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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운입니다

천재 배우로 전직을 명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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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운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11.27 17:58
최근연재일 :
2021.01.19 21:40
연재수 :
5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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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37,739

작성
20.12.1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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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Act 18. 프로필 - (1)

DUMMY

김수아가 불쑥 내민 몇 장의 사진.

A4 용지와 비슷한 크기의 사진 위에 나타난 사람은 나도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소희의 프로필 사진이에요. 소희 같은 경우는 아직 한참 성장기라 조만간 다시 촬영할까도 생각하고 있긴 한데, 지혁 씨는 아직 프로필 사진이 한 장도 없어서, 이게 가장 급하지 않을까 해요.”


나는 김수아가 내민 사진을 집으며 머릿속을 곱씹었다.


‘사진이라.’


그러고 보니 연주에게서도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형님도 그럼 프로필 사진 한 장 찍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배우를 시작했다고 하자, 그가 한 말이다.

그때 당시엔 ‘프로필 사진이 중요한가?’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사진을 마주하니 그 중요성이 확 와 닿았다.


‘확실히 느낌이 달라.’


눈앞의 사진은 평상시의 진소희와는 사뭇 달랐다.

아니, 정확히는 평상시에는 보지 못했던 매력이 가득했다.

다양한 스타일, 다양한 컨셉으로 찍힌 사진 속에 진소희는 생동감으로 넘쳐났다.

무표정에도 웃는 모습에도, 가만히 서 있는 사진에도, 진소희 특유의 풋풋함과 싱그러운 매력이 물씬 느껴진다.

이게 사진발이라는 걸까······?


“평소에 보셨던 소희랑은 좀 다르죠? 보시면 아시겠지만, 배우에게 프로필 사진은 굉장히 중요해요. 영화, 드라마, 연극과 뮤지컬 등등. 각 감독들이 배우를 캐스팅할 때 물론 배우 본인의 연기 실력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그 배우가 가진 이미지도 한몫하니까요.”


김수아는 테이블에 남은 진소희의 사진을 들어 올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단적으로 예를 들면 살인마나 조폭 같은 날카롭고 위험한 이미지의 역할을, 마냥 순하고 어수룩한 배우가 맡는다면 사람들이 그를 보고 작품에 몰입할 수 있을까요?”

“그야······”


단번에 말꼬리가 흐려졌다.

그녀가 뱉은 말의 저의를 깨달은 덕이다.

눈치 챈 내 표정을 본 김수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미지와 역할이 어울리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작품에 몰입하기 어려워지고, 몰입이 힘들게 되면 작품의 평은 그대로 수직 하락하게 됩니다. 그래서 배우의 첫 이미지를 판가름하는 프로필 사진이 중요한 거예요.”


전혀 몰랐다.

프로필 사진이라고 해서, 그저 인터넷에 올라가는 사진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질적인 의미는 완전히 달랐다.


“다른 중요한 일도 많지만, 앞서 설명 드린 것처럼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프로필 사진부터 촬영하려는 거예요. 괜히 프로필 사진 찍기 전에 다이어트하고 운동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그렇군요.”

“이러한 이유로 프로필 사진이 제일 시급하다는 게 제 판단이에요. 지혁 씨 생각은 어떠세요?”

“팀장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당장 내 판단보단, 전적으로 그녀의 판단을 믿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배우의 세계의 발을 디딘 나와 달리 김수아는 그간 쌓아 올린 자신만의 노하우와 경험이 있을 테니까.

내 대답이 끝나자마자 김수아는 배시시 웃으며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고마워요. 그럼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사진작가님껜 지금 바로 연락드려볼게요.”

“벌써 섭외도 다 끝났습니까?”

“아직 확정은 아니긴 한데, 미리 점찍어둔 분이 계셔요.”


김수아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번졌다.


“기대하셔도 좋아요. 이 작가님이 조금 괴짜 기질이 있으시긴 한데, 사진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찍어 주시는 분이시거든요. 이 바닥에선 벌써 유명하신 분이에요. 여기 소희 사진도 다 작가님께서 찍어주신 거예요.”


나지막하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 사진을 찍은 작가님이라니.

과연, 김수아가 자신 있는 이유가 있었다.


“그럼 잠시 전화 좀 하고 올게요.”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구석으로 향했다.

덩달아 홀로 자리에 남은 나는 조용히 커피잔을 들었다.

프로필 사진이라.


우웅!


“커피 좀 마셔보려 했더니.”


잔이 입술에 닿기도 채 전에, 주머니 안에 넣어두었던 스마트폰이 요란한 진동을 토해냈다.

나는 곧바로 잔을 내려놓고 스마트폰을 꺼냈다.


“이 시간에 누구······”


푸념을 늘어놓던 입이 그대로 멈췄다.

하긴 이 시간에 전화 걸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화면에 떠오르는 익숙한 이름을 보며 나는 통화버튼을 밀었다.


“여보세요.”

“형님!”

“···귀청 떨어지겠다.”


강렬한 목소리가 고막을 푹 찔렀다.

수화기를 너머로 요새 한창 자주 들었던 익숙한 목소리가 연달아 쏟아져 나왔다.

어찌나 소리가 큰지 수화기를 멀찍이 떨어뜨리고도 목소리가 들릴 정도다.


“형님 형님! 빅뉴스입니다 빅뉴스.”

“좀 진정하고, 천천히 이야기해봐. 대체 무슨 소식이길래 그래.”


한참을 진정시키자 연주는 겨우 숨을 골랐다.

대체 무슨 소식이길래 이렇게까지 다급한지.

머릿속에 의문이 가득히 피어오를 때쯤, 수화기 너머로 대답이 흘러나왔다.


“오늘 연락이 왔는데, 이게 누구한테 온 연락인지 아십니까? 놀라지 마십시오. 바로 그 사람입니다.”

“누구?”

“그! 총기 사건 때, 형님이 구해주셨던 그 여성분 있지 않습니까? 어제 인터뷰 영상을 보고 그분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연주의 말은 확실히 놀라웠다.

연락이 왔다기에 누구인가 했더니, 설마 그때 그 여성분에게 연락이 올 줄이야.


“몸은 좀 괜찮으시대?”

“예, 형님께서 구해주신 덕분에 다치신 곳 없이 무사히······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뭐야, 그거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다고.”

“있습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글쎄 그분이 본업이 사진작가신데, 형님의 프로필 사진을 찍어드리고 싶다고 연락이 온 겁니다. 그것도 전액 무료로!”


연주는 호들갑을 떨며, 연신 감탄을 토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나는 평온했다.


“그것참 감사한 일인데···”

“형님 반응이 왜 그러십니까? 엄청 좋은 소식 아닙니까?”

“아니, 좋은 소식이긴 한데, 회사에서 따로 사진작가님을 구해주셔서.”

“아, 그렇습니까?”


한껏 달아올랐던 연주의 반응이 대번에 식었다.

기껏 좋은 소식을 전해줬는데 어쩐지 좀 미안한 감정이 솟구쳤다.


“그래도 고맙다 이렇게 알려줘서.”

“아유, 아닙니다. 저야말로 뒷북쳐서 죄송합니다.”

“뒷북은 무슨, 신경 쓰지 마. 일단 회사에도 물어볼 테니까. 그리고 그분 연락처 좀 보내줘 만약에 안 된다고 하면, 기껏 좋은 마음으로 연락 주셨는데 감사 인사라도 드려야지.”

“넵 알겠습니다. 형님!”


다행히 연주의 목소리가 다시 밝아졌다.

이윽고 메신저 어플에 연주가 보낸 연락처가 도착했다.

연락처를 확인하고 난 뒤, 5분 정도 사담을 나누고 있던 찰나, 다시금 김수아가 테이블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연주와의 전화를 끊고 김수아의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자리에 돌아온 김수아의 표정이 어둡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은 것일까?


“죄송해요. 너무 오래 걸렸죠?”

“···표정이 좋지 않으십니다. 무슨 일 있는 겁니까?”

“하아.”


김수아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역시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다.

연거푸 한숨을 내쉬던 김수아는 앞에 있던 커피를 술처럼 들이키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최근에 작가님께 사고가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다행히 몸에 이상이 있거나 하시는 건 아닌데, 중요한 일이 있어서 당분간은 일을 받지 않으신다고 하세요.”

“···그렇습니까?”

“죄송해요. 그렇게 큰소리쳐 놓고선 좋은 소식을 가져다드리지 못했네요.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다른 사진작가님을 알아볼게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간다.

지금 상황이라면 혹시 가능하지 않을까?

찬찬히 분위기를 살피던 나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팀장님.”

“네?”

“사제 총기 사건의 범인을 제압한 것이 저라는 거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당연히 알고 있죠. 갑자기 그게 왜요?”

“실은 조금 전에 연락이 왔습니다만, 당시 범인에게 인질로 잡혀계시던 분께서 사진작가신데, 제 프로필 사진을 찍어 주고 싶다고 하십니다.”


김수아의 눈동자가 이채를 띄었다.


“그래요? 혹시 그분 성함이 어떻게 되신지 알고 계신가요?”

“성함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대신 연락처가 있습니다.”


나는 스마트폰에 연주로부터 받은 연락처를 띄워 김수아에게로 건넸다.

그리고.


“이, 이건······”


스마트폰을 받아 든 김수아의 얼굴이 급속도로 굳어진다.

갑자기 왜 저러지?


“혹시 뭔가 잘못됐습니까?”

“이, 이 연락처요. 인질로 잡히신 분 연락처라 하셨죠?”

“네, 그렇게 들었습니다.”

“세상에.”


김수아는 차마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그녀는 시간이 흐르고 가까스로 다시금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녀로부터 충격적인 말이 흘러나왔다.


“······예요.”

“예?”

“제가 처음 말씀드렸던 작가님과 지혁 씨가 연락처를 받은 분, 같은 분이라고요.”


***


서울의 한 스튜디오.

청소가 끝난 스튜디오가 말끔하게 반짝였다.

평소에도 청소는 자주하고 있지만, 오늘은 유독 더 신경을 썼다.

덕분에 평소보다도 훨씬 더 깨끗하게 변모한 스튜디오를 보며 윤혜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정도면 괜찮으려나?”


평소 같으면 아니, 예약이 들어와도 이렇게까지 청소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오늘은 그분이 오시는 날이니까.”


윤혜선의 눈빛이 희미하게 초점을 잃었다.

몽롱한 시선 사이로 그녀의 발길이 스튜디오 안쪽으로 이어졌다.

윤혜선의 발이 멈춘 곳은 재킷 한 벌이 덩그러니 걸려있는 벽 앞이었다.


“흐음.”


간드러진 콧소리와 함께 윤혜선의 고개가 재킷 사이로 파묻혔다.

윤혜선은 마치 만찬을 음미하는 것처럼 재킷에 남은 잔향을 만끽했다.


“하아.”


윤혜선의 입에서 달뜬 한숨이 새어 나왔다.

남들이 보면 절대적으로 오해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윤혜선에게 있어서 이 재킷은 보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분이 주신 거니까.”


그날은 정말 최악의 날이었다.

공원에서 운동 중에 편의점에서 마실 것을 사고 밖으로 나온 것뿐이었건만, 까딱 잘못하면 그대로 삶이 끝날 뻔했다.

불법 제작된 총으로 강도를 저지르던 범인의 인질로 잡혔기 때문이다.


“그땐 정말 죽는 줄 알았는데.”


너무 무섭고 무서워서 눈물만을 흘리고 있던 그때.

그 사람이 나타났다.


처음엔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당장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것처럼 겁먹은 그 모습이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진짜가 아니었다.


“영화 같았지 정말.”


전부 연기였었다.

날카로운 고함을 시작으로 겁쟁이의 모습을 벗어던진 그는 곧바로 총을 가진 범인에게로 달려들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범인은 팔을 꺾인 채, 제압되어 있었다.

순식간에 범인을 제압한 그는 다른 이에게 범인을 넘기고, 자신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어디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꺄아!”


그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소녀와도 같은 반응이 튀어나왔다.

단단한 어깨, 총을 두려워하지 않고 범인에게 뛰어드는 용기, 범인을 대하는 단호한 태도, 울고 있는 자신에게 기꺼이 재킷을 덮어주는 상냥함까지.

그로부터 구원받은 그 순간부터 윤혜선은 그에게 푹 빠지고 말았다.


“찾는 데 시간은 좀 걸렸지만.”


처음 기사가 보도됐을 당시에는 박바위와 관련된 기사만 가득해서 찾는데 좀 시간이 걸렸다.

그를 찾은 것은 겨우 며칠 전의 일이다.


“영상 진짜 완전 감동이었지.”


박바위 채널에 그의 영상이 게시된 덕이다.

그의 이름과 얼굴, 그리고 그가 내디딜 행보가 밝혀지게 되면서 세상은 더욱 떠들썩하게 바뀌었다.


이를 계기로 그녀는 곧장 인터넷 카페를 개설했다.

바로 요원 J, 정지혁의 팬카페다.


“벌써 5천 명도 넘었는데.”


아직 인터뷰 영상을 캡처한 사진밖에 없지만, 카페 회원 수는 벌써 5천 명을 가볍게 넘었다.

빠르게 치솟는 성장세만 보더라도 팬카페의 성장은 어림짐작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덕질을 할 만한 요소가 너무 부족한 것이다.


그의 연기를 직접 눈앞에서 마주한 윤혜선은 그의 성공을 확신했다.

실제로도 빠르게 치솟는 그의 회원 수가 그 주장을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다만, 더 많은 팬을 모으고 유지할 요소가 부족한 것이 지금 실정이다.

하지만 그것이 도리어 기회가 되었다.


“사진이 없으면 내가 찍으면 되는 거잖아.”


윤혜선은 곧바로 박바위의 이메일 주소로 메일을 보냈다.

사진작가인 본인의 커리어를 소개하며 그의 사진을 찍고 싶다는 메일을.

그리고 마침내 어제 답장이 왔다.

심지어 박바위가 아니라, 그로부터 직접!


“으헤헤.”


또다시 망상이 머릿속을 가득히 채웠다.

섹시한 슈트 차림의 모습, 두꺼운 터틀넥 니트 사이로 고개를 파묻는 모습, 그리고 저번처럼 자신에게로 재킷을 벗어 주는······


“꺄아, 어떡해!”


상상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

자신이 동경하는 사람을 자신의 입맛대로 사진을 찍어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뿌듯하고 행복했다.

사진작가가 되고 나서 후회한 순간도 많았지만, 지금처럼 사진작가가 되길 잘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슬슬 시간이···”


거의 다 됐다.

이제 곧 그와 약속한 시간이다.


딸랑, 딸랑.


입구에 걸어둔 풍경 소리가 스튜디오 가득히 울려 퍼졌다.

윤혜선의 입꼬리가 길게 늘어지며 그녀의 눈동자가 곧바로 현관을 향한다.


“어서 오세······”


하지만.

기대로 가득 찼던 그녀의 입꼬리는 금세 아래로 추락했다.

분명 그의 방문으로 단둘뿐인 프로필 촬영이 이어졌을 터인데.

분명 그랬을 터인데···


“오랜만이에요 작가님.”


그가 아니었다.

살랑거리는 풍경 소리 너머로 나타난 것은 익숙한 얼굴 여자였다.


“에? 김팀장님!”


윤혜선의 입에서 개구리 터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분명 어제 이야기했던 작업은 거절했었는데.

AND엔터 소속인 그녀가 왜 여기에?

동그란 안경 너머로 윤혜선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혹시 어제 작업 이야기라면 다른 일이 있어서 거절했을 텐데요.”


그와 단둘이 있는 상황을 너무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에 가시가 돋쳤다.

그런 자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수아는 싱긋 웃으며 손을 가로저었다.


“아, 알고 있습니다. 그 일로 찾아온 게 아니에요. 오늘은 저희 쪽 배우의 로드로 찾아온 겁니다.”

“로드로요?”


딸랑.


또다시 울려 퍼지는 풍경 소리.

그리고 둘 사이로 익숙한 실루엣이 나타났다.


“실례합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다시 들었던 목소리.

꿈에서도 들렸던 목소리다.

순식간에 고개가 풍경 쪽으로 향했다.

재빨리 돌아간 시선의 끝.


“안녕하십니까.”


그곳엔 그토록 그리던 그가 자리하고 있었다.

지난날, 죽음의 위기에서 자신을 구원해 주었던 그가.


***


“아, AND엔터테인먼트 소속이 되신 거였군요.”

“네, 어제부로 계약해서 이제 저희와 함께하시기로 하셨답니다.”


분위기는 금세 화기애애하게 달아올랐다.

이미 안면이 있는 것인지, 두 여자는 하하호호 웃으며 이야기의 꽃을 피웠다.


‘처음엔 사이가 별로인가 싶었는데.’


아무래도 기분 탓이었던 모양이다.

처음의 한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한층 누그러진 분위기 사이로 윤혜선의 눈동자가 연이어 나를 힐끔거렸다.

양 검지를 모으며 살살 눈치를 살피고만 있는데, 보는 내가 숨이 막힌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네, 네! 괜찮아요. 사, 사실 다친 데라곤 무릎 조금 까진 정도라······”


어쩐지 목소리도 기어들어 가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무사하셨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하윽!”


윤혜선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동시에 흘러나오는 묘한 비명까지.

누가 보면 총이라도 맞은 줄 알겠다.

내가 뭘 실수했나?

혹시나 해서 옆을 돌아보니, 김수아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능글맞게 웃고 있다.


“팀장님?”

“지혁 씨, 일단 작가님도 슬슬 촬영 시작하셔야 되니까. 옷부터 갈아입으실까요?”

“네, 알겠습니다.”


조금 뜬금없긴 하지만, 그녀의 말이 맞다.

나는 미리 김수아가 골라주었던 옷을 챙겨 탈의실로 향했다.


“또 이 옷이네.”


군에서도 종종 입고, 저번 촬영 때도 입었던 검은 슈트.

왜 또 이 옷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순순히 슈트를 입기 시작했다.

패션 쪽은 1도 모르는 나보다야 김수아의 안목이 백 배는 더 정확하겠지.


촤락!


나는 금세 환복을 끝내고 탈의실의 커튼을 젖혔다.

그리고.


“오오.”


동시에 김수아에게서 나지막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역시 슈트핏이 기가 막히네요. 맞춤 정장처럼 진짜 잘 어울려요.”

“그렇습니까?”

“안 그래요, 혜선 씨?”

“···작가님?”


윤혜선은 말이 없었다.

소리가 없는 대신 그녀의 표정이 반응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펑 하고 터져 버릴 것처럼 양 볼이 붉게 달아오른 채, 안경 너머로 눈동자가 화등잔만 하게 커져 있다.

더불어 눈빛이 살짝 풀려 있는데.

괜찮을까?


“너무 멋있어···”


이윽고 조그맣게 열린 입술 사이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목소리에는 미약한 한숨마저 섞여 있다.

이렇게 보니 살짝 취한 것 같기도 하다.


“과찬이십니다.”

“아, 아뇨! 과찬 아니에요오···”


어쩐지 목소리도 기어들어 간다.

옆을 보니 김수아가 고개를 돌린 채 소리 죽여 웃고 있다.

아무래도 둘 사이에 나만 모르는 뭔가가 있는 모양이다.


“자, 준비도 끝났으니 이제 슬슬 시작하시죠. 끝나면 제가 고기 사겠습니다.”

“고기요? 그럼 끝나고 같이 식사도 할 수 있는 거예요?”

“물론이죠.”


김수아가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이자. 윤혜선의 눈빛이 돌변했다.

마치 목표를 정한 포식자와도 같은 눈빛이다.

어쩐지 한기가 올라왔다.


“바로 가시죠!”

“지혁 씨 파이팅!”

“하하···”


입술 밖으로 새어 나오는 허탈한 웃음소리.

달아오른 윤혜선을 중심으로, 셔터 소리가 스튜디오를 가득히 채워나갔다.

마침내 인생을 바꿀 대망의 프로필 촬영이 시작되었다.


작가의말

앞서 공지를 올려놓았지만, 연재가 지연된 점 다시 한번 사죄드립니다.

기다려주신 독자님들 덕분에 이전보다 훨씬 더 나은 퀄리티의 한 편이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제 글을 항상 기다려주시고, 애정해주시고 항상 기다려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과 사죄의 말을 올립니다.

보다 더 노력하고 노력하는 작가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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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Act 3. 튜토리얼 - (3) +21 20.11.27 19,554 379 15쪽
2 Act 2. 튜토리얼 - (2) +26 20.11.27 21,580 351 16쪽
1 Act 1. 튜토리얼 - (1) +25 20.11.27 26,037 38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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