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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 님의 서재입니다.

귀검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박이
작품등록일 :
2011.08.24 17:06
최근연재일 :
2011.08.24 17:06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26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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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
글자수 :
198,860

작성
11.06.04 10:53
조회
7,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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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글자
11쪽

귀검 제4화--1

DUMMY

제4화 내가 지켜주겠다.


건양을 떠났던 마차는 당일 다시 건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출발할 때와는 달리 인근 마을이 아니라 철검문의 앞에 당당하게 멈춰 섰다.

어느덧 날은 저물어 있었다.

철검문의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굳게 닫힌 대문 앞에서 백우는 한동안 가만히 멈춰 서있었다.

십년 세월, 그토록 돌아오고자 했던 곳이었다.

하지만 백우는 쉽사리 철검문의 대문조차 열수 없었다.

‘ 내게 이 문을 열 자격이 있는가?’

백우는 아직 귀검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신이 철검문에 다시 발을 들이는 것을 결코 위충이 바라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했다. 그래서 백우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백우가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대문을 밀었다.

뒤에 선 남궁혜와 위지겸 역시 깊게 호흡을 들이키고 있었다.

남궁혜와 위지겸은 감히 백우의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이 백우의 상념을 방해하지 않기 위함이 아니라 눈앞에 다가올 참혹한 광경을 확인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대문이 열리자 세 사람을 반기는 것은 죽은 시체들뿐이었다.

이미 모두가 예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졌던 남궁혜와 위지겸의 얼굴에 절망감이 번졌다.

반면 백우의 시선은 한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바로 그의 사형인 위일천의 시체가 놓여있는 곳이었다.

“ 어서오너라.”

백우는 위일천의 부릅뜬 두 눈이 마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백우의 입가에 가벼운 미소가 번졌다.

“ 죽어서도 사람 좋은 것은 여전하구려.”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이었다.

이런 백우를 지나쳐 위지겸이 재빨리 앞으로 달려 나갔다.

죽은 위일천의 시체를 부둥켜안은 채 오열하는 위지겸, 연이은 충격으로 잃어버렸던 울음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아버지의 시체 앞에서 비로소 현실로 돌아온 것이었다.

남궁혜가 백우의 옆을 지나쳐 오열하는 위지겸의 등을 토닥였다.

그리고 힐끔 백우를 쳐다보았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눈치였다.

그러나 백우의 입가에 살며시 번지는 미소가 그녀의 말을 막았다.

짧은 순간 백우는 이십년 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백우는 고아였다.

남평(南平)의 자미원이라는 시설에서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위충이 자미원을 찾았고 두 사람의 인연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위충과 함께 자미원을 찾았던 젊은 무인들의 비무, 아홉 살에 불과한 백우가 이들의 비무를 흉내 내는 광경은 한눈에 위충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길로 백우는 위충을 따라 철검문에 들어왔다.

불과 삼년, 백우의 자질은 위충의 상상을 초월했고, 완벽하게 위충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천재, 그 이외의 다른 어떤 수식어도 필요가 없었다.

그때부터 위충은 철검문의 모든 대소사를 위일천에게 맡겼다.

그리고 모든 시간을 백우와 함께했다.

이때부터 사람들의 입에서 백우가 철검문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말이 떠돌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위일천에게 백우가 더없이 껄끄러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위일천의 생각은 달랐다.

위일천이 백우를 만날 때면 언제나 백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 너는 아버지의 자랑이며 또한 나의, 그리고 철검문의 자랑이다.”

언제나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의 질시에도 친형 이상의 다정한 모습으로 자신을 감싸주었던 위일천의 모습이 지금도 백우의 눈앞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눈물이었을까?

무언가 아련한 물방울이 그의 눈 주변에 어렸다.

남궁혜는 이것을 그녀의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무이산에서 그토록 참혹한 광경을 연출했던 저 잔혹한 사람의 눈에서 눈물이라니,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남궁혜의 시선을 느꼈음인가?

백우가 다시 무심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백우의 상념이 끝난 듯하자 남궁혜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입을 열었다.

“ 이대로 여기에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무언가 대책을...........”

백우가 무심한 표정으로 남궁혜를 바라보았다.

“ 너는 대체 이곳이 어디라고 생각하느냐?”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남궁혜는 무모한 자만심이라고 생각했다.

“ 하지만.............”

남궁혜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백우의 눈에 살기가 번뜩였기 때문이었다.

“ 건양은 철검문의 영역이다.”

위일천이 마지막으로 채승희에게 말했던 나는 철검문주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말이었다.

결코 떠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 붙잡지는 않겠다.”

떠나려면 혼자 떠나라는 뜻이었다.

남궁혜는 답답했다.

이미 백우의 무공을 어느 정도 경험한 상태였다.

하지만 상대는 천하의 주인인 사혈성이었다.

혼자서는 아니 천하에 그 어떤 단일 세력도 사혈성을 상대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이런 현실을 모르는, 아니 외면하려는 백우의 모습이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그러나 혼자 떠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 떠나려고 해도 마땅히 갈 곳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순간 백우가 자신의 검으로 손을 옮겼다.

동시에 싸늘한 기운이 그를 에워쌌다.

무언가를 말하려던 남궁혜는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백우는 천천히 몸을 돌리면서 대문 밖을 바라보았다.

“ 두노가 아닌가?”

백우는 말과 동시에 검의 손잡이에서 손을 놓았다.

다시 무심한 표정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백우, 그 앞에 한명의 노인이 공손히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 소공자, 돌아오셨습니까?”

백우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노의 본명은 두의였다.

그의 신분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적어도 이곳 건양에는 아무도 없었다.

단지 위충이 살아있을 당시 위충의 시중을 들던 인물로만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위충의 사후 두의는 철검문을 떠나 인근의 마을에 정착했다.

“ 두노가 어떻게?”

백우의 말에 두의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 괜찮네, 어서들 나오시게. 어서들..........”

두의의 말과 동시에 숨어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그 모습을 드러냈다.

도합 아흔여덟 명의 사람들, 남녀노소가 뒤섞인 이들은 모두 관을 하나씩 끌고 있었다.

철검문에 거주했던 사람들의 숫자는 모두 아흔여덟 명, 그들의 장례를 위해서 인근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것이다.

백우가 힐끔 남궁혜를 바라보았다.

“ 이것이 철검문이다.”

남궁혜는 이런 백우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건양에서의 철검문의 위치는 단순히 무림의 일개 방파가 아니었다.

하나의 가족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천하의 사혈성이 본보기로 남겨둔 시체의 장례를 치루기 위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철검문을 찾을 까닭이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사혈성을 거역하는 일이며 또한 그에 대한 대가가 얼마나 클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 두노, 깃발을 준비해주게.”

백우의 말에 두노가 재빨리 허리를 숙였다.

그와 동시에 백우가 위지겸을 향해 돌아서며 호통을 내질렀다.

“ 철검문주께서는 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소이까?”

백우의 호통에 흐느끼던 위지겸이 울음을 멈췄다.

그리고 얼굴에 눈물자국을 지우면서 철검을 들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서는 위지겸의 모습에 두노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두노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하지만 울고 있었다.

너무나 애처롭고 불쌍해서 한달음에 달려가 위로하듯 위지겸을 안아주고 싶었지만 두노는 위지겸을 안아주는 대신에 구부러진 허리를 더더욱 굽혔다.

“ 노복이 신임 철검문주를 뵈옵니다.”

두노의 인사와 함께 뒤에선 아흔여덟 명의 사람들이 재빨리 허리를 숙였다.

“ 철검문주를 뵈옵니다.”

모두가 울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눈물은 보이지 않았다.

꽉 움켜쥔 두 주먹에 흐르는 땀이 이들의 눈물을 대신하고 있었다.

두노는 위지겸을 지나쳐 위일천의 방으로 향했다.

그사이 사람들은 철검문내의 시체를 마당으로 운반하기 시작했다.

백우 역시 마차로 돌아가 채승희를 안치한 거대한 철관을 위일천의 옆으로 가져왔다.

몇몇 사람들이 채승희의 시체를 나무로 된 관으로 옮겼다.

이를 지켜보는 위지겸은 눈물대신 계속해서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오늘 오전까지만 해도 살아있던 사람들, 아버지, 어머니, 철검문의 무인들, 시비들, 어린 아이들의 시체까지 모두 마당으로 옮겨졌고, 관에 안치되고 있었다.

백우가 위지겸의 옆으로 다가와 그의 어깨를 가볍게 움켜쥐었다.

“ 문주가 아니오이까?”

이상하게도 백우의 말에 위지겸의 떨림이 멈췄다.

위지겸의 떨림이 멈추자 백우가 나지막이 말했다.

“ 어깨를 펴라, 그리고 당당하게 지켜봐라. 살아서도, 죽어서도 저들이 믿고 의지할 자는 오로지 철검문주 뿐이니............”

위지겸은 애써 어깨를 펴고 사람들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런 위지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한없는 신뢰가 담겨 있었다.

이 신뢰야 말로 이백년 철검문의 힘이었다.

모든 시신이 관에 안치되고 아흔일곱 개의 관이 가지런히 자리하자 두노가 깃발을 펄럭이며 마당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철검위진천하(鐵劍威震天下).

흔하디흔한 여섯 글자였다.

하지만 이 여섯 글자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은 번뜩이고 있었다.

이 깃발은 제칠차 정사대전까지 철검문이 사용했던 깃발이었다.

어느덧 어둠이 잦아들었다.

“ 횃불을 밝혀라.”

백우의 말에 사람들이 서둘러 주변의 불을 밝혔다.

남궁혜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이런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 미친............’

그날 밤부터 장례식이 시작되었다.

건양의 사람들 대부분이 장례식에 참석했으니 그야말로 성대한 장례식이었다.

이튿날 아침 일단의 무리들이 철검문을 찾았다.

놀랍게도 이들은 혈겁의 주범인 이덕무를 비롯한 십여 명의 천살인검대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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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99 물물방울
    작성일
    11.06.04 13:34
    No. 1

    다시 뒤를 쫒을 테지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 山山水水
    작성일
    11.08.26 15:58
    No. 2

    철검문주가 너무나 정말 너무나 힘없이 파리 한마리 처럼 죽었군요
    너무나 무모한 저항 같기도 하고, 철검문의 무공은 제대로 익히기는 한 건가요?
    무공을 열심히 익히지 않은 건가요?
    상황이 이상하기도 하구요

    그런 철검문을 보호할 수도 있었던 백우라는 인간......이해가 안되네요
    다 죽었는데 그까짓 애하나만 살리고, 뭐 하는 짓인지......
    아, 아무리 훌륭한 인간도 백명의 목숨과 바꿀 수는 없지 않나요?
    건필하시길......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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