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찰(6)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허가를 얻은 쌍각랑이 행동을 시작했다.
휘익! 출렁!
몸을 크게 한번 터는 탄력으로 등에 매여 있던 매직백팩을 가슴께로 옮긴 녀석은 백팩의 커버를 능숙하게 연 뒤 안쪽으로 양 앞발을 폭 집어넣었다. 드론을 끄집어낸다.
“와···”
능숙한 백팩의 사용에 감탄성을 흘리는 일행. 물론 드론을 조종하겠다고 나서는 녀석이니 그정도야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눈으로 직접 보는 건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그리고 뒤이어 끄집어낸 드론 컨트롤러. 드론의 조종. 카메라의 조작, 일회용 영석을 에너지원으로 하는 단발성 공간 스캐닝. 이 모두를 컨트롤하기 위한 키며 버튼, 휠에 액정까지 주렁주렁 붙어있는 컨트롤러는 드론 못지않게 컸다.
“...저 복잡한 걸 진짜 쓸 수 있단 말입니까? 미령?”
“응. 아마도?”
“야, 꼬마야. 혹시 저 멍멍이, 미세염동도 되냐?”
“아니. 병종이잖아. 병종이 그걸 어떻게 써?”
미세염동은 을종이상의 마물 중 일부가 가진, 일상에서 손발을 대신해 줄수 있는 약한 염동력을 말한다. 사실 마물이라고 하루 종일 쌈박질만 하진 않는다. 막말로 멍때리는 시간이 훠얼~씬 많은 것이다. 머리도 인간 뺨치게 잘 돌아가는 애들이 그럼 남는 시간에 뭘 하겠는가.
사람처럼 배도 긁고 유희도 즐기고 씻기도 하는 거지. 뭐.
그리고 바로 이 그럴때 사용이 되는 것이 바로 이 미세염동, 일명 생활형(?) 염동력이다. 다만 힘 자체는 그다지 강하지 않아서 전투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능숙한 손발 사용이 어려운 야수형 개체에 주로 발견되는 걸로 보아 타고나는 능력이라기 보단 필요에 의해 발현되는 능력이라 보는 편입니다. 실제 인간형 갑종이 전투 중 미세염동을 보여주며 필요에 의해 후천적으로 익혔다고 스스로 밝힌 사례도 보고되어 있죠.”
물론 이 역시 당연하게도 우리 고양이 귀 법사님께서 설명해 주신 말씀이다.
펠이 의심스럽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아니, 미세염동조차 없는데 저 짜리몽땅한 육구로 뭘 어쩌겠다고···”
“에이, 펠 언니. 그냥 두고 봐.”
“......”
녀석은 미령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드론과 컨트롤러의 전원을 어찌어찌 넣은 뒤 이쯤이야, 하는 느낌으로 스무스하게 그 둘을 링크시켰다. 그리곤, 넘치도록 큰 두 앞발로 땅에 내려놓은 컨트롤러를 텁, 하고 덮더니...
부우우···
“헐. 진짜 되네···”
드론을 살짝 띄운 뒤 좌우위아래 무빙 및 호버링 같은 기본조작을 능숙하게 해내기 시작했다.
난 혀를 내둘렀다.
“...최소한 저걸로 쌍각랑이 드론을 이전에도 조종해 본적이 있다는 건 분명하군. 근데 경험유무를 떠나서 손가락이 없는데... 심지어 발도 커서 컨트롤러 위에 올려놓으면 컨트롤러가 가려서 안 보일 지경인데··· 대체 어떻게 조종하는 거야?”
“...이것 참.”
펠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내두르더니 양손을 우악스럽게 주물주물하는 모션을 취했다.
“이번에 돌아오면 철저하게 귀여워...가 아니라 조사해 줘야겠어. 흐... 즐거움이 늘었군.”
뭐, 녀석이 돌아오고 나서 가죽이 벗겨지든 해부를 당하든 그딴 건 내 알바 아니고, 여튼 녀석의 연습은 그렇게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번엔 한참동안 움직이던 드론을 다시 착륙시킨 뒤 마치 공부라도 하고 있는 양, 카메라 컨트롤 부분을 한동안 물끄러미 내려다보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이윽고 마치 알겠다는 양 고개를 두어번 끄덕끄덕 하곤, 접혀있던 커다란 액정을 위로 펼친 뒤, 오른쪽 앞발의 육구를 텁,하니 그 위에 올려놓는다.
뭔가 앞발이 움찔움찔하자 드론의 카메라가 지익~하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에 맞춰 변화하는 액정의 화면.
좌우위아래.
줌인, 줌아웃.
녹화 중 사진촬영 등등.
카메라조작을 만족할만큼 연습한 녀석은 이번엔 놀고 있던 나머지 한쪽 육구마저 컨트롤러에 얹었다. 그리곤 5미터 가량 드론을 띄운 뒤 그 상태로 촬영 연습을 시작한다. 초반에 살짝 버벅거리는 모습을 보이며 드론을 두번쯤 추락시키더니, 그 뒤론 이내 능숙한 모습을 보이며 이리저리 복잡한 운용을 해 낸다.
“......”
“......”
지금 필요한 건 언노운 마물의 영역 밖에서 드론을 최대한 위로 올려 녀석의 모습을 포착하는 것뿐임에도 무슨 드론으로 영화촬영이라도 하려는 양 집요할 정도로 연습을 반복하는 녀석. 그렇게 한 10여분정도가 흐른 끝에 마침내 쌍각랑이 만족한 듯 콧김을 훅 뿜으며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준비 됐대. 지금 바로 띄워서 촬영해도 되냐고 묻는데?”
“......”
제갈미령의 질문에 우린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야.”
“어? 왜? 펠 언니?”
“솔직히 말해. 너 저 멍멍이한테 뭔 짓 한거냐?”
“으, 응?”
“쌍각수 계통이 나름 머리가 좋은 건 나도 알아. 태블릿 터치에 능하더든지, 지도를 보고 자기 위치를 파악한다던지 하는 건 그럴 수 있다 쳐. 근데 저건 아니다. 진짜 아니다. 저건 그냥 사람이 늑대껍데기 뒤집어쓰고 있는 수준이잖아! 뭐야! 저 당장 길드 내근직으로 채용해도 멍! 하고는 설렁설렁 해 나갈 것 같은 레벨은! 고작 병종이 저렇게까지 지능이 높다는 게 말이 되냐! 아무리 병종이 인간에 준하는 지능을 갖고 있다지만 말 그대로 준한다는 의미지, 그게 진짜 인간처럼 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거든!?”
“...똑똑하면 그냥 좋은 거지, 뭘 그렇게 따져?”
“꼬마야. 넌 길드원이고 난 길드장이야. 기본적으로 길드장은 길드원의 능력에 대해 알 권리가 있고, 길드원은 자신의 능력을 길드장에게 고지해야 할 의무가 있어. 예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넌 그런 조건으로 길드에 들어왔지. 그리고 저 멍멍이는 네 가진바 능력의 일부고.”
“...으.”
“하물며 생존이 걸린 이 상황에서 지금 저 멍멍이가 차지하는 지분을 생각해.”
“......”
“그러니 말해. 뭐야. 넌 무슨 짓을 했고 쟨 어디까지 까지 할 수 있는 거야?”
“......”
제갈미령은 무척이나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자신의 편을 들어줄 아군을 찾는 모양. 칼라와 전유연을 거쳐 내게 구원을 요청하는 시선을 던졌지만 난 쓰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펠의 말은 틀림없는 정론이었으니까. 소녀는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한숨을 폭 내쉬었다.
“...하아. 진짜 별거 아닌데. 그러니까, 얘가 똑똑한 건··· 내··· 수, 수···”
“수 뭐?”
“...숙제 도우미라서 그런 거야.”
“...뭐라?”
펠 뿐만 아니라 그자리에 있던 모두가 귀를 의심했다. 뭐? 숙제 도우미? 학교 숙제 말하는 거냐?
-Homework?
일단 한 고비를 넘기자 망설임을 버린 듯, 소녀의 입에선 거침없이 설명이 쏟아졌다.
“...일반적으로 테이머가 처음 펫을 받아들이면 펫의 능력치는 원본보다 못해. 페널티가 걸리는 거지. 펫을 사로잡는 과정이 어떠했는가, 어떤 등급이고 어떤 종인가, 테이머와의 상성은 어떠한가··· 뭐 그런 거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 보통 원래의 60~80%정도.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펫과의 호감도가 오르면서 조금씩 능력치가 복구가 되지. 그리고 펫이 100% 원래의 힘을 되찾으면 그때부턴 펫의 능력에 플러스 보정을 더 줄 수가 있어.”
“스누삐와 카벙클은 내가 소유한 가장 오래된 펫이야. 능력의 100% 복구는 물론이고 상당한 보정치를 받았지. 그리고 그중 스누삐는 그 보정치를 지능에 몽땅 몰아 받았을 뿐이야.”
소녀의 말을 듣던 전유연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확실히... 지능과 지혜는 분명히 다른 개념이지만, 그래도 보정하는 거랑 그렇지 않은 건 상당히 차이가 나긴 해요. 머리회전 속도가 확 달라지니까. 경험을 쌓고 감정의 변화를 체험하며 시행착오를 겪는 횟수가 늘어나게 되니 더 현명해 지는 건 분명하죠. 그런데...”
“......”
“당신은 그러니까··· 고작 숙제를 시키겠다는 이유로 마법도 못 쓰는 쌍각랑에게 지능을 몰빵시켜줬다는 건가요? 펫이 훨씬 더 강해질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고작 학교숙제를 좀 더 편하게 하기 위해 버렸다고요?”
소녀는 전유연의 질문에 우물우물하며 손가락을 꼬았다.
“어··· 음··· 연언니. 난 테이머야.”
“압니다만.”
“훌륭한 테이머는 좋은 마물을 테이밍하는 것을 뛰어넘어 그렇게 테이밍한 펫을 적재적소에 써먹을 줄 알아야 해.”
“그래서요?”
“예전엔, 그러니까 B싸이클롭스가 있던 시절엔 스누삐의 역할이 사실 좀 애매했어. 전투도 그렇고 탈것으로도 그렇고, 스누삐보다 더 특화된 애들이 있었거든.”
“그래서 스누삐를 계속 놀려두고 있다가, 이건 좀 아니다 싶어 스누삐에게 어울리는 적절한 역할을 찾기 시작했지. 그러다가···”
“...수업도 한두 달 째고 시험도 한두 번 정도 쨌더니 어느 날 학교 담탱이가 갑자기 미쳐 날뛰면서 숙제를 산더미같이 내 주더라? 유급하기 싫으면 무조건 다 하라고. 평소라면 뭔 개소리 하고 무시하겠는데··· 유급까지 걸리니까 하긴 해야겠더라고. 그래서 이걸 어쩌나 하다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스누삐를 불러서 연필 하나 앞발에 테이프로 칭칭 감아서 붙여주곤 하라고 윽박질렀지. 그런데 얘가 뜻밖에도 좀 하는 시늉을 하더라?”
“그래서 깨달은 거지. ‘아, 얘는 이러라고 테이밍한 거구나! 드디어 쓸모를 찾았어!’하고 말이야. 그리곤 모아뒀던 보정치를 지능에다 몰빵시켰어.”
“......”
“......”
“......”
“......”
“그 뒤론 뭐··· 전용 마우스나 터치펜도 만들어 주고, 컴퓨터도 쓰게 해 주고, 참고서도 사 주고··· 그랬지.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영수랑 과학은 나보다 더 잘하더라? 그래서 뭐 기특해서 용돈도 쥐어주고 홈쇼핑도 하게 해 주고 했더니··· 용돈 준 걸로 자기 사고 싶은 것도 사고 막 그러더라고. 먹거리라든지 전자제품 같은 같은 거. 아, 최근엔 내 외출복 코디도 얘가 계속 해 줬다?”
““............””
““............””
“최근엔 책도 사 모으는 것 같던데··· 최근에 배달된 책 제목이 뭐더라··· 아, ‘슈퍼개미 실전 가이드’던가 뭐 그런 책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마 곤충채집이라도 하려나 봐.”
펠이 기가 막힌 얼굴로 중얼거렸다.
“...꼬마야. 여기서 나가면 당장 네 계좌부터 살펴봐. 공인인증서랑 카드 비번도 빨리 다 바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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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와 맞바꿔 펫보다 머리가 나쁜 주인이란 슬픈 타이틀을 갖게 된 소녀가 이를 갈며 그 펫에게 명령을 내렸다.
“시작해.”
쌍각랑의 앞발이 움찔거림과 동시에 드론이 높이높이 날아오른다.
10m, 30m, 50m.
그리고 100m.
시야를 가리는 빌딩이며 아파트들이 더 이상 드론의 시야를 가리는 장막이 되지 못하는 그 순간, 드론 카메라가 검은색의 작은, 하지만 드론과의 거리를 생각하면 말도 안 되게 커다랄 게 분명한 무언가를 언뜻 잡아냈다. 그리고 컨트롤러에 달린 액정화면을 쌍각랑의 머리에 달린 캠으로 본다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관측하고 있었음에도, 펠은 그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잠깐 스톱. 방금 그 검은 녀석 다시 비춰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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