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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우 님의 서재입니다.

천하제일 여검객 유지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조정우
작품등록일 :
2017.12.05 11:00
최근연재일 :
2018.04.18 06:00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8,807
추천수 :
100
글자수 :
192,368

작성
17.12.26 15:00
조회
586
추천
5
글자
14쪽

절망감

DUMMY

미실은 사다함이 유지와 함께 문노를 뵈러 가겠다고 하자 질투심을 느껴 덩달아 따라나선 것이다.


유지는 마치 아무 말도 못들은 듯 고개 한번 돌리지 않고 왔던 길로 발길을 돌렸다.


사다함이 유지를 뒤따르자 미실도 사다함을 뒤따라 걸어갔다.


유지의 발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순식간에 수십 보나 앞서 나갔다.


유지와의 간격이 점점 벌어지자 사다함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발걸음을 멈추며 중얼거렸다.


"유지 사매가 나도 사부님을 뵈러 가겠다고 한 말을 못들은 것일까?"


미실이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유지 낭자가 소녀를 싫어하는 모양입니다. 사다함 오라버니와 제 말을 못들었을 리가 없지 않사옵니까?"


사다함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느라 손을 턱에 괜 채 아무 말이 없었다.


'유지 사매의 언행이 여느 때와 사뭇 다르구나! 어째서 그런 것일까?'


미실은 사다함이 유지의 마음을 짐작조차 못하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여전히 골똘히 생각에 잠긴 사다함에게 미실이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유지 낭자가 사다함 오라버니를 마음에 둔 듯하옵니다. 모르셨습니까?"


사다함이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사내란 모두 이리도 눈치가 없는 것일까.


미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호호호...... 사다함 오라버니...... 사내가 여인의 마음을 그리도 몰라서야......"


배를 잡고 깔깔 웃던 미실은 문득 사다함이 자신의 진심도 모를 것이라는 생각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사다함은 깔깔 웃다가 난데없이 눈물을 흘리는 미실을 근심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미실아, 어찌 우는 것이냐?"


미실은 무슨 말을 할지 몰라 눈물을 글썽인 채 사다함을 바라볼 뿐이었다.


사다함이 답답하여 다시 물었다.


"어찌 우는지, 말을 해다오."


미실이 한동안 입술을 깨물더니, 간신히 입을 열었다.


"여인은 원래 눈물이 많은 법이옵니다. 마음쓰지 마소서."


미실은 사다함에게 자신의 진심을 말할 수 없었다.


비록 미실이 지소태후의 명으로 궁에서 쫓겨나긴 했지만, 아직은 엄연히 세종전군의 부인이 아닌가!


사다함은 미실이 궁에서 쫓겨난 아픔으로 눈물을 흘리는 줄만 알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미실아, 내가 조만간 태후마마를 뵙고 너의 재입궁을 청할 참이다. 태후마마께서는 어지신 분이시니, 나의 청을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사다함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미실이 소리쳤다.


"아니되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미실의 반응에 말문이 막힌 사다함은 깜짝 놀란 눈으로 미실을 바라볼 뿐이었다.


미실은 겨우 흥분을 가라앉히며 말을 이었다.


"소녀, 결단코 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사옵니다. 이 혼인은 애초부터 소녀가 원하던 바가 아니었사오니, 차라리 궁에서 쫓겨난 것이 잘 된 일이옵니다......"


실로 뜻밖의 말이었다.


출궁당한 것이 차라리 잘된 일이라니!


미실이 세종과 혼인하여 궁에서 행복하게 사는 줄로만 알았던 사다함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다함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구나. 나에게 너는 친누이나 다름없으니, 혹여 내가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있다면, 부디 말해다오."


미실이 살며시 사다함의 손을 잡았다.


"이리도 든든한 오라버니가 있는데,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사다함은 자신도 모르게 미실의 손을 꼭 잡았다.


"나를 친오라버니처럼 여겨주니, 참으로 고맙구나."


말할 수 없이 애틋한 사다함의 눈빛이 자신의 진심을 말하고 있었다.


미실은 자신이 사다함을 사모하고 있는 것처럼 사다함도 자신을 사모하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미실은 감격에 겨워 눈물이 쏟아지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생각했다.


'사다함 오라버니도 내게 마음이 있는 것이 틀림없구나! 이제 내 마음은 정해졌다. 오직 죽음만이 나와 사다함 오라버니와의 사이를 가를 수 있으리라!'



빠른 걸음으로 산길을 걷고 있는 유지의 눈가에 이슬같은 눈물이 맺혀 있었다.


아! 이 아픈 가슴을 어찌하랴!


지난 5년간 사다함을, 오직 사다함을 사모해 왔건만, 그 마음을 이제 버려야 할 때가 온 것일까?


방금 전 사다함이 미실의 손을 잡은 채 넋이 나간 듯이 대문에 우두커니 서있는 모습을 본 유지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사다함이 미실을 사모하고 있음이 틀림없어 보였다.


굵은 눈물 방울이 유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때였다.


열넷 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눈물을 흘리는 유지를 보자 깜짝 놀라 소리쳤다.


"유지 사저!"


비보랑이었다.


당황한 유지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손등으로 눈물을 훔친 후 말했다.


"비보랑 사제가 여긴 어인 일입니까?"


"종외할머님을 뵈러 가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비보랑의 아버지인 비대전군의 어머니가 미실의 외할머니 옥진이었으니, 사다함의 어머니 금진은 비보랑의 종외할머니였다.


비보랑은 사부인 문노로부터 유지가 실수로 사다함의 오른팔에 검흔을 냈다는 말을 듣고, 급히 금진을 만나러 가다 유지와 마주친 것이다.


유지가 담담하게 말했다.


"혹여 저 때문에 가는 것이라면, 그럴 필요 없습니다. 수고스럽게도 사다함 사형이 나서셔서 해결하신 모양입니다. 하여 사부님께 보고드리러 가는 길인데, 함께 가시지 않으시렵니까?"


비보랑이 비록 유지의 사제(손아래 남자 동문)였지만, 법흥왕의 아들로, 진흥왕의 이복형 비대전군의 아들인 비보랑을, 유지는 깍듯이 대해왔다.


비보랑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종외할머님을 뵐 참이라...... 저는 나중에 사부님을 뵙지요."


유지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유유히 걸어가는 유지의 뒷모습이 어쩐지 쓸쓸해 보였다.


이제 겨우 열셋인 비보랑은 유지가 어째서 눈물을 흘렸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사다함 형의 팔에 검흔이 난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유지 사저가 어째서 눈물을 흘리신 것일까?'


한동안 곰곰히 생각에 잠겼던 비보랑은 아무 짐작도 하지 못한 채 사다함의 집으로 발길을 향했다.


사다함과 미실이 나란히 산길을 걷고 있는데, 멀리서 누군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사다함과 미실은 문득 너무 가까이 붙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약속이나 한듯 서로 몇 발짝 떨어졌다.


바로 그때, 깜짝 놀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실 누님!"


비보랑이었다.


미실이 궁에서 쫓겨난 사실을 모르는 비보랑으로서는 미실이 사다함과 함께 있는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비보랑의 질문은 사다함과 미실이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사다함 형님, 유지 사저의 일이 해결된 것이옵니까?"


사다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 끝난 일이니, 걱정하지 말거라."


안도의 한숨을 내쉰 비보랑은 그제야 근심어린 눈으로 미실을 바라보며 물었다.


"미실 누님, 어찌 궁에 아니 계시고, 여기 계신 것이옵니까?"


미실이 뾰르퉁한 얼굴로 말했다.


"못 들었느냐? 이리도 누이의 일에 관심이 없어서야......"


미실의 어머니 묘도와 비보랑의 아버지 비대전군이 이복남매인데다, 미실의 아버지 미진부의 누이동생 실보가 비보랑의 어머니였다.


겹사촌인 미실과 비보랑은 어려서부터 친남매처럼 지내왔다.


친동생 같은 비보랑이 자신이 궁에서 쫓겨난 사실조차 모르니, 미실로서는 서운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뾰로통한 미실의 모습에 비보랑이 난감해하자, 사다함이 한숨을 내쉬었다.


"미실 누이가 궁에서 쫓겨났다......"


순간 비보랑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 어찌 그런 일이......"


미실이 사다함과 비보랑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볼멘 목소리로 말했다.


"사다함 오라버니도, 비보랑 아우도, 다들 이 누이의 일에 너무 무심하군요."


비보랑이 사과의 뜻으로 고개를 숙였다.


"미실 누님, 소제가 폐하께 아뢰어 누님께서 입궁하실 수 있도록 주선하겠사옵니다. 심려치 마소서."


비보랑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미실의 입에서 날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니다. 결단코 다시는 입궁하지 아니할 것이다. 비보랑 아우도 이 누이의 마음을 너무도 모르는구나!"


2년 전이었던가.


미실이 비보랑에게 사다함에게 시집가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비보랑은 미실의 말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 미실이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갈피조차 못 잡고 있었다.


사내들이란 여인의 마음을 이리도 모르는 것일까.


미실이 답답한 마음에 길게 한숨을 내쉬는 순간, 뭔가 뇌리에 떠오른 듯 손뼉을 쳤다.


"사다함 오라버니, 지금 이럴 때가 아닙니다. 어서 사부님을 뵈러 가야지요."


사다함이 고개를 끄덕이자, 미실이 비보랑을 보며 말했다.


"비보랑 아우도 우리와 함께 가겠느냐?"


비보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지 낭자의 일이 해결되었다니, 이 아우도 사부님을 뵈러 가겠사옵니다."



'魂劍一體'(혼검일체)


문노는 붓을 든 채 자신이 방금 쓴 글자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혼과 검이 일체가 되었다면 어찌 유지가 사다함의 팔을 베었겠는가!'


일곱 살의 어린 나이에 검을 잡은 이래 지난 20여 년을 오로지 검술 연마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던 문노로서는 유지가 실수로 사다함의 팔을 벤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다.


미실이 갑자기 큰 소리를 쳤다 한들 검술이 이미 입신의 경지에 오른 유지가 그와같은 실수를 한 것은 필시 다른데 정신을 판 것이리라.


물론 당연히 막아야 했을 유지의 검을 막지 못한 사다함의 잘못이 컸지만, 평소의 유지라면 충분히 검을 멈출 수 있었다.


이때 문 밖에서 유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부님, 유지이옵니다."


유지의 목소리에 깊은 슬픔이 베어있음을 문노는 직감할 수 있었다.


"들어오거라."


"사부님......"


유지가 고개를 숙여 문노에게 인사하는 순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유지의 울음이 잦아들자 문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찌 우는 것이냐?"


"송구하옵니다......"


유지는 한마디만 내뱉은 채 흐느껴 울 뿐이었다.


문노는 가슴이 미어졌다.


어머니 문화공주가 세상을 떠난 이래, 가야의 핏줄인 문노에게 유지는 친자식과 같은 제자였다.


유지가 하염없이 흐느끼는 가운데, 문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사부에게 못할 말이 뭬 있겠느냐? 어서 말해보거라."


그제야 울음을 그친 유지가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 제자는 오직 한마음으로 사다함 사형을 사모해왔건만...... 사다함 사형은 미실 낭주를 마음에 둔 듯하여......"


가슴이 복받친 유지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다시 울음보를 터뜨렸다.


문노가 한숨을 내쉬었다.


"남녀간의 사사로운 정은 인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거늘, 마음을 다잡지 못하겠느냐?"


"송구하옵니다......"


이 한마디를 다시 내뱉은 유지는 연신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문노는 눈을 감은 채 회상에 잠겼다.


문노가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은 부하 병사의 어린 딸 유지를 데려온 것이 8년 전이었다.


천애고아인 유지에게 연민을 느꼈던 것일까.


문노는 지난 8년간 유지를 친딸처럼 대해왔다.


그러한 유지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문노 역시 마침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문노의 입에서 흐느끼는 듯한 한숨 소리가 들리자 유지는 깜짝 놀라 눈물을 손으로 훔치며 외쳤다.


"사부님!"


생전 처음으로 제자에게 눈물을 보인 문노는 겸연쩍어 껄껄 웃었다.


"하하하... 어찌 놀라느냐? 이 사부는 눈물을 흘리면 안되는 것이냐?"


사부가 자신을 위해 눈물을 흘리다니!


가슴이 뭉클해진 유지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부님, 소녀의 철없음과 버릇없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아니다. 여인이 눈물이 흘리는 것이 무슨 잘못이겠느냐? 울고 싶거든 마음껏 눈물을 흘리거라."


"사부님......"


부모 같은 사부의 사랑에 감격한 유지는 연신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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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2 문노와 검기로 진검승부를 겨루다 18.04.18 136 2 15쪽
31 화모에 임명된 금진 18.04.17 94 1 15쪽
30 풍월주에 오른 사다함 18.04.16 93 1 15쪽
29 무관랑을 마음에 둔 금진의 속내 18.04.15 99 2 14쪽
28 눈물을 흘리며 검기를 쏟아내다 18.04.14 104 3 13쪽
27 무관랑에게 반한 금진 18.04.13 165 3 12쪽
26 세 번째로 피를 토한 사다함 18.04.10 96 2 14쪽
25 보명 궁주를 만나러 궁전에 이른 유지 18.03.08 112 3 13쪽
24 사도황후의 설득 18.02.28 128 3 12쪽
23 청조가를 읽고 한모금의 피를 토한 미실 18.02.19 140 3 13쪽
22 미실의 제안에 놀란 유지 18.02.13 247 3 13쪽
21 보명 궁주를 따라 궁전에 들어간 유지 18.02.07 169 3 13쪽
20 미실을 찾아가 담판을 짓기로 결심한 유지 18.02.05 166 2 13쪽
19 청조가를 읊으며 눈물을 흘리다 18.02.03 145 2 13쪽
18 실연의 상처로 생긴 병 18.02.01 150 3 12쪽
17 출궁 윤허를 받은 미실 18.01.27 176 3 14쪽
16 미실의 입궁 소식을 들은 사다함 18.01.25 168 3 12쪽
15 가야 왕과 왕후를 사로잡다 18.01.23 195 3 14쪽
14 홀로 적진을 무너뜨리다 18.01.20 184 3 13쪽
13 필마단기로 가야군 진영으로 돌진하다 18.01.18 246 3 14쪽
12 진흥왕을 알현하고자 목숨을 건 미실 18.01.16 174 3 13쪽
11 미실의 시가 화를 부르다 18.01.14 181 2 14쪽
10 필마단기로 왜군을 무너뜨리다 18.01.12 213 3 14쪽
9 사다함의 약조 18.01.10 243 3 13쪽
8 미생을 화랑도에 입문시킨 미실 18.01.08 237 3 13쪽
7 난데없는 혼담 18.01.06 297 3 13쪽
6 검신의 경지에 이르다 18.01.04 389 5 12쪽
5 가혹한 운명 18.01.01 331 4 14쪽
4 미실을 찾아온 사도황후 17.12.29 368 6 12쪽
» 절망감 17.12.26 587 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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