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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우 님의 서재입니다.

천하제일 여검객 유지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조정우
작품등록일 :
2017.12.05 11:00
최근연재일 :
2018.04.18 06:00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8,805
추천수 :
100
글자수 :
192,368

작성
18.01.01 11:00
조회
330
추천
4
글자
14쪽

가혹한 운명

DUMMY

미실을 쏘아보는 옥진에게 사도황후가 공손히 말했다.


"미실의 고통은 저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여 미실이 원하는대로 들어줄 생각이니, 아무쪼록 어머님께서는 잠시 자리를 비켜주소서."


옥진은 사도황후의 말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사적으로는 사도황후가 자신의 딸이지만 일국의 국모가 아닌가!


옥진이 나가자 사도황후가 미실의 손을 꼭 잡으며 물었다.


"그래,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미실이 작심한 듯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녀, 궁을 떠나 살고 싶사옵니다."


사도황후는 이미 예상한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사다함 때문이냐?"


"그러하옵니다. 소녀, 사다함 오라버니를 진심으로 사모하고 있사옵니다."


사도황후가 한숨을 내쉬었다.


사도황후의 얼굴은 걱정하는 것 같기고 하고 안도하는 것 같기도 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사도황후가 입을 열었다.


"어쩌면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구나."


한 차례 호흡을 가다듬은 사도황후가 말을 이었다.


"태후마마께서 융명을 세종 전군의 비로 정하셨다."


미실은 사도황후의 말에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침묵했다.


마음에서 멀어진 세종 전군이 누구와 혼인하던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리라.


사도황후가 미실의 손을 꼭 잡으며 물었다.


"비록 융명이 세종 전군의 비가 된다 하여도 네가 먼저 세종 전군과 혼인하였으니, 태후마마의 노여움이 풀리는 날에는 궁으로 돌아올 수 있거늘, 그리도 사다함과 혼인하고 싶단 말이냐?"


미실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실로 사다함 오라버니와 혼인하고 싶사옵니다."


사도황후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허락하마. 정녕 그것이 네 뜻이라면, 뜻대로 하거라."


"황후마마께서 사다함 오라버니와의 혼인을 허락하여 주시니, 말 할 수 없이 감사하옵니다."


미실은 안도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 진흥제가 화랑도의 풍월주인 이화랑에게 금륜태자의 교육을 맡기자, 이화랑은 화랑도를 관할하고 있는 지소태후에게 풍월주 자리에서 물러날 의사를 밝혔다.


"태후마마, 신은 태자 저하의 교육에 집중하기 위해 풍월주의 자리에서 물러나고자 하오니, 부디,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지소태후가 이화랑에게 물었다.


"허면, 누구를 후임으로 임명하는 것이 좋겠소?"


이화랑이 주저없이 말했다.


"신의 조카 사다함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따르는 낭도들이 가장 많을 뿐만 아니라 화랑도에서 검술이 으뜸이니, 능히 풍월주의 소임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당시 화랑도 내에서 사다함을 따르는 낭도들이 천여 명에 이르렀다.


검술도 으뜸이었을 뿐만 아니라 인품까지 뛰어나니 낭도들은 사다함이 풍월주에 오르는 것은 시간 문제라 믿고 있었다.


지소태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사다함의 재주가 영특함을 예전부터 주시하고 있었소. 다만, 사다함이 아직 나이가 어리니 사다함의 생각이 어떤지 들어본 연후에 결정하는 것이 좋을 듯하오."


지소태후의 부름에 사다함은 영문도 모른 채 궁에 입궐했다.


총기가 넘치면서도 마치 옥을 깍아 놓은 듯 잘생긴 사다함을 보자 지소태후가 사랑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내 들으니, 화랑도에서 너를 따르는 낭도들이 가장 많다고 하더구나. 낭도들의 마음을 휘어잡는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느냐?"


지소태후의 물음에 사다함이 쑥스러운 듯 고개를 저었다.


"신은 다만 낭도들을 사랑하기를 제 몸처럼 할 뿐이옵니다."


지소태후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열여섯 살의 소년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의미심장한 말이 아닌가!


지소태후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실은 내, 너를 풍월주에 임명할까 하는데,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실로 뜻밖의 지소태후의 말에 사다함이 몹시 당황했다.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신은 아직 나이가 어리고 재주가 부족하여 풍월주의 직분을 감당할 수 없사오니, 바라옵건데, 신의 스승을 풍월주에 임명하여 주옵소서."


지소태후가 한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의 스승 문노는 비록 가야 출신이나 여러 차례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으니, 그 공만으로도 풍월주의 자리에 오르고도 남을 것이다."


지소태후는 그 즉시 조서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나 지소태후가 문노를 화랑도의 국선에 임명하노니 문노는 내 뜻을 받들라.'


이제껏 풍월주는 화랑 중에서 선출하였기에 가야 출신의 문노를 국선이라는 명칭으로 화랑도를 통솔토록 한 것이다.


조서를 쓴 지소태후가 사다함에게 말했다.


"내, 너를 화랑도의 부제에 임명할 터이니, 네 사부를 잘 보좌토록 하거라."


사다함은 더 이상 지소태후의 뜻을 마다할 수 없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신, 부제의 소임을 감당하기 부족하오나, 성심을 다해 태후마마의 뜻을 받들겠사옵니다."


지소태후는 사다함이 기특한 듯 미소를 지었다.


"열여섯이면 가정을 이루고도 남을 나이인데, 혹여 정해진 혼담이 있느냐?"


정해진 혼담이 있느냐는 말에 당황한 사다함이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정, 정해진 혼담은 없사오나......"


순간 지소태후는 사다함이 마음에 둔 여인이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혹여 마음에 둔 여인이 있느냐?"


사다함은 차마 거짓을 고할 수 없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러하옵니다."


지소태후는 흥미롭다는 듯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누구냐?"


사다함은 마치 큰 죄라도 지은 듯 고개를 떨구었다.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저 혼자 사모하는 것이라 차마 아뢸 수 없사옵니다."


지소태후는 사다함이 난처해하자 더이상 추궁할 생각이 없었다.


지소태후가 미소를 띠웠다.


"알겠다. 실은 내, 너를 왕실의 공주와 맺어주려 하였건만, 네가 마음에 없는 듯하니 어찌 하겠느냐?"


비록 지소태후가 얼굴에 미소를 띠우고 있긴 했지만, 말투는 사다함을 나무라는 어조였다.


장차 화랑도의 풍월주가 될 사람이 여인 하나에 빠져 부마가 되는 것조차 마다하니 지소태후의 눈에 달가울 리가 없었다.


지소태후는 사다함을 나무랄 생각은 없어 인자한 얼굴로 말했다.


"되었다. 그만 물러가 보거라."


지소태후의 처소에서 물러난 사다함은 마음이 태산에 짓눌리듯 무거웠다.


화랑도의 2인자인 부제의 소임을 감당할 자신이 없을 뿐더러 궁에서 쫓겨난 미실을 위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것이 몹시도 후회되었다.


사다함은 가슴을 치며 혼잣말로 자책했다.


"미실아, 내, 오늘 태후마마를 알현하였건만, 궁에서 쫓겨난 너를 위해 단 한 마디도 아뢰지 못한 것이 참으로 애석하구나!“


화랑도의 부제가 된 사다함이 낭도들에게 검술을 지도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멀리서 두 검이 격렬하게 맞부딛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굴까 호기심이 든 사다함은 낭도들에게 배운 것을 복습하도록 시킨 후 두 검이 맞부딛치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걸어갔다.


마치 전장에서 싸우듯 치열하게 검술 대련을 하고 있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사내였고, 한 사람은 여인이었다.


여인은 긴머리를 흩날리며 입신의 경지에 이른 검술을 시전하는 모습이 유지가 틀림없었다.


'유지 낭자가 누구와 검술을 대련하고 있는 것일까?'


바로 그 순간 유지의 검을 막느라 몸을 돌린 사내의 얼굴이 사다함의 시야에 들어왔다.


마치 번개가 몰아치듯 한 유지의 검을 침착하게 받아내고 있는 사내는 무관랑이었다.


사다함의 예상대로 유지의 검이 무관랑의 검을 압도하고 있었다.


물흐르듯 유연하면서도 번개처럼 빠른 유지의 검술에 사다함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지는 무관랑의 검술을 지도하고 있었다.


"왼쪽이요!"


"이번엔 오른쪽!"


유지는 무관랑을 공격하기 전에 검이 갈 방향을 알려주고 있었다.


사다함은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관랑의 검술은 5천여 명의 낭도 중 으뜸이었다.


화랑도 내에서도 국선인 문노와 부제인 사다함을 제외하곤 무관랑의 검술이 제일 뛰어났는데, 그러한 무관랑의 검을 압도하고 있는 유지의 검술은 그야말로 신선의 경지에 이르렀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다함과 유지의 사부인 문노를 제외하곤 유지의 검술을 당할 자는 이 세상에 없으리라.


"사다함 사형!"


유지의 검을 막던 중 사다함을 본 무관랑은 자신도 모르게 검을 멈추고 말았다.


바로 그 순간 유지의 검은 그대로 무관랑을 향하고 있었다.


사다함이 깜짝 놀라 외쳤다.


"무관랑, 위험하오!"


다행히 유지의 검은 무관랑의 오른팔 바로 앞에서 멈췄다.


자칫하면 유지의 검이 무관랑의 오른팔을 벨 뻔 한 것이다.


불과 수개월 전 유지의 검이 사다함의 팔을 벤 것과 같은 상황이 올 뻔 한 것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유지가 무관랑을 나무랐다.


"검술 대련에 집중하셔야죠!"


무관랑이 검을 쥔 채 두 손을 모으며 유지에게 사죄했다.


"유지 사매에게 심려를 끼쳐 송구하오."


유지는 검을 검집에 꽂아 넣은 후 사다함에게 인사했다.


"사다함 사형, 저는 이만......"


무관랑으로 인해 가슴을 쓸어내린 사다함이 미처 답례 인사를 하기도 전에 유지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멍한 얼굴로 어디론가 가버린 유지를 바라보던 무관랑이 정신을 차리고 나서 사다함에게 사과했다.


"사형께서 저 때문에 놀라셨군요. 송구합니다."


무관랑이 존댓말로 사과하자 사다함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무관랑, 그대와 나는 친구가 아니오? 친구 사이에 어찌 존댓말을 쓰는 것이오?"


사다함과 무관랑은 오래전부터 친구로 지내왔건만, 평민의 신분인 무관랑은 대원신통의 귀족 신분인 사다함에게 예삿말을 쓰는게 어색해 항상 존댓말을 써왔다.


사다함의 말에도 무관랑은 여전히 존댓말 말했다.


"사형께서는 화랑도의 부제이시니, 화랑도 내에서는 사형께 존댓말을 쓰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사다함이 다시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동문에서는 내가 사형이라 존댓말을 쓰고, 화랑도 내에서는 내가 부제라 존댓말을 쓰니, 그대와 내가 언제쯤에나 예삿말을 쓰며 우정을 나누겠소?"


"반드시 예삿말을 써야 우정을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닌 줄로 아옵니다."


"하하하... 그대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편한대로 하시게. 다만 우리가 친구라는 사실은 잊지 마시오."


무관랑은 딱히 할 말이 없어 짧게 대답했다.


"잊지 않겠습니다."


별안간 사다함이 유지가 사라진 방향을 가리켰다.


"유지 사매가 근래 나를 피하는 것 같은데, 혹여 짐작되는 바가 없소?"


유지가 사다함을 피하는 이유는 사다함을 마음에서 지우기 위함이었다.


유지가 오래전부터 사다함을 진심으로 사모해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무관랑은 짐작되는 바가 있었지만, 사실대로 말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제가 어찌 유지 사매의 마음을 알 수 있겠습니까만, 아마도 유지 사매가 검술에 집중하느라 그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무관랑이 얼버무리기 위해 한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사다함은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근래들어 유지 사매의 검술이 크게 정진한 것을 보면, 그럴지도 모르지. 허나, 꼭 그것만이 이유는 아닌 것 같은데......"


사다함은 여인의 마음은 알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다시 중얼거렸다.


"유지 낭자가 어째서 나를 피하는지 알 수 있다면, 참으로 좋으련만......"


발길이 닿는대로 걸어가다 인적이 없는 숲속에 이르자 유지는 땅에 털썩 주저 앉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사다함 사형을 보지 않는다면, 내 마음에서 지워질 수 있을까? 아니야, 사다함 사형을 보지 못한다면 오히려 그리움이 더욱 사무쳐 마음에서 지우기 더 힘들게야."


한탄하듯 혼잣말로 중얼거린 유지는 별안간 검을 뽑아 들어 마치 사람에게 이야기하듯 말했다.


"검아, 너는 내 유일한 벗이요, 내 삶의 위안이다. 네가 없으면 어찌할 뻔 했겠느냐?"


유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생명이 살아있는 한 사다함을 결코 잊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녀의 유일한 위안거리인 검을 벗삼아 조금이나마 위안을 삼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 모든 것이 운명이라는 생각에 유지는 절규하듯 고통스러운 얼굴로 탄식했다.


"아!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모의 정이여! 어찌 하늘은 이다지도 내게 가혹한 운명을 내리셨단 말인가!“


유지는 가슴속에 복받치는 슬픔을 참을 수 없어 주저 않은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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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여검객 유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2 문노와 검기로 진검승부를 겨루다 18.04.18 136 2 15쪽
31 화모에 임명된 금진 18.04.17 94 1 15쪽
30 풍월주에 오른 사다함 18.04.16 93 1 15쪽
29 무관랑을 마음에 둔 금진의 속내 18.04.15 99 2 14쪽
28 눈물을 흘리며 검기를 쏟아내다 18.04.14 104 3 13쪽
27 무관랑에게 반한 금진 18.04.13 165 3 12쪽
26 세 번째로 피를 토한 사다함 18.04.10 96 2 14쪽
25 보명 궁주를 만나러 궁전에 이른 유지 18.03.08 112 3 13쪽
24 사도황후의 설득 18.02.28 128 3 12쪽
23 청조가를 읽고 한모금의 피를 토한 미실 18.02.19 140 3 13쪽
22 미실의 제안에 놀란 유지 18.02.13 247 3 13쪽
21 보명 궁주를 따라 궁전에 들어간 유지 18.02.07 169 3 13쪽
20 미실을 찾아가 담판을 짓기로 결심한 유지 18.02.05 166 2 13쪽
19 청조가를 읊으며 눈물을 흘리다 18.02.03 145 2 13쪽
18 실연의 상처로 생긴 병 18.02.01 150 3 12쪽
17 출궁 윤허를 받은 미실 18.01.27 176 3 14쪽
16 미실의 입궁 소식을 들은 사다함 18.01.25 168 3 12쪽
15 가야 왕과 왕후를 사로잡다 18.01.23 195 3 14쪽
14 홀로 적진을 무너뜨리다 18.01.20 183 3 13쪽
13 필마단기로 가야군 진영으로 돌진하다 18.01.18 246 3 14쪽
12 진흥왕을 알현하고자 목숨을 건 미실 18.01.16 174 3 13쪽
11 미실의 시가 화를 부르다 18.01.14 181 2 14쪽
10 필마단기로 왜군을 무너뜨리다 18.01.12 213 3 14쪽
9 사다함의 약조 18.01.10 243 3 13쪽
8 미생을 화랑도에 입문시킨 미실 18.01.08 237 3 13쪽
7 난데없는 혼담 18.01.06 297 3 13쪽
6 검신의 경지에 이르다 18.01.04 389 5 12쪽
» 가혹한 운명 18.01.01 331 4 14쪽
4 미실을 찾아온 사도황후 17.12.29 368 6 12쪽
3 절망감 17.12.26 586 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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