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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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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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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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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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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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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Christmas Cargo. (10)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투타타타타!


제6해병관측비행대(VMO-6).

그들이 운용하는 HO3S-1 헬리콥터가 분주하게 뜨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한국전에서 맹활약한 이 기종은 한국의 어떤 전쟁박물관에도 없었다.

그래서 미국에서 실어왔다.

통관에만 무려 6개월이나 걸렸다.

고철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비행할 수 있는 헬기였기에 통관에 무척 애를 먹었다.

어쨌든 중공군에게 포위당한 채 장진호 주변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해병부대들 사이를 HO3S-1 헬기가 숨 가쁘게 날아다녔다.

보병들이 포위망을 돌파하는 동안 지상을 향해 지원사격을 하기도 했다.

주임무는 긴급구호소가 만들어진 하갈우리 사단 본부까지 부상병들을 후송하는 것이었다.

다시 미국 아이오와주로 돌아가서 촬영하는 흥남철수 작전 분량에서는 함재 폭격기 TBM-3E 어벤져와 Sikorsky H-19 Chickasaw가 등장하게 된다.

참고로 치카소(Chickasaw)는 미국 미시시피주와 앨러바마주에 분포해 있던 인디언의 한 부족이라고 한다.

폭격기인 TBM-3E 어벤저의 경우 3명이 캐노피에 탑승할 수가 있다.

그 남는 자리를 활용해서 고토리 철수 완료하기 까지 103명의 사상자를 수송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고토리 철수 작전 임무를 완수한 후, 동해에서 작전 중인 항모의 항공단으로 복귀했다.

한국전쟁이 발발 후 연합군은 7월 3일부터 항공모함 작전을 시작했다.

북한군이 해상으로 남하하지 못하도록 저지한 것이다.

미항공모함 벨리포지함(USS Valley Forge)과 영국의 항공모함 트라이엄프함(HMS Triumph)을 주축으로 77 기동함대를 구성했다.

휴전 때까지 동해에서 연 12척의 항공모함이 무려 27회의 작전 활동을 수행했다.

항모가 작전을 펼친 최대 작전은 수풍댐을 폭격하는 작전이었다.

모두 4척이 동원되었다.

기동함대는 통상 두 척의 항모가 임무를 수행한다.

한 척은 일본의 요코스카항에서 대기했다.

한국전쟁 당시에 작전을 펼쳤던 항모는 모두 퇴역했다.

안타깝게도 <Christmas Cargo>에서는 에식스급 항모(Essex class aircraft carrier)를 동원하지 못했다.

군함과 흥남철수에 동원된 수송함, 민간 화물선만 간신히 동원할 수 있었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도 없었다.

단 몇 커트를 얻기 위해 수백만 달러를 쓸 순 없었다.

그 제작비로 다른 실물 선박을 빌리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기에.

할리우드 CG기술로 꽤 그럴듯하게 재현할 수도 있지만, <Christmas Cargo>에서는 컴퓨터 그래픽을 가능하면 사용하지 않기로 했고.


[가자!]


황매평전에서의 마지막 촬영은 올리버 사단장이 직접 헬기를 타고 적진으로 들어가 부상병을 후송하는 에피소드를 찍었다.

<Christmas Cargo>에서는 극을 이끌어가는 특정한 주인공이 없다.

굳이 따져야 한다면, 영화에 나오는 장교부터 말단병사 그리고 장진호 피란민까지 모두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에 어떻게 주인공이 있을 수가 있겠어요. 다만 누구나 당사자가 될 순 있겠죠.”


류지호가 배우들에게 한 말이었다.

굳이 <Christmas Cargo>를 일반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규정해야 한다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씬 레드 라인> 그 사이 어디 즈음이라고 할 수 있다.


❉ ❉ ❉


합천 황매평전에서 일주일 내내 쉬지 않고 촬영을 진행했다.

이후로 합천 영상테마파크와 눈 덮인 합천 호수 주변을 오가며 촬영을 진행했다.

총 3주로 예정된 일정의 마지막은 합천 영상테마파크의 구<태극기 휘날리며> 세트에서 장식했다.

2004년에 오픈한 합천 영상테마파크는 <태극기 휘날리며>의 평양 시가지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전체 부지 2만 5천 평의 절반이 비어있다.

이 시기에는 영화팀이나 방송팀이 선호하는 야외 세트는 아니었다.

사실 시대극 야외 세트는 여주에 조성된 WaW종합촬영소 백랏(Backlot)이 훨씬 크고 넓고 방대하고 풍부했다.

다만 평양시가지 폐허 백랏이 없을 뿐.

합천 세트장에 있는 평양 시가지 폐허를 마이클 리바 미술팀이 장진군으로 개조했다.

조감독 이동화가 폐허 세트 한쪽에 마련한 모니터 스테이션으로 걸어왔다.

그리곤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류지호에게 한 마디 했다.


“여기 별로 마음에 안 든다면서... 여주에 새로 만드시지.”

“한 씬 찍으려고 만들기가 뭐해서. 여기 세트가 만들어져 있는데 뭐 하러 중복해서 세트를 짓냐? 낭비야 낭비.”

“할리우드에서도 제작비 아껴요?”

“당연하지, 인마. 땅 파봐 돈이 나오나.”

“천오백 억짜리 영화라면서요?”

“하고 싶은 대로 하려면 그 예산도 모자라. 딱 만족할만한 선에 걸칠 정도... 그 정도만 하는 거지.”


류지호 입장에서는 솔직한 심정이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재수가 없었다.


“감독님은 그러지 않아도 되지 않나.... 할리우드 톱 감독인데?”

“나만 생각 하냐? 내 영화에 돈 댄 사람은? 내 영화에 출연한 배우는? 내 영화에서 일한 스태프는? 영화 쫄딱 망하면 그 사람 커리어는 어떻게 하고. 또 내 영화를 배급하는 회사는? 상영하는 극장은? 해외서 사가는 바이어들은?“

“감독이 영화만 잘 찍으면 되지 뭘 그런 거 까지 다 생각하신데....”

“영화를 더 잘 찍으려고 고민하는 거다. 자위하려고 영화 찍는 게 아니라.”

“하여간 무슨 말을 못 하게 한다니깐....!”


영화감독이 폼 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실상은 아니다.

영화감독은 내가 찍고 싶은 그림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빌어야 한다면 빌어야 하고.

빌었는데도 안 되면 금방 포기하고.

포기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를 판단해야 한다.

주어진 것만으로 찍어야 할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지지해준 고마운 사람들, 그리고 돈을 내고 봐줄 관객들에게 최고로 멋진 영상을 선물할 의무가 있다.

한편으로 내 작품과 내 재능을 매몰차게 차버린 이들이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하게 만들어주는 독심이 필요하기도 하고.

그런 위치가 되기 전에 함부로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내 재능이 세상 최고인 것처럼.

까불면 안 된다.

또 감독은 무작정 선량해서는 안 된다.

남의 재능을 악마처럼 쪽쪽 빨아먹을 줄 알아야 한다.

그림을 위해서라면.

영화의 완성도를 위해서라면.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기까지 해야 한다.

종합예술이며 공동 창작인 영화라는 작업에 있어서.

영화감독은 남들의 재능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다.

소설가, 음악가, 미술가처럼 자신의 재능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세계적인 영화감독들은 함께 일하는 이들의 재능을 잘 이끌어낸 사람들이다.

작가의 글 쓰는 재능, 배우의 연기 재능, 스태프 각자의 예술적 재능들.

그 모든 재능을 극한까지 끌어낸 사람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을 어떻게 이끄는가가 좋은 연출이 되고 못되고를 결정한다.

비즈니스 리더와는 어떤 면에서는 같고 또 다른 면도 있다.

지적인 사기꾼이 되어야 할 때도 있다.


“연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이 말빨이다.”


그 같은 영화판 농담이 있을 정도다.

고상한 말로 설득하는 직업이라고 하는데.

류지호가 보기에 사기를 잘 쳐야 영화판에서 성공한다.

영화판의 인간관계나 비즈니스에서 사기 잘 치는 감독이 생각보다 많다.

대부분 그런 이들이 영화판에서 성공한다.

가진 재능은 쥐뿔도 없는데, 화려한 언변과 이미지 메이킹만으로 출세한 감독들.

충무로에 수두룩하다.

할리우드에는 더 수두룩하고.

영화감독은 신이 아니다.

그렇기에 자신이 다루는 것들에서 모든 답을 알 필요는 없다.

영화 연출은 질문을 던지는 행위다.

먼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작가에게 질문을 던지고, 헤드 스태프에게 질문을 던지고, 주연 배우에게 질문을 던진다.

마지막으로 관객과 사회에 질문을 던진다.

생각해보면 인생도 마찬가지다.

정답을 알 수도 없지만.

정답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꾸준히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삶은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영화감독 역시 그렇다.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설득하는 사람이다.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글로 옮겨줄 작가를 설득하고, 머릿속에 들어 있는 그림을 촬영해 줄 카메라 감독을 설득하고,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표정과 목소리로 구체화 시켜줄 배우를 설득한다.

정말 피곤한 일이다.

머릿속의 것을 본인 스스로 명확하게 구현하지 못하는데, 수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설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게 되면, 사기를 잘 치게 된다.

자신의 방식대로 고집스럽게 하나하나 찍어나가는 작가주의 연출이 있다.

한 컷을 촬영하기 위해 수십 번의 NG를 내는 완벽주의 감독들.

그들은 엄청난 사기꾼들이다.

알프레드 히치콕이나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제작자와 배우 및 스태프를 홀리고 속이는 수십 가지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스티븐 아들러 역시 마찬가지다.

그 역시 투자자와 배급사 최고 수뇌부를 매일 홀리고 또 사기를 치고 있다.

무조건 잘 될 것이라면서.

류지호는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진 못했다.

그래서 사전준비를 철저히 하려고 노력한다.

매 작품마다 콘티를 매우 디테일하게 작성해서 풀 스토리보드북을 만든다.

그것만 보면 류지호가 원하는 거의 전부를 알 수 있도록.

그런데 깊이 들어가 보면 허술한 것도 많다.

완벽하지 않은 그 부분을 스태프들이 채워준다.

결국 영화가 완성이 되고 나면.

스태프의 재능으로 채운 부분까지 모두 감독의 재능으로 둔갑된다.


“나 혼자 만든다기보다 공동창작이라 생각하고 협동의 과정을 즐겨라. 내 뜻대로 안된다고 짜증내는 순간, 연출은 하수가 된다. 삼류가 아닌 척 하지 말라. 일류도 처음에는 삼류였다. 삼류가 일류인 척 하는 것, 그보다 꼴불견은 없다.”


류지호가 UCLA, USC, NYU 등 영화학과 학생들에게 특강을 할 때마다 강조하는 말이었다.


“영화감독은 촬영현장에서 신이 아니다. 제왕처럼 굴지도 마라. 겸손하게 헤드스태프에게 질문만 던져도 당신은 어느 순간 예술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당신들과 일하는 사람들이 최고임을 의심하지 마라. 의심할 바에는 아예 고용하지도 마라.”


전 세계 어떤 영화판이나 제왕적인 스타일의 영화감독이 있다.

소통 부재의 독재적인 운용을 즐기는 감독.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감독.

보통 그런 감독은 3편을 못 넘긴다.

그 과정에서 밑천이 다 드러나기 때문이다.


- 나도 좋은 스태프와 일하면 류지호보다 더 잘 찍을 수 있다.


충무로에서 전쟁영화를 준비하고 있는 재미교포 감독이 한 말이었다.

그의 말 한 마디가 충무로에서 일파만파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충무로 스태프를 무시한다는 오해를 살 만한 발언이었기에.

충무로 스태프들 사이에서 비난이 쏟아졌다.


- 할리우드 스태프는 좋은 스태프, 충무로 스태프는 나쁜 스태프냐?

- 충무로 스태프를 믿지 못하면 한국이 아니라 미국 가서 영화를 찍어라.

- 겨우 영화 한 편 흥행한 주제에 마치 자기가 무슨 대단한 감독인양 스태프를 무시 하냐.

- 누가 들으면 지가 공진형이나 박진우 감독급인 줄.


공식석상에서 한 말도, 기사화 된 발언이 아니었다.

술자리에서 한 말이었다.

때문에 사과할 사안은 아니었다.

그래서 인지 재미교포 출신 감독은 뻔뻔하게 굴었다.

누군가 류지호처럼 할리우드 가서 영화 찍고 나서 말하라고 그에게 점잖게 충고했다.


“그러지 않아도 할리우드 가서 영화 찍습니다. 걱정들 마세요.”


라고 받아쳤다고 한다.

2007년 봄이었다.

한국의 영화감독과 배우 몇 명이 할리우드 메이저 에이전시인 OAA와 계약을 체결했다.

미국 활동을 위해서다.

그때 계약을 체결한 한국 감독 중에 문제의 발언을 한 감독이 포함되어 있었다.

올해 그 감독은 학도병을 소재로 한 전쟁영화를 끝냈다.

그리고 공식발표를 통해 할리우드 진출을 선언했다.

그의 할리우드 데뷔작은 홍콩 느와르 하면 떠오르는 작품 중에 하나다.

비둘기 시그니처를 세상에 알린 바로 그 영화다.

홍콩, 할리우드, 한국 삼각으로 리메이크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전 삶에도 안 됐고, 이번에도 안 된다.

그보다 더 뛰어난, 할리우드 검증까지 마친 충무로 최고 감독들도 할리우드 데뷔에 수년이 걸렸다.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 감독이 그것도 한국에서 기록한 것으로 할리우드로 직행한다는 것은 <오징어 게임> 이후라면 몰라도 이 시기에는 가능하지 않았다.

류지호가 JHO 계열 영화사에 추천한다면 또 모른다.

이명수 감독 경우처럼.

유명인이 된다는 것은 온갖 이들과 비교대상이 된다는 것과도 같다.

류지호는 누구나가 비교되길 희망하는 유명인이다.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

시샘하는 사람.

증오하는 사람까지.

세상에는 온갖 사람들이 존재한다.

오랜만에 류지호가 한국에 돌아와서 하는 촬영이다.

비록 한국영화는 아니라고 하지만.

말 많은 충무로.

그곳에서 들려오는 뒷담화들이 수시로 류지호의 귀에 꽂혔다.


‘그럴 시간에 시나리오 한 줄이라도 더 쓰고, 한 쇼트라도 더 찍을 생각을 해야지....’


❉ ❉ ❉


할리우드 배우들 위주로 빠르게 촬영분량을 지워나갔다.

미국 배우들은 자신의 한국 로케이션이 마무리되면 따로 관광을 즐길 새도 없이 곧바로 미국으로 돌아갔다.

류지호와 일부 스태프만 한국에 남아서 잔여분량 촬영에 매진했다.

남은 것들은 주로 피란민들의 모습과 중공군 관련 분량들이었다.

류지호가 합천 일대를 중심으로 촬영을 하고 있는 사이에도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는 계속되었다.

경기가 차갑게 얼어붙은 분위기 속에서도 충무로는 변함없이 굴러가고 있다.

관객들이 지갑을 닫은 탓에 극장 매출은 좀 줄겠지만, WaW를 비롯해 주요 메이저들의 투자를 통해 예년 수준의 제작편수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하는 분위기다.

제작편수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영화 스태프들의 고용이 어느 정도 유지된다는 걸 의미한다.


“영화인 노조와 직능별 조합도 나름 자리를 잡아가는 모양새입니다. 단체교섭 역시 한국영화배급협회와 제작자협회 측과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고요.”


의장비서실 소속 전략1팀의 백인섭이 휴일에 합천으로 내려와 브리핑을 했다.

한종혁이 WaW 엔터테인먼트 해외협력부문 수장으로 영전하면서 새롭게 영화부문을 보좌하게 된 인물이다.


“천만 영화가 탄생하지 않고, 두 편의 독립영화의 흥행이 특이사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8년 한국영화는 다채로웠다.

싸구려 코미디 장르부터 웰메이드 장르 영화, 한일 합작, 블록버스터까지.

한국영화팬들에게 나름 성의 있는 상차림을 내놓을 수 있었다.


“비록 외화 점유율 57%로 2000년 이후 8년 만에 한국영화가 점유율 역전을 허용했지만, 어려운 가운데서 나름 선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업체 수가 역대 최고치라고요?”

“예. 엔젤 투자금이 많이 빠졌음에도 영화업계의 활력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제작·수입·배급·상영업을 통틀어 등록된 업체 수만 5,300여 개다.


“허수가 많잖아요.”

“그렇습니다. 영화업 관련해서는 폐업 신고가 의무화되어 있지 않기도 하고, 업체 등록만 해놓고 영업을 하지 않는 곳들이 상당수라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실제 활동 중인 곳은 절반 정도로 보면 되겠죠?”

“예. 의장님.”


류지호가 보고서를 읽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부가시장은 WaW 영화를 제외하고 시장 자체가 거의 고사한 상태네요. 해외수출에서도 큰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고.”

“저희 계열의 스펙트럼을 제외하고 대부분 DVD 서플먼트 제작에도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한국의 영화사들은 사실상 DVD 시장을 포기했다.

WaW 엔터테인먼트만이 대도시에 깔아둔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 판매를 통해 유의미한 매출을 기록하고 있을 뿐.

가온그룹이 불법복제 및 유통에 대해 지독하게 굴었기에 관련 피해가 적기도 하고.

2003년 비디오와 DVD 시장이 7,800억 원으로 최고점을 찍은 이후로 계속해서 내리막이었다.

불법다운로더들과 싸우고, 합리적인 가격정책을 펴고, 양질의 부록을 넣었지만, 가온그룹 홀로 DVD의 몰락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작년 비디오 및 DVD 시장 규모가 4,020억까지 떨어지고, 할리우드 직배사들이 DVD 시장에서 완전 철수하고, 전국 비디오 렌탈숍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등 악재들이 연이어 겹치자, 한국의 메이저 영화사들도 비디오 및 DVD 시장을 완전히 포기했다.

의도치 않게 스펙트럼DVD가 독점기업이 되어버렸다.

2008년 한국의 비디오 시장 규모는 3,200억 원, DVD 시장은 1,120억 원 규모로 떨어졌다.

DVD 시장은 거의 스펙트럼DVD가 거두는 매출과 동일하다고 봐야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극장 매출과 비디오·DVD 매출이 1:1이었습니다. 의장님께서 우려하신 대로 2005년을 기점으로 극단적으로 영화산업의 수익구조가 극장 매출로 쏠리는 기형화 구조로 완전 정착해버렸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스펙트럼 말고 아직 남아 있는 제작·유통사가 있어요?”

“비디오를 하는 곳 두 곳만 남았고, DVD는 사실상 저희 계열의 스펙트럼 독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가온그룹 계열사 스펙트럼DVD에서는 비디오테이프는 제작·유통하지 않는다.

오로지 DVD만 제작·유통 및 소매까지 한다.

한국영화에는 불행이지만, 스펙트럼DVD 입장에서는 독점기업이기에 나쁠 것이 없다.


“할리우드 직배사가 하던 물량을 다 스펙트럼에서 소화하고 있대요?”

“대만 업체에 잠시 외주를 준 적이 있습니다. 품질이 너무 형편이 없어서 마니아들에게 철저히 외면을 받았습니다. 영화 본편에 한국어 자막만 성의 없게 넣어서 형식적으로 발매하고 있어서 판매량은 극히 저조합니다.”


류지호의 전략은 아주 단순했다.

한국의 DVD 및 블루레이 시장 규모를 적어도 500억 원 수준으로 유지한다.

최대 10년 동안.

그 시장을 스펙트럼DVD가 독식한다.

마치 2012년부터 무주공산이 되는 북미 비디오 및 DVD 렌탈서비스에서 StreamFlicks가 독점을 하는 것처럼.

결국에 사라질 시장에서 빨리 발을 빼는 것도 현명한 판단이겠지만.

시장에서 버티고 버틴 결과 끝까지 살아남아 있으면 승리자가 될 수도 있다.

류지호가 굳이 갖다 붙인 명분은 경제 분야에서 자주 언급되는 소프트랜딩(soft landing)론이다.

경기가 호황기를 지나 정점을 찍은 후 다시 수축되는 시기에는 경제활동의 활기가 점차 약해지게 되는데, 소비, 투자, 고용, 소득 등이 모두 둔화되기 시작하고 판매와 기업이윤도 줄어들게 된다.

경기 둔화의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면 생산, 소비 등이 급감하고 실업이 크게 늘어나며 주가가 하락하는 등 주요 경제지표가 매우 불안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 때 경제 또는 경기가 ‘경착륙 했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경기의 급강하로 각 부문에 충격이 전달되는 상황을 항공기의 거친 착륙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반면 경제가 완만하게 수축되는 것을 경기의 ‘연착륙’이라고 한다.

많은 정부와 중앙은행이 적절한 재정 및 통화정책 등을 통해 수축기에 경제를 연착륙시키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


“사양산업인 DVD에 얽매이는 것은 어리석은 경영 판단일 수도 있어요.”


사실 눈물겨운 류지호의 충정이라고 할 수 있다.

대기업 영화사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영화 업체들은 배급사와 극장 수입을 나눠 갖는 것으로 연명한다.

그나마 500억 DVD 시장을 존속시키면 그를 통해 조금이라도 수익을 분배받을 수가 있다.

판매량이 유의미하다면 그것을 근거로 다른 부가시장에서 협상력을 가져갈 수도 있고.


“적어도 스트리밍 서비스가 정착되기 전까지는 한국영화 수입원의 일부를 책임져 주도록 억지로 유지시켜보려고 합니다.”


80년대 말 이미 수명을 다했다고 여겨졌던 LP가 부활하고, 전자책이 일반화 된 시절에도 여전히 종이책의 수요가 있는 것처럼.

DVD에 대한 수요 또한 최대 10년은 존재할 것이다.


“스펙트럼이 OTT 서비스로 흑자를 볼 때까지 무엇으로 버틸까....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500억 DVD시장이 조금은 도움이 되겠지요.”


경쟁 없이 스펙트럼DVD가 독점한다는 가정 하에서.


“이미 그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스펙트럼DVD의 생산과 유통 서비스가 호황 때에 비해서 축소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건재합니다. 직배사들이 비용 문제로 그들 영화까지 스펙트럼에 맡기게 되면 DVD에서 유의미한 매출을 꾸준히 기록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스펙트럼이 시장 독점 기업이 되었다고 해서 DVD를 개판으로 제작해 팔면 안 하느니만 못하고요....”


그때는 무조건 폐업 시킬 생각이다.

세계적인 복합미디어 기업 오너가 쪽팔리게 푼돈 벌자고 날림으로 제품을 제작해 팔아먹을 순 없으니까.


“경영진들도 그 같은 의장님의 철학을 모르지 않습니다.”


과연 그 말 대로일지 지켜볼 일이다.


❉ ❉ ❉


<Christmas Cargo>의 한국 로케이션은 2월 말이 되어서야 모두 마무리됐다.

그 기간 동안 한국 언론에서 수많은 취재 요청이 있었다.

일절 거절했다.

할리우드 배우들이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온타운과 센텀시티 가온호텔 주변에 취재진들이 진을 쳤다.

배우들이 미국으로 돌아가고 난 후에도 취재진들은 철수하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서다.

레오나와 딸 시아가 전용기 편으로 한국에 들어왔다는 소문이 퍼졌다.

만약 ‘류시아‘의 사진을 찍을 수만 있다면 특종은 따 놓은 당상이다.

소문처럼 실제 레오나와 딸이 한국에 들어왔다.

신종인플루엔자 대유행 때문이다.

아직은 관련한 뉴스가 나오진 않았다.

그렇다고 신종플루 대유행 없이 넘어갈 것 같진 않았다.

이전 삶에서 한국 정부는 매우 발 빠르고 모범적으로 초기대응을 했다.

사스를 경험했던 참여정부가 마련해 두었던 방역 기구 및 체제가 도움이 됐다.

긴밀한 대응 덕분에 5~8월 중순까지 한국 사망자는 없었다.

한국 기준으로 8월 말까지 사망률은 0.01%에 불과했다.

그처럼 미국보다 안전한 곳이 한국이었다.

따라서 아내와 딸을 한국으로 불러들였다.

한국 로케이션을 마무리 한 류지호가 출국 전까지 부모님 댁에서 휴식을 취했다.


“호남전자? 혹시 건전지 만드는 그 호남전자요?”


가온타운으로 찾아온 래리 킴 회장이 뜬금없는 업체를 언급했다.


“예. 로켓...배터리의 그 호남전자입니다.”


1946년 설립된 건전지 전문 업체 호남전자.

외환위기 이후 재무구조가 악화되고, 외국 건전지 브랜드에 밀리면서 설 자리를 잃은 1차 전지 전문 회사다.

같은 브랜드 로켓밧데리를 사용하는 세반전지도 있다.

래리 킴이 언급한 회사는 호남전자였다.


“가온이 1차 전지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있어요?”


수 조원이 소요되는 M&A만 아니면 대부분 래리 킴 회장 선에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호남전자 정도 되는 업체는 래리 킴 회장이 결정하면 될 일이다.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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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7 또 작두 타는 영화 제작해야 하나? +7 24.03.21 1,446 81 23쪽
» Christmas Cargo. (10) +3 24.03.21 1,289 74 24쪽
805 Christmas Cargo. (9) +8 24.03.20 1,398 81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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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3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2 24.03.19 1,455 83 23쪽
802 가온그룹의 선전 덕분 아니겠습니까? +3 24.03.18 1,518 91 31쪽
801 Christmas Cargo. (7) +9 24.03.16 1,493 95 23쪽
800 Christmas Cargo. (6) +10 24.03.15 1,422 86 23쪽
799 Christmas Cargo. (5) +3 24.03.15 1,292 65 25쪽
798 Christmas Cargo. (4) +8 24.03.14 1,440 81 25쪽
797 Christmas Cargo. (3) +3 24.03.14 1,351 75 25쪽
796 Christmas Cargo. (2) +8 24.03.13 1,511 82 25쪽
795 Christmas Cargo. (1) +8 24.03.13 1,493 78 24쪽
794 안 가본 길을 걷고 있었기에. (3) +6 24.03.12 1,615 88 23쪽
793 안 가본 길을 걷고 있었기에. (2) +3 24.03.11 1,600 86 23쪽
792 안 가본 길을 걷고 있었기에. (1) +5 24.03.09 1,663 82 21쪽
791 광폭행보(廣幅行步)! (4) +3 24.03.08 1,632 87 27쪽
790 광폭행보(廣幅行步)! (3) +2 24.03.07 1,616 80 25쪽
789 광폭행보(廣幅行步)! (2) +4 24.03.06 1,668 79 26쪽
788 광폭행보(廣幅行步)! (1) +3 24.03.05 1,725 85 27쪽
787 빅딜 해볼 생각 없어? (4) +5 24.03.04 1,659 86 24쪽
786 빅딜 해볼 생각 없어? (3) +8 24.03.02 1,677 83 22쪽
785 빅딜 해볼 생각 없어? (2) +6 24.03.01 1,645 77 22쪽
784 빅딜 해볼 생각 없어? (1) +4 24.02.29 1,635 78 22쪽
783 고집쟁이는 아니지만, 지나친 완벽주의자... +9 24.02.28 1,591 79 30쪽
782 돈을 번다는 건 분명 좋다! (2) +2 24.02.27 1,565 82 23쪽
781 돈을 번다는 건 분명 좋다! (1) +3 24.02.26 1,597 83 25쪽
780 이 사업은 무조건 된다! +11 24.02.24 1,680 80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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