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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는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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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히
작품등록일 :
2019.02.15 17:03
최근연재일 :
2019.06.14 23:00
연재수 :
1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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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16,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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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0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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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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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14화 - 약속은 깨야 제 맛 (5)

DUMMY

‘너무 빠른 거 아니야?’




완전한 상태에서 싸워도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인데 아까부터 칼레디와 싸웠던 것 때문에 대미지와 피로가 여전히 누적되어 있어서 더욱더 골치가 아팠다. 상대는 최소한 준보스급 몬스터. 예상컨대, 행와인 저택에서 만났던 그 가디언들과 비슷한 종류일 것이었다. 심지어는 그 가디언들보다 레벨도 높았다.




‘비록 숫자는 하나라서 다행이지만.’




대신에, 뎀뎀 벨은 준보스급보다도 더욱더 스텟이 몰빵되어 거의 보스의 체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현재 로우의 레벨은 고작 70. 아무리 동레벨대의 유저에 비해 뛰어난 반응 속도와 공격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절대로 혼자서 잡는 것은 무리였다.




“젠장, 어떻게 해야 하지?”






*






“오호라, 그러니까 넌 야안과 슬래이야의 만남을 저지하라는 퀘스트를 받았단 말이지?”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끄덕. 슬슬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신아와 칼레디는 야안의 부탁으로 슬래이야가 찾아오는 것을 막는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었으며, 그 반대쪽인 로우 일행은 그 둘을 만나게 하려는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는 사실.




“이거 완전히 철저하게 대립된 퀘스트잖아? 어느 한쪽이 성공하면 다른 쪽이 실패해버리는 그런.”




“······이런 퀘스트는 처음입니다.”




메리세가 조용히 중얼거리자 바일렌은 피식 웃어넘겼다.




“뭐, 그 녀석이니까 이런 퀘스트 정도는 받아줘야 재미있지. 슬슬 평범한 퀘스트가 질리던 참이었거든.”




슬래이야는 잔뜩 어두워진 낯빛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기껏 힘들게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정작 야안은 슬래이야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니. 이 얼마나 비참한 일이란 말인가? 그녀는 삶의 목표를 잃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아예 눈물방울마저 떨어질 기세였다. 신아는 당황하여 슬래이야를 꼬옥 껴안았다.




“진정하세요. 야안 님께서 슬래이야 아가씨를 싫어해서 만나기 싫어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럼요?”




그 상큼하고 발랄한 모습은 대체 어디로 사라졌는가. 잔뜩 풀이 죽어버린 목소리로 되묻자 신아는 침착하게 설명했다.




“그······. 야안 님은 밝히기 싫어하셨지만, 정말로 서로가 사랑하는 연인 사이라면 알아야 할 것 같으니 알려드릴게요.”




바일렌은 메리세에게 귓속말로 “이 쯤에서 ‘나 다른 여자 생겼어’라는 명대사가 나와줘야 하는데 말이지.”라며 속삭였지만 되돌아오는 것은 혐오스럽다는 표정뿐이었다. 신아는 단어 선택에 주의하며 천천히 슬래이야에게 현재 야안의 상태를 설명했다. 그가 지금 이상한 병에 걸려 거의 목숨이 넘어가기 직전이며, 흉측하게 변한 상태로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이기 싫어 그녀를 피해 이곳까지 도망쳐왔다는 사실을.




“그, 그럴 리가 없어요······. 그토록 건강했던 야안 님이······.”




“자세한 사정은 저도 잘 몰라요. 하지만 야안 님이 아직 아가씨를 사랑한다는 사실은 틀림없어요.”




“······정말로 그럴까요?”




“물론이죠.”




애써 힘겹게 위로하며 달래는 것에 성공하자 바일렌은 귀를 후비며 말했다.




“그럼 지금 당장 만나러 가면 되는 건가? 너는 어쩔 건데. 퀘스트를 실패해도 상관없어?”




“저는 오히려 퀘스트를 실패했으면 하는걸요.”




그 망할 자식을 생각하면 더욱더. 신아가 누군가를 씹으며 입술을 꽉 깨물자 바일렌은 ‘이것 참, 파티 내의 불화에 끼어들면 골치 아픈데.’라며 피식 웃었다.




“그래서, 길은 알아?”




“······.”




신아는 말문이 막혔다. 여기에 도달하게 된 이유도 길을 잃어서가 아니던가?




“허어, 거참 골치 아프구만.”




“그, 그래도 대략 어디쯤에 있는지는 알아요?”




“그래? 어딘데.”




“······대략, 위쪽에 있었어요.”




바일렌은 슬쩍 목을 위로 들어올렸다.




“······그건 당연하겠지. 여기가 거의 최하층인걸?”




“어, 어쨌든 간에요!”




어찌 됐든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소리군. 그래도 한 번 가봤던 사람이 동행해서 다행이라며 바일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길은 몰라도 너는 한 번 가봤으니까 일단 안내는 해봐. 기억이 날지도 모르잖아.”




“그게······. 제가 길치라서······.”




“······그거 좋지. 그냥 내가 앞장설게.”




신아는 얼굴을 잔뜩 붉힌 채 고개를 푹 숙였다.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었다.




바일렌을 선두로 해서 이리 꼬이고 저리 꼬인 미로 같은 탑을 오르기 시작한 그들의 앞에는 별다른 함정이나 몬스터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진행하는 데에는 크나큰 걸림돌이 없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길을 모른다는 것이었으니, 메리세가 그 점을 완벽하게 서포트하기 시작했다.




“방금 이 길은······ 아래층에서 갈라진 부분이랑 일치해요.




“그래? 잘 모르겠는걸.”




“반대편으로 가면 계단이 나올 거예요. ······하지만 구조상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틀림없으니 그쪽으로는 가면 안 돼요.”




“흐음, 소심녀 씨 파이트 넘치는걸.”




여태까지 자기와 했던 대화보다도 훨씬 더 많은 대사를 쏟아내며 길 안내를 시작한 그녀에게 아무 말이나 집어 던졌지만 당연하게도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사실 바일렌도 별 다른 반응을 원하고 한 말은 아니었다. 그냥 심심해서, 그뿐이다.




“이야, 근데 쓸데없이 높네. 우리가 들어온 입구가 그렇게 깊은 지하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말이지.”




이번엔 메리세도 고개를 끄덕였다. 기묘한 공간이다. 분명 마을에는 이만한 규모의 탑이 존재하지 않았었다. 그들은 아주 살짝, 지하철에 들어가는 정도로 살짝만 내려와서 탑의 문을 열고 들어왔을 뿐인데 이곳은 높이로만 따지자면 거의 에펠탑 정도는 되어 보였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런 구조가 나오는 거지? 아가씨, 뭔가 아는 거 있어?”




뭔가 기억나는 게 있는 것일까, 고개를 숙이고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예전에 한 번 들어본 적 있던 것 같아요.”




슬래이야는 자신이 아는 정보를 풀어놓았다. 행와인은 기본적으로 마법에 아주 특출한 혈통을 가진 가문이라고 한다. 고대에서부터 전설적인 인재를 수없이 배출해냈기 때문일까, 그들에게는 남들이 모르는 수많은 숨겨진 마법을 연구하거나 또 개발해낼 수 있었으며 그것을 저장하기 위해 탑을 하나 건설했다는 이야기. 벌써 천 년이 넘어가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행와인은 자신들만의 마법을 이용해 그 탑을 사람들이 절대 찾을 수 없도록 숨겨 놓았다고 한다.




“오호라. 그러니까 지금 여기가 행와인 탑이다 이거지?”




“일단은······ 그럴 수도 있어요. 사실 전 행와인 가문의 사람이 아니라 자세한 내막은 모르거든요.”




“요컨대, 이거구만. 말도 안 되는 공간을 가진 이 탑은 마법이라는 신기한 기술로 만들어냈으니 알아서들 납득해라, 그렇지?”




“······그렇게 생각하는 게 편하시다면요.”




마법이라면 어쩔 수 없지. 마법이라면.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이 게임을 합리화시키는 아주 훌륭한 시스템이 아니던가? 바일렌은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괜히 생각해봐야 부질없는 짓이라며.




이윽고 그들은 탑을 아주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길을 찾아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메리세의 분석과 신아의 흐릿한 기억에 의지해 몇 번의 갈림길을 간신히 헤쳐 나가며 오르고 또 올라 마침내 도착한 곳은 탑의 중심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있는 기둥은 웅장한 벽화 하나를 받치고 있었는데, 그곳엔 기이한 갑옷을 입은 사람들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다. 새하얀 옷을 차려입은 여자가 낡아빠진 복장을 한 인간들의 선두에서 무언가를 외치고 있었고, 갑옷의 거인들은 그런 그녀에게 무기를 겨누고 있는 모습.




“여긴 기억 나? 이렇게 임팩트가 큰데 기억 안 난다고는 안 하겠지, 설마.”




“기억나요. 여기서 금방이에요. 저쪽 길만 지나치면······.”




신아가 대략 높은 곳에 위치한 작은 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하는 순간, 맞은편 복도에서 누군가가 뚜벅뚜벅 구두 소리를 내며 등장했다. 그는 굉장히 피곤하다는 표정을 지은 채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신아 양? 제가 사고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으윽, 칼레디!”




“뭐?”




바일렌은 입술을 비죽 내밀고 칼레디를 흘겨보았다. 설마하니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이야, 굉장한 동료랑 같이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었나 본데?”




“굉장하다니. 저런 사이코가 무슨.”




두통이라도 온 것일까,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던 칼레디는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갑자기 무슨 심정의 변화라도 온 겁니까?”




“흥. 그런 건 없거든. 그냥 슬래이야 아가씨가 불쌍해서 만나게 해주려는 것뿐이야.”




“······그럼, 야안은 불쌍하지 않다는 소립니까?”




윽. 신아는 야안의 표정이 떠올랐다. 끔찍한 몸이 되어 사랑하는 연인을 만날 수 없다는 고통에서 나오는, 그 비통하고 애잔했던 표정.




“그래도, 이렇게 만나지도 못하고 죽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그렇습니까? 그럼, 야안과 한 약속은 그렇게 저버리는 것인가요?”




그녀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렇게 된 이상, 밀고나가는 수밖엔 없었다.




“약속은 깨야 제맛이거든!”




그렇지만, 지금 신아는 상당히 쫄아 있었다. 칼레디, 어떤 의미로든지 그는 천재였다. 항상 모든 정보에 귀를 기울이며 모든 상황에 대해 의심이 많고 어떠한 경우라도 생각해내고 대비한다. 아군이었을 땐 절대적인 방패를 얻은 것처럼 든든했지만, 적으로 변하니 그 무엇보다도 날카로운 검이 되어 돌아온 것만 같았다.




바일렌은 경직된 표정으로 대검을 뽑아들었다.




“저렇게 자신만만한 걸 보니 뭔가 숨겨둔 수가 있나 보지?”




그는 메리세에게 살짝 턱짓을 했다. 그러자 메리세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그대로 실리를 날려 보내며 바람을 폭발시키는 반동을 이용해 돌진했다. 그리고 그 사각으로 바일렌이 느리지만, 아주 묵직하게 대검을 치켜세우고 쏘아진다. 그 어느 쪽도 피하거나, 막을 수 없는 완벽한 콤비 플레이에 누구라도 긴장할 법도 하지만 칼레디는 아주 여유롭게, 느린 동작으로 발을 살짝 굴렸다.




꿍.




“끄악?!”




“윽!”




순간, 상하가 반전되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바일렌은 ‘위로 떨어져 내리는 그 순간’ 대검을 간신히 벽에 꽂아 넣은 다음 뒤늦게 떨어지는 메리세를 간신히 한 손으로 붙잡았다. 이윽고 그녀를 바로 옆쪽에 던져버린 다음 슬래이야와 신아를 낚아챘다.




“대체, 뭐야······?”




“당신들은, 어디가 위라고 생각하신 겁니까?”




위를 올려다본다. 그러자 방금까지 바닥이었던, 하지만 지금은 천장으로 변해버린 그곳에 칼레디가 거꾸로 서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게 설마, 저 녀석의 스킬인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74 아인스타운
    작성일
    19.06.07 17:36
    No. 1

    아주 재미있습니다. 홍보가 부족하지 않으면 베스트에도 들어갈 듯! 다만 엔터를 너무 많이 하시는 것 같습니다. 자제해주시길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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