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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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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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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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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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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기를 쓰고 흥행시킬 생각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Christmas Cargo>의 프로덕션은 경험이 많은 류지호에게도 쉽지 않았다.

특히 아이오와와 한국 황매산의 겨울 추위는 생각보다 끔찍했다.

배우들 사이에서 종종 불만이 터져 나오긴 했지만.

대체로 협조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미 계약서에 그와 관련해 조항들을 만들어 넣었기에.

나름 출연료도 두둑하게 챙겨주기도 했고.

게다가 배우들이 보기에 <Christmas Cargo>는 오스카 트로피를 노려볼 만한 했다.

자신이 수상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작품에 참여한 이들 모두의 커리어를 더욱 빛내 준다.

몸값 상승이라는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기도 하고.

아카데미 수상은 투자사와 제작사를 웃게 하고, 수상자를 행복하게 만들며, 참여한 이들의 계약금 상승에 기여한다.

특히 지금까지 제작된 Eye-MAX 상업영화는 대부분 흥행에 성공했다.

전쟁영화는 대형필름 포맷에 가장 어울리는 장르이기도 하다.

<Christmas Cargo>의 영화 완성도를 그 누구도 걱정하지 않았다.

연출력을 충분히 검증 받은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다.

화려한 뮤지컬 영화 <시카고>, 그리고 비주얼에 있어서 까다롭기 그지없는 만 감독을 만족시켰고, <게이샤의 추억>으로 아카데미 촬영상과 미국촬영감독협회에서 수여하는 상을 동시에 거머쥔 촬영감독 데온 비베가 촬영을 맡았다.

<Frank Castle>의 끈적끈적한 핏빛 느와르 액션영화의 미술을 혁신적으로 디자인한 마이클 리바 프로덕션 디자이너 또한 건재했다.

영화편집자이면서 특이하게 세컨드 유닛 감독까지 수행하는 스펜서 베어드를 비롯해서 다수의 흥행대작에서 스턴트 디자인을 수행했던 Vic&Jay팀, 수많은 작품에서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된 경력의 의상 부문의 글로이아 그리샴 등.

류지호의 초기작부터 함께 해온 최고 중에 최고들이 참여한 영화다.

가장 든든한 우군은 음악감독 로이 호너다.

류지호의 전작들은 물론이고 다양한 영화에서 대중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음악을 선보인, 두말이 필요 없는 할리우드 최고 영화음악가이다.

프로덕션에 들어가기 전에 완성한 테마 음악은 명불허전.

F-51D 무스탕, M46 패튼, 군함의 엔진 소리와 시계 초침 소리를 결합한 재밌는 사운드를 선보였다.

<REMO>를 작업하며 한국 전통음악에 매료되었던 로이 호너다.

이번에도 한국의 전통 타악기를 이용한 독특한 리듬을 만들어냈다.

가사가 있는 보컬 곡도 즐겨 영화에 삽입하는데, 이번에는 한국 가요 <이등병의 편지>를 영어로 개사해 변주한 곡도 넣었다.

그 작업에는 류지호의 동생 류순호가 참여했다.

완성되지 않은 1절 부문만 듣고도 류지호는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줄 알았다.


‘군대 두 번 다녀온 그 절절함이란....제기랄.’


어쨌든 어디 한 군데 구멍 하나 없이 탄탄한 인력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배우들은 또 어떤가.

제라드 깁슨과 월터 윌리스가 한 영화에 나온다.

영화 속에서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긴 하지만.

게랄트 올드먼과 빈센트 허트 같은 명품 배우도 출연한다.

<다크나이트>에서 조커로 인생 캐릭터를 연기한 클리프 레저.

어린 시절 외모를 그대로 유지하며 꽃미남 계보를 계승하고 있는 청춘스타 배런 랜프로까지.

단역급 배우들도 탄탄한 연기력을 자랑하는 원석들이다.

추후 그들 중 상당수가 할리우드 영화에서 활발하게 활동한다.

무엇보다 <Christmas Cargo> 관계자들이 기대하는 것은 류지호의 장기다.


-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재주가 있는 감독!


모 비평가의 평가처럼 압도적인 현장감을 화면에 담아내는 재주다.

코믹스 원작의 액션판타지 <REMO>와 <Frank Castle>에서조차 실제 상황처럼 정교하고 사실적인 연출을 선보인 바 있었다.

이번 <Christmas Cargo>의 전투 장면의 러시필름을 본 트라이-스텔라 배급담당자들은 압도적인 비주얼에 큰 기대감을 품고 있다.

4박 5일 간 진행되었던 F-중대의 야간전투 시퀀스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 바하마 상륙작전과는 또 다른 스케일의 압도적인 비주얼을 선보이게 된다.

장진호 전투에만 4주가 넘는 시간을 할애했다.

정말 공을 많이 들였다.

장진호 전투 촬영에서만 7,000개의 다이너마이트가 사용됐다.

피탄과 화약 사용은 할리우드 단일 영화 기록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실물 탱크를 날려버리는 것은 기본이었다.

무려 4,000평 규모의 사단본부 세트를 폭파로 초토화 시켜버렸다.

오죽하면 스태프들이 ‘파괴왕‘이라고 쑥덕거렸을까.

영화에서 돈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프로듀서로서 작정하고 본보기를 보이는 것만 같았다.

가장 많은 보조 출연자가 동원된 워싱턴주 퍼시픽 비치 흥남철수 장면에는 CG를 최소화하기 위해 해변 전체를 흥남부두와 거의 비슷하게 실물 크기로 세트를 지었다.


“이 세트를 철거해야 한다는 것이 매우 유감스럽군.”


오죽하면 제라드 깁슨이 그 같은 말을 했을까.

미군과 국군 또 피란민까지 새까맣게 해변을 뒤덮은 장면에서는 2,000명 넘는 보조출연자가 동원되었고, 류지호까지 피란민 복장을 하고 연출할 정도였다.

<Christmas Cargo>의 흥남 세트들은 당시의 시설물을 실물 크기로 제작했을 뿐만 아니라, 미해군의 지원으로 퇴역한 항모부터 구축함, 수송선, 상륙선 수십 척이 동원되었다.

고기잡이배 수십 척을 만들었다.

단 한 번 나오는 공중 전투씬은 실제로 비행하며 촬영했다.

지상을 향해 네이팜탄이나 폭격을 퍼붓는 장면을 찍기 위해 특수 개조한 Eye-MAX용 렌즈를 따로 제작하기도 했다.

그 결과 전투기 조종사 시점에서 보이는 무손실의 Eye-MAX 오리지널 영상을 감상할 수 있게 됐다.

<Christmas Cargo>는 장진호 전투부터 흥남부두, 마지막으로 부산까지, 세 사람의 시선으로 전쟁을 바라본다.

사단 본부를 중심으로 미해병 1사단의 생사여탈을 책임진 최고 지휘관 올리버 스미스 사단장.

장진호의 전설, 덕동고개 전투에서 F중대를 이끈 바버 대위.

카투사 부대와 함께 중공군의 함정에 빠져 죽음 코앞에서 겨우 살아남은 루크 포드 소위.

이들 세 사람은 장진호의 각기 다른 장소에서 시작해서 영화 중반 사단본부에서 같은 공간으로 모이게 되고, 결국 흥남부두에 도착하지만 여전히 서로의 임무와 시간이 달라 교차하는 것에 그친다.

매러디스호에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배런 렌프로도 함께 하지만, 그가 영화의 주인공은 아니다.

그 외에도 여러 인물들의 시점을 넘나든다.

그러기 위해서 동시간대에 벌어지는 암호명 ‘Christmas Cargo‘ 작전에 주요 사건들을 시간 단위로 재구성해서 배치할 예정이다.

마치 <뒹케르크>가 육·해·공의 세 가지 상황을 넘나들다가 엮이는 것처럼.

류지호는 동시간대임을 알려주기 위해 여러 장치들을 넣었다.

그 중에 하나가 조명탄이다.

덕동고개에서 산발적으로 조명탄이 하늘을 수놓다가 어느 한 순간 조명탄이 무수히 하늘로 쏘아지며 불꽃놀이처럼 하늘을 수놓는 장면이 있다.

장진호수 너머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있던 배런 렌프로의 소대가 이 조명탄으로 인해 개미떼처럼 몰려드는 중공군을 발견한다.

조명탄을 연결고리로 31특임전투단의 배런 렌프로의 소대가 중공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는 상황으로 넘어가는 방식이다.

무전기를 통해 편집을 넘기는 방식도 있다.

빗발치는 총알을 피해 참호 속에서 고개를 처박은 무전병이 사단본부와 교신하는 장면과 하갈우리 사단본부의 무전기로 이어지면 장소와 상황을 옮겨가는 방식도 쓸 예정이다.

장진호 전투 시퀀스만 놓고 보면, 동시에 교전이 벌어지는 덕동고개, 호수 건너 동쪽 특임전투단, 하갈우리 사단 본부 장면이 뒤죽박죽이다.

그래서 사용한 기법이 원 컨티뉴어스 쇼트 기법이었다.

즉 덕동고개 씬, 장진호수 건너편 특임전투단, 하갈우리 전투를 각각 원 컨티뉴어스 쇼트 기법으로 단 세 커트로 구성하기로 했다.

각각이 세 시퀀스는 밤하늘을 수놓는 조명탄 불꽃놀이, 참호 안 무전병에서 하갈우리 사단 본부 막사 안 무전병으로 이어질 때 브릿지 커트를 넣어서 동시간대이지만 각기 다른 상황들을 헛갈리지 않도록 편집할 계획이다.

세 곳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콘셉트도 다르고 주력 화기도 다르다.

때문에 편집뿐만 아니라, 사운드 디자인도 섬세하게 이루어져야 했다.

배런 렌프로가 류지호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Bro, ADR은 언제 쯤 할 것 같아?”


ADR(Automated Dialog Replacement).

쉽게 말해서 후시녹음이다.

후시녹음 전용 녹음실에서 편집이 끝난 영상을 보면서 가이드로 녹음한 현장 다이얼로그를 들으며 배우가 다시 목소리를 입히는 작업이다.


“대략 두 달 후 쯤....”

“한 달이 아니고?”

“먼저 하든가.”

“그래도 돼?”

“대신 편집 되지 않은 커트 길이만큼 모두 녹음해야 할 걸?”

“상관없어.”


액션 비중도 많고, 촬영 진행이 빡빡하게 돌아가는 할리우드 상업영화는 세트 촬영에서 녹음한 사운드 소스 외에 약 90% 분량을 후시녹음으로 채운다.

할리우드 영화가 후시녹음을 선호하는 것이 아니다.

여건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더 많다.

촬영 현장에서 동시녹음 사운드보다 그림을 우선한 작업을 하기 때문이고, 각종 노이즈들이 현장에서 많이 끼어들기도 하며, 많은 배우들이 후시녹음을 원한다.

미국에서는 배우와 성우를 구분하지 않는다.

두 분야를 겸업하는 경우가 많아서 배우들이 후시녹음에 거부감이 없다.

어쨌든 Eye-MAX는 동시녹음이 불가능하고, 촬영장 자체가 진짜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아수라장이었다.

게다가 영화 자체가 다이얼로그가 많지도 않다.

따라서 후시녹음은 정해진 수순이다.


“여자 친구는?”

“헤어졌어.”

“언제 철들래?”

“또, 또! 아빠처럼 군다.”

“내 칫솔을 만질 수 있는 사람에게 함부로 하지 않는 법이라고 했다. 명심해.”

“응. 앞으로 만날 여자한테 그렇게 할 게.”


본래라면 배런 렌프로에게 일본인 여자 친구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하나 있어야 했다.

이번에는 아니다.

일본인 여자 친구가 아예 없다.

녀석은 마약은커녕 방황도 안 했다.

단지 여성편력이 심각할 정도로 난잡했을 뿐.

그럼에도 용하다고 해야 할지.

아직까지 배런 렌프로의 아이라며 데리고 와서, 친자소송을 걸어온 여성은 없었다.


“크랭크업도 했고. 뭘 하고 지낼 생각이야?”

“글쎄.... 형은 고향으로 돌아간다며?”

“응..”

“나도 갈까?”

“가서 뭐하게?”

“시아는?“

“엄마하고 여주라는 도시에.”

“에이전트에게 향후 일정 확인해 볼게.”

“진짜 한국 가게?”

“응.”

“왜?”

“시아랑 놀아 주고. 우찬이형 하고 운동도 함께 하고. 광고 몇 개 찍을까?”

“이번 주 안에 결정해.”

“알겠어!”


클리프 레저와는 체스영화에 대한 일정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오리지널 스토리도 좋고. 작년에 사망한 체스계의 스타의 이야기를 다뤄도 좋고.”

“바비 피셔?”

“체스 실력도 최고였고, 삶도 드라마틱하다며?”


제 11대 세계 체스챔피언 바비 피셔가 작년에 사망했다.

1972년에 벌어진 소련의 보리스 스파스키와의 미소 냉전 체스 대결로 유명하다.

이전 삶에는 에디 즈워크가 맥과이어를 주인공으로 베스트셀러 ‘My 60 Memorable Games’를 기반으로 한 전기영화를 찍었다.


“전설적인 체스선수 중에서 유일한 미국인이기도 하고.”

“나도 무척 좋아하는 선수이긴 해... 논란과 상관없이.”

“그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으면 앨런에게 이야기 해 봐. 유족과 만나서 협상을 해볼 수 있으니까.”

“....음.”

“남의 영화를 들먹이는 것이 그렇긴 하지만. <8마일>이야 <굿 윌 헌팅>이야?”

“후자에 가까울 것 같아.”

“그렇다면 오리지널 스토리로 가도 큰 상관없어.”

“계속 LA에 머물면서 포스트프로덕션을 진행할 거야?”

“다음 주에 한국으로 출국해. 올 하반기나 되어야 LA로 돌아올 거야.“

“.....”

“시나리오는 이메일로 보내도록 해. 센추리 시티의 내 사무실로 보내도 되고.”

“한국이면.... 서울?”

“아니. 여주라는 시골에 부모님이 살고 계셔.”

“내가 찾아간다면 실례야?”

“시나리오부터 먼저 써. 구체적이고 실무적인 대화는 그 후에.”

“알겠어.“


현재 클리프 레저는 배우로서의 생활보다 영화 연출에 더욱 몰두하고 있다.

6살 때부터 두기 시작한 체스.

청소년기부터 꿈꿔 왔던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열망.

그 둘이 결합한 프로젝트가 바로 한창 준비 중인 체스영화다.


“행운을 빈다.”


성대하게 열린 그렉 파커 주최 환송파티에는 게랄트 올드만, 제라드 깁슨, 빈센트 허트, 월트 윌리스 같은 배우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일찍이 자신들의 촬영 분량을 끝마쳤기 때문이다.

크랭크업 전날까지 촬영을 해야 했던 F-중대와 31특임전투단의 젊은 배우들만 참석했다.

영화 촬영이 모두 끝났음에도 마치 진짜 해병대처럼 군가를 부르기도 했다.


“몬테주마의 홀에서 트리폴리 해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조국의 권리를 위해 땅에서도 바다에서도 싸운다네!”


23주(휴식, 이동일 포함) 간 <Christmas Cargo>를 촬영하며 고생한 스태프들에게 류지호가 일일이 고마움을 표했다.

파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선물 상자를 하나씩 안겨주었다.

비싸지도, 대단한 것도 아니다.

PISA 브랜드의 후드티와 스포츠 솔더 가방이었다.

스태프들이 류지호의 선물에 진심으로 감사할지 알 수 없다.

자꾸 선물을 주다보면 점점 큰 걸 바라게 되는 것이 사람 마음이기도 하고.

어쨌든 모든 스태프에게 선물을 해 봤자 겨우(?) 5만 달러 지출에 불과했다.

Rehman 사태가 이후로 류지호는 수 조원을 벌었다.

세금을 도대체 얼마를 내야할지.

류지호의 재무를 담당하는 비서들이 엄청난 업무량에 치일 정도다.

그러니 5만 달러 지출이 업무에 추가된다고 해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호텔 객실로 향하던 류지호를 그렉 파커가 붙잡았다.


“Jay! 이대로 객실로 올라갈 생각은 아니겠지?”

“....!”

“잔말 말고 따라 와라!”

“이 늦은 시간에.... 도대체 어디로 끌고 가려고요?”

“어디긴. 나의 집이지!”


그렉 파커가 류지호를 자신의 저택으로 강제로 끌고 갔다.

이미 저택에는 둘째 노아 파커와 자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더스틴, 오랜만이다.”


아버지인 노아 파커의 외모를 그대로 빼닮은 더스틴 파커다.

현재는 아버지의 사업을 돕고 있지만, 덩치값을 한 것인지 몇 해 전까지 NFL 후보 선수생활을 했다.

인사를 받을 생각도 않고 대뜸 류지호의 무신경함부터 추궁했다.


“49ers는 이대로 방치하는 거야? 구단주로서 자각이 있어?”

“게임은 코칭 스태프와 선수들이 하는 거잖아. 난 그들을 서포트 할 뿐이야.”


십대 여학생치고 꽤나 숙맥이었던 그렉 파커의 큰 딸 에일리는 첫 째 아이가 벌써 10살이다.

류지호와 동갑내기인 에일리는 남편과 함께 시카고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처백모들도 마지막에 만났을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이 다들 건강했다.


“자, 마셔! 딸꾹!”

“으하하. 오늘 그렉의 술창고를 거덜 내는 거야!”


오붓한 가족 파티 취지는 어느새 실종이 되어버렸다.

부어라 마셔라.... 폭음이 이어졌다.

그렉과 노아 파커 형제는 한국으로 치면 곧 환갑이 된다.

그럼에도 젊은 사람 못지않은 정력을 과시했다.

미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가문이 파커다.

가문의 위세를 빌리지 않아도 두 형제는 이미 슈퍼리치이기도 하다.

뉴욕 사교계에는 유럽귀족 행세하는 슈퍼리치도 많다.

이들 형제는 그런 것이 없다.

고상한척, 우아 떠는 법이 일절 없다.

언제나 유쾌하고, 수다스러우며, 뻔뻔... 아니 당당했다.

한국의 포털사이트에서 이런 우스갯소리가 유행하고 있단다.


- 3억 원짜리 마이바흐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고무신에 빤스 차림으로 다녀도 대접받는다.


햇볕에 까무잡잡하게 그을린 피부, 고급 브랜드 스웨터이지만 군데군데 올이 나가 있어 싸구려처럼 보이는 옷차림, 비싼 와인을 놔두고 굳이 싸구려 위스키를 즐겨 마시는 취향,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펍에 나타나기라도 하면 영락없는 폭주족으로 오해할 만한 덩치.

그럼에도 아이오와주와 시카고 등지에서 이들 형제를 몰라봐서 실수하는 사람은 없다.


아비투스(habitus).


프랑스 철학자 부르디외가 처음 제시한 개념으로 사회문화적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제2의 본성, 즉 타인과 나를 구별 짓는 취향, 습관, 아우라를 일컫는다.

류지호가 보아온 대부분의 상류층 사람들은 취향과 생활양식으로 남들과 자신을 구분 지으려고 하는 경향이 강했다.

대중들 사이에서.


“역시 그릇이 달라.”

“격이 다르네.”


같은 느낌을 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아비투스가 남다른 것이다.

신흥부자들은 자신의 지위가 달라졌다는 것을 어떤 식으로든 내보이고 싶어 한다.

태가 안 날 수가 없다.

무리를 짓고 살아가는 존재들은 본능적으로 서열을 구분 짓는다.

특히 인간은 서열의식이 다른 어떤 동물보다 세분화가 되어 있다.

아비투스를 ‘개인의 취향’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여기에는 ‘품격’이 내재되어 있다.

그 ‘품격’을 통해 상류층은 상대와 나를 구분 짓는다.

그렇기에 단순히 돈만 있다고 상류층에 섞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류층의 아비투스의 핵심은.


- 과시하지 않음으로써 과시하고, 아는 사람만 알아본다.

- 빛나지 않음으로써 저절로 빛이 난다.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

상류층의 검소함은 중산층의 존경을 불러일으킨다.

반면에 신흥부자를 멸시하도록 한다.

노아 파커의 아들 더스틴은 어설픈 신흥부자가 보기에는 영락없는 바보다.

때때로 시골뜨기처럼 행동하니까.

그런데 그런 더스틴 파커는 어려서부터 성공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성장했다.

그의 부모가 힘든 과제를 해결하면서 막대한 부를 얻는 것을 지켜봤고, 수많은 사람들을 지휘하거나 거대한 프로젝트를 추진해 성공하는 것을 보면서 자랐다.

어릴 때부터 자신도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생각이란 걸 하기 시작한 나이부터 목표를 크게 잡았다.

친구들이 변호사가 되길 희망할 때 법무부 장관이 될 수 있다고 믿고 그를 위해 노력하는가 하면, 단순히 좋은 직장에 취업하길 바라는 것을 넘어 그 회사의 최고 경영자를 목표로 했다.

그런 것이 미국 상속가문의 자연스러운 자녀 교육이다.

미국에서 우스갯소리로 케네디 가문을 왕가라고 칭하기도 한다.


“케네디 가문의 사람은 결코 2등을 하지 않습니다.”


그 같은 신념을 갖고 있다.

오만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더스틴 파커 같은 상속가문에서 자란 이들에게는 그 같은 자신감이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그들과 비교해 류지호는 하층민 출신이다.

그럼에도 청소년시기부터 미국의 상류층으로부터 아비투스를 인정받았다.

상류층의 아비투스 조건인 여유, 대담, 교양과 매너가 도저히 또래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회귀자이기 가질 수 있는 아비투스다.

류지호가 여유로울 수 있는 이유는 50년을 이미 살아보면서 어떤 문제든지 결국에는 해결된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좀처럼 서두르거나 조바심을 내지 않게 된다.

청년이 저지를 수 있는 성급함이 없는 것 역시 성공한 사람들이 보기에 자신에 대한 통제력이 있다는 것으로 비춰졌다.

이전 삶의 기억을 고스란히 품고 있기에 류지호는 자신이 손 댄 분야가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대담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

비록 삼류 영화감독에 불과했다고 하지만 씨네필이자 잡식성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그를 통해 제법 교양 있는 태도와 고급문화를 즐기는 취향을 상대에게 보일 수가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유교 꼰대인 아버지의 가정교육으로 인한 ‘겸손’이 더해졌다.

그러니 미국 상류층들이 보기에 십대에 이미 아비투스 아우라를 품게 되었다고 착각하게 된 것이다.

어쨌든 류지호의 자녀들 역시 더스틴 파커나 에일리처럼 자라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버지는 손대는 것마다 성공을 시키는 불세출의 미다스의 손이며, 외가는 미국에서 손꼽히는 상속가문이다.

태어나자마자 보는 것들의 기준이 너무 높게 잡힐 수밖에 없다.

다이아몬드 수저를 타고 난 것 외에도 최고의 교육, 최고의 소득, 영향력 있는 지위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어릴 때부터 화려하고 사치스러움에 끝을 경험하게 될 터.

성인이 되어서는 도리어 세련미를 추구하게 될 것이다.

즉 명품가방, 스포츠카, 황금 시계 따위로 부를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이 심플하지만 세련되고 우아한, 아는 사람만 알아보는, 일반인들의 눈에 띄지 않는 그런 소비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런 것이 제대로 된 현대판 귀족가문의 가풍이다.

류지호는 두 번의 삶을 살아가면서 환경이 사람을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됐다.

결국 나라는 사람을 완성시키는 것은 주변 사람이었다.

파커 사람들은 류지호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자극하는 이들이다.

윌리엄 파커의 아들들이 올바른 사람인지는 단언할 수 없다.

다만 좋은 사람들임에는 틀림없다.


“뭘 넋 놓고 있어? 벌써 취한 거야?”

“아니요.”

“딸꾹. 마셔. 오늘 밤 우리는 파커의 조상님을 보러 간다.”

“아들 뭐하냐? 너도 가야지. 조상님 뵈러!”

“당연하지! 추울~바알~”


그들이 좋은 사람인 것과 별개로 류지호는 하나를 더 추가했다.

바로 술주정뱅이다.


❉ ❉ ❉


[클리프 레저가 길고 험난했던 <Christmas Cargo> 촬영을 마무리했다며 소감을 전했다. 지난 12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클리프 레저는 “우리는 장장 5개월에 걸쳐서 영화를 촬영한 끝에 마침내 장소를 밝힐 수 없는 아이오와의 한 지역에서 촬영을 끝낼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클리프 레저는 “영화촬영을 하며 거대한 세트장 규모와 한국 로케이션이 인상이 깊었다”며 지호 류 작품 중에서 가장 긴 영화가 될 것 같다는 예상을 말하기도 했다.]

- The Hollywood Reporter.


<Christmas Cargo> 촬영 종료 소식이 전 세계로 타전됐다.

한국에서 로케이션을 진행하며 이번 작품 소재가 한국전쟁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LA로 돌아와 엔터테인먼트 전문 매체 몇 곳과 인터뷰한 류지호는 장진호 전투가 메인 스토리임을 시원하게 털어놓았다.

다만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매러디스호 에피소드는 감췄다.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기에.


“바짝 서둘러서 12월 말에 제한상영으로 개봉하자.”


앨런 포스터가 간곡하게 류지호를 설득했다.


“적당히 포스트프로덕션을 마무리했다가 오스카는커녕 다른 어떤 영화제에서도 환영 못 받을 걸?”

“아냐! 내가 볼 때 감독상, 촬영상, 음악상, 편집상, 음향상, 미술상은 최소 노미네이트야.”

“진심이야?”

“응.”

“내년 상반기 개봉이라.... 차라리 여름방학 시즌으로 개봉 스케줄을 미루는 건 어때?”

“트라이-스텔라와 의논해 볼 게. 조정이 가능한지.”

“마지막으로 확인할 게.”

“뭘?“

“개봉판 프린트는 애초 합의한 대로 하는 거다?”

“응.”


촬영에서는 팔다리가 잘려나가고, 피부가 꿰뚫리고, 내장이 쏟아지고, 눈알 파지는 장면을 있는 적나라하게 촬영했다.

그런데 배급사인 트라이-스텔라와 제작사 JHO Pictures 관계자들이 모여서 마케팅 전략에서 합의를 도출했는데, PG-13 등급에 맞추기로 한 것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급 이상의 리얼한 신체훼손 장면을 편집하도록 류지호를 설득하기로 했다.

당연히 류지호가 노발대발했다.


“영화가 극장에서 내려갈 즈음에 R등급의 편집본을 Eye-MAX로 재개봉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후에 한 번 더 오리지널 감독판을 재개봉하면 됩니다.”


최장 5년에 걸친 개봉 전략이다.

1.5억 달러 제작비를 어떻게 해서든 회수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할 수 있다.


“Eye-MAX 관람료는 비쌉니다. 충분히 손익분기점은 맞출 수 있어요.”


기다렸다는 듯이 트라이-스텔라 배급총괄 부사장이 반론을 제기했다.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750여 개 전용상영관 밖에 없다는 거죠.”


앨런 포스터도 그들의 편이 되었다.


“200여 개 Eye-MAX 상영관을 보유한 중국 개봉도 불투명하잖아.”

“......”

“Jay.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여러 버전의 재개봉만이 답이야.”


스티븐 아들러 감독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NC-17 등급 개봉을 고집했다.

스튜디오 측에서 재편집을 요구할 때마다 일언지하에 거부했다.

감독으로써 멋진 고집이다.

류지호 역시 그 같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제아무리 1.5억 달러라는 제작비가 부담스럽게 다가온다고 해도.

다만 <Christmas Cargo>는 반드시 성공해야만 한다는 사실.

그래야 다른 할리우드 스튜디오도 한국전쟁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게 될 테니까.


- 역시 듣도 보도 못한 한국전쟁은 돈이 안 돼!


이런 인식이 할리우드에서 재확인된다면.

류지호가 <Christmas Cargo>를 찍은 의미가 퇴색된다.


“여러분의 뜻은 잘 알겠어요. 하지만 나는 반대합니다. NC-17 등급을 받아 오세요. 그것이 여러분이 이 영화를 위해서 할 일입니다.”


류지호는 무슨 수를 쓰든 영화를 흥행시킬 생각이다.

홍보마케팅에 1억 달러를 쏟아 붓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까지 거부해왔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나가 광대놀음도 하라면 다 할 것이다.

자신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모든 종류의 뉴미디어도 적극 활용할 계획이고.

류지호의 완강한 태도에 배급팀은 도리가 없었다.


작가의말

평온한 주말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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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4 안 가본 길을 걷고 있었기에. (3) +6 24.03.12 1,624 88 23쪽
793 안 가본 길을 걷고 있었기에. (2) +3 24.03.11 1,611 86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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