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드는 좀 안타깝다.
“하루나 기절해 있었어?”
“오라버니... 하루 만에 일어난 걸 다행으로 여기셔야 해요. 에스넨 아니었으면 정말 송장치뤘을지도 몰라요.”
“음... 그 에스넨이란 사람은? 따로 인사라도 해야 될텐데...”
“아, 에스넨은 우리 길드 1파티 힐러에요. 카르멜의 고위사제죠. 선라나 천뢰 같은 대형 컴퍼니에서도 모셔가려고 몇 번이나 스카우트 제의를 해 온 굉장히 우수한 친구에요. 나중에 소개해 드릴게요.”
엥? 카르멜... 카르멜!? 날 이 동네에 양동이 하나들고 처박히게 만든 그 원흉?
“카르멜이면... 그 창조신 말하는 거 맞지?”
내가 이렇게 묻자 칼라는 그렇다 치고, 펠은 날 굉장히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미심쩍다는 듯 되물어온다.
“그 이름을 쓰는 다른 신이 또 있던가요?‘
“아, 아냐. 그보다 1파티라고 했지? 그럼 2파티나 3파티도 있는 거야?”
“3파티는 없어요. 우리길드는 한 파티에 22명인 2파티로 구성되어 있어요. 2교대 24시간 근무체제죠. 아, 물론 전투직 이외엔 하루 8시간 주5일 체제에요.”
훗. 이번엔 내가 이상한 눈으로 복수 해 줄 차례다.
“2교~대~? 요즘 같은 시대에 2교대~? 펠씨가 이 길드 주인이죠? 길원을 그렇게까지 착취하는 겁니까?”
내 짜게 식은 눈빛을 본 그녀가 발끈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 혹시 역린이었나?
“무슨 말을! 우린 길드규모가 규모인 만큼 '강습처리'가 메인이라고요! 일에 막 치여서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악덕 컴퍼니랑은 다르단 말이에요!”
강습이란 침식영역 내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서, 랜덤한 위치에 마물이 소환되어 난동을 부리는 일을 말한다. 강습을 나온 마물이 침식영역에서 일정시간을 생존하면 한층 더 강화되어 침식영역 바깥에서 활동할 수 있는 힘을 갖추기에, 신고가 들어오면 그 즉시 출동해 신속히 제거를 해야 하는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화재진압이랑 비슷한 느낌이라 보면 된다.
참고로 말하자면 길드나 컴퍼니에서 수행하는 대 마물 전투는 네 종류로 구분된다. 첫째가 방금 설명한 강습. 두 번째가 침식도를 떨어트리고 자원을 파밍하기 위한 미궁공략. 세 번째가 일정시간 안정적으로 성장한 미궁이 무너지면서 마물이 쏟아져 나오는 미궁붕괴 방어. 네 번째가 미궁, 강습 상관없이 한번 씩 튀어나오는 갑종이나 용종, 헤게몬 같은 보스 급을 때려잡기 위한 단체 레이드이다.
각설하고.
“강습신고만 안 들어오면 사실상 24시간 중에 8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대기시간은 자유시간으로 쓴다구요! 그렇게 따지고 보면 이틀에 여덟 시간 일하는 꿈의 직장인데요!”
“그 자유시간도 길드본부 내에서만 허용되는 것 아닙니까? 게다가 강습 신고가 들어오면 어제처럼 밤이고 낮이고 상관없이 나가서 목숨 걸고 투닥거려야 할 텐데요. 그리고 한쪽파티에서 감당이 안 되면 비번 파티도 지원을 와야 하죠?”
“으...”
“악덕업주.”
그녀가 내 말에 큭, 하고 가슴을 부여잡는다. 손가락을 꼬며 들릴 듯 말 듯 쫑알쫑알 변명을 한다.
“우리만 2교대 하는 것도 아닌데. 나도 3교대 하고 싶은데. 뭐든 못 부셔서 죽은 귀신이 붙은 미친 후배 년 하나 때문에 변상한답시고 돈 다 날려 먹어서 그런 건데. 우리도 한때 이런 허름한 초막삼간 같은 물건 말고 제대로 된 커다란 빌딩에서 전기세 안 아끼고 빵빵하게 살았었는데... 칼라 이년이 다시 돌아왔으니 우린 이제 안 될거야... 아직 빚도 남았는데... ”
음?
내가 눈짓으로 칼라에게 물었다.
‘너 뭔 짓 했었냐? 뭘 부수고 다녔던 거야?’
‘...이것저것요.’
‘너 2년간 밖으로 맴돈게... 성질 죽이라고 그런 게 아니라, 혹시 너 때문에 길드 망해가니까 쫓겨난 거 아냐?’
‘......’
음. 내가 모처럼 사라진 역병신+재액신+가난신을 다시 이 길드로 데려와 버린 셈이 된 건가? 저 커리어우먼의 선두주자 같던 샤방한 언니가 저렇게 기가 죽다니. 좀 미안하다.
난 내가 누워있는 치료실의 설비와 사방의 벽면을 감싼 커튼을 살피며 그녀를 위로했다.
“어, 음. 3교대는 그렇다 치고, 여기 설비 자체는 초막삼간이라고 할 정도로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창문이 하나쯤 있었다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은 하지만요.”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녀는 후후후...하는 음울한 웃음소리를 내며 벽면의 커튼을 확 젖혔다.
“이래도요?”
“헉...”
커튼 뒤편은 실로 참혹했다. 물이 스며들어 누렇게 뜬 벽지와 벽면을 종횡무진 달리는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로 굵은 균열들. 그 틈새를 왔다갔다하던 살이 토실토실한 몇몇 개미들이 펠의 분노어린 손길에 세상을 뜨자 나머지 개미들이 화들짝 놀라 틈새로 다시 기어들어간다.
세상에 네상에.
“여긴 그나마 치료실이랍시고 제일 잘 꾸며놓은 방이에요. 나머지는 상상에 맡길게요.”
“...아니, 아무리 내력벽이 아니라도 그렇지, 이 정도까지 오면 건물 무너질 걸 걱정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거 몇 층 건물이죠?”
“5층 빌딩이에요. 5층이랑 4층은 위에서 물이 새서, 지하는 침수 때문에 못써요. 사실상 폐빌딩이죠. 건물주가 뭉개려는 걸 다른 건물 세울 때까지만 우리가 쓴다고 사정사정해서 쓰는 중이에요. 나중에 철거할 때 우리가 도와준다는 조건도 덤으로 붙여서요.”
“아니... 헌팅길드면 돈 많이 벌잖아요? 마물 한 놈만 잡아도 의뢰비에 마물의 부산물비용까지 하면 제법 돈이 될 텐데요?”
그녀가 아득한 눈빛으로 어딘가 멀리고 먼 곳을 바라봤다.
“이 엘프의 탈을 쓴 파괴마 때문에 우리에겐 똥 무더기 같은 빚이 잔뜩 쌓여있답니다?”
“...아.”
그렇군. 우문현답이다.
“천정에서 떨어지는 빗물... 밥그릇으로 받아가면서 다들 허리띠 꽉 졸라매고 열심히 했다구요? 그래서 올해 중엔 원금까지 전부 청산할 수 있다고 다들 기뻐하고 있었단 말이죠? 하... 근데 내년에 와야 할 재앙신이 1년이나 빨리 돌아와 버릴 줄이야...”
“으음...”
나와 펠의 시선이 동시에 칼라에게 돌아갔다. 칼라가 그 눈빛을 받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하하...”
“하아... 웃지마. 이년아. 정들까 겁난다.”
...야. 진짜 넌 옛날에 무슨 짓을 다니고 다닌 거냐.
뭐, 각설하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건물은 불편한 건 둘째 치고 너무 위험하지 않나요? 갑자기 삼X백화점처럼 무너지면 어쩌려고?”
“삼X백화점? 거기가 어디죠?”
어... 이쪽 지구 역사엔 거기가 안 무너졌나? 아니면 미리 철거가 된 걸지도. 이제껏 예전에 살던 지구의 크게 다른 점이 없어서 그냥 아무생각 없이 주워섬겼더니만... 하긴. 마법은 가진바 특성 자체가 각종 재난에 굉장한 도움을 줄 수 있는 힘이다. 당장 ‘생명탐지’정도만 쓸 수 있어도 사고 후의 구조작업을 통한 생존율이 비약적으로 올라가겠지. 과연. 재난사고쪽으론 내가 살던 지구와 많이 다른 루트를 탔을지도 모르겠다. 주의하자.
“아, 제가 뭘 좀 착각했나 보네요. 여튼 그래서, 무너지면 다들 어쩌시려고요?”
“무너지면 무너지라죠.”
“엥?”
“보험 들어 놨거든요.”
“...그런 문제입니까?”
“우리길드, 건물 좀 무너진다고 다칠 사람 아무도 없어요. 전투직 아닌 사람들만 좀 신경 써서 챙기면 돼요. 그러니 오히려 좀 빨리 무너져줬음 좋겠는데 말이죠. 일부로 뭉갤까 생각도 해 봤는데... 요즘 보험사는 그런 쪽으론 또 기가 막히게 잘 알아차린단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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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딴데로 새는 바람에 잠시 헤메고 말았다. 난 원래 묻고 싶던 것을 떠올리곤 그걸 뒤늦게 입에 담았다.
“어제, 그 사건은 잘 처리 된 겁니까?”
“아, 네. 마무리는 잘 됐어요. 적어도 죽은 사람은 없었어요. 크게 다친 사람도. 아, 당신 빼곤 말이죠. 애로사항이 있었다면 그 마물 뱀이 완전히 작살이 나는 바람에 부산물 수거에 애를 먹었다는 정도인데... 뭐, 그정돈 소소한 일이죠.”
“...다행이군요.”
난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럴 거라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우. 큰 짐 하나 내려놨다.
“하지만.”
펠은 마치 바로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사진 몇 장을 내 앞에 떡 하니 내밀었다. 모두 다 하늘에서 찍은 사진들. 해상도로 봐선 드론으로 찍은 것으로 보이는 그 사진들은, 각도만 조금씩 다를 뿐 한결 같이 동그랗게 파인 크레이터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흠. 어제 그 현장을 위에서 찍은 사진인가 보네요.”
크레이터 주변의 부서진 가건물들과 컨테이너들을 보니 새삼 양동이가 떨어질 당시의 충격을 실감한다. 이것 참... 근데 이 가건물들이랑 컨테이너 건물들... 용도가 뭐지? 왜 이런 곳에? 어라, 잠깐만. 이거 어딘가 익숙한 지형이다?
특히 이 딱 한 장 있는 이 고고도 사진, 즉 크레이터를 비롯해 주변 지형이 전부 드러나는 사진 한 귀퉁이에 보이는 산은 진짜 유달리 익숙하다. 어디보자. 대체 내가 이걸 어디서 봤더라...?
“안 그래도 오늘 오전에 대마청(對魔廳)에서 사람들이 찾아왔어요. 덤으로 선라랑 천뢰컴퍼니에서도.”
대마청은 경찰청이나 검찰청과 같은, 침식과 관련된 모든 것에 대응하는 정부기관이고, 천뢰랑 선라는 전국구 헌팅 컴퍼니다.
“십오야 길드에서도 왔었죠.”
조금 전 살짝 갈굼을 당한 뒤, 옆에서 얌전히 대화를 듣던 칼라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 생각났다!!!
“잠깐만요.”
난 심각한 표정으로 둘의 말을 끊었다.
“지금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알겠는데... 저부터 질문 하나만 더 해도 될까요?”
펠이 조금 불만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해보세요.”
난 사진에 나와 있는 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침을 꿀꺽 삼켰다.
“여기... 이 산. 혹시 ‘안산’입니까?”
“네. 그런데요?”
“...그럼 여기, 이 주변동네가 신촌이란 말이죠?”
“네. 새삼스럽게 왜 그러세요? 마치 몰랐던 것처럼.”
“...몰랐어요. 전혀 몰랐다고요. 그냥 칼라한테 납치돼서 와보니 바로 싸움터였단 말입니다.”
“엑?”
“아니, 그보다... 그럼 제가 여기 크레이터를 만들고 작살낸 곳이... 혹시 연경대학교인건가요?”
“네. 맞아요.”
지저스 크라이스트...
내가 내 모교에다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 작가의말
내일은 공모전이 끝나는 날입니다. 끝나는 시간이 따로 기재되어 있지 않은지라... 혹시 오후 6시까지라면 오늘 이 글이 공모전 기간에 올리는 글로선 마지막이 될 것 같아서... 이렇게 미리 인사를 올립니다.
부족한 글임에도 공모전 기간 중에 꾸준히 읽어 주신 것,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OTL.
특히 댓글 달아주신 분들, 투표해 주신분들, 선작해 주신 분들, 추천 눌러주신 분들께는 뭐라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연재 중에 정말 큰 힘과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후의 일정을 말씀드리자면...
일단 연재주기가 조금 달라질 수는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완결까진 달리겠습니다(아마도).
이후로도 꾸준한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도 열심히 피드백해서 오늘보단 내일이 나은 글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아마도, 어쩌면, 혹시나, 과연, 어떨지...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좋은 불금, 좋은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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