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16. 제의 - (3)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연주의 눈동자가 화등잔만하게 뜨였다.
연주는 잔에 있는 소주를 털어 넣고, 연거푸 감탄을 흘렸다.
마침 내일은 촬영도 없겠다.
낮에 있었던 일에 대해 상담할 겸, 확인해야 할 것이 있어 급하게 잡은 자리지만, 연주는 흔쾌히 자리에 나와 주었다.
이렇게 같이 술을 마시는 게 대체 얼마만인지.
술에 취한 것인지, 이야기에 취한 것인지.
연주의 입가에 함박웃음이 번졌다.
“제가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형님은 연기에 재능이 있다고. 분명 그쪽 회사에서도 형님의 재능을 알아본 겁니다!”
“그런가?”
“저는 전에 그 연기를 제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습니까? 저만 믿으십시오. 실전에서 그 정도면 형님 무조건 성공할 겁니다.”
“말은.”
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전에 먹지 못했던 고기를 입에 넣었다.
야들야들한 고기의 살결이 이빨 사이에 찢어지며 달콤한 육즙이 입 안 가득히 배어 나온다.
육즙의 맛이 사라지기 전에 나는 앞에 있던 소주잔을 기울였다.
시원하면서도 알싸한 소주의 향이 입안 전체를 가득히 채웠다.
“이렇게 좋은 소식에 가만히 있을 순 없죠. 여기 소주 1병이랑 채끝살 2인분 더요!”
“너무 많이 시키는 거 아냐?”
“아유, 오랜만에 만난 거지 않습니까? 오늘은 제가 사겠습니다! 걱정 말고 팍팍 드십시오!”
며칠 만에 만난 셈이지만, 연주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누가 보면 몇 년은 못 본 사이인줄 알겠다.
하지만 제 일처럼 기뻐해 주는 연주를 보니 마음 한편이 시큰했다.
사고 이후 인간관계는 모두 끊겼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이렇게 나를 생각해주는 이가 있다는 것이 마냥 고마울 뿐이다.
소주와 고기는 금세 도착했다.
“그랬다니··· 어?”
빈 잔에 소주를 따르고 불판에 고기를 얹는 사이.
내 옆을 지나가던 여자 2명 중 한 명이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선 지나가는 내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야, 저기 저 사람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아?”
“누구?”
“저기! 저쪽 테이블에 앉아있는 남자.”
여자들의 시선이 곧바로 나를 향한다.
나는 못 들은 척, 쓰고 있던 모자를 더욱 눌러썼다.
“아까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형님도 이제 유명인이라고.”
연주가 소리 죽여 키득거렸다.
전부 연주가 올린 너튜브의 영상 때문이다.
“설마 이렇게까지 화제가 될 줄은 몰랐는데.”
연주가 게시한 영상의 조회수는 벌써 500만을 가볍게 넘기고 700만을 바라보고 있다.
분명 그 영상이 내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젠 긍정적인 영향을 떠나, 조금 무서울 정도였다.
“이게 몇 번째였지?”
아직 배우로서 매체에 노출된 것도 아니지만, 길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생겼다.
길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다.
현재 온라인의 상황은 난리도 아니었다.
너튜브를 포함하여 SNS는 물론 여러 인터넷 포털 사이트까지.
이제 조금 관심이 수그러들 법하건만, 반대로 점점 더 사고 영상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관심이 모여드는 것은 바로.
“그런데 요원 J는 뭐야.”
“그거 정말 잘 지었지 않습니까? 실명을 거론할 순 없어서 가명으로 한 건데, 아무리 봐도 정말 잘 지은 것 같습니다”
“옛날 영화에나 나오는 코드네임 같은데.”
“조금 그런 감이 없지 않아 있긴 한데, 반응은 좋지 않습니까?”
연주가 지은 가명.
요원 J.
인터넷, 너튜브, SNS, 전부 가릴 것 없이 현재 가장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는 뜨거운 감자였다.
“오죽하면 사칭범까지 나타났겠습니까.”
“어차피 금방 들킬 거 사칭은 왜 하나 몰라.”
“이왕 이렇게 된 거 형님도 너튜브 채널 만들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거기서 영화 홍보도 하면 일석이조지 않습니까?”
확실히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연주가 박바위라는 캐릭터로 활동하는 것처럼, 요원 J라는 캐릭터의 너튜브 채널을 만들면 지금 모이는 세간의 관심을 바탕으로 더욱 성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마냥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기엔 아직 너무 일러. 연기도 한참 부족하고.”
이미 왕성하게 활동을 이어가는 배우라면 모르겠지만, 이제 배우의 길에 걸음을 내디딘 내겐 너무 무모했다.
내 꿈은 너튜버가 아닌 배우다.
괜히 미숙한 연기 실력에 발목을 잡힐 위험도 크고, 배우로서의 길을 확립하지 못하고 너튜버라는 길에 휘말릴 수도 있었다.
결국 지금의 내게 있어서 너튜버라는 자리는 독이 든 성배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제안은 고맙지만, 당분간은 연기에 전념하련다.”
“크으, 존경스럽습니다. 형님이라면 천만 배우··· 아니, 겨우 천만이 뭡니까? 국민배우가 되실 겁니다.”
연주가 다시 소주를 들이키며 감탄을 흘렸다.
그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어떠한 시기도 질투도 없이 순수하게 이 사람이 잘 됐으면 하는 그런 호의로 가득한 감정.
그 감정이 더욱 고맙게 다가왔다.
“그러고 보니 형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뭐가?”
“제의 말입니다. 받아들이실 겁니까?”
연주의 목소리가 대뜸 핵심을 찌르고 파고들었다.
대답이 곧바로 입 밖으로 튀어 나가지 못하고, 목구멍에서만 맴돌았다.
결국 나는 대답 대신 앞에 있는 소주잔을 기울였다.
솔직히 말하면 잘 모르겠다.
확실히 김수아는 박주훈과 비교했을 때,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상냥한 태도, 강요하지 않는 솔직함, 그리고 진소희를 통해 드러났던 편안한 분위기까지.
그녀의 제의가 끌리지 않는다면 분명 그건 거짓말이다.
김수아가 마지막에 제시했던 ‘기회’라는 단어를 들은 순간부터 머릿속에서 그 말이 한순간도 떠오르지 않은 적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조금 의심이 들어.’
계약서를 챙겨 허겁지겁 도망쳤던 박주훈.
그의 모습이 결정적이었다.
그로 인해 섣불리 다가가기보다는 의심이 먼저 일었다.
단지 이용당하기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더욱 의심을 키웠다.
“설마 불안하신 겁니까?”
“······”
정곡을 찔렸다.
숨긴다고 숨겼는데, 연주는 귀신같이 마음속의 내 고민을 알아챘다.
하여간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힌 녀석이다.
“그냥 좀. 아까 일이 마음에 걸려서.”
“제가 형님과 같은 일을 겪지 못해서, 감히 이런 말씀 드리기 좀 그렇지만. 세상에 나쁜 놈들 천지인 건 맞습니다. 아까 박주훈인가 뭔가 하는 놈도 그런 놈이겠죠. 하지만, 이 세상에 그런 놈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형님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연주는 잠시간 숨을 고르고 다시금 입을 열었다.
“형님이 무엇을 걱정하는 것인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조심스럽게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시작도 하기 전에 걱정부터 앞서고, 결국엔 시작 자체를 못 하는 거, 형님답지 않습니다.”
그 한 마디가.
“인생에 정답이 어디 있겠습니까? 형님이 하고 싶은 대로 하십시오. 형님이 어떤 선택을 하시던 전 언제나 형님을 응원하겠습니다.”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마음 깊숙한 곳을 관통했다.
연주 말대로다.
나는 아직 발을 뻗지도 못했다.
그런데 시작도 전에 땅이 꺼질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지. 이런 잔걱정으로만 가득했다.
그야말로 기우(杞憂)이지 않은가?
머릿속이 얼얼했다.
“고맙다. 덕분에 머리가 개운해졌어.”
“제가 한 게 뭐 있겠습니까? 그러니 언제든 말씀만 하십시오. 제가 도와 드릴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도와드리겠습니다.”
연주의 입가에 사람 좋은 미소가 번졌다.
하여간 내가 사람 하나 잘 만났다.
“말이라도 고맙다. 요새 너는 어때?”
“저 말입니까?”
“그래, 내 이야기만 주구장창 했지. 네 이야기는 안 했잖아.”
“그랬습니까? 하하, 저야 뭐, 역시 저도 형님 덕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연주의 입꼬리가 길게 늘어졌다.
너튜버인 그가 내 덕을 본다면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조회수 잘 나오나 보다?”
“아유 형님 조회수 뿐이겠습니까. 구독자도 엄청나게 늘었고, 반응도 아주 기가 막힙니다.”
당시 사건과 사건 영상이 너튜브에 공개된 이후.
연주의 채널은 속된 말로 떡상했다.
기존에도 10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대형 너튜버이기도 했지만, 사건 영상이 업로드되고 평소 조회수나 신규 구독자나 과장 좀 보태 2배 가까이 올랐다고.
덕분의 연주의 얼굴은 시종일관 웃음으로 가득했다.
“조만간 형님이랑 같이 찍은 영상도 곧 업로드될 예정입니다.”
“그때 찍은 거? 그런데 그거 중간까지밖에 못 찍었잖아.”
“편집하고 하다 보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습니까?”
연주의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소주잔을 기울였다.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지만, 오랫동안 알고 지낸 내 눈을 속일 수는 없다.
나는 옆에 있는 소주병을 들고 연주를 향해 뻗었다.
쪼르륵.
빈 잔에 소주가 채워지며 맑은 물소리가 테이블을 채우는 사이.
나는 그를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야말로 고민 있으면 감추지 말고 털어놔.”
“형님?”
“이미 네가 나한테 베푼 것만 해도, 차고 넘치니까 부담 갖지 말고.”
“······”
잔에 차오른 소주의 파문처럼 연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떻게 알았는지 당황한 눈빛인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역시.
내 눈엔 훤히 보였다.
입은 웃고 있지만, 그 눈엔 분명한 고민이 자리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조용히 그의 대답을 기다릴 뿐.
“형님. 사실은 그게······”
잔에 찬 소주가 고요해질 때쯤.
닫혀있던 연주의 입이 열렸다.
“에라 모르겠다. 형님! 인터뷰 영상 하나만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한참을 망설이며 우물쭈물하던 연주가 돌연 고개를 푹 숙였다.
“인터뷰?”
의미심장한 모습으로 한 말치고는 정말 의외다.
기세만 봐선 보증이라도 서달라는 건 줄 알았다.
난데없이 인터뷰라니 당황스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리라.
“갑자기 웬 인터뷰야.”
“실은······”
연거푸 소주잔을 기울이며 연주는 감춰두었던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형님과 저번에 찍은 영상을 올리고 싶습니다만. 찍던 도중에 사건이 터진 탓에 아무리 편집을 해도 마무리가 깔끔하게 나지 않아서요.”
연주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맨들맨들한 두피에 핀 주름살이 그의 마음고생을 여실히 증명했다.
남에게 잘 부탁하지 않는 그의 성격상, 이렇게 직접 말을 꺼내기까지도 정말 많이 고민했을 것이다.
“그래서 혹시, 정말 혹시 형님만 괜찮으시다면, 형님에 대한 인터뷰 영상을 찍고 싶은데···”
“그래. 언제 찍을 건데?”
“그렇죠. 역시 힘들겠······ 예?”
내게서 부정의 대답이 나올 줄 알았던 걸까?
순간적으로 바뀌는 표정에 웃음이 터질 뻔했다.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그렇게 고민하고 그래. 인터뷰 정도야 얼마든지 찍어줄 테니까. 염려 붙들어 매.”
“형님.”
“다음부터 그런 거 있으면 고민하지 말고 말해. 우리가 그런 걸 부탁으로 할 사이는 아니잖아?”
연주의 눈에 물기가 차올랐다.
덩치 큰 민머리의 남자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시선으로 나를 쳐다본다.
제발 우는 것만큼은 참아주었으면 하는데.
‘혹시나 했더니.’
부담스러운 시선을 뒤로한 채, 나는 다시금 소주잔을 기울였다.
식도를 적시는 알싸한 소주의 향이 낮에 있었던 일을 다시금 상기시켰다.
- 임무 : 인터뷰 -
내용 : [인터뷰]에 응하십시오.
보상 : 500코인
힌트 : [박연주], [너튜브]
* 실패 시 인지도 상승에 제동이 걸립니다.
오늘 개방한 새로운 임무 [인터뷰].
사실 임무를 확인한 순간, 모골이 서늘해졌다.
첫 임무였던 [박바위]처럼 힌트에 연주가 관계되어 있기에, 행여나 연주에게 무슨 일일까 계속 고민하다가 급하게 약속까지 잡았건만.
“형님, 진짜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취한 것처럼 눈을 글썽이는 민머리를 보니 걱정했던 사실 자체가 바보 같이 느껴진다.
괜한 걱정이었다.
···그래도 별일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다.
띠링!
마침 익숙한 알림음이 귓가를 때렸다.
덕분에 좋은 핑계가 생겼다.
“나 잠깐 전화 좀 하고 올게.”
“넵! 다녀오십시오.”
“······술 적당히 마셔라.”
슬그머니 고개를 든 불안감을 뒤로하고 나는 잠시 가게 밖으로 나왔다.
아직은 조금 쌀쌀한 밤바람이 소주로 달아오른 열기를 식혀준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도시의 밤.
나는 가게 앞에 서 있는 여느 사람들처럼 스마트폰에 떠오른 화면을 확인했다.
- 오늘 소중한 시간 내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낮에 여러모로 폐를 끼친 것 같아 다시 한번 정말 죄송합니다. 혹시라도 궁금하신 점이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편하게 연락해주세요. 저희 AND는 언제든지 지혁 씨를 서포트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
스마트폰에 떠오른 것은 문자 메시지였다.
낯선 번호와 함께 떠오른 감사와 사과, 그리고 김수아라는 이름.
‘세심한 사람이네.’
단지 사회인으로서의 기본 매너,
거기에 배려로 포장한 어필도 확실하다.
띠링.
연달아 울리는 알림음.
문자가 하나 더 도착했다.
그리고 새로이 떠오른 문자가 시야를 뒤덮었다.
- 오늘의 만남이 END가 아닌 AND가 되기를 바랍니다. -
“END가 아닌 AND라.”
돌연 김수아와 연주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기회. 저희 AND엔터와 함께하신다면, 정지혁 씨가 꿈꾸는 배우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전심전력을 다해, 무궁무진한 기회를 가져다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인생에 정답이 어디 있겠습니까? 형님이 하고 싶은 대로 하십시오. 형님이 어떤 선택을 하시던 전 언제나 형님을 응원하겠습니다.’
두 사람의 말이 균열이 일어난 마음속을 더욱 헤집었다.
그리고 껍질 속에 갇혀있던 본심을 끄집어낸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나는 스마트폰의 다이얼을 두드렸다.
연주의 말처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제대로 된 시작을 내딛기 위해서.
“여보세요?”
“김수아 팀장님 저 정지혁입니다.”
“네, 지혁 씨. 무슨 일이세요?”
“아까 제안해주신 계약 때문에 전화 드렸습니다. 실례지만, 낮에 하신 그 제안 아직 유효합니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마음이 가는 대로.
나는 내게 찾아온 기회를 향해 손을 뻗었다.
- 작가의말
드디어 추천, 선호작, 그리고 최신화 일일 조회수까지 모두 100을 넘었네요.
여러분께서 관심 갖고 지켜봐주시고 도와주셨기에 가능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더욱 더 재미있는 글로 보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오늘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추천과 선호작 등록 부탁드립니다.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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