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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가 지지 않는 곳.

스피드는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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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히
작품등록일 :
2019.02.15 17:03
최근연재일 :
2019.06.14 23:00
연재수 :
1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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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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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16,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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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07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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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15화 - 약속은 깨야 제 맛 (6)

DUMMY

바일렌은 냉정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갑작스레 나타난 칼레디는 스킬을 준비하는 시간도, 전조도 없이 그들을 하늘로 던져버렸다. 그것도 아예 중력 자체를 바꿔버리면서. 상식적으로 가능이나 한 일인가? 규모가 큰 스킬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 캐스팅 시간, 소모 MP, 제물 같은 것들로 상대방이 사용하려는 스킬의 위력을 대강이나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칼레디에게 그런 모습이 있었던가?




‘전혀.’




그렇다면 두 번째 예상. 칼레디가 본인의 스킬이 아닌 이 탑에 걸려 있는 어떠한 마법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컸다. 이 경우라면 칼레디가 스킬을 준비할 필요도 없이, 미리 지정되어 있던 장소에서 특정한 물건에 마나를 불어넣기만 해도 시동이 가능하다.




“어쨌든 간에 골치 아픈 스킬인데.”




물론 고작 이런 스킬 하나에 포기하고 돌아갈 바일렌이 아니다.




“소심녀 씨, 잘 따라와. 먼저 출발할 테니까.”




“······?”




그러자 당황한 것은 메리세. 적은 천장에 붙어 있지 않는가? 그런 적을 대체 어떻게 상대할 거냐고 물어보려고 했지만 그러기도 전에 이미 바일렌은 하늘을 향해 로켓처럼 쏘아진 뒤였다.




“형이, 인마, 짜샤! 어? 중력 좀 뒤집혔다고 못 갈 줄 알았어?”




그의 추진법은 간단했다.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전방 몇 미터를 향해 돌진하는 스킬을, 전방이 아닌 하늘을 향해 쏘아버린다. 최대 사거리에서 벽에 착지, 또다시 하늘로 도약. 그렇게 기둥과 벽, 지그재그로 놓여 있는 계단을 발판으로 삼아 하늘 끝까지 올라가자 메리세도 뒤이어 하늘을 향해 도약했다. 그녀의 스킬은 바일렌보다는 상황이 더 괜찮았다. 허공에서 몇 번 이상 도약할 수 있는 스킬을 가지고 있었으니.




“이거 참······.”




칼레디도 바일렌이 저런 식으로 쫓아올 줄은 몰랐는지 살짝 당황했다. 사실 이 방에 걸려 있는 트랩은 바일렌의 예상대로 그의 스킬이 아니었다. 누구라도 마법진을 찾기만 하면 발동이 가능하게 되어 있는 그룹형 스킬. 물론 칼레디가 그 마법진을 꽁꽁 숨겨놓긴 했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점까지 예상해서 ‘마법진을 찾아 공략해서’ 들어올 줄 알았건만,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파고들어 온다.




‘역시 이 게임은 재미있어.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는 점이 매력이야.’




조금 전의 로우도 그랬고, 지금 바일렌도 그랬다. 그들은 언제나 예상 밖의 행동을 하며 칼레디의 빈틈을 노려온다. 그리고, 칼레디는 그 점이 너무나도 좋았다.




결국 천장 끝까지 올라온 바일렌은 가장 먼저 칼레디의 머리 위에 있던 계단 하나를 일부러 박살냈는데, 그건 바일렌의 동료들을 제외한 중력이 어디로 작동하는지 보기 위함이었다.




우수수, 쿵.




“······!!”




순간, 칼레디는 아차 싶었다. 저 괴물의 노림수는 뻔했다. 이 탑 내에 있는 중력이 오로지 물체들에만 작용된다는 사실을 눈치채버린 것이 아닌가! 바일렌의 예상대로 주변 지형지물은 부서지는 즉시 하늘로 솟아올랐고, 칼레디 쪽을 향하였다.




“오호라, 나 좋은 걸 알아낸 것 같은데?”




대검을 천장으로 겨눈다. 계단에 매달린 상태로 칼레디를 조준하여 도약, 검은 천장에 내리꽂혔지만 칼레디는 간신히 굴러서 옆으로 피한 뒤였다. 이윽고 중력의 영향을 받아 아래로 떨어지려는 순간 메리세가 아래쪽에서 부순 물체가 바일렌 쪽으로 떨어져 내리며 발판을 만들어냈다. 그것을 이용해 두 번째 도약. 그의 무식한 공격은 과격한 돌진과 그곳에 매달려서 휘두르는 대검밖에 없었지만, 메리세의 지형지물을 부숴서 만들어낸 서포트와 중간중간 여유가 되면 본인 또한 치고 들어오는 빈틈 공략 때문에 칼레디도 마냥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다.




‘미쳤어. 정말로 미쳤어. 중력이 역전된 상황에서도 저렇게 싸울 수가 있단 말이야?’




신아는 입을 떠억 벌린 채 다물 수가 없었다. 저게 진정 같은 인간들이 보여주는 묘기란 말인가. 팔에 소름이 쫙 돋을 정도로 인간의 범위를 벗어난 그들의 전투 스타일에 그녀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애초에 이 게임을 시작한 이유가 뭐였던가. 자신의 오빠가 싸우는 모습이 전 세계의 유튜브에 퍼져나가는 것을 보고, 그녀 역시 그와 동일하게 싸워보고 싶어서가 아니던가?




“큭, 미치겠군. 대체 유저들의 수준은 얼마나 높은 거야?”




아무리 칼레디라 해도 저런 묘기는 절대로 흉내 낼 수 없었다. 몸을 써서 싸우는 것은 그의 스타일에 맞지 않았다. 다만, 주변의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것이라면 아직까진 칼레디가 우위에 있지 않던가? 그는 다시금 이 방의 중력을 조작하여 바일렌과 메리세만을 저격하여 위아래를 포함해 좌우조차 역전시키기 시작했다. 벽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땅이 되고, 그렇게 생각했지만 사실은 바닥이었고. 정신없이 주사위마냥 굴러가는 이 직사각형의 공간 속에서 바일렌과 메리세는 지칠 줄 모르고 허공을 짓밟고 칼레디에게 쾌속으로 돌진해나갔다.




중력이 뒤집힌 채로 펼쳐지는 근접전. 칼레디는 만전의 상태에서 싸우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반대로 느껴지는 바일렌에게 밀리고 있었다. 메리세의 도움이 아니라면 칼레디가 밀릴 이유는 없겠지만, 그녀는 완벽한 타이밍에 완벽한 오브젝트를 그들의 전투 현장으로 보내 오히려 바일렌은 허공을 날아다니며 싸울 수 있게 된 것이다.




‘내게 이점이라고 생각했던 환경이, 고작 유저들의 컨트롤이 뛰어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불리해졌다.’




이게 어디 가당키나 한 소리란 말인가. 싸우는 도중에도 칼레디는 웃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휘둘러지는 대검, 쏘아지는 바람의 화살, 내리꽂히는 바위덩어리, 그 사이를 유연하게 회피해내는 칼레디.




“······좋습니다. 당신이 대단한 건 잘 알겠어요.”




그렇다고 여기서 밀려날 수는 없었다. 간신히 로우를 저지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의 동료들 때문에 시간을 끌어서야 되겠는가? 칼레디는 벽에 손을 짚고 그대로 점프해서 계단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메리세 역시 허공에서 공기를 밟아 물건 하나를 그쪽으로 쏘아 보냈는데, 어째서인지 물체가 칼레디 쪽으로 가지 않고 반대쪽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무, 무슨?”




메리세의 서포트가 순간 중단되자 바일렌 역시 당황하여 반쯤 부서진 기둥을 부여잡고 간신히 매달렸다. 그 역시 이상한 점을 순간 눈치챘지만, 도저히 어느 부분이 이상한지 감이 제대로 오지 않았다. 이 공간의 모든 물체는 칼레디를 향해 중력이 작동한다. 하지만 지금은 왜 칼레디를 향해 가지 않는 것일까?




“저는 이 방의 오더와 다름없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오더는 중력의 권한을 특정 인물에게 부여하여 그 사람 위주로 방의 중력이 돌아가게 만들죠. 마침, 이 방에는 저를 제외하고도 4명이나 존재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흠칫, 심장이 철렁였다. 잽싸게 하늘을 올려다본다. 없었다. 중력이 반전되어 하늘에 있는 줄로만 알았던 슬래이야와 신아가 이번엔 뒤쪽 벽에 달라붙어서 얌전히 앉아 있었다. 그리고, 메리세가 부숴버린 후 날려 보냈던 물건들 중 일부가 그녀들이 앉아 있던 벽에 떨어져 내린 후였다.




“이런, 미친!”




칼레디가 스스로 본인의 약점을 굳이 이야기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 약점을 이야기함으로써 오히려 강점이 될 수가 있었기 때문. 바일렌은 지금 그녀들을 보호해가며 싸워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어떤 수를 써도 칼레디가 그들을 이길 수 없었겠지만, 자신의 모든 수를 공개해버림으로써 약점을 슬래이야와 신아에게 넘겨버린 뒤, 본인은 자유의 몸이 되었다.




“제 특기는 근접전이 아닌, 원거전이거든요.”




“망할.”




이를 갈며 노려보아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바일렌은 입술을 꽈악 깨물고 다시금 벽을 타고 칼레디에게 돌진했다. 이번엔 메리세의 서포트를 기대할 수 없었다. 괜히 시도했다가 오히려 아래쪽에 앉아 있는 신아와 슬래이야가 다칠 수도 있으니. 아예 전투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메리세 역시 바람의 방향을 바꿔가며 칼레디에게 접근을 시도했지만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 때마다 양옆에서 폭탄이 터지거나 하늘에서 레이저가 내리꽂히고, 바닥의 마법진에서 빛이 나더니 칼날이 솟아올라오는 마법이 무수하게 설치되어 있어서 쉽사리 다가갈 수 없었다.




심지어는 가까이 도달하기 직전 자신의 바로 앞에 폭탄을 떨궈버리는 바람에 메리세는 급히 거리를 벌렸는데, 알고 보니 작은 폭약으로 살상력이 전혀 없는 것이었다. 고작 그런 작은 속임수들로 인해, 칼레디에게 접근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




아무리 바일렌이라도, 아무리 메리세라도 발판 없이 중력을 무시해가면서 싸우기에는 집중력, 스태미나, 체력, MP가 모두 한참 부족했다. 칼레디보다 몇 배는 더 집중하고 체력을 소모하고 스킬을 사용해야만 했으니. 점점 지쳐가는 것은 그들이었고, 심지어는 칼레디가 스킬을 하나하나 날려서 HP를 야금야금 깎아먹었기 때문에 더 이상 상대하는 것은 힘들었다.




마지막으로 바일렌이 접근했을 때, 칼레디가 주머니에서 구슬만 한 폭탄 3개를 양손으로 꺼내들어 데굴데굴 굴리자 그것이 허공에서 폭발해버렸다. 칼레디조차 휩쓸릴 만큼 크게 터져버렸지만, 아슬아슬하게 피해를 입지 않았다. 범위를 완벽하게 계산하여 터지는 시간을 이용하여 허공에 띄워 보낸 것. 그 폭발에 휩쓸린 바일렌은 바닥에 꿍, 하고 떨어져 내렸다.




“허억, 허억······. 젠장.”




더 이상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HP는 이미 바닥났고 스킬을 사용할 MP도 없었다. 체력도 최악을 달리는 데다가 다리를 사용하는 스킬을 하도 사용해서 그런지 근육에 경직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메리세 역시 잔뜩 지친 몸을 이끌고 기둥에 몸을 기대서 숨을 고르고 있었는데, 도저히 싸우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아아······.”




슬래이야는 절망 어린, 그렇지만 원망스럽다는 눈빛으로 칼레디를 쳐다보았다. 그 역시 잔뜩 지친 상태로 천장에 붙은 채 가만히 앉아서 숨을 고르고 있었는데, 그런 원망스럽다는 눈빛을 직접적으로 받아보니 마냥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저런 눈빛은 익숙할 줄로만 알았는데 말이지.’




이해는 갔다. 안 갈 리가 없지. 그렇지 않으면 사람도 아니다. 사랑하는 연인을 보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대체 누가 모른단 말인가. 하지만 그럴수록 칼레디는 야안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의 흉측한 모습에 대한 자괴감, 부끄러움, 절망감. 곧 죽어가는 생명에 대한 체념. 그 모든 걸 받아들이면서도, 죽어가는 그 순간마저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녀를 볼 수 없다는 원통함. 그는 자신의 연인에게 슬픔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그대로 아무런 소식 없이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리면 그녀도 언젠가 자신을 잊어버릴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에 나쁜 기억을 남겨주지 않고, 영원히 좋은 추억으로 남아 그녀의 기억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걸로 족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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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5화 - 약속은 깨야 제 맛 (6) +1 19.06.07 145 6 12쪽
114 114화 - 약속은 깨야 제 맛 (5) +1 19.06.06 146 6 11쪽
113 113화 - 약속은 깨야 제 맛 (4) +2 19.06.05 150 4 12쪽
112 112화 - 약속은 깨야 제 맛 (3) 19.06.04 154 3 11쪽
111 111화 - 약속은 깨야 제 맛 (2) 19.06.03 156 4 11쪽
110 110화 - 약속은 깨야 제 맛 (1) 19.06.02 153 3 12쪽
109 109화 - 그게 대수야? (2) 19.06.01 153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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