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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 님의 서재입니다.

귀검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박이
작품등록일 :
2011.08.24 17:06
최근연재일 :
2011.08.24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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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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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60

작성
11.06.0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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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귀검 제3화--3

DUMMY

“ 그만!”

어디선가 여자아이의 외침소리가 들렸다.

현보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남궁혜임을 확인했다.

남궁혜는 핼쑥한 표정으로 중년인을 향해 다시 한 번 외쳤다.

“ 그만하면 되었어요.”

순간 중년인이 남궁혜를 힐끔 쳐다보았다.

남궁혜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다가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남궁혜가 엉덩방아를 찧는 순간 중년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위지겸이 화들짝 놀라면서 중년인을 향해 외쳤다.

“ 그만하세요. 사숙.”

채승희는 중년인을 도련님이라 칭했다.

그것으로 위지겸은 중년인이 자신의 사숙이라는 사실을 간파했다.

때문에 위지겸은 중년인을 이렇게 사숙이라 칭하고 있었다.

위지겸의 목소리에 비로소 중년인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내 다시 현보를 향해 힐끔 고개를 돌렸다.

현보는 갑자기 어지러움이 밀려왔다.

지금까지 지혈을 하지 않은 탓에 출혈이 너무 심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이유일 뿐, 단지 중년인의 시선을 다시 대하는 것만으로도 이제는 그에게 고통이었다.

결국 현보는 자신도 모르게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저항할 수 없는 공포 앞에서 현보는 자신이 너무나 무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중년인이 비로소 손에 쥔 단검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단검이 그의 손에서 떠나기가 무섭게 지금까지 중년인의 주변을 감쌌던 사이한 기운이 삽시간에 사라졌다.

현보는 불현듯 조금 전 채승희의 말이 떠올랐다.

“ 이것이 귀검인가?”

현보는 비로소 채승희가 말한 귀검이 단순한 검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귀검은 바로 눈앞의 중년인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런 현보를 향해 중년인이 지극히 차분하고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 철검문의 사람들은 모두 죽었는가?”

이미 중년인의 몸에서 귀기는 사라졌다.

그리고 너무나 차분한, 그래서 어찌 보면 다소 평온하기까지 한 최초의 그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보는 즉시 대답했다.

“ 그렇소이다.”

철검문의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중년인은 무심한 표정이었다.

이것이 오히려 현보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고 있었다.

“ 소속은?”

현보가 재빨리 대답했다.

“ 사혈성 산하 천살문의 인검대외다.”

중년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 사혈성?”

“ 그렇소이다. 당금 무림은 사혈성의 천하외다.”

중년인이 계속해서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 사혈성이라면 사도의 방파인가?”

현보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했다.

“ 사혈성은 사도의 방파가 아니라 사도 전체외다.”

중년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 역시 사부님의 우려대로 기어이 사도가 천하를 차지했는가?”

말하는 와중에 중년인은 계속해서 땅에 떨어진 단검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그때마다 현보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순간 현보의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현보가 힐끔 뒤를 확인하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세 갈래의 길에서 흩어졌던 수하들이 이곳으로 합류하는 것이다.

중년인이 천천히 단검으로 손을 움직였다.

이를 확인한 현보가 수하들을 향해 절규하듯 외쳤다.

“ 돌아가라, 달아나라, 이것은 명령이다.”

현보의 절규와 동시에 중년인이 단검을 꽉 움켜쥐었다.

현보가 중년인을 향해 애원하며 말했다.

“ 제발.”

하지만 천천히 고개를 가로젓는 중년인의 얼굴에는 이미 귀기가 번뜩이고 있었다.

현보는 다시 한 번 사람이 한 순간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동시에 다시 한 번 절규하듯 외쳤다.

“ 달아나라, 명령이다. 이 일대에서 무조건 벗어나 본대에 합류하도록.”

이것이 현보의 마지막 외침이었다.

중년인의 단검이 현보의 목을 스치듯 지나갔다.

현보의 목이 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남겨진 그의 목에서 피가 솟구쳤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중년인이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순간 그의 등 뒤에서 다시 앳된 아이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 그만, 그만하면 되었어요.”

외침과 동시에 중년인이 화들짝 놀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손에 든 검을 바닥에 떨어뜨리면서 중얼거렸다.

“ 사부?”

한순간 중년인의 귀에 위지겸의 음성이 죽은 사부 위충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물론 이것은 단순한 환청이었다.

하지만 어린 위지겸의 모습에서 중년인은 위충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었다.

“ 닮았구나.”

검을 놓는 순간 이미 귀기는 사라졌다.

위지겸을 바라보는 중년인의 두 눈에는 아련한 그리움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죄의식이 그 그리움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 사부님의 유명대로 지난 십년의 세월동안 그토록 귀검을 잠재우려 노력했건만, 기어이 천하가 귀검을 원하는가?”

중년인은 다소 허탈한 표정으로 자신이 벌여놓은 살육의 현장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리고 채승희의 옆으로 다가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 사부님께서 직계의 피를 언급하신 것은 귀검을 잠재우기 이전에는 영원이 금제를 풀지 않으시겠다는 뜻이었거늘, 허나 철검문이 사라졌다면..........”


중년인은 우선 채승희의 사체를 수습했다.

대장간의 철로 거대한 관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에 채승희의 시체를 안치했다.

계속해서 중년인은 위지겸을 대장간 안의 작은 문 앞에 데려갔다.

“ 열거라.”

중년인의 지시대로 위지겸이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두 자루의 검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두 자루의 검 옆에는 한권의 비급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 철검십이식(鐵劍十二式)!”

철검문에서 사라진 철검십이식의 비급이었다.

중년인이 담담한 표정으로 위지겸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 위쪽의 검을 들거라.”

위지겸이 고개를 끄덕이며 위쪽에 놓인 검을 손에 쥐었다.

그와 동시에 중년인이 재빨리 무릎을 꿇고 허리를 숙였다.

“ 철검문 칠대제자 백우(白雨)가 팔대문주를 뵈오이다.”

갑작스레 백우가 예를 갖추자 위지겸이 다소 놀란 표정으로 백우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내 백우의 행동의 의미를 깨닫고 허락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그만 일어나세요. 사숙.”

위지겸의 말에도 백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담담한 표정으로 위지겸을 향해 말했다.

“ 귀검의 봉인이 풀렸으니 팔대문주께 직접 검을 받고자 하오이다.”

위지겸은 어째서 이곳에 두 자루의 검이 있는지를 비로소 깨달았다.

지금 위지겸이 손에 든 검은 그의 조부인 위충이 생전에 사용했던 철검이었다.

위지겸은 언젠가 그의 아버지 위일천이 그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 애비가 가진 장문영부는 어디까지나 임시로 본문을 상징하는 것이다. 사라진 철검이야 말로 진정한 철검문의 상징이다.”

그 철검과 철검십이식의 비급이 이곳에 있다는 것, 그것은 그의 조부인 위충이 아버지인 위일천이 아닌 백우를 철검문의 문주로 삼겠다는 뜻이었다. 위충은 언젠가 백우가 귀검의 마성을 잠재우는 순간이 철검문의 진정한 도약의 순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디까지나 금제가 풀리지 않았을 경우였다.

그리고 남은 한 자루의 검은 백우가 과거에 사용했던 검이었다.

한 자루는 장문영부, 한 자루는 백우의 독문병기인 셈이었다.

어머니의 죽음은 어린 위지겸에게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었다.

연이어 현보를 통해서 아버지의 죽음까지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졸지에 고아가 된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쉽게 실감이 가지 않을 정도의 얼떨떨한 상황, 이후 백우의 잔인한 모습이 없었더라면 어린 위지겸이 이렇게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백우로 인한 충격이 오히려 지금까지 위지겸을 지탱하고 있었다.

이런 위지겸을 향해 백우가 무릎을 꿇은 채로 공손히 두 손을 내밀었다.

위지겸은 다소 떨리는 손으로 다른 한 자루의 검을 백우의 손에 내려놓았다.

백우의 손에 검이 닿는 순간 또 다시 싸늘한 기운이 주변을 에워쌌다.

이에 호응하듯 백우의 손에 들린 검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백우의 검과 함께 위지겸 역시도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조금 전의 경험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위지겸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을 것이다.

검을 받아든 백우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마치 죽일 듯이 위지겸을 노려보았다.

백우의 살벌한 기세에 위지겸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 철검문주는 귀검의 주인, 귀검이 폭주하면 죽음으로 이를 막아야한다. 맹세할 수 있겠느냐?”

귀기 때문이었을까?

위지겸의 귀에는 백우의 목소리마저 더없이 사이하게 들렸다.

위지겸이 잠시 대답을 망설이자 백우가 지그시 그를 노려보았다.

이내 위지겸이 지그시 이를 악물었다.

모든 것이 사라진 상황, 의지할 곳은 이제 백우뿐이었다.

결심을 굳힌 듯 위지겸이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백우가 천천히 손에 든 검을 뽑았다.

스르륵, 검이 검집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스산한 바람이 위지겸의 전신을 훑듯이 지나갔다. 그리고 지독한 살기가 위지겸의 전신을 압박했다. 머리털이 쭈삣 서는 느낌과 함께 위지겸은 다리에서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백우의 손에 들린 검의 검신에는 하늘로 승천하는 듯한 모습의 용의 모습이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승룡검(乘龍劍), 백우의 사부인 위충이 그를 위해 거금을 들여 구해준 명검이었다.

계속해서 백우의 차가운 음성이 위지겸의 귓전을 두드렸다.

“ 이 정도의 귀기조차 감당하지 못해서야 어찌 철검문의 후예라 하겠느냐?”

백우의 질책에 위지겸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비록 어린 나이지만 이제 자신이 철검문을 이어야한다는 사실은 충분히 깨닫고 있었다.

마차에서 어머니의 말이 유언임을 또한 비로소 깨닫고 있었다.

철검문을 재건하고 남궁혜를 도와 보타암까지 재건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임을 또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순간 위지겸의 눈에 백우의 뒤에 서있는 남궁혜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녀는 파리한 얼굴로 귀기를 참아내며 백우와 위지겸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결연한 남궁혜의 모습에 위지겸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철검을 꽉 움켜쥐었다.

아직은 검을 드는 것조차도 힘겨워 보였다.

하지만 위지겸의 두 눈에는 나이답지 않은 결의가 엿보이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자신을 바라보는 위지겸의 모습에 백우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 나쁘지 않군. 과연 그분의 후예인가?”

중얼거림과 동시에 백우는 뽑아든 검의 검신을 확인했다.

승천하는 용의 한가운데 보이는 검은 얼룩, 백우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 사부!”

검은 얼룩, 그것은 오랜 된 피의 흔적이었다.

그것도 사부인 위충의 피였다.

잠시지만 백우를 감쌌던 귀기가 조금 약해졌다.

이렇게 위충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백우는 어느 정도 귀기를 잠재울 수 있었다.

천천히 검을 검집으로 집어넣으면서 백우는 검날과 위지겸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아련한 젊은 날의 악몽을 떠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검이 완벽하게 검집으로 몸을 숨기자 다시 무심한 시선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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