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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비의 서재

당신을 위한 무덤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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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빛
작품등록일 :
2021.05.13 11:19
최근연재일 :
2021.07.1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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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1,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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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1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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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채색의 골렘

DUMMY

모든 것이 사라진 평지가 눈에 들어온다. 본래는 경사진 땅이었지만 이제는 지형마저 뒤틀려버린 까닭이다. 반듯한 단면은 녹아내린 것처럼 매끈했다. 계단처럼 단차가 생긴 지형 위에는 남아있는 것이 없었다.


오직 아군들만이 서있을 뿐이다.


그러나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뒤이어 어디선가부터 기묘한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만 생각한다면 이곳에는 더 이상 위협이 될 만한 것이 없어 보였지만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생각이 바뀌고 있었다.


자연적인 소리가 아니었다. 적어도 산에서 날 소리는 아니었다. 깨진 유리파편들이 서로 부딪히며 굴러가는 듯한 소리다.


바람이 불고 있는가? 그렇지는 않았다.

더없이 잔잔한 공기다. 지팡이를 겨누던 올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무슨 짓을 벌이는 거지?"


완전히 소멸한 줄로만 알았던 금속파편들이 일제히 한 곳을 향해 굴러가고 있었다.

눈덩이처럼 몸을 불리며, 지면의 사철이나 다른 골렘들의 파편마저 그러모으며 점점 더 부풀기 시작하는 것들이 보이고 있었다.


불길하다.


올가는 사라지려 하는 성좌의 팔을 붙들었다. 마력은 거의 남지 않았지만 이곳은 자신의 성지나 마찬가지였다.

단 한 번이라면 더 공격할수도 있을 터.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만히 지켜볼 이유는 없지"


짤그락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강해지기 시작했다. 기괴한 모습이다. 생명으로 치자면 합성에 실패한 키메라 같다고 해야할까?


몹시도 추상적인 그림이나 조 각같은 형상으로 빚어지는, 골렘이라 말해도 좋은지 의문인 그것의 모습은 실로 괴물 같았다.


올가는 자신이 모욕당한 듯 한 느낌에 이를 갈았다.


버나르는 정녕 그를 모욕할 작정인가? 그는 단순한 골렘학의 창시자가 아니라 자신들의 선조이기도 할 텐데?


"용납못해!"


올가는 그 비뚤어진 결과를 보며 성좌의 주먹을 내리쳤다.

그 손이 닿는 곳에 있다면, 하위차원의 존재는 결코 버틸 수 없을 막강한 힘이었다.

발전했다고는 해도 아직 인간에 불과한 그들이 견딜 법한 힘이 아니었다.

적어도 올가는 그렇게 생각했다.


쿵!


반투명한 성좌의 손 안에서 여전히 꿈틀대는 그것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뭐?"


그것은 올가의 상상을 넘어선 상태였다.

애초에 저기에 있는 것들은 이미 한 번 같은 힘에 의해 부서진 존재가 아니던가.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저런 일이 벌어진 거지?

분명 같은 재료로 되어 있을 텐데?


아니, 아니지.


"처음부터 잘못 생각한 건가?"


버나르의 사 백년 동안의 발전이, 연금술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되어 있었다면?

조금 전의 공격으로 인해 무언가의 촉매가 반응해버렸다면?


"그렇다면 저건 연금술만이 아니라 나와 같은..!"


메이거스! 그것도 성좌가 아닌 악마와의 계약일 터였다.


올가는 어젯밤 마리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올가는 마리에게 제국의 연금술이 천대받는 것이 두려움 때문이라 말했었다.


하지만 사실은 달랐다면?


마왕 같은 자의 탄생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마왕 같은 존재가 되려고 했다면?


악마척결을 외치는 성국을 비롯해 제국에게조차 그것을 감추려했다면 어떻겠는가.


"아아!"


올가는 절망감에 탄식하며 손을 그러모았다.

지금 저것을 없애야만 했다. 다행히 아직은 악마의 힘이..!


파삭.


허나 올가의 계획은 다시 한 번 산산히 부서지고 말았다. 더없이 강인해 보이던 성좌의 팔이 잿더미가 되어 흩날린다.

올가의 힘이 다해버린 것이다.

그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


그리고 그 앞에 있는 것은 자색의 절망이었다.





*





늦어버린 건가?


나는 본능적으로 올가의 공격이 실패했음을 깨달았다. 그리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고 싶지 않았던 광경이다.


반투명한 손이 잿더미로 변해 사라진 후, 그곳에 서있는 것은 보랏빛으로 빛나는 골렘이었다.


제국에서도 아는 사람이 몇 없는, 극상품 골렘 중 칠채색으로 분류되는 골렘 중 하나였다. 나 역시 이론상으로만 알고 있을 뿐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인데..


세 종류로 분류되는 극상품의 골렘들. 그 중 가장 흔한 것이 흰색, 검은색, 회색의 무색 골렘들이었고, 거기에 황금색 도색만을 해서 납품한 것이 그 유명한 알렉스 황태자의 로얄 나이츠였다.

유일하게 사람이 탈 수 있는 회색 골렘의 특성을 이용한 것이었다. 다만 사람이 타면 약해지는 골렘 특성 상 인력과 척력을 다루는 다른 무색 골렘들과 같은 힘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황궁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각기 칠색 중 하나를 부여받는 골렘 중 하나가 바로 저것이었다.


칠색의 골렘이라 불리면서도, 정작 여섯 기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기묘한 골렘.


나는 그 존재에 대해 듣고 왜 존재하지 않는 골렘의 자리를 만들어 둔 것인지를 의아해했었다.


그리고 왜 하필 일곱 개로 숫자를 제한해 두었는지도.


기왕이면 많이, 그리고 다양하게 만들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틀렸다.


메이지에 불과한 나는 저것을 단편적으로밖에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는 데에는 충분했다.


저것은 만드는 것이 아니다. 만들어지는 것이다.

모든 것은 정해져 있던 것이다.


"마이크. 저게 뭐라고?"

"칠채색 골렘 중 하나, 바이올렛..소문으로만 알려진 극상품 중 하나야"

"어느 정도로 강한 녀석이야?"

"그건 나보다 네가 더 잘 알 것 같은데?"


나는 유라의 말을 헛소리로 치부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애초에 내가 부사령관으로 임명된 이유가 무엇이던가.


나야말로 조금 전 괴멸당한 모든 골렘들의 사령관이자 연구자였던 까닭이다.


룽겔 중령이 반 수사관을 배신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지만, 나에게도 주어진 명령이 있기에 이곳에 남아 있었다.

연구자로서의 흥미도 있었고 말이다.


"돌아갈 수는 없겠군"


허나 나는 동시에, 내가 그들에게 버려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일개 연구자에 불과한 나에게 '메이거스'의 비밀을 알려줄 이유는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


실력도 고만고만하고 연구자로서의 실적도 평범한 나는 적당한 희생양에 불과하다는 것이겠지.


하기야, 부활이라는 예상외의 결말을 맞이한 이상 돌아갈 수는 없을 테지만..


"비로스라고 했나? 당신이 웨어울프들의 대표라면 잘 봐두는 게 좋아. 당신이라면 저 골렘의 의미를 알 수 있을 테니까"

"아쉽게도 난 대표가 아니야. 우리 족장은 지금 준비를 하러 갔거든"


그게 중요한가? 나는 코웃음치며 대꾸했다.


"극상품 쯤 되면 수도 내의 마력이나 메이지의 마력을 필요로 하는 다른 골렘과는 수준이 달라. 저건 이미 살아있는 마검이나 마찬가지야. 사람의 힘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저것들이 이 산맥을 점령할 거라고? 그래봤자 골렘이잖아?"

"그리고 당신은 실버 골렘 하나조차 이기지 못했지. 안 그래?"


비로스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치였다. 이쯤 되면 나 역시도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왜 이해하질 못하는 거지?


"저게 실버 골렘보다 강하다는 건가?"

"저 힘이 안 느껴지는 거야?"


나는 내 떨리는 손을 보여주며 물었다.

왜 모른단 말인가. 조금 전 올가가 보였던 힘에 조금 부족한 정도에 불과한 힘인데 말이다.


"너..아까부터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데?"


하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유라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나는 이쯤 되니 혹시 내가 이상한 건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저들보다 약해서 그런 것인가? 그도 아니라면 메이지여서?


'그럴 리가'


애초에 메이지라 불릴 정도의 실력이라면 지금까지의 나 중에서는 가장 강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유라와의 차이도 제법 좁혀졌을 텐데..내가 느끼고 있는 힘을 유라가 느끼지 못한다고?


"젠장! 설명할 시간이 없어! 저것에 자아가 깃들기 전에 도망쳐야 해!"

"자아라고?"


그나마 유라는 내 말에 호응하듯 무겁게 발걸음을 떼었으나, 비로스는 달랐다. 그는 그저 내 말이 신기하다는 듯 곱씹으며 바이올렛을 관찰할 뿐이었다.


미친 건가? 왜 믿지를 않지?


아, 그렇지. 믿는 편이 더 이상한 일이지. 하지만 그래도 생각이라도 해 줄 순 있는 건 아닌가?


왜 다가가는 거지? 자극하지 말란 말이야!


"이봐 친구! 정신이 좀 드나?"


나는 마치 친구에게 이야기 하듯 다가가는 비로스의 모습에 섬뜩함을 느꼈다.

저것은 좋지 않다. 내가 말한 자아라는 말에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저런 식으로 말을 걸어서는 안됐다.


애초에 저것은 인간이 빚어낸 것이다. 부여된 자아 역시 인간이 선택한 것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골렘의 제작자들은 굳이 골렘에게 인간성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그것에게 필요한 정보만을 부여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골렘에게 필요한 정보는 무엇이겠는가?


오직 파괴와 살육 뿐이다.


"교신 종료. 명령 수락. 제거"


그리고 비로스가 바이올렛을 향해 손을 뻗으려던 순간, 그는 돌연 그것을 멈추며 물러섰다.

표정에 비치는 것은 경악이었다.


나는 그것이 늦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내가 경고했을 때 물러나야만 했다.

그리한다면 적어도 우리는 살았을 테고, 어쩌면 그 역시도 무사했을 지도 몰랐으니까.


"비로스!"


유라가 그를 부르짖었다. 그러나 그는 대답할 수 없었다. 들을 수도 없었다. 움직일 수도, 볼 수도 없었다.

비로스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나는 문득, 저것에 제대로 당하면 부활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이크! 어떻게 된 거야!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유라의 질문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나 역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오직 저것이 지극히 위험한 물건이라는 사실 뿐이었다.


"위로 올라가. 올가에게 가야 해. 그녀만이 희망이야"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적을 상대로 도망을 친다고? 그리고 가면 뭘 한다는 거야? 힘이 다 빠진 여자 뒤에 숨어 무얼 한다는 거지? 차라리 비로스의 복수를.."

"그러다 죽으면? 다시 말하지만, 난 죽고 싶지 않아. 죽는 게 두려우니까"

"..나는 겁쟁이처럼 살고 싶지 않아"


겁쟁이라고? 그래 그렇게 보이겠지.

한 번도 죽어본 적 없는 사람에게는 당연한 말이겠지.

하지만 지금은 경우가 다르다.


"너는 이길 수 없어 유라"

"그래도 싸우다 죽는 편이 낫지"

"나는 지금 메이지야. 모르겠어?"

"..무슨 뜻이야?"

"나는 그녀에게 마력을 전해줄 수 있어. 메이지가 아닌 마리의 마력을 포함해서"


유라는 그제야 내 말을 깨달은 듯 창을 고쳐 쥐었다.

그래. 그것만이 유일한 길이었다. 생존을, 승리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단 하나의 길.


"..갈 수 있을까?"

"해봐야지. 전부 죽어버리기 전에"


나는 비로스의 죽음과 함께 분노한 웨어울프들을 보며 눈을 감았다.

그리도 압도적인 힘과 죽음을 보았다면 위축될 법도 한데 용감무쌍히 달려드는 모습이 실로 인상적이다.

저들은 죽음 너머의 것을 알면서도 저러는 것일까?

안다면 만용일 것이요, 모른다면 축복이겠지.


비로스가 내 경고를 무시한 것 역시 그것의 연장선상에 놓인 것이리라.


"저들이 버텨줄까? 마력을 전달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리잖아?"

"못버텨. 하지만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버틸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내 눈에 일렁이는 위습들을 보며 답했다. 이제 곧, 눈으로도 보이리라.


"왔어"


쿵쿵쿵. 지축을 울리는 발소리가 울려 퍼진다. 핏발이 선 눈으로 바이올렛을 향해 덤벼들던 웨어울프들은 무언가 공포심이 일어난 듯 제자리에 멈춰서 있었다.


목숨을 도외시한 복수심조차 잊게할 정도로 본능적인 공포였다.

그곳에 나타난 것은 거센 폭력과 살육의 상징이었다.


나는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아직 내가 올빼미 일 적의 기억 때문이었다.


"저건 뭐지?"

"오거 고골. 남부 산맥의 지배자야"


쿵.


마지막 걸음을 끝으로 멈춰선 거대한 괴물이 시선을 내리깐다. 나는 어쩐지 그것의 시선이 마리에게 머문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십 미터를 넘긴 듯한 크기의 괴물이 그곳에 서 있었다. 황동 빛의 육체가 태양빛 아래 번들거린다. 꿈틀거리는 근육은 그 자체로 모든 것을 부숴버릴 것만 같다.


눈은 붉고, 굳센 턱은 사각형이었다. 머리 한 올 없는 단단한 두피는 둥글었지만, 순한 인상은 어디에도 없었다.

고골이라 이름 붙여진, 이 거대한 마경을 지배하는 네 괴물 중 하나가 그곳에 있었다.

그것의 붉은 눈이 바이올렛을 향한다.


보랏빛의 매끈한 몸. 기껏해야 사람 하나 정도의 크기. 유선형의 철판으로 이뤄진 괴이쩍은 형태의 금속 인형이 그 시선을 마주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인류의 걸작이 지닌 눈빛은 괴물의 것처럼 붉었다.


무거운 정적이 인다. 오래가지 않을 침묵이었다.


다음 순간,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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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계약 갱신 21.06.17 16 0 14쪽
45 루루가의 약속 21.06.16 16 0 13쪽
44 진실의 편린 21.06.15 15 1 14쪽
43 파라크 21.06.14 18 0 17쪽
42 아크롭스 21.06.13 18 0 11쪽
41 고골 21.06.12 18 0 12쪽
» 칠채색의 골렘 21.06.11 20 0 14쪽
39 성좌 21.06.10 19 0 13쪽
38 각성 21.06.09 19 0 13쪽
37 올가 21.06.08 19 0 13쪽
36 뼈창 21.06.07 19 0 16쪽
35 감자 21.06.07 18 0 14쪽
34 진격 21.06.06 17 0 14쪽
33 골렘 병단 21.06.05 18 0 13쪽
32 재회 21.06.04 15 0 14쪽
31 추격 개시 21.06.03 15 0 16쪽
30 유라 란가타 21.06.02 17 0 14쪽
29 유라 란가타 21.06.01 20 0 18쪽
28 연금술사 21.05.31 20 0 15쪽
27 연금술사 21.05.31 21 0 7쪽
26 고블린 21.05.30 20 1 7쪽
25 고블린 21.05.30 23 1 7쪽
24 마경 21.05.29 22 1 13쪽
23 유령 21.05.28 21 1 14쪽
22 오크 족장 루루가 21.05.27 21 0 14쪽
21 기억 속의 늑대 21.05.26 20 0 14쪽
20 유령과 반요정 21.05.25 23 0 13쪽
19 샤스포 미트라예즈 21.05.25 33 0 16쪽
18 수도 탈출 21.05.24 24 1 13쪽
17 수도 탈출 21.05.23 26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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