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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가 지지 않는 곳.

스피드는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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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히
작품등록일 :
2019.02.15 17:03
최근연재일 :
2019.06.14 23:00
연재수 :
122 회
조회수 :
43,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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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9
글자수 :
616,070

작성
19.05.2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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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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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2쪽

100화 - 그거 조금 미끄러워요 (4)

DUMMY

‘아······ 아직 무리인가······.’




시야가 울렁. 중심이 비틀린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품에 숨어 있던 실리가 ‘쓰러지면 안 돼 메리!’ 하고 소리치지만 더 이상 정신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래도, 이렇게 쓰러질 수는······.’




마지막으로, 뭔가를 해 놓고 싶었다. 이대로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 한 것은 너무 아쉽다. 그런 생각 때문일까, 메리세는 금빛 검신을 바닥에 깊숙히 꽂아 넣고 가슴 속에 숨겨 놓았던 스킬을 발동시켰다.




“······바람도 가끔은, 누워서 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녀의 작은 몸 주변에 작은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뭔가 불안한 낌새를 느꼈는지 인비지블 레시피가 돌격해 왔지만, 작지만 강력한 회오리에 가로막혀 뒤로 튕겨져 나갔다.




“바람은 누구보다 가볍지만, 또한 누구보다 무겁다.”




메리세의 몸 주변에 맴돌던 회오리가, 순식간에 부피를 키웠다.




“그런 바람이, 몸을 땅에 뉘인다면.”




그것은 순식간에 분사되어, 사방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기 시작했다.






* * *






계단을 저벅저벅 내려가며 장비를 확인한다. 항상 등에 메고 다니는 석궁은 꿰뚫지 못 한 물체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이렇게나 무력할 수가 없다.




“에휴 직업을 바꾸든가 해야지 원.”




배를 긁어 대며 그렇게 궁시렁거리며 아래층에 도달했다. 남아 있던 유저 몇 명과 길드원이 카리즈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고성에서 몇 번의 활약을 보여 준 뒤로 그의 얼굴을 기억하는 유저들이 많았다.




반겨 주는 그들에게 똑같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려는 순간, 성벽 전체가 크게 흔들리며 뭔가가 무너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 뭐야?!”




“카리즈 형! 무슨 일이에요?”




“낸들 아냐.”




유저들의 웅섬거림이 커진다. 사람들을 밀치고 성벽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주변을 둘러보지만 폭발로 추정되는 근원지가 보이지 않았다. 위쪽을 보니 돌의 잔해가 우수수 떨어져 내리고 있었으며, 아래쪽은 먼지가 잔뜩 일어나 도통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다.




“뭔 일인······.”




뻐억. 순간 그의 시야가 어둠에 물들었다. 뒤집혀진다. 숨이 턱 막혀 오며, 머리통 전체에서 짜릿한 고통이 느껴졌다.




“큭, 악?!”




쿵. 벽에 살짝 부딪힌 카리즈는 몸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눈물을 찔끔 흘리며 자신과 부딪힌 무언가의 정체를 확인해 보니 온몸이 회색으로 도배된 반팔 반바지의 유저가 쓰러져 있었다.




‘뺑소니?!’




한국 교통사고 제1항 1법칙. 교통사고를 당했을 경우 뒷목을 잡으며 최대한 고통을 호소한다. 카리즈는 그것을 기억해 내고선 뒷목을 부여잡았다.




“아이고오오오 사람 잡네 사람 잡어!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 안 아픈 데가 없어 아주 그냥.”




그런데, 죄책감을 가지고 사과를 해야 할 유저 측에서 반응이 없었다. 눈을 살짝 내려 쓰러져 있는 유저를 확인해 보니 카리즈보다 더 큰 충격을 입고 정신을 잃은 모양이다. 조심스레 다가가, 볼을 살짝 터치했다.




“이봐요. 괜찮아요?”




“우와악!”




엄마야. 볼을 건드는 순간 눈을 부릅뜨고 일어나는 회색 남자의 반응에 기겁한 카리즈는 엉덩이로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본 순간 카리즈는 눈을 크게 떴다. 저 익숙하지만, 보기 힘들다는 얼굴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머리를 털고 목을 부여잡으며 켁켁거리던 로우는 주변을 둘러보다 카리즈를 발견하고선 입을 열었다.




“여기가 몇 층이죠?”




“······에, 아마도, 12층이 아닐까 싶은데······요.”




그는 볼을 긁적이더니 흠칫, 뭔가가 생각난 듯 바닥을 기어서 무너진 벽 쪽으로 다가가 성벽 아래를 쳐다봤다. 돌벽이 무너져 내려, 대다수의 유저가 깔려서 죽고 말았다. 로우는 간신히 벽을 타고 올라와 크게 도약하여 생존할 수 있었지만 몸에 먼지를 잔뜩 뒤집어써 버려 모양새가 상당히, 보기에 좋지는 않았다.




“괜찮습니까?”




카리즈가 넌지시 의례적인 질문을 던지자 로우는 몸을 털어 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까지 폭발의 잔해는 남아 있는 것인지 위쪽에서 쿵쿵거리며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로우는 잠시 천장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기겁하여 카리즈의 뒷목을 잡고 뒤로 도약했다.




“끄억?!”




펑. 천장과 벽에 구멍이 뚫리며 빗물이 새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바로 카리즈가 서 있던 자리에 바위덩이 하나가 바닥을 뚫고 반쯤 틀어박혀 있는 모습. 저것에 맞았다면, 분명 즉사했겠지. 로우가 한숨 돌렸다며 이마를 문지르는데, 이번엔 정면의 벽이 꿰뚫리며 금빛의 무언가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휘날리는 금색의 머리카락. 짧은 핫팬츠와 흰색 반팔티. 허공을 선회하는 금빛의 검과 주변에 날아다니는 흰색의 요정. 아주 찰나의 순간이지만 판단을 내린 로우는 몸을 날려 메리세의 몸을 받아 냈다.




“대체 뭔 일인지.”




온몸에 잔뜩 상처를 입고 끙끙 앓는 모양새가 격렬한 전투 끝에 쓰러진 모습. 그녀는 힘겹게 눈을 뜨더니, 로우에게 작게 중얼거렸다.




“피, 해요······.”




“······뭐?”




뜬금없이 피하라니. 대체 무얼 말하는 건가. 슬쩍,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본다. 새어 들어오는 소나기에 의해 먼지는 모두 가라앉아 있었지만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내리려는 순간, 빗물이 갈라지는 것이 눈에 똑똑히 들어왔다.




그것은 특별한 자연 현상이 아니다. 소나기의 끝과, 끝이 갈라지며 무언가 보이지 않는 것이 관통하는 것이 그의 눈에 똑똑히 보였다.




‘보이지 않는 보스 몬스터······.’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대충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지금 다가오고 있는 무언가는, 분명 몸을 감추는 누군가가 틀림없을 터.




몸을 바닥에 최대한 부착해 날아오는 공격을 피한 다음 메리세를 밀쳐 벽으로 밀어 넣는다. 검을 뽑아 들어 천장으로 도약하여 달라붙자 뒤쪽의 벽이 박살 나 버렸다.




“대체 어디 있는 거야?!”




그의 품에 숨어 있던 마리가 빼꼼 고개를 내밀더니 소리를 질렀다.




―피해요!!




“으악!”




바닥으로 다시금 도약해 달라붙자 천장이 무너져 내린다. 그와 함께 새어 들어오는 소나기. 소나기가 관통할 수 없는 무언가의 실루엣이 로우의 눈에 똑똑히 비춰졌다. 그는 자신의 옆쪽에 뚫린 거대한 구멍을 바라보더니 뒤쪽으로 살금살금 물러났다.




살짝 미소를 지으며 검을 바닥에 꽂아 넣고,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직후 인비지블 레시피 역시 낌새를 느꼈는지 로우의 스킬을 방해하기 위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소나기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순간 로우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마리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레시피가 성큼성큼 뛰어 벽과 천장, 바닥을 자유롭게 뛰며 로우에게 도약해, 뾰족한 손톱을 드러내며 그의 목덜미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무시무시한 속도에 설령 모습이 보인다 치더라도 반응하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였지만, 레시피가 소나기의 범위 안에 들어온 순간 로우는 작게 입꼬리를 올렸다. 소나기가 갈라지는 것을 포착하는 것만으로도 반응하기엔 충분하다.




“액셀 러시.”




감각을 집중하자 내리치던 소나기가 정지한 것처럼 느릿하게 흐르기 시작. 갈라진 소나기 역시 멈춰 선 것처럼 보였다. 즉시 로우는 자리를 박차고 앞으로 튀어 나가 지팡이를 들어, 놈의 허리로 추측되는 자리를 힘껏 후려쳤다.




펑!!




그러자 레시피는 큰 충격을 받으며 몸을 기우뚱 기울였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바로 옆쪽은 갈라진 벽의 절벽. 뒤로 점프한 다음 다시 한 번 가속도를 이용해 부딪히자 레시피가 성벽 바깥으로 떨어져 나갔다.




“좋아······악!?”




하지만 방심했기 때문일까. 엄청난 힘에 의해 성벽 바깥으로 떨어져 나가는 레시피는 소나기가 미치지 않는 공간에 있던 꼬리를 움직여 로우의 몸을 힘껏 말아 쥐었다. 결국 레시피와 함께 성벽 바깥 쪽으로 추락한 그는 레시피의 몸을 꽉 붙들어 잡아, 최대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입을 악물었다.




쿵.




떨어진 곳은 탑과 탑을 잇는 다리의 위쪽. 유저와 그림자 도마뱀이 단 한 마리도 없는, 고요한 장소였다.




“끄윽, 죽겠구나.”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로우는 살금살금 레시피와 거리를 벌렸다. 빗물이 떨어지며, 관통하지 못하는 허공이 그의 눈에 똑똑히 보였다. 언뜻, 실루엣도 짐작할 수 있는 정도로.




“좋아. 이제 좀 보이네.”




일단 움직임이 보인다면, 상대하는 것도 어느 정도 가능할 터. 검을 뽑기 위해 손을 허리춤에 댔지만, 허전했다.




“헐.”




고개를 들어 성벽쪽을 보니, 뚫린 구멍 너머로 꽂혀 있는 붉은색의 검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바깥으로 내보내고 검을 가지고 갈 생각이었던 로우는, 그만 놓고 와 버린 것이다.




“젠장 어쩌지······.”




후! 후! 후! 후!




흠칫. 사방에 울려 퍼지는 알 수 없는 울음소리에 로우는 몸을 떨었다. 한두 마리의 울음소리가 아니다. 고개를 들어 성벽 쪽을 보니, 새까만 그림자 도마뱀 떼거지가 벽을 타고 기어 올라가 비명을 질러 대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원형으로 둘러싸인 성벽 위에서 소리를 질러 대며 이쪽을 보는 모습은, 마치 투기장의 싸움을 구경하는 구경꾼들 같은 모습이다. 유저들 역시 당황했는지 어안이 벙벙하여 싸움을 멈추고 이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카리즈는 문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얼마 전 읽었던 책에 이런 상황이 적혀 있지 않던가!






[······그러나, 우두머리가 위험하다 해서 집단이 나서는 법은 없었다. 우두머리가 위험에 처한다 해도, 그림자 도마뱀들은 투기장에서 싸우는 검투사들의 싸움을 구경하는 마냥 자리를 잡고 괴성을 질러 댈 뿐이다.]






그렇다. 저 투명한 몬스터는, 그림자 도마뱀들의 우두머리. 그리고 그 부하들은 우두머리가 싸움을 시작하자 구경하기 위해 인간들과의 전투조차 멈추고 구경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그 상대는 무려, 로우.




문득, 꽂혀 있는 검에 눈이 돌아갔다. 다른 유저의 소유권이 있는 이상 다른 사람이 습득하는 것은 불가능. 하지만 일시적으로 만져서 던져 주는 것은 가능하다. 그것의 손잡이를 잡자, 손이 타오르는 것 같이 연기가 치직 피어올랐다.




“으씨 뜨거워.”




애써 참는다. 무겁다. 하지만, 들어 올려, 온 힘을 발휘해 힘껏 로우 쪽으로 집어 던졌다.




“그거 받아!”




이렇게 소리치는 것으로 할 일을 마친다.




로우는 고개를 들어, 날아오는 붉은색 검을 포착했다. 약간 방향이 비틀어져 다리 아래쪽으로 추락할 위험도 있었지만 미약하긴 하지만 염동력을 이용해 허공에서 조작해 방향을 바꿔, 공중에서 바로 손으로 낚아챘다.




검을 빙글빙글 돌리자 빗물이 검신에 닿아 살짝 김이 피어오른다. 로우는 휘파람을 불더니 검을 어깨에 걸쳤다.




“휘유, 이런 거 한 번쯤 해 보고 싶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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