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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pold2 님의 서재입니다.

마나 수치 99.99999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로쿤
작품등록일 :
2024.02.12 23:50
최근연재일 :
2024.04.04 16:05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52,385
추천수 :
1,138
글자수 :
284,751

작성
24.03.26 08:55
조회
126
추천
3
글자
11쪽

차원이 다른 클래스

DUMMY

마나를 분출할 수 있느냐는 내 질문에 모두가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 하는 표정.


“왜, 스킬을 꺼내려면 마나가 필요하잖아요?”


이번에도 셋 다 동시에 고개를 갸웃했지만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마나를 스킬을 꺼내는 데 쓰지 않고, 그냥 밖으로 내보낼 수 없겠느냐는 얘기예요.”


셋은 동시에 턱을 만지작거렸다.

합숙의 효과가 크긴 큰 모양이다.

그들의 반응을 보고 기대를 한 내 자신이 한심해졌다.

아니, 한심해지려고 하는 찰나···


“스킬 제작자를 만나 보는 건 어때요?” 제라드가 말했다.

“스킬··· 제작자를요?”


그랬다.

내가 사용하는 모든 스킬들.

그것을 만든 이가 현실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한심해지려고 했던 거 취소!

일행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건 신의 한 수였다.


연금술사 손나래를 소개 받은 것처럼, 사이다를 통하면 스킬 제작자를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을 듯했다.


“맡겨만 주십시오! 종맥 하면 사이다! 사이다 하면 종맥 아닙니까!”


종맥을 외치던 사이다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다.


*


사이다에 따르면 스킬 제작자는 장인? 혹은 예술가와 비슷한 직업이었다.


‘고위 각성자인데도 굳이 돈벌이가 안 되는 일에 골몰하는 종들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원래 이런저런 종들이 많으니까요! 저는 그런 이들을 지원하는 재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후후후···’


사이다가 생글거리며 말했었다.


스킬 제작자의 거처는 손나래의 작업실보다 협회 본관 뒤쪽으로 더 들어가야 했다.


근처에 가서는 좀 헤맸다.

주변이 말끔하게 정리된 손나래의 거처와는 정반대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길이 너저분하다.

허리까지 자란 잔디를 헤치고 나아간 끝에 겨우 문앞에 도착.


콩! 콩! 콩!


쇠붙이로 된 문고리로 노크했지만 잠잠하다.

다시금 문을 두들겨도 역시나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삐거어어어억-


문이 날카로운 신음을 토했다.

바깥 풍경에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안쪽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휙.


일단 바닥에 쌓인 잡동사니를 뛰어넘었다.

그런 다음에는 몸을 숙이고, 틀고, 트위스트를 추었다.


얼마간 헤맨 끝에 구석자리에 웅크린 아이를 발견했다.

아이는 좁은 책상에서 스탠드 불빛에 의지해 무언가에 골몰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아이는 스킬 카드에 골몰하고 있었다.

아직 스킬이 새겨지지 않은 빈 카드였다.

아이의 손 끝에서 흘러나온 마나와 주변의 마나가 뒤엉킨 채 카드에 닿을락 말락했다.


꿀꺽.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는데.

소리를 들었는지, 아이가 뒤돌아 봤다.

어린 트롤이었다.

아이가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혹시 스킬 제작자이십니까?”


아이가 나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말했다.


“저는 베르트랑이에요.”

“스킬 제작자는 어딨니?” 내가 물었다.


아이는 대답 대신 내 머리 위를 쳐다봤다.

아이의 시선을 따라가니···


“헛!”


머리위에서 누군가 나를 쳐다보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전혀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쿡쿡쿡···”


나와 눈이 마주친 이가 살포시 바닥에 착지했다.

그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를 봤다.


“차원영 헌터님이신가?”

“네, 그런데 어떻게···”

“나는 엔리케라고 함세.”


어깨까지 늘어진 머리카락의 색은 파랑.

그가 입고 있는 로브도 짙은 파랑이었다.

고전적인 디자인의 로브였다.

다소 촌스럽다고 해도 좋을 스타일이지만 미묘하게 잘 어울린다.


“그래, 마나 분출을 배우러 왔다고?”


나는 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런데 내가 그 말을 한 적이 있던가?


“어디 보자···”


엔리케는 눈을 감고, 내 쪽으로 양손을 뻗었다.

그런 뒤에는 무언가를 상상하듯, 손가락을 곰지락거렸다.

이내 그의 몸에 흐르던 마나가 양손으로 모였고, 고운 입자처럼 변한 마나가 그의 손을 빠져나왔다.

엔리케의 손끝을 떠난 무수한 입자들이 내 양발을 떠받치며 몸이 떠올랐다.


“어엇!”


그것은 새로운 차원이었다.

새로운 차원의 마나 활용.

마나 분출!


“자, 이제 다시 업무를 재개해 볼까나?”


엔리케는 그 말을 남기고 자신의 좁은 책상으로 갔다.

아직도 내 몸은 허공에 떠 있었다.


“아···”


더 묻고 싶었지만,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모르겠다.

아이가 나를 흘끗 보고는 또르르 책상 옆으로 갔다.


헝클어진 머릿속을 정리하는 동안, 이미 엔리케는 책상에 앉아 작업을 시작했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작업실을 나섰다.

잔디를 헤치며 걷고 있었지만, 내 정신은 아직 엔리케의 작업실에 있었다.

그의 손을 떠나 가루처럼 흩날리던 마나.

그리고 그가 분출한 마나가 내 몸을 떠받쳐 공중으로 떠올랐다.

혼란스러웠다.

마나를 자유롭게 응축하고, 하늘을 날 수 있고, 마나로 날개를 만들고···

이쯤이면 나보다 마나 활용이 자유로운 각성자는 없을 거라고 여겼는데.


“하하하···”


조금 전 내가 본 것은 다른 차원의 마나 운용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코앞에서 대가의 실력을 목격하고는 스스로가 더없이 한심해졌다.

하물며 엔리케의 마나 수치가 그리 높은 것도 아니었다.


웅장한 고성처럼 생긴 협회 건물을 다소 벗어나 한동안 잘 정돈된 인도를 걸었다.

이따금 쇼핑백을 든 각성자들이 옆으로 지나갔다.

시선이 내게 다녀가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들은 부산을 떨지 않았다.

그저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는 것이 전부였다.


공원을 거닐던 중에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화염탄··· 대마법사 엔리케.”


내가 아까 만난 인물은 내 스킬, 그러니까 화염탄을 만든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심장이 두방망이질 쳤다.

인간이 스킬을 만들었다기에 고개를 갸웃했었다.

당시에는 나와 같은 종인 인간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때였으니.

이틀 사이 인간을 두 명이나 봤다.

그것도 엄청나게 유능한 인간 둘을.


*


원래는 마나 분출을 배워 게이트 안으로 돌아가 일행과 합류할 예정이었지만 저택으로 방향을 틀었다.

에리얼을 만나러 갈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역시나 마나 분출에 대한 숙제를 푸는 것이 먼저라는 판단이었다.


저택에 돌아와서는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십니까?” 랄프가 물었다.


생각이 딴 데 가 있어서 질문도 듣지 못했다.


“차 헌터님?”

“네?”

“고민이 있으신지 물었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어려운 숙제가 하나 있어서요.”


내 말을 들은 랄프가 잠시 턱을 만지고는 말했다.


“때로는 에둘러 가는 게 더 빠른 길일 때가 있습니다.”


과연,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모르게 집요해졌다.

내 오랜 습관 중 하나인 집착.

집착은 떨쳐 내려하면 더 찰싹 달라붙는 거머리 같은 놈이다.


“랄프. 혹시 지난번에 하던 얘기, 더 들려 주실 수 있나요?”

“지난번에 하던 얘기요?”

“왜 그, 던전에서···”

“아, 기억 났습니다.”


랄프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 맞은 편 의자를 빼서 앉았다.


“지난번에 어디까지 얘기했지요?”

“헌터를 그만두게 된 이유요.”


그때 랄프가 지었던 표정, 우수에 젖은 얼굴은 여전히 내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었다.


“저는 일생 일대의 실수를 했습니다.”


파티원은 모두 다섯이었다고, 랄프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두가 쟁쟁한 팀원들이었다.

어쩌면 파티장인 자신의 실력이 가장 떨어졌다고.

팀원들과는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 온 사이였고, 눈빛만 봐도 상대가 무슨 말을 할지 알 정도였단다.

비극이었다.

힘으로 밀어붙이자는 자신의 의견을 팀원들은 묵묵히 따라 주었고, 그 책임까지 떠안았다고 했다.

랄프는 불합리한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팀장. 이 마당에 거짓말을 하지 않을게. 여기서 한 명만 돌아갈 수 있다면 팀장이 가야 해.’


한 팀원이 말했다.

다른 팀원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랬던 그들도 나중에는 하나둘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동감이야. 물론 내 마누라를 생각하면 내가 나가고 싶지. 그런데 다른 팀원들의 피붙이들까지 챙길 자신이 없어. 스타일 알잖아? 그렇다고 나 혼자 떵떵거리며 잘 살 자신도 없고. 팀장한테 허드렛일을 맡기는 거야. 먼저 좋은 곳에 가서 기다릴게.’


이제 시간이 없었다.


‘잘 부탁해.’

‘영광이었어 팀장.’


좀처럼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고 랄프는 말했다.

입도 떨어지지 않았다고.

마치 온몸이 마비되어 버린 것 같았단다.


“그때, 제 어린 딸아이의 얼굴이 스쳤습니다.”


랄프의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 아이에게 한 번도··· 단 한 번도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제야 발이 떨어졌어요.”


그 한 마디를 전할 수만 있다면 팀원들을 버리고 간 벌을 평생 동안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벌은. 지금도 달게 받고 있는 중입니다.”


그 말을 할 때의 랄프는 내가 지금껏 보지 못했던 표정을 지었다.

동시에.

그의 마나 수치가 급격히 낮아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눈에 보이는 수치는 낮아졌는데 약해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저 고요했다.

알고 보니 그는 자신의 몸에 흐르는 마나 수치뿐 아니라, 실내의 마나 흐름까지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전율.

그러한 랄프의 모습을 보며 머리에 스치는 장면이 있었다.


“엔리케.”


그가 마나를 분출해 내 몸을 띄우던 때.

멍청하긴!

대마법사의 마나 수치는 결코 낮은 것이 아니었다.

지금과 비슷한 고요함이 그때도 있었다.

지금 랄프는 자신보다 한 단계 낮은 마나 수치지만, 결코 원래의 자신보다 약하지 않다.


랄프의 마나 수치는 차츰 원래 대로 돌아왔다.

또한 실내의 고요했던 흐름도 본래의 색을 되찾았다.

아무래도 엔리케처럼 자신이 의도해서 그런 상태에 들어간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고맙습니다 랄프. 이야기 잘 들었어요. 정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지금은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중에 또 얘기 들려 주세요!”


*


밤이었다.

하지만 밤이고 낮이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당장에 땅을 박차 올랐다.


단숨에 게이트를 돌파하고, 밤하늘을 날아 동굴에 도착했다.

하지만 동굴이 비어 있었다.


“뭐야, 다들 어디 간 거야?”


나는 당장 라울에게 교신을 시도했다.


―통화권을 이탈했습니다.


그 다음 사이다에게, 끝으로 제라드한테 했지만 모두 응답이 없었다.

일단은 움직여야겠다고 판단했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밤하늘은 캄캄했지만, 밤이 어두울수록 내 눈에 더 선명히 보이는 풍경이 있었다.

마나의 흐름.

척 보기에도 오십은 족히 될 만한 수의 마나 덩어리가 파스타족 마을 상공에 떠 있었다.


“이런···”


마나의 흐름이 똑똑히 보이는 나였지만, 한눈에 팀원들을 찾을 수는 없었다.


“연락이라도 좀 받지.”


마을로 좀 가까이 내려가 볼까 하는데, 위쪽 낌새가 심상치 않았다.

이내 상공의 마나가 강화되며 마을로 브레스가 쏟아졌다.

한 마리의 브레스가.

그 다음은 열 마리.

그 다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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