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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가 지지 않는 곳.

스피드는 생명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게임

은밀히
작품등록일 :
2019.02.15 17:03
최근연재일 :
2019.06.14 23:00
연재수 :
1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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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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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9
글자수 :
616,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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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28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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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05화 - 제작? (1)

DUMMY

아냐, 할 수 있어. 그렇게 생각하며 얼마 전 로우에게 들었던 말을 상기해 냈다. 전투를 끝낸 로우는 성벽 아래까지 주섬주섬 기어 내려갔다. 하지만 워낙에 인파가 많이 몰려들었기 때문인지 그는 스킬까지 사용해 가며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메리세는 파티였기 때문에 위치를 금방 알 수 있었고 탑의 꼭대기에 숨어 있던 로우를 찾아간 그녀는 다짜고짜 질문했다.




“로우 님. 당신은 어떻게 그런 전투를 할 수가 있죠?”




무언가 특별한 목표가 있는 것일까. 메리세는, 자신의 소심한 성격을 고쳐 내고 싶었다. 남들에게 말 한 마디조차 못 하고 이리저리 휘둘리기만 할 뿐인 스스로가 싫었다. 그래서, 난생 처음으로 그에게 질문을 내뱉었다.




하지만 로우는 무슨 소리냐며 눈을 동그랗게 뜰 뿐, 거창한 포부도 의미 있는 뜻조차 없이 간단히 말했다.




“그냥 재밌으니까 했는데요?”




스릴 넘치고, 짜릿하고, 심장이 두근거리잖아요. 그렇게 말하며 도리어 로우는, 메리세에게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메리세 님이 참 부러워요. 그 스릴을 완벽하게 느낄 수 있다니, 얼마나 큰 행운이에요?”




완벽히 그의 말뜻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수많은 가식 섞인 목소리와 거짓말을 들어 왔던 그녀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의 말에 거짓은 없다고, 그의 말에 가식 따윈 전혀 들어 있지 않다고.




어느 순간 메리세는 달리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사방에서 작고 네모난 기둥이 솟아져 나와 그녀의 몸을 노리고 돌진해 왔지만 그것들은 그녀의 몸에 스쳐 지나갈 뿐, 결코 데미지를 입히지는 못 했다. 위아래, 발목과 머리 위에서 솟구치는 기둥들 역시 마찬가지.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이런 말이 있죠. 하지만 제 생각엔 피할 것도 즐길 건 즐기고 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 번 사는 인생, 이런 게임에서라도 좀 재미있게 살아 보겠다는데 뭐라고 할 사람은 없잖아요?’




그녀의 몸이 부드럽게 휘어진다. 마치 닿을 수 없는 것처럼, 얇은 기둥은 그녀의 몸을 스치기만 할 뿐 타격을 주지 못 한다. 비록 그녀의 스피드는 예전의 절반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줄어들어 있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섬세한 움직임이 가능했다. 본능에서 우러나오는 동작. 100배로 느리게 세상을 느끼며 항상 현명한 선택지를 골라 행동할 수 있는 로우만큼이나, 어쩌면 그 이상으로 완벽한 움직임을 보였다.




이전까지는, 이 장소를 돌파할 때마다 1분 1초가 천년만년처럼 느껴졌지만 어째서일까, 지금은 시간이 가속된 것처럼 느껴졌다. 무아지경. 언뜻 보면 오징어처럼 흐물거리는 그 움직임은, 부드럽게 스며드는 물처럼 흘러들어 갔다.




저 멀리 빛이 보인다. 그동안 닿을 수 없었던 그 장소. 어째서일까, 확신이 들었다.




‘갈 수 있어!’




띠링.






[‘잊을 수 없는 꿈,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돌파하였습니다!]




[과거 꿈속의 가장 깊은 곳에 도달했던 ‘하예론 제왕’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대는 꿈을 꾸고 있나?]




[아이템 ‘꿈’을 획득하였습니다.]






메리세는 두 눈을 꼭 감았다. 왠지, 눈물이 흘러내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제작?




신아는 칼레디를 보며 묘하게 인정하기 싫은 부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리저리 꼬이고 얽힌 퀘스트. 증거도 없고 단서도 없던 이야기를 하나하나 짜 맞춰서 나가는 그 과정에서 그는 단 한 번도 막힌 적이 없었다. 신아의 머리로는 막혔던 부분조차 술술 풀어 냈으며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수수께끼의 장소조차 자신의 집에 돌아가는 것 마냥 순식간에 찾아낸다.




“겨우 스토리의 시작을 찾아야 하는 주제에 그 과정이 너무 쓸데없이 긴 것 같군요.”




“······그런가요?”




사실 그들은 지금 수많은 연계 퀘스트를 거치는 과정에서 단 한 번도 스토리라인이 드러난 적이 없었다. 그저 누군가가 흘린 단서 하나만을 부여잡고 이어 가고 있을 뿐. 마침내 그 끝에 도달한다면 그제야 이 퀘스트의 진정한 스토리를 알 수 있으리라.




그렇게 퀘스트를 진행하여 결국 알칼레다 마을까지 도달한 그들은 지하에 나 있는 조그마한 길을 구불구불 걸어가고 있었다. 칼레디는 그녀의 걸음폭조차 배려하지 않은 채 엄청난 속도로 앞서나간다.




그녀는 입고 있던 붉은색의 드레스를 손으로 살짝 움켜쥐었다. 이 옷,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아. 하지만 어째서인지 스탯은 굉장히 월등해서 입고 다니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1m가 간신히 넘는 검 하나. 방패도 없고 보조 장비도 없이 그저 무기 한 자루가 달랑 끝이었다. 그건 신아가 끝까지 ‘스피드 계열 검사’를 고집했기 때문. 결국 칼레디는 알겠다며 수긍하더니 어디선가 값비싼 장비를 잔뜩 사 오더니 그녀에게 강제로 입혔다.




말로는 드레스를 입은 여검사를 실제로 보고 싶었다나 뭐라나. 안 그래도 사이코였는데 변태 기질까지 보인다.




“저희 지금 어디 가는 거죠?”




“어떤 탑을 찾고 있습니다.”




“탑이요? 이 마을엔 탑이 없는걸요?”




그러자 그는 고개만을 돌려 씨익 웃는다.




“있습니다.”




“······아 예. 그렇다면 그런 거죠.”




이 마을엔 고층 건물조차 보이지 않았는데 칼레디가 탑이 있다고 말하니 괜시리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짜증이 솟구쳤다. 하지만 반박할 수가 없다니. 괜히 태클 걸었다가 진짜로 요 앞에서 탑이라도 나타나면 혀라도 깨물어 버리고 싶을 것이다.




“다 온 것 같네요.”




“여기가요?”




별로 탑으로 보이는 곳은 아니였다. 그저 길고도 긴 복도의 끝에 위치한 문짝 하나는 초라하기 그지없었으니. 칼레디는 인벤토리에서 열쇠 하나를 꺼내들더니 망설임 없이 문을 따서 안으로 진입했다. 그러자 나타나는 복면 쓴 정체불명의 괴인들.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칼레디에게 달려들었지만 갑작스레 무언가에 몸이 묶인 듯 허공에 매달리더니 그대로 온몸을 떨며 절명해 버렸다.




“깜짝 놀랐네요.”




“그런 것 치곤 굉장히 태연해 보이네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사람이니까요.”




응. 사람이지. 사이코 변태.




내부로 들어가자 처음 만난 암살자들을 제외하고선 그 어떤 것의 공격조차 오지 않았다. 아주 사소한 트랩조차도. 대체 무슨 일일까 싶어서 칼레디를 쳐다보았지만 그는 아무런 표정조차 짓지 않은 채 그저 앞으로 걸어 나갈 뿐이었다. 이 상황에서 뭘 물어보기도 뻘쭘했고 분위기도 영 아니었기에 그녀는 그냥 잠자코 그를 따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곳은, 높디 높은 천장을 자랑하는 거대한 방이었다.






* * *






《엔딩 월드》에는 수많은 컨텐츠가 있다. 결투, 사냥, 대규모 전투뿐만이 아니라 레벨링조차 하지 않고 떠도는 여행마저도 《엔딩 월드》를 충분히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이곳엔 사람들이 원하는 것들이 아주 가득했다. 그중에는 ‘제작’이라는 것들을 주류로 삼는 이들도 아주 가득했다. 이들은 주로 현실에서 비스무리한 일을 했거나, 혹은 《엔딩 월드》에 접속하고 보니 전투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제작 쪽으로 눈을 돌린 부류이다.




“제작을 하고 싶다구요?”




“아뇨, 제가 직접 하는 건 아니고 얼마 전에 보스를 잡고 나온 아이템이 있어서요.”




“쉐도우 레퀴엠······ 말인가요?”




“네.”




알리하스가 묻자 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쉐도우 레퀴엠, 쓸데없이 투명화라는 옵션을 달고 나와서 사냥하기 귀찮았던 주제에 드랍된 아이템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단 하나, 로우에게 쓸모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것.






[그림자가 스며든 가죽]




등급: ???




설명: 쉐도우 레퀴엠의 가죽. 최상급의 품질을 유지하고 있다.




효과: 장비로 제작할 경우 특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오호, 상당히 괜찮은 가죽이네요. 파충류의 가죽 치고는 징그럽지도 않구요.”




“이쪽으로 제작이 가능한 사람이 있을까요?”




사실 헤비아이언 마을로 돌아가서 부탁을 한다면 장비를 금방 만들 수 있겠지만 다시 거기까지 가서 제작을 한 다음 다시 돌아오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더 걸릴까. 현재 ‘세계마법사연합’이라는 곳에서 본인이 한 번 가 봤던 마을로는 즉시 이동이 가능한 워프게이트를 제작 중에 있다고 게임 내의 뉴스에 뜨기도 하고 제작 과정을 유저가 직접 보기도 했지만 아직까진 만들어지지 않은 모양이다. 이러한 방식은 아마도 운영자가 정기적인 패치로 업데이트 해 줄 것을 NPC들이 스스로 만들게 하여 적용하는 방식으로 《엔딩 월드》가 이어지는 모양.




“흐음. 이 근처에 제가 아는 제작자가 한 명 있긴 해요.”




“어디에 있는데요?”




“어디 보자······ 사칼레타 마을에 있네요?”




“사칼레타라면······.”




“알칼레다 마을의 맞은 편에 있다고 해요.”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슬래이야가 귀를 쫑긋했다.




“알칼레다?!”




“깜짝아. 거기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는 거야?”




“이, 일단은.”




그러고 보면 슬래이야가 찾는 그 야안이라는 남자가 분명 알칼레다 쪽에 있다고 했었다. 신비한 목걸이의 힘으로 위치를 알아내긴 했지만 정말 믿어도 괜찮은 걸까. 일단 본인은 확신하고 있으니 믿어야지. 로우는 마침 잘됐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알칼레다로 가는 길에 제 장비도 만들면 되겠네요. 동선이 꼬이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그렇게 해서 로우는 슬래이야를 데리고 레인 켈로스 고성에서 말 두 필을 빌려서 길을 나섰다.




“······근데 당신은 왜 따라와요?”




“말······ 편하게 놔 주세요.”




“아니 그니까 그건 둘째 치고.”




그들의 뒤를 따라 나선 것은 다름 아닌 메리세. 그녀 역시 말을 빌려서 로우와 슬래이야의 뒤를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처음엔 같은 방향 다른 목적지로 가나 싶었는데 갈림길이 벌써 7번이나 나왔는데도 여전히 쫓아오고 있었다. 한 번은 일부러 속도까지 늦췄는데도 똑같이 속도를 늦춰서 쫓아온다.




“따라가면 안 되나요?”




메리세가 갑작스레 울상을 지으며 그렇게 말하자 로우의 심장이 쿵 떨어졌다. 굉장히 큰 죄를 지은 느낌이었다.




“아니······ 안 되는 건 아닌데요.”




“말 편하게 해 주세요.”




“······알았어. 그럼 나 따라오는 이유나 좀 말해 봐.”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로우 님이 좋아서요.”




“컥.”




“어머, 청춘이네요!”




그녀는 분명 다른 의미로 아무 뜻 없이 말했겠지만 남자로서 그런 말을 듣는 것은 꽤나 크리티컬이었다.




“와아, 머릿결이 굉장히 부드럽네요. 처음부터 금발이었어요?”




“게임 시작할 때······ 설정으로.”




“흐음. 이 세계로 넘어올 때 머리색을 바꿨다는 의미인가요?”




“······.”




“이야, 피부도 굉장히 좋네요! 유저라고 다 피부가 좋은 건 아닌 것 같던데 굉장하세요!”




“감사해요.”




어지간히도 말주변이 없는 메리세와 대화를 하기 시작한 슬래이야. 일방적으로 질문 어택과 대답 디펜스를 하는 모양새였지만 그것뿐이라도 슬래이야는 전혀 심심하지 않았는지 재잘재잘 떠들어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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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110화 - 약속은 깨야 제 맛 (1) 19.06.02 152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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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101화 - 그거 조금 미끄러워요 (5) 19.05.24 165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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