늘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99 유리아o
    작성일
    20.12.24 21:54
    No. 6

    잘 보고 갑니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99 yeom
    작성일
    20.12.24 22:30
    No. 7

    재미있게 보고 갑니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30 n1******..
    작성일
    20.12.25 12:52
    No. 8

    너무 재밌어요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99 장금
    작성일
    20.12.25 13:19
    No. 9

    트라우마 있으면 떨치기 힘들텐데 지혁이 도와줘서 다행이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84 widz
    작성일
    20.12.25 18:34
    No. 10

    내리사랑이 이런 건가요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99 풍뢰전사
    작성일
    20.12.28 20:18
    No. 11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1.01.01 22:29
    No. 12

    잘 보고 있습니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17 리즈
    작성일
    21.01.02 20:52
    No. 13

    6페이지 일어니시지-일어나시지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8 쥬운
    작성일
    21.01.02 20:55
    No. 14

    리즈님 안녕하세요 작가 쥬운입니다.
    항상 애정을 가지고 주의깊게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최대한 수정한다고 했는데 미처 이런 오류가 남아있었네요 리즈님이 아니었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뻔했습니다. 읽으시는데 불편함을 드려 정말 죄송하고 또 정말 감사드립니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17 리즈
    작성일
    21.01.02 20:58
    No. 15

    엇 정말 빨리 읽으셨네요 깜짝 놀랐어요 저도 발견하고서 작가님이 이건 찾기 힘드셨겠다고 생각했어요 매일 한 편씩 쓰시는 데 오타가 날 수도 있는 거죠 작가님께서 피드백을 잘 해주셔서 좋아요 그리고 읽어보니까 문맥상 상대가 아니라 상태인 것 같아서 적어봅니다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8 쥬운
    작성일
    21.01.02 21:34
    No. 16

    응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제가 부족해서 매번 오타가 나는 걸요. 항상 이렇게 오타를 잡아주시는 것만으로도 제게는 너무나 큰 힘이 됩니다. 리즈님께서 해주신 응원과 따뜻한 한마디 덕분에 오늘도 정말 큰 힘을 받았습니다. 너무 감사드립니다. 추가로 상대 - 상태 부분도 수정완료했습니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17 리즈
    작성일
    21.01.02 20:59
    No. 17

    13페이지 상대-상태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musado01..
    작성일
    21.01.12 14:26
    No. 18

    잘 보고 갑니다.

    건 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푸른평원
    작성일
    21.01.12 18:01
    No. 19

    잘 보고 갑니다.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방객
    작성일
    21.01.12 20:53
    No. 20

    11페이지에 고정하세요보다는 진정하세요가 낫지 않을까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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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Act 28. 연출 - (4) +12 20.12.22 13,104 291 20쪽
27 Act 27. 연출 - (3) +12 20.12.21 12,820 295 19쪽
26 Act 26. 연출 - (2) +12 20.12.20 13,052 302 17쪽
25 Act 25. 연출 - (1) +14 20.12.19 13,424 297 19쪽
24 Act 24. 그 이름 - (4) [수정] +24 20.12.18 13,489 284 18쪽
23 Act 23. 그 이름 - (3) [수정] +16 20.12.17 13,455 268 19쪽
22 Act 22. 그 이름 - (2) [수정] +21 20.12.16 13,706 268 12쪽
21 Act 21. 그 이름 - (1) [수정] +21 20.12.15 14,294 258 19쪽
20 Act 20. 룰렛 +15 20.12.14 14,491 286 17쪽
19 Act 19. 프로필 - (2) +17 20.12.13 14,184 303 13쪽
18 Act 18. 프로필 - (1) +15 20.12.12 14,610 305 19쪽
17 Act 17. AND +14 20.12.11 14,592 309 15쪽
16 Act 16. 제의 - (3) +18 20.12.10 14,864 294 15쪽
15 Act 15. 제의 - (2) +13 20.12.09 15,435 298 18쪽
14 Act 14. 제의 - (1) +18 20.12.08 15,655 299 14쪽
13 Act 13. 불청객 - (3) +16 20.12.07 15,711 291 15쪽
12 Act 12. 불청객 - (2) +20 20.12.06 15,731 302 12쪽
11 Act 11. 불청객 - (1) +18 20.12.05 15,995 299 12쪽
10 Act 10. 첫 촬영 - (2) +20 20.12.04 16,638 323 17쪽
9 Act 9. 첫 촬영 - (1) +20 20.12.03 17,141 318 17쪽
8 Act 8. 오디션 - (3) +12 20.12.02 17,120 320 11쪽
7 Act 7. 오디션 - (2) +19 20.12.01 17,352 332 14쪽
6 Act 6. 오디션 - (1) +13 20.11.30 17,843 330 11쪽
5 Act 5. 뉴스 - (2) +12 20.11.29 18,225 328 12쪽
4 Act 4. 뉴스 - (1) +21 20.11.28 19,283 345 15쪽
3 Act 3. 튜토리얼 - (3) +21 20.11.27 19,555 379 15쪽
2 Act 2. 튜토리얼 - (2) +26 20.11.27 21,580 351 16쪽
1 Act 1. 튜토리얼 - (1) +25 20.11.27 26,040 38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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