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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가 지지 않는 곳.

스피드는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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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히
작품등록일 :
2019.02.15 17:03
최근연재일 :
2019.06.14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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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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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16,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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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1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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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96화 - 탑에 내리는 소나기 (5)

DUMMY

알리하스는 메리세와 하루스를 이끌고 성벽을 향했다. 각자 우산을 쓰고 성벽 위로 올라가니 요 몇 주간의 전투에서 반쯤 박살 나 몰골이 안쓰럽게 변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들은 적당히 10층까지 올라간 다음 자리를 잡았다. 바위가 무너져 내려 엄폐물이 상당히 많은 장소이기에 마법사들에겐 최적의 장소였다.




“우선, 몬스터에 대해 설명을 해 드릴게요.”




별로 특별한 것은 없지만, 그림자 도마뱀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하자 슬슬 유저들이 몰려들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총 17층으로 되어 있는 성벽에 유저들이 우르르 몰려차 각자 기둥이나 벽, 무너져 내린 바닥에 기대어 숲을 노려보고 있는 모습은 꽤나 장관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잠시 뒤, 대낮이지만 알 수 없는 그림자에 휩쌓여 어둠에 잠식되어 있던 숲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 * *






신전에 돌아가니 카운터에 있던 사제가 방긋 웃으며 반겨 줬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상급 사제님은 먼저 와서 쉬고 계십니다.”




“그렇군요.”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앞서나가는 사제를 따라가자 저번에 치료를 받았던 방보다, 더 큰 방이 나타났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양손을 모아 기도를 올리고 있는 은색 장발의 사내. 마치 석상인 듯, 가만히 경건한 분위가 은은하게 퍼져 나와 로우는 저도 모르게 큰절을 올릴 뻔했다.




은발의 사내는 로우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스르륵 눈을 떴다. 그러고선 미려한 미소를 지었다.




“오셨군요. 이런, 상당히 큰 상처를 입으셨군요.”




“아, 네, 일단은요.”




뭔가 굉장히 어색했다. 이런 분위기가 로우에게는 맞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지만 오른팔을 고치기 위해서는 참아야만 했다.




“여신 레이레유는 자신의 자식이 나뭇가지에 긁힌 것을 보고 99일 동안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어린 자식들이 상처입는 것을 슬퍼하여 흘러내린 눈물은 바다를 이루었고, 그것은 곧 만물의 근원지가 되었지요.”




마치 이야기를 하듯, 주문을 외우듯, 기도문을 읊듯 사내는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 갔다. 사내의 손짓에 따라 침대에 눕자 로우의 배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사방에 있던 벽과 천장, 바닥이 빛나며 허공에 입체적인 무언가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상처 입고 두려워하는 자식에게 레이레유는 말했습니다. ‘아이야,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구나.’ 그녀는 땅에서 가시처럼 솟아 있는 나뭇가지를 하나하나 정성스레 엮기 시작했습니다. 큰 나무에, 작은 나뭇가지를 모조리 심어 넣은 것이죠. ‘아이야, 다시는 나뭇가지에 네가 상처입지 않을 것이란다.’ 하지만 자식을 상처 입히는 주범은 나뭇가지뿐이 아니었습니다. 얼마 뒤······.”




사내가 기도문을 외우면 외울 수록 로우의 눈이 스르륵 감겨 왔다. 애써 잠을 떨쳐 내기 위해 그는 잡다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허리케인 스톰 - 폭풍의 버그 3세 핫도그를 사 먹을까? 아니면 레인 켈로스 고성의 명물 투헤드 치킨으로 할까.’




왠지 배에 대고 있는 손이 엄마의 손길처럼 포근했다.




‘그······ 그럼, 토마토 마요네즈가 들어간 롤링 칠면조를······.’




은은하게 비춰지는 따스한 빛이 그의 안구에 스며들었다.




‘포도맛······ 삼겹살을 먹어 보······고······.’




사제가 외우는 기도문이, 세기의 자장가처럼 들려오기 시작한다.




‘아······. 자면, 안 되는데······.’




마음은 거부했지만, 정신은 거부하기 싫은 모양이다. 결국 로우는 서서히 수마의 마수에 빠져들고 말았다. 잠시 뒤, 작은 기도실에는 로우의 차분한 숨소리와 사제의 기도문만이 방 안에 고요히 울려 퍼졌다.






* * *






《끝나지 않는 세계의 영웅들》 스튜디오. MC들이 방송의 시작을 열며, 정해진 인사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네, 안녕하세요! MC 박현우.




―금채린입니다.




―오늘의 소식은······.






방송이 시작되고, 여러가지의 이야기를 다루다가 마지막쯤이 되자 화제가 레인 켈로스 고성으로 돌아갔다. 이미 대부분의 유저들이 알고 있는 그림자 도마뱀의 습격. 관심 있는 유저들의 대부분은 그곳으로 발길을 돌린 지 오래다.






―레인 켈로스 고성에 그림자 도마뱀의 습격이 오늘로 마지막이라 하더군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아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고성에 정체불명의 몬스터가 출현하여 유저들이 애를 먹고 있다고 하더군요.




―네, 아직까지 레벨이 몇인지조차 모른다고 하던데 과연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요?






MC들의 대화가 길어지며, 마침내 그들의 입에서 특정 유저의 닉네임이 거론되었다.






―······그래서, 고성에 로우 님이 출현하였다구요?




―네. 분명 목격자도 있었습니다.






강 팀장과 부장은 카메라 뒤쪽에서 방송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서 로우는 지금 뭘 하고 있대?”




“글쎄요. 일단 프로게이머가 되는 것을 거부해서 저희 쪽에서 실시간으로 영상을 받는 것은 무리입니다. 녹화 영상을 줘야만 저희가 뭐라도 알 수 있겠지요.”




그때 조용히 문이 열리며 윤 프로듀서가 들어왔다. 부장은 얼굴을 밝히며 팔을 들었다. 비록 그를 섭외하지는 못 했지만, 영상을 제공받는 것이 어디인가. 극 신비주의라는 말만 들었기 때문에 로우의 섭외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던 부장에게는 한 줄기 빛과도 같은 일이었다.




“로우에 관련된 소식은 따로 있는가?”




부장의 질문에 윤이 살짝 찔끔한 듯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들렸다.




“뭐야. 무슨 큰일이라도 있는 거야?”




“아,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만······.”




뭔데 그럼? 부장이 계속해서 재촉하자 윤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게 말이죠, 그······ 도마뱀은 이미 습격을 시작했는데······.”




“그렇지.”




“근데 그게······.”




“답답하니까 빨리 좀 말해 보게나.”




하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신전에 드러누워서 낮잠을 자는 모양입니다.”




뎅, 데엥. 요란스레 몰아치는 폭풍에 흔들려 종소리가 고성에 울려 퍼진다. 원형으로 세워져 있는 성벽의 한가운데, 비바람은 갈 길을 잃고 서로가 부딪혀 마치 바람이 우는 것 같은 소름 끼치는 소리가 전해져 왔다.




그런 요란스런 소리가 나는데도 카리즈는 어째서인지 이 고성이 매우 고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림자 도마뱀의 습격 때문에 주민들이 모두 겁에 질려 성의 지하로 대피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앞으로 벌어질 전투에 대해 잔뜩 긴장한 유저들이 말이 없어서일까.




적어도 둘 다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왠지, 종이 매우 구슬프게 우는 듯한 착각이 든다. 이런 어두침침한 날씨에 비바람까지 몰아치니 사람의 기분이라는 것도 괜시리 울적해지기 마련. 본디 소리란 것은 그 인물의 기분에 따라 다르게 들리는 법이다.




“······저기, 옵니다.”




어떤 유저가 중얼거렸지만 비바람이 성벽에 부딪히는 소리에 금방 묻혀 버렸다. 하지만 그 말을 꼭 듣지 않아도, 유저들은 알 수 있었다. 저 숲 너머의, 어마어마한 그림자 떼를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13층. 카리즈는 들고 있던 석궁에 작은 활을 장전했다. 정체불명의 보스에게 데미지를 입히기엔 턱없이 부족한 무구이지만, 그의 열정만큼은 절대 다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반드시 놈을 사냥하고야 말겠다는 그 목표.






[뿌잉뿌얌 : ㅇㅅㅇㅋ 카리즈 님 무섭셈?]




[카리즈 : 무섭긴 누가]




[저격만들면손이떨림 : 님 지금 떠는 거 같은데요ㅋㅋ]




[잍하나 : 저분 원래 흥분하면 손 떨림]




[카레김밥주세요 : 헐 변태]






에휴. 작게 한숨을 내쉰다. 그러고 보면, 13층 전체에 카리즈와 길드원들이 골고루 퍼져 있었다. 아무래도 카리즈의 옆에 있다 보면 뭐라도 먹을 건덕지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는 코웃음을 쳤다.




‘흥. 이번엔 도움 안 되기만 해 봐라.’




그러다 문득, 아까 전에 보았던 금발의 소녀를 생각해 냈다. 지나가는 남자 대부분이 시선을 떼지 못 하고 입을 쩍, 벌리고 바라봐야만 했던 아름다운 소녀. 아름다운 미모와 몸매는 물론이요 무표정한 얼굴에 그 특유의 분위기까지 더해져 접근 금지 결계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카리즈는 접근할 생각 따위 추호도 없었지만.




‘엄청 강했던 거 같은데.’




분명 이런 저레벨 사냥터에서 놀 만한 유저가 아니다. 카리즈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소녀는, 《엔딩 월드》에서 상위 0.01%를 달리고 있는 로열랭커라고.




대부분 로열랭커들은 현실에서도 매우 똑똑하거나, 무술의 고수일 가능성이 높았다. 《엔딩 월드》 같은 경우엔 특수한 상황이나 지능이 상당수 필요했다. 스탯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 무엇을, 어떻게, 왜 해야 하는지 방법을 알고 있다면 강해지는 속도의 차이는 천차만별이다.




그냥 닥치고 사냥만 하는 폐인급 유저들과, 머리를 써가며 레벨업을 하는 천재들과의 스펙은 점점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대표적인 로열랭커로는 ‘베론’이 있었다. 《엔딩 월드》 시작 이후 단 한 번도 랭킹 1위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는 명실상부 최고 레벨의 유저. 그리고, 아무리 갓난아이라도 모를 수가 없는 로우. 그의 레벨은 랭킹에 표시가 되지 않아 신비에 휩싸여 있지만, 사람들은 그가 고레벨임을 의심치 않았다.




어쩌면 베론조차도 이길 수 없을 정도라는 소문이 퍼져 있을 정도이니.




매일 같이 랭킹 페이지를 확인하고, 그에 대한 정보를 누군가에게 전해 듣는 카리즈로서는 금발의 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들을 수 없었다. 《엔딩 월드》에는 랭킹 시스템이 있기는 하지만, 본인이 표시를 거부하면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아마도 그 소녀 역시 그런 종류일 것이다.






[시긴팔: 숲이 움직이는데요]




[요뭉요와르: 온당!]




[뿌잉뿌얌: ㅇㅅㅇ]






소나기의 영향인지 뿌리가 뽑힐 듯 거세게 좌우로 흔들리던 숲의 나무가 검은색 그림자로 덮이기 시작했다. 카리즈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여태까지의 공세와는 차원이 다르다. 유저들의 숫자도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그에 비례해 그림자 도마뱀들의 숫자 역시 천문학적으로 증식하고 있었다.




게다가, 투명한 몬스터는 제대로 건드릴 수 있는 유저조차 없지 않는가.




‘이거, 조금 힘들지도 모르겠는데.’




메리세는 깊은 검은색 눈동자로 성벽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비바람이 몰아쳐 그녀의 머리칼을 적시기 시작했지만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모양새다. 검은색 그림자. 아니, 그림자 도마뱀이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스킬인지, NPC인 것인지 북을 마구 쳐 대며 공습의 시작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림자 도마뱀이다!!”




“경험치다!!”




와아아아!!




함성을 지르며 무구를 빼 든다. 그림자 도마뱀들이 습격하는 장소는 1층이나 17층이나 상관하지 않고 모두 고루 분배된다. 단지, 도달하는 시간이 약간 더 오래 걸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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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97화 - 그거 조금 미끄러워요 (1) 19.05.20 185 4 11쪽
» 96화 - 탑에 내리는 소나기 (5) 19.05.19 196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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