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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pold2 님의 서재입니다.

마나 수치 99.99999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로쿤
작품등록일 :
2024.02.12 23:50
최근연재일 :
2024.04.04 16:05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52,529
추천수 :
1,138
글자수 :
284,751

작성
24.02.14 11:44
조회
3,095
추천
46
글자
8쪽

각성(1)

DUMMY

나는 매일 밤, 코어 결정을 손에 쥔 채 잠이 들었다.

생각 같아서는 일할 때도 들고 다니고 싶었지만 잃어 버릴까 두려운 마음이 더 컸다.

일과 시간에는 내 방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다 잘 숨겨 두었다가, 잘 때가 되면 손에 꼭 쥔 채 잠이 들었다.

태어나서 이렇게나 마음이 편한 적이 있었던가.

환경이 좋아진 탓인지, 나는 매일 꿀잠을 잤다.


529지구는 각성자들의 꼬장이 훨씬 덜했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모든 일이 너무 순조로웠다.

청소를 맡은 구역은 1129지구에 비해 월등히 넓었지만 도리어 일은 줄었다.

넓은 구역을 청소로봇이 대신해 준다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나는 휘파람을 불면서 느긋하게 일할 수 있었다.

이따금 각성자들이 보이면 차라리 멀찌감치 피했다.

만약 그것 때문에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내 뒤에는 자이라가 있다.


*


하루 또 하루.

시간은 물 흐르듯 흘러갔다.

그렇게 1년.

1년이 지났다.


“오늘도 자고 온다고?”


자이라 녀석.

얼마 전 애인이 생겼다.

텔로미어 공격대에서 메인 탱커가 되더니 아주 그냥 살판 났다.

내가 1년 간 청소하며 평범하게 지내는 동안 자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다.

녀석이 자랑스럽다.


“그럼 오늘은 컵라면이나 먹어야겠다.” 내가 말했다.

“미안. 공격대에 참한 아가씨 있는데 너도···”


화색을 띠고 말하던 자이라가 말끝을 흐렸다.


“됐어 임마. 어느 각성자가 클리너를 만나려고 하겠냐? 입장 바꿔서 생각해 봐라.”

“야, 차원영! 그런 소리 마. 직업에 귀천이 어디 있다고! 내가 암컷이었다면 널 데리고 살았을 텐데!”

“지금도 그러고 있거덩? 그리고 됐거덩? 넌 내 취향 아니거덩? 빨리 출근이나 하셔.”


나는 자이라의 우직한 등을 떠밀었다.

메인 탱커가 되더니 등판이 더 넓어진 것 같았다.


“끙··· 이 자식아! 힘 주지 마라고!”

“크크크, 간다!”


쾅!


문이 닫히고.


“아싸, 내일까지 자유!”


그렇다.

자이라가 좋지만 나는 혼자 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혼자 있으면, 어떤 감정도 느낄 필요가 없다.

게다가 원하는 만큼 마음껏.

코어 결정을 들여다볼 수 있으니까!


일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물을 끓이고 컵라면의 포장을 뜯었다.


졸졸졸.


컵라면에 물을 따랐다.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재생한다.

사가트 길드의 라울이 사냥하는 영상이었다.

사가트는 22층 랭킹 1위 길드였다.

사가트 길드의 1공격대장은 은발의 엘프로 붉은 용비늘을 가공한 갑옷을 입고서 탱킹을 한다.

그것도 자신이 직접 뜯어낸 용비늘로!

잘생긴 데다 엄청난 무력을 가진 만큼, 공격대장 라울의 주가는 하늘을 찔렀다.

그는 아이돌보다 인기가 더 많았다.

딜까지 쩌는 탱커 라울은 A급 던전 보스를 잡을 때도 결코 어그로가 튀는 법이 없다고 한다.

나는 라울의 영상을 볼 때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은발의 엘프 라울의 외모는 나와 판이하지만 적어도 그는 눈이 두 개, 팔다리도 두 개씩이었다.

인간과 엄청 흡사하다는 말씀!


‘당신의 심장에서 요동치는 푸르른 오라/ 온몸을 뒤덮는 그 찬란한 물결에/ 내 가슴 덩달아 요동치네···’


어느 음유 시인의 노래가 떠오른다.

엘프족에는 예술가도 많다.

내가 보기에 인간은 엘프를 닮은 것도 같은데··· 이건 아마도 내 착각일 거다.

오랫동안 동경하면 비슷한 점을 찾아내게 마련이니.

요즘은 영상을 보며 라울과 나의 공통점을 찾아 내며 자위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엘프를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화면발 오지네··· 잘생겼다.”


보면 볼수록.

남자인 내가 봐도 라울은 극강의 미모를 자랑했다.

덕분에 트롤이 아름답다는 고정관념도 얼마간 느슨해졌다.

무엇보다 그는, 고작 두 개의 눈과 두 개의 팔로 랭킹 1위 길드의 메인 탱커가 아니던가!

라울은 내게 희망이었다.

그는 나의 아이돌이었다.


여느 날처럼 단지 내 공원 비질을 끝내고 나무 아래서 쉬고 있었다.

초록 잎이 하나둘, 떨어진다.


툭.


어쩌다 어깨에 잎이 떨어지기도 했다.

나는 어깨에 떨어진 잎을 주워 들었다.


“어라.”


타원형의 거칠거칠한 테두리를 가진 평범한 잎이었다.

나뭇잎이 원래 이런 모양이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으에에엥?”


타원형이던 이파리에 홈이 생기며 나뭇잎의 모양이 변했다.

깜짝 놀란 나는 손에서 나뭇잎을 떨어뜨렸다.

떨어뜨렸는데···

분명 그랬는데, 나뭇잎은 바닥에 닿지 않았다.


“허허!”


허공에 두둥실 뜬 나뭇잎.

이게 어찌된 영문인 걸까.

나는 눈을 비볐다.

바닥과 나뭇잎 사이를 떠받치고 있는 푸른 기운이 보였다.

정말이다!

보인다!


“그럼 설마··· 이것도 내가 한 거라고?”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없었다.

나는 나뭇잎과 바닥 사이를 떠받치는 마나 방울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퐁!


그대로 손가락이 통과한다.


“감촉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한데···”


그런데 마나가 차츰 흩어지기 시작했다.


“아악, 안 돼! 조금 기다리라구!”


나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외쳤다.

하지만 마나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마나가 완전히 흩어진 뒤에 나뭇잎은 바닥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모양도 원래 대로 돌아왔다.


“뭐야!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침착해, 차원영. 생각해라 생각!”


나는 나무 아래서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았다.

갑자기 일어난 일에 얼마나 흥분했던가.

흥분해서 나무 주변을 미친 듯 서성거리던 차에 푸른 일렁거림이 시야의 사각에 들어왔다.

그쪽을 향해 고개를 쳐들었다.

입이 떡 벌어지는 광경이었다.

무수한 나뭇잎에···

그러니까 이파리 하나하나마다 마나가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정말로 마나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 걸까?

이렇게 갑자기?

믿어지지 않는다.


“하하···”


설마···


“나···”


각성자가 된 건가?

당장 바지에 오줌을 쌀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순간.

나무에 맺혀있던 마나들이 줄기를 타고 내려와 순식간에 어떤 모양을 만들어 냈다.

그건···

나였다.

마나로 된 나.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두개골이 흔들리고, 세상이 진동했다.

뒷덜미가 찌릿찌릿하다.

뒷덜미에서 시작된 전류가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눈앞에 번개가 친다.

몇 번이고 번쩍거린다.


“저기요? 괜찮아요? 저기요! 괜찮아요? 내 말 들려요?”


정신이 돌아오고 있었다.


꿈뻑꿈뻑.


나는 눈을 깜빡거렸다.

뭐지, 꿈인가?

엘프다.

아마도 여성.

마나 같이 영롱한 파랑의 눈동자가 나를 내려다본다.

눈동자가 정말로 푸르게 빛난다.

그대로 아픈 척 더 누워 있고 싶었다.

머리카락에서 아카시아 향기가 나는 듯하다.


킁킁킁.


“에에엥취!”


이런!

냄새를 맡다가 머리카락이 콧구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하하, 안녕하세요.”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좀 괜찮으세요?”


걱정스러운 얼굴로 엘프가 물었다.

누군가 나를 이렇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본 게 얼마만인가.

아마도 처음인 것 같다.

여전히 나는 그녀의 허벅지를 베고 누워 있었다.


“아직 편두통이 좀···”

“그럼 나아질 때까지 누워 계세요. 힐은 넣어 두었는데 듣질 않네요. 심상일 가능성이 있어요.”


힐이라.

힐러인 모양이다.

힐러가 여긴 웬일이지?

심상은 뭐지?

내가 아는 그 심상은 아닌 듯한데.

해가 뉘엿뉘엿했다.

붉은 노을이 엘프의 새하얀 옆얼굴에 내려앉아 있었다.

아픈 척을 해서인지 정말로 졸음이 쏟아진다.

놀랍게도 나는 그대로 또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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