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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 님의 서재입니다.

대충 사는 인간의 세상 뒤집記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keju0422
작품등록일 :
2022.06.14 04:52
최근연재일 :
2023.01.30 19:55
연재수 :
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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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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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
글자수 :
836,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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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4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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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시리즈1 킹덤 : 왕들의 무덤

시리즈1 킹덤 : 왕들의 무덤




DUMMY

5화

아프던 머리가 차차 맑아졌다.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마시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멍하게 앉아 있는데 갑자기 뭔가 떠올랐다. 뿌연 연기 속에 있던 희미한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는 것처럼 뭔가 정리되는 느낌이 왔다. 퍼즐의 한 부분을 맞추는 것 같았다. 퍼즐의 한 조각을 찾으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콜택시를 불렀다. 택시를 타고 부산 가야 집을 향해 갔다.


- 아버지, 증조할아버지 직업이 고물상이라고 했죠?

- 명색이 고물상이고 실은 골동품 수집상...

- 명색이 골동품 수집상이고 실은 도굴꾼이네.

- 음, 엄밀히 따지면 그렇지, 일본인 전주(錢主)가 돈을 대면 필요한 거 구해주거나 도굴을 해서 갖다줬지, 근데 귀한 거는 있어도 없다고 했대... 먹고 살려다 보니...

- 아버지는 참, 증조할아버지라고 편드네, 한마디로 매국노지, 우리나라 유물을 도굴해서 팔아먹었으니까.

- 야, 그러지 마라, 증조할아버지 처음엔 그러시다가 나중엔 독립운동하셨어, 일본 놈 두 명을 죽이고 도굴 못 하도록 고분을 위장했대, 창녕 63호 고분이 바로 그거야, 도굴 흔적이 전혀 없이 온전히 보존됐다고 하잖아, 다 증조할아버지 덕이지...

- 그래도 도굴꾼인데 뭐...

- 그때 발굴한 귀한 유물은 숨기고, 저기 블라디보스톡 들어봤지? 연해주 고려의용군에 들어가 일본 놈들과 피 터지게 싸웠어.

- 빨갱이야?

- 어허이, 그때는 그런 거 안 따졌어, 사회주의자든, 민족주의자든, 아나키스트든 일본 앞잡이만 아니면 무조건 일본 놈들과 싸웠어, 조국과 민족을 위해 싸우는데 이데올로기가 뭔 소용 있어, 안 그래?

- 몰라요, 내가 그때 없었으니까, 증조할아버지께 유일하게 물려받았다는 그 귀한 유물이 다락방에 있다는 낡은 나무 상자야?

- 응, 보기나 했어?

- 아니, 아버지가 나한테 몇 번 말하긴 했지만, 관심이 없는데 그걸 왜 봐...

- 한 번 보지, 증조할아버지 냄새도 맡을 겸...


지금도 잊지 못한다. 당시 아버지의 실망한 눈빛을...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바보 같은 놈... 멍청한 자식... 그 당시 난 한심한 놈이었다. 지금도 별반 다를 바 없

지만...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께 미안했다. 그때는 역사 이런 거 싫었다. 오직 힙합과 나얼에 빠져 있었으니까, 어떻게 하면 성제의 괴롭힘에서 벗어날까 온통 그 생각뿐이었으니까, 내 말이라면 무조건 다 들어주시던 아버지도 다른 건 양보해도 대학은 절대로 사학과 아니면 안 된다고 고집했다. 그래서 일본에서도 비록 한 학기 다녔지만, 일본사를 전공했고, 한국 와서도 사학(史學)을 전공했던 것이었다. 사람이면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 아버지의 표면적인 지론(持論)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어렴풋하나마 증조할아버지의 유업(遺業)을 내가 물려받았으면 하는 바람인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잡동사니로 가득한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후레쉬를 입에 물고 처박아놓은 잡동사니와 골동품, 안 보는 낡은 책들을 뒤져서 용문양(龍文樣)을 수놓은 아주 오래된 조그마한 나무상자를 찾아냈다. 견고한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다. 언젠가 아버지가 들려준 증조할아버지의 유품이었다. 증조할아버지로부터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나까지 전해 내려온 유일한 유산이었다. 너에게 줄 테니 너도 너 자식에게 물려주라고 했던 그 나무상자였다. 급한 김에 십자드라이버로 자물쇠를 뜯어냈다. 뚜껑을 열었다. 직호문녹각제도장구(直弧文鹿角製刀裝具)에 장착된 단검이 상서(祥瑞)러웠다. 황금빛을 발하며 세상에 등장했다.

여기 있네, 이시하라 유우가 사생결단 찾아 헤맸던, 직호문녹각제도장구(直弧文鹿角製刀裝具), 내가 왜 이제야 알았을까? 나의 멍청함에 화가 났다.

그 직호문녹각제도장구가 지금 내 손아귀에 있다. 활처럼 굽은 선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말이산 49호 고분에서 우연히 내가 발굴한 아니 발견한 직호문녹각제도장구는 세월의 무게에 못 이겨 많이 부식되고 삭아서 직호 문양도 옅어져 전문가가 아니면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비검 용천을 장착한 이 직호문녹각제도장구는 방금 만든 것처럼 녹각도장구(鹿角刀裝具)에 활 문양이 생생하게 새겨져 형태 그대로 보존이 잘되어 있었다. 나는 직호문녹각제도장구에 꽂힌 용천을 살펴봤다. 그러면서 이시하라 유우가 왜? 이걸 찾으려고 혈안이지? 의문은 궁금증을 유발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추론할 수 있는 퍼즐을 맞춰보며 상념에 잠겼다.


직호문녹각제도장구(直弧文鹿角製刀裝具)를 찾아라.


-따르르릉~ 따르르릉~


소주 한 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찌르르 오장육부를 타고 흘렀다.

약간의 몸서리가 났다. 이 맛에 먹는다고 했나...

붉은 레벨의 25도짜리 소주병을 들어 두 잔을 채울 때

핸드폰이 울린 것이었다.

흔히들 쓰는 핸드폰 벨 소리가 아니라 집 전화기에 통상 쓰는 벨 소리라 특이한지 동

료들이 무심결에 나를 쳐다보다가 바로 외면을 하고 하던 짓을 했다. 바깥에 퍼붓는

비 때문일 것이다.


- 네...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었다.


- 씨펄.


입에서 욕 나왔다.

이시하라 유우( 石原 優)가 있느냐고 물었다. 속으로, 없다는 걸 알면서 왜 물어? 하

면서 없다고 했다. 결국 데리고 오라는 교수의 부탁인 듯한 명령에 욕이 나왔던 것이

었다.

내려가자고 할 때 같이 내려왔으면 이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가시나...

비가 가을이 깊었는데도 하늘이 뚫렸는지 퍼붓고 있었다.

비만 안 온다면야 나 말고도 고소하다는 듯이 킥킥대는 이 인간들이 나서서 갈 텐데,

일본 말이 능통하다는 죄로? 아니 일본어를 못했다면 유적지 발굴단에 통역 겸 보조 조사원으로 끼지 못했겠지만, 그래도 이 건 경우가 아니지...

양말 사이에 바지를 끼우고 일어서자 500원짜리 비옷 두 개와 랜턴이 어느새 둥근 양철판 위에 올려져 있었다.


- 손발이 착착 맞네, 착착 맞아, 그래 전우를 지옥에 내몰아라...


비옷을 입으면서 한마디 던지고 불판 위에 올려져 있는 생삼겹살 한 덩이를 젓가락으로 집으려는데,


- 선배, 아직 덜 익었어요, 선배는 파삭 익혀야 먹잖아요?


생삼겹살 대신 술잔을 들어 입에 털어 넣었다.

풀 섶 바위 뒤에서 엉덩이를 까고 볼일을 보던, 선배 덜 익었어요, 하던 후배 서민교의 허연 엉덩이 그림이 갑자기 떠올라 젓가락을 내려놓았던 거였다.

민교는 고개를 돌려 우물쭈물하는 나를 발견했다.

민교가 놀라 일어났다. 치마가 내려와 허연 엉덩이는 자연스럽게 가려졌다.


- 내 허연 엉덩이를 훔쳐봤죠? 선배는 변태, 선배는 관음증 환자, 선배는 성도착증 환자예요!


민교가 나를 멧돼지 몰이하듯 물고 늘어졌다.


- 난 그게 니 엉덩인 줄은 몰랐다, 거무틱틱 해서 멧돼진 줄 알았어, 미안...

- 네?!


시니컬한 내 반응에 민교는 얼굴이 새파래지며 당황했다. 충격이 컸던 것 같았다. 그 뒤부터 그 일에 대해 일절 캐묻진 않았지만 대신 나에게 시시콜콜 시비가 잦았다. 그걸 감수했다. 허연 엉덩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거무틱틱 한 멧돼지라고 표현한 내 잘못이 컸다. 대책 없이 비대한 여자도 거무틱틱 하다고 하면 기분이 나쁠 텐데 나름 뭇 남성들로부터 시선을 받던 맵시녀에게 그런 치욕적인 표현을 했으니 당해도 싸다고 스스로 인정해 시비를 받아줬다.

나를 좋아하나?...

한때는 그런 생각도 했지만, 민교에겐 애인도 있었고 내 스타일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나는 넌지시 던지는 추파엔 벽창호였다. 그러니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식당 문을 나섰다.

바람까지 동원한 억수 비가 얼굴을 때렸다.

일제 강점기 1917년부터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45기의 고분을 조사해 발굴했던, 말이산 4호와 25호 고분 사이에 교묘하게 숨겨진 고분이 최근에 발견되었다. 언론이 눈치 못 채게 입단속을 시켰고, 경남 사학계에서도 쉬쉬했다. 발굴 경비가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발굴 경비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언론에 유출되면 하이에나나 다름없는 도굴꾼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벼들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언론은 말이산 4호 및 25호 고분 발굴 100주년 기념행사 이벤트 정도로 여겨 3단 기사로 끝냈다. 일본 유학파며 일본 고분 학계와 친밀한 가야 고분 권위자 우리 학교 조달호 교수가 재빨리 움직였다. 신속하게 한일 공동발굴단이 꾸려졌다. 모든 비용은 일본 측에서 부담하는 걸로 했다.

일본어를 할 줄 아는 나는 당연히 교수의 추천으로 통역 겸 보조 조사원으로 발굴단

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말이 보조 조사원이지 일본 측 심부름꾼이었다.

‘말이산 4호 및 25호 고분 발굴 100주년 한일학술 세미나’ 거창한 타이틀을 걸고 비밀리 진행된 유물 발굴이었다.

거센 바람과 함께 동반된 억수 비가 얼굴과 등줄기를 때렸다.

식당 나설 때부터 기웃기웃하던 날이 고분 들어설 무렵 어두워졌다.

랜턴을 켜고 오솔길처럼 난 길을 시름시름 올라갔다.

비옷을 뚫고 들어온 비는 금세 옷을 후줄근하게 적셨다.

황톳길은 미끄러웠고 신발은 푹푹 빠졌다.

걷기가 엄청 힘들었다.

몇 번 넘어질 뻔한 위기를 겪었다.

신발끈...

빗물을 한껏 머금은 풀밭에 발을 디디자 운동화에 빗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아, 시펄, 졸라 이게 뭐야...

발을 털며 몇 번 욕을 되뇌었다.

그렇게 약 30분을 걸어가자 희끄무레한 그림자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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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시리즈1 킹덤 : 왕들의 무덤 22.06.14 71 5 9쪽
9 시리즈1 킹덤 : 왕들의 무덤 22.06.14 67 4 10쪽
8 시리즈1 킹덤 : 왕들의 무덤 22.06.14 69 4 9쪽
7 시리즈1 킹덤 : 왕들의 무덤 22.06.14 76 4 9쪽
6 시리즈1 킹덤 : 왕들의 무덤 22.06.14 95 4 10쪽
» 시리즈1 킹덤 : 왕들의 무덤 22.06.14 88 3 10쪽
4 시리즈1 킹덤 : 왕들의 무덤 22.06.14 119 4 16쪽
3 시리즈1 킹덤 : 왕들의 무덤 22.06.14 177 5 12쪽
2 시리즈1 킹덤 : 왕들의 무덤 22.06.14 277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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