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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는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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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히
작품등록일 :
2019.02.15 17:03
최근연재일 :
2019.06.14 23:00
연재수 :
122 회
조회수 :
43,671
추천수 :
839
글자수 :
616,070

작성
19.06.1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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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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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1쪽

121화 - 신기루 (2)

DUMMY

“글쎄요. 그냥······.”




하루스는 말끝을 흐리며 허공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감췄던 몸을 서서히 드러내는 여러 마리의 요정들. 요정들은 그녀의 머리 위를 선회하며 반짝거리는 가루 같은 것을 뿌려대는데, 그것이 수분을 보충하고 더위를 없애는 역할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로우는 즉시 품에서 마리를 꺼내 손바닥에 쥐었다.




“마리! 넌 저런 거 못해?”




-하, 할 수 있을걸요?




그렇게 대답하며 마리가 날아올라 손바닥을 하늘로 펼치자, 공기가 퍼지는 이펙트가 발생하며 순식간에 시원한 바람이 흘러 들어왔다. 물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어째서인지 목마름이 가셨고 몸의 기운도 조금씩 돌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게 있을 줄이야······.”




-죄송해요. 요정은 더위를 타지 않아서······.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상관······없어. 로우는 한숨을 푹 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지금껏 쉴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영혼 없이 걸어가고 있었는데 막상 체력이 보충되고 나니 오히려 쉬고 싶어진 것이다.




체력이 회복되고 시원해졌지만, 목마름이 가셨을 뿐 배고픔은 여전했다. 배에서 흘러나오는 꼬르륵 소리에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그들이 머리를 부여잡자 하루스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저어, 이거라도 드실래요.”




그러자 순식간에 돌아가는 4쌍의 눈동자.






[NAL먹어바]




분류 : 초코바




설명 : 초코 함유량이 0.9%도 안 되는 초코바. 맛없어 보인다. 주성분은 밀가루인데 어째서 초코바인지 알 수 없다. 차라리 ‘밀가루 바’ 분류가 어울리지 않을까?






겨우 검지 두 개를 이어붙인 정도의 아주 작은 초코바. 게다가 맛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신들의 눈물, 마지막 만찬, 왕의 진수성찬이나 다름없는 상태. 그렇다고 해서 다짜고짜 먹을 수는 없으니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4등분을 해서 먹으면 되지 않을까요.”




하루스의 제안. 로우가 기각했다.




“남자라면 몰빵. 가위바위보로 정합시다.”




바일렌의 제안. 알리하스가 기각했다.




“여기서 남자는 두 명뿐이거든요? 우선 체력도 보충된 상태이니 천천히 생각해보죠.”




그렇게 말하며 알리하스는 로우의 손에 들려 있던 초코바를 낚아채 바위덩어리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바위를 둘러싸며 앉은 4명. 이걸 어떻게 먹어야 하나, 골똘히 생각하고 있을 때 마리가 불쑥 말을 내뱉었다.




-저거, 녹지 않을까요?




“헉.”




생각해보니 마리의 마법에 의해 잠시 그들의 몸만 시원해졌을 뿐, 이곳이 펄펄 끓는 장소라는 건 변함이 없다. 즉시 알리하스가 초코바를 낚아채 포장지를 뜯어내자 다행히도 변함없이 무사한, 그 아리따운 자태를 드러내었다.






[NAL먹어바]




분류 : 초코바




설명 : 초코 함유량이 0.9%도 안 되는 초코바. 초코 함유량이 지나칠 정도로 적어서 웬만한 고열에도 녹지 않는다. 그래도 맛없어 보인다.






“휴, 다행이네요.”




“그냥 뜯은 김에 먹죠.”




“몰빵으로 가게요.”




“저는 안 먹어도 되는데······.”




알리하스와 로우가 티격태격 말싸움을 벌이기 시작하자 하루스는 한숨을 내쉬며 바위에 걸터앉았다. 저 둘은 자주 싸워대는데, 한 번 싸우기 시작하면 서로 눈에 뵈는 게 없어서 말릴 수조차 없다. 결국 해탈한 표정으로 양팔에 턱을 괴고 저 멀리를 바라보기 시작하자 메리세도 그녀의 옆에 붙어 앉았다.




“피곤하시겠네요.”




“에헤헤. 아뇨, 사실 즐거운걸요. 재미있잖아요.”




그러자 메리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재미있어요?”




“네. 혼자 다닐 때보다는 훨씬 재미있어요. 저, 동료들보다 레벨이 낮았던 때가 있어서 줄곧 혼자 사냥했거든요.”




요정의 숲 퀘스트 이후 하루스는 스스로의 레벨이 동료들의 발목만 잡는다고 생각해 솔로 플레이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사냥은 힘들지, 노하우도 없지, 공격스킬조차 단 한 개뿐. 결국 모르는 사람들과 임시로 파티를 맺어서 파티사냥을 했지만, 동레벨의 동료들과 사냥할 때조차 그녀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발목만 잡을 뿐이었다.




파티플레이를 포기한 그녀가 선택한 것은,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이었다. 시작은 늑대였다. 늑대의 레벨은 11. 당시 하루스의 레벨은 15. 로우가 전직조차 하지 않은 레벨 9일 때 늑대를 학살하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생각하면, 레벨 15는 숨 쉬는 것보다 쉽게 사냥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그녀에게는 그것조차 버거운 일이었다.




한 대를 때리면 세 번 공격당한다. 유저의 HP에 비해 몬스터의 HP가 더 많은 것은 당연한 일. 필드에서 수많은 죽음을 겪고, 페널티를 입으며 사냥에 몰두한 결과 결국 그녀는 늑대를 단신으로 잡아낼 수 있었다. 잊을 수 없는 그 희열, 그 스릴. 그것이 하루스의 첫걸음.




“동료들과 함께하시려고 열심히 노력하신 거네요.”




“으응, 그래도 여전히 부족한 것 같지만요······.”




하루스와 메리세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소녀풍 수다를 떨고 있을 때, 알리하스와 바일렌의 다툼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그럼 묵찌빠를 해서 이긴 사람의 의견대로 결정하는 겁니다.”




“좋아요. 대신 단판승입니다. 남자가 무르기는 없는 거예요.”




그렇게 말하며 알리하스가 바위 위에 초코바를 내려놓았다. 겨우 묵찌빠를 하는데 무슨 준비운동이 그렇게 큰 것인지, 바일렌은 팔을 휙휙 휘두르거나 손가락의 마디를 꺾어댔으며 알리하스는 세기의 예언가라도 된 것처럼 하늘로 손을 올려 깍지를 끼더니 한쪽 눈만을 뜨고 열심히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열심히들 하시네요.”




“그러게요. 고작 초코바 때문에······.”




한숨을 푹푹 내쉬며 바위에 올려놓은 초코바에 눈길을 준다. 정말로 맛도 없어 보이고 양도 적어 보이는 이 초코바에 나름 유명인이라는 저 두 사람이 자존심이란 자존심은 전부 팔아먹은 모습이다.




초코 함유량이 적은 초코바라도 바위 위에 오래 놓아두면 아무래도 상할 것 같았기에 일단은 인벤토리에 넣자는 생각이 들어 하루스가 그것을 집으려는 순간, 초코바가 갑작스레 사라졌다. 정말 감쪽같이,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증발하듯 없어지고 말았다.




“로, 로우 님.”




눈썰미가 좋다는 로우라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를 불렀지만 한창 묵찌빠를 구경하느라 바쁜 모습. 황당한 표정으로 메리세와 서로 눈을 마주치고 어깨를 으쓱하자 바위가 그그그긍 하는 기이한 소리를 내며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왓?”




“끼약?”




다음 순간, 바위는 무서운 속도로 하루스와 메리세를 태우고 황야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잠시 수다를 떨고 있었을 뿐인데, 갑작스레 메리세와 하루스가 사라졌다. 로우와 알리하스는 그렇게 생각했고, 그것은 사실 그 둘뿐만이 아니라 메리세와 하루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라, 로우 님.”




“어, 어디 가셨지.”




정말로 눈 깜짝할 사이. 초코바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눈을 조금 돌렸을 뿐인데 그들이 사라져 있었던 것이다. 큰 눈망울을 껌뻑이며 멍하니 앉아 있는 하루스를 슬쩍 본 메리세는 곧 바닥에 떨어져 있는 초코바를 발견했다. 이상하게도, 진흙이 잔뜩 묻어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상태로.




“대체 무슨······.”




그것을 조심스레 주워들어 살짝 털어보지만 더 이상 먹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아쉽지만 결국 바위 위에 올려놓고 다시 걸터앉으니 하루스가 살짝 입을 떼었다.




“저, 메리세 씨. 여기 원래 사방이 탁 트인 황야가 아니던가요.”




“예.”




당연한 말을.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긍정하자 그녀가 손가락을 들어 앞쪽을 가리켰다.




“그럼 저어기, 산은 대체 뭐예요.”




“에.”




배고픈 마음에 먹을 수 없는 초코바에 눈길을 두느라, 확인하지 못했던 주변 상황. 그제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정면을 살펴보니 거대한 바위산 하나가 들어서 있었다. 아니, 저건 산이 아니다. 산처럼 높지만, 꼭대기가 평지처럼 평평하니 저 모습은 마치.




“······벽.”






*






약간 자줏빛이 도는 선글라스, 꽃무늬가 잔뜩 그려진 셔츠, 황토색 반바지에 휘황찬란하게 ‘Aros GK’라는 글자가 박혀 있는 가방을 한 손으로 가볍게 짊어진 카리즈가 휘파람을 불며 양산을 펼쳐들었다. 다른 한 손으로 푸른색 수통을 꺼내들어 입구부분을 터치하자 빛무리가 맴돈다. 가볍게 물을 원샷.




“크, 역시 비 오는 지역보단 이렇게 햇빛이 쨍쨍한 지역이 나랑 잘 맞는단 말이지.”




“······바보 같아.”




같이 옆을 거닐고 있던 작은 체구에 안경을 쓴 소녀, 헤밀라는 카리즈와 살짝 거리를 벌렸다. 그녀는 이 황야를 거닐면서 덥지도 않은 것인지 무언가 두꺼운 책을 열심히 읽고 있었다. 그러면서, 용케도 바위나 돌멩이 같은 것에 걸려 넘어지지도 않는다.




“이게 뭐가 어때서 바보 같다는 거야.”




“그 복장······ 주변 상황에 어울리지 않아.”




“뭐 어때, 기분이라도 내는 거지. 이러면 시원해 보이지 않아?”




전혀. 헤밀라가 답이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보지만 카리즈는 깨끗하게 무시했다.




“자, 그럼 잠시 쉬었다 갈까?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싱싱한 회.”




“엑, 아무리 먹을 걸 잔뜩 싸들고 왔다지만 그건 무리야. 물고기를 대체 어디서 잡으라고.”




물이라고는 한 방울도 보이지 않는 이 허허벌판에서 물고기 요리, 그것도 싱싱한 회는 절대적으로 무리. 그렇게 말하며 바비큐나 해먹자며 요리도구를 꺼내는 카리즈를 보며 헤밀라는 말없이 책을 덮었다.




“일단, 햇빛을 가려야 하니 파라솔 하나 꺼내고······. 철판이랑······. 으억?”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드는 카리드의 등을 작은 손으로 밀어내 넘어뜨린 그녀는 철판을 집어 들더니 철막대 하나를 가볍게 뽑았다.




“으악! 너 무슨 짓이야! 그게 없으면 고기를 못 먹는다고.”




“······.”




카리즈의 외침이 들리는 것인지 아닌지 헤밀라는 철막대를 가지고 조물조물하더니, 둥글게 휘어진 철막대의 끝에 또 다른 철막대 두 개가 매달린 듣도 보도 못 한 이상한 물건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다짜고짜 그것을 바닥에 갖다 대어 굴리니, 그것은 멈출 줄도 모르고 힘껏 전진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끝부분에 달린 막대가 우뚝 멈췄고, 헤밀라는 천천히 그곳에 다가가 바닥을 힘껏 내려찍었다.




꾸웅, 하는 굉음과 파동이 울려 퍼지고 잠시 뒤, 마치 수면 위에 떠오르는 것처럼 팔뚝만 한 물고기 한 마리가 기절한 채로 모래 속에서 떠올랐다.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카리즈에게 헤밀라는 그것의 꼬리부분을 잡아 들어 올려 내밀었다.




“싱싱한 회.”




“네, 넹.”




어쩔 수 없다는 듯, 포기했다는 듯이 물고기를 받아든 카리즈는 식칼을 꺼내 그것의 배를 가르며 넌지시 물었다.




“근데 이 물고기는 뭐야? 설마 이 밑에 거대한 호수 같은 것이 숨어 있어서 그곳에서 산다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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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112화 - 약속은 깨야 제 맛 (3) 19.06.04 154 3 11쪽
111 111화 - 약속은 깨야 제 맛 (2) 19.06.03 156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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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105화 - 제작? (1) 19.05.28 174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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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102화 - 그거 조금 미끄러워요 (6) 19.05.25 199 4 11쪽
101 101화 - 그거 조금 미끄러워요 (5) 19.05.24 165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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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98화 - 그거 조금 미끄러워요 (2) 19.05.21 185 5 11쪽
97 97화 - 그거 조금 미끄러워요 (1) 19.05.20 185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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