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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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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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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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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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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놀면 뭐해... 일할 수 있을 때 바짝 해야지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한국의 시사 월간지에서 읽었어요.”


물론 이전 삶에서.


“소련이 무너지고 나서 흘러들어온 수많은 토가레프들이 한국 땅에 발에 차이고 넘칠 정도라나. 부산 국제시장 가면 130만원이면 권총 한 자루 구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고.”

“요즘 젊은 감독들은 시사잡지 잘 안 읽는데... 아무튼 자기는 특이하다니까.”


미군 부대 PX에서 총기 면허가 있는 사람이 총을 살 수가 있다.


“카투사로 복무 할 때 미군 중에서 PX에서 총기를 구입했다면서 한국을 떠날 때 평소 친분 있는 카투사나 한국인에게 싸게 팔 테니 사라는 제안을 했다는 전설 같은 말을 들었어요. 카투사는 미군 PX에서 총을 판다고 믿었죠. 선배 카투사들이 미군으로부터 총을 구입했다는 말도 들었고.”

“오~ 그 소문이 진짜였어?”

“김포대교 다리 밑을 파보란 말이 바로 여기서 나온 것 같아요. 호기심으로 미군으로부터 권총을 구입한 민간인 혹은 카투사가 총기소지가 불법인 한국에서 마음을 졸이다가 한강에 던졌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요.”

“그럼 뻥이란 거야?”

“몰라요. 카투사가 출입 못하는 미군 PX에서 실제 총을 파는지도 확인 못했으니까.”


카투사 도시전설과 다른 버전의 괴담이 바로 서울 일대에서 활약(?)하던 조폭들이 소련제 토카레프를 소지하고 있다가 ‘범죄와의 전쟁’ 시기 한강에 버렸고, 여름에 홍수가 나면 그런 총들이 다 쓸려나가 김포대교 밑에 쌓인다는 거다.

한강에 버려진 권총의 양이 엄청나게 많단다.

1개 연대 병력을 무장시킬 정도라나.

시답잖은 농담 같은 이야기다.

왠지 듣다보면 그럴싸하게 들리는 도시 괴담이랄까.


“아냐. 내가 만나본 원로 깡패가 실제 박통 시절에 서울 건달들이 권총을 그 곳에 많이 버렸다고 이야기했어.”


미군 지휘부가 바보가 아닌 바에야 총기소지가 불법인 한국의 군기지 PX에서 총을 판매하도록 허락할 리가 없다.

해외 주둔지에서 미군 병사가 치는 사고만으로도 골치 아픈데, 총기 사고라도 나면 그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 이야기가 본론은 아니고.”


원래 말이 많은 양반이 아니다.

그런데 류지호만 만나면 쉴 새 없이 떠든다.


“그 영화 촬영 할 때 사보이호텔 습격 당시에 사시미칼을 쓰지 않았다고 우겨서 촬영 때 칼은 다 뺐다고 하더라고.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양동이파는 칼을 썼다는 걸 극구 부인하나봐. 원로 조폭들도 양동이파가 처음으로 사시미를 썼다고 증언하던데 말이지.”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조직 전담 경찰이나 검사하고 인터뷰했다고 하지 않았어요?”

“열 명 넘게 인터뷰했지 왜 안 했겠어. 사보이호텔 습격 사건으로 양동이파 조직원들이 죄다 도망 다녔는데, 두목인 최 회장이 체포 된 뒤에 집행유예로 풀려났어. 최 회장이 정치권에 엄청난 백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야. 칼을 써서 사람이 다치거나 죽었다면 집행유예는 불가능하지 않았겠어?”

“당시에는 양동이파에서 의도적으로 그런 이미지로 포장했을 수도 없고 라이벌 조직에서 그런 프레임을 씌운 것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검경이 스토리를 짰나....?”

“그럴 가능성도 없다곤 못해. 검찰이 전국구 삼대 조폭을 의도적으로 띄우기도 했고.”

“실적 때문이겠죠. 경찰, 검찰, 언론 모두 실적 쌓기 좋은 아이템이잖아요. 전국구 조폭 두목 검거.”


특히 삼청교육대 깡패들 잡아넣을 때 실제보다 조폭 계보를 과장하거나 크고 거대하게 보이도록 했다.

그래야 삼청교육대의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으니까.


“지금도 그래. 한 물 간 그 사람들을 여전히 언론이나 수사기관이 끄집어내는 이유가 뭘까. 네임밸류 있는 조폭 두목을 검거했다고 해야 신문도 더 팔아먹고 담당 수사관이나 검사는 실적을 쌓고.”


이 시기, 언론이나 수사기관에서 보는 것과 달리 주먹계에서 소위 전국구 조폭 양동이파와 광진파 두목의 업계 영향은 미미했다.

심지어 양동이파와 광진파라는 조직 자체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 옛날 조폭 브랜드일 뿐이죠 뭐.”

“형·아우 관계로 사적인 인연까지 끊어지진 않았지만, 당시 조직원 모두가 개인플레이를 하고 있대.”

“들어보니까, 양동이파, 광진파 시대는 완전 끝났다면서 후배 조폭들이 더 이상 그들을 인정하지도 않는다네요.”

“내가 시나리오 쓸 때도 그랬어. 별 것 아닌 선배들을 너무 띄운다며 기자들이 개념이 없다고 언론을 질타하는 현직 조폭까지 있었지.”


현실과 동 떨어져 여전히 그들이 주목 받는 것은 왜 일까.

화려했던 과거 명성 때문이다.

그것이 검찰이 만들어낸 신화였든 아니든.

여전히 그들은 이름값이 있으며 스토리가 있다.

그 때문에 양지와 음지 세계를 여전히 넘나들고 있다.

게다가 그들의 이름값은 수사기관의 실적 쌓기에 변함없이 매력적인 소재다.

언론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끌고 가기 좋은 재료기도 하고.


“한 물 간 조폭들 이야기를 왜 하려고 해? 그것도 영화도 아니고 드라마로.”

“조직폭력의 역사를 통해 한국 사회의 이면을 풀어보려고요.”

“폭력의 역사를 통해 우리 현대사를 들여다보겠다는 거야?”

“그렇게 거창하지는 않아요.”


갱영화는 양면성이 있다.

폭력의 미화와 권력에 대한 풍자다.

그래서 감독들이 좋아한다.

대부분이 졸작에 머물게 되지만.


“필름느와르 장르를 통해서 사회 이면에서 인간의 속성인 폭력이 사회를 구성하는 다른 요소들과 결합해 어떤 형태로 표출되었는지 보여줄 수 있잖아요. 아직 그런 시선은 없었던 것 같아요. <야인시대>도 과거 깡패들의 무용담을 통해 남성 판타지를 자극한 수준에 머물렀고.”

“나름 전라도 3대 패밀리가 활동했던 시대가 현대사의 격동기이기도 했지.”

“당시 검찰과 경찰이 만들어낸 신화를 바닥까지 탈탈 뒤집어보려고요. 3대 패밀리의 탄생부터 3년 전쟁까지 훑어내고 두목들의 과거와 현재를 재조명하게 되면 그 시대의 이면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현대사의 주요 인간 군상을 풍부하게 다루고 싶은 거야?”

“정치인이나 검사, 재벌 같은 이들은 깊게 다루고 싶지 않아요.”

“조폭들 눈높이에서 보는 사회? 뒷골목 세계의 일상성을 묘사하자?”

“제5공화국 같은 드라마에서 정치 이야기는 지겹게 봤잖아요. 차라리 그 시대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 넝마주이 모습, 베트남 상이용사들, 유흥가 퇴폐 문화, 양공주, 기생관광 같은... 당시 각종 범죄세계들을 깊게 다루고 싶어요. 뒷골목의 살아 있는 역사가 우리 사회 엘리트들의 행태와 그렇게 다르지 않아 보이거든요.”

“정치인이나 상류세계가 그려지지 않는다면.... 마피아인척하는 양아치 스토리 그게 TV드라마로 재미있을까?”

“재미있게 써주셔야죠. 형님이.”

“몇 부작?”

“12부에 맞춰주세요.”

“언제까지 나와야 돼?”

“최종고는 내년 봄.”

“그때 쯤 미국에서 찍는 영화가 끝나?”

“프로덕션이 그때 쯤 끝날 것 같아요. 봄에 대본이 나오면 여름에 후딱 촬영하고 겨울에 포스트하면 2010년 봄에 방영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류지호는 방송 드라마를 쉽게 보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다루기 힘든 복잡하고 어려운 작업을 워낙 많이 해봤으니까.

전생현생 다 포함해서.

게다가 류지호 사단이 참여할 예정이다.

현장에서 ‘레디 고‘만 외쳐도 잘 돌아갈 정도로 믿음직한 스태프들이다.

대형 스크린을 위한 서사를 만드는 것과 TV브라운관을 위한 서사를 만드는 것이 같으면서 다르겠지만, 류지호 입장에서는 TV시리즈가 영화보다는 쉽게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디테일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수위는 19금에 맞춰주세요.”

“욕설, 폭력, 피, 섹스 모두에서? TBO 드라마처럼?”

“철저하게 성인을 타깃으로 하는 드라마에요. 시청률도 신경 안 써요.”

“아무리 케이블TV라도 그렇지....”

“다솜에서 방영 못할 수도 있어요. 좀 세게 갈 거라.”

“.....?”

“미국의 StreamFlicks라고 알죠?”

“인터넷으로 영화 보는 사이트잖아.”

“곧바로 거기로 보낼지도 몰라요.”

“한류스타도 안 나오는 드라마를 외국에서 보나....? 아무리 류 감독 작품이라고 해도?”

“누군가는 봐 주겠죠. 교포들이 보거나.”

“드라마로 간 좀 보게? 아니면 낚시하는 거야?”

“영화나 드라마 가지고 장난치는 거 봤어요?”

“......”

“시작하면 실전입니다. 단지 한국 드라마가 지금까지 쌓아온 전형성이나 흥행 서사 없이 어디까지 할 수 있나 직접 경험해 보고 싶어요.”

“미드처럼 만들게?”

“영화처럼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겠네요.”


송진한의 한쪽 입 꼬리가 슬쩍 말아 올라갔다.


피식.


류지호가 아닌 다른 감독이었다면 단박에.


‘까불지 말지.’


라고 한 소리 했을 송진한이다.

영화 같은 드라마가 가당키나 하냐면서.

예전 좋았던 시절의 필력과 감각을 되찾을 수 있었던 일등공신이 류지호다.

남들이 쉽게 건드리지 못하는 부분.

리스크가 커서 함부로 시도 못하는 아이디어.

흥행이 불확실한 모험.

그런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고 또 결과까지 좋게 나오게 할 수 있는 제작자겸 감독은 충무로에 류지호가 유일하다.

한국에는 트라이-스텔라TV, TBO 같은 프리미엄 유료 케이블 네트워크가 없다.

때문에 욕설, 성행위, 폭력 묘사에서 수위조절에 상당히 신경을 써야 한다.

작가입장에서는 구상 때부터 일정부분의 리얼리티를 포기하고 들어가야 한다.

범죄세계를 다룰 때 직업세계 은어나 욕설 없이 모두 바르고 고운 말을 사용한다면 그처럼 맥 빠지는 묘사도 없다.

때문에 방송심의원회의 등급에 연연하지 않기로 한 것을 송진한은 내심 반겼다.


“셀프 검열 없이 꼴리는 대로 막 쓴다?”

“바라는 게 그거에요. <친구>처럼 조폭세계 미화하지 마시고, 있는 그대로 써주세요. 조폭이 독립운동가도 아닌데 영웅처럼 묘사해서 어따 쓰겠어요. 무식하면 무식한대로, 비열하면 비열한대로, 비겁하면 비겁한대로, 이기적이면 이기적인대로, 잔인하면 잔인한대로....”

“주인공이 비열하고 허세 충만해도 돼?”

“물론이에요. 형님이 직접 경험한 조폭들, 취재로 만났던 조폭들, 그대로 가자고요.”

“언론과 검찰이 만들어낸 한국 조폭 판타지의 이면을 시원하게 까발려 보는 건가?”

“일단은 형님 갈기고 싶은 대로 해보고. 나중에 함께 조율해 봐요.”

“1년이나 시간을 줘서 널널하게 작업해도 되겠어....”

“재욱이가 프로듀서에요. 실무적인 건 재욱이하고 상의하세요.”

“계약은 Aram의 최 대표하고 했는데?”

“이번 드라마만 재욱이가 Aram으로 와서 돕기로 했어요.”

“알겠어.”


대본을 전적으로 송진한 작가에게 맡겼다.

굳이 드라마를 연출하려고 하는 이유는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생명의 항해> 프로덕션은 올 11월 중순부터 내년 4월 중순까지 잡혀 있다.

포스트 프로덕션 기간은 무려 10개월이 잡혀있다.

개봉은 2010년 봄.

포스트 프로덕션부터 개봉까지 1년여 기간이 붕 뜨게 된다.

참고로 2010년 메이저 스튜디오들의 성수기 개봉 라인업은 다음과 같다.

5월 개봉하는 <아이언맨Ⅱ>, <이클립스>, <로빈후드>, <나이트 & 데이>, <라스트 에어벤드>가 있고, <인셉션>, <페르시아 왕자>와 애니메이션 <슈렉 포에버>, <슈퍼배드>등이 7월 여름방학에 개봉하기로 예정되어 있다.

만만한 영화가 단 한 편도 없다.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시즌도 마찬가지다.

류지호는 자신 소유 영화사들의 작품과도 피 튀기는 경쟁을 벌여야 한다.


“미국에서는 드라마 연출 제의 안 들어와?”

“들어오죠.”

“근데 왜 한국에서 찍으려고 해. 요새 다솜 드라마 시청률이 별로야?”

“케이블 시청률이 뭐 그렇죠. 아직은 지상파를 못 쫒아가네요.”

“명품 TV라는 트라이-스텔라TV가 자기 꺼 아니었어? TBO 같은 케이블에서도 자기가 기획한 드라마라고 하면 서로 하자고 할 텐데.”

“딱히 그렇지도 않아요. 할리우드에 널리고 널린 게 감독이고 작가라서.....”


Prestige TV Network(명품 TV 네트워크)!

이전 삶에서 워너-타임미디어 산하 유료케이블 네트워크 TBO(Television Box Office)가 들었던 명예로운 표현이다. 이제 그 명성은 Tri-StellarTV(TSTV)의 차지가 되었다.

TBO는 초창기부터 프로복싱 경기를 중계해 왔는데, 상당한 인기가 있다.

미국에서 유료 가입자는 대략 4,000만 명 수준이며, 150여 개국에 콘텐츠를 수출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명품 채널이라 불리는 TSTV는 오래된 영화는 방영하지 않는다.

따로 오라이언 클래식이란 채널과 MSM 계열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한다.

TSTV에서는 최신 개봉 영화 외에 오리지널 TV시리즈와 각종 다큐멘터리 및 메이킹필름, 유니벌스뮤직그룹 소속 뮤지션들의 라이브 콘서트, UFC 경기를 방송하고 있다.

2008년 시점에서 유료 가입자는 미국에서만 6,000만 명, 전 세계적으로 대략 1억 8,000만 명이 TSTV 콘텐츠를 즐기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소 150개국에 콘텐츠를 수출하고 있고.

참고로 Tri-Stellar TV의 2007년 매출은 56억 달러, 영업이익은 17억 달러에 달한다.

2010년 <Boardwalk Empire>, 2011년 <Game of Thrones> 등이 방영되기 시작하고 남미와 유럽 가입자가 늘어나게 되면 총매출이 70억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는 경쟁유료 채널 둘의 매출을 합쳐야 나오는 수준이다.


“미국에서도 류 감독이 찍는 드라마 궁금해 할 것 같은데. 한국 드라마 짜치게 나오면 괜히 망신만 당하는 거 아냐?”

“미국도 감독보다 작가 네임밸류 더 따지는 건 다르지 않아서 아마 형님 커리어를 파 볼 걸요.”


송진한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지금까지 류지호는 TSTV의 수많은 TV시리즈에서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렸다.

드라마 기획 및 발굴, 원작 판권 확보 등을 인정받기 때문이다.

물론 제작비도 대고.

미국에서는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보다 쇼러너를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


“2010년대에는 블록버스터 위주로 찍을 것 같아서 TV 드라마 기웃거릴 여력이 없어요. 저예산 영화를 좀 해야 드라마 쪽으로 짬이 날 것 같았는데... 내년에 대여섯 달 붕 뜬 기간이 생길 것 같아서 부담 없는 드라마 한 편 하려고요.”

“충무로에서 작업하는 게 자기한테는 저예산 찍는 거 아니었나?”

“언제부터 충무로에서 50억 예산이 저예산이 되었대요?”

“말이 그렇단 거지.”

“10월 초까지는 트리트먼트를 이메일로 보내주세요. 10월 말부터 영화 때문에 신경 못 쓰니까.”

“12부 모두 사전제작할 거야?”

“당연하죠. 내년에 3개월 간 한국에서 바짝 일하고 미국으로 돌아가야죠.”

“그렇게 바쁘게 찍을 이유라도 있어?”

“놀면 뭐해요? 일할 수 있을 때 바짝 해야지. 형님도 물 들어올 때 열심히 노 저어요. 괜히 있어 보이는 척 폼 잡지 마시고.”

“내가 언제 폼 잡았다고 그러나, 이 사람아.....”


송진한에게 시나리오 의뢰가 제법 들어오고 있다.

그런데 모두 거절하고 있단다.

류지호는 그런 송작가의 불성실한 태도를 꼬집었다.


“자기와 더 이야기 하다보면 무슨 말이 나올지 모르겠어. 난 이만 가 볼게.”

“재욱이랑 이야기 하시고. 초고 나오면 이메일로 바로 쏴주세요.”

“미국 가서 작업해도 돼?”

“언제 넘어 오실래요?”

“무슨 말을 못한다니까....”

“최종고는 미국 와서 마무리하는 것도 염두에 두세요.”

“봐서.”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당연히 조직폭력의 세계는 어둠의 세계다.

영화 <친구> 이전에는 한국의 대중들은 전국구 폭력조직 하면 세 개를 떠올렸다.

80년대 이른바 ‘3년 전쟁’으로 조폭 전성시대를 열기도 했던 전라도의 3대 패밀리다.

비슷한 또래였던 세 사람.

양동이파, 광진파, 동양파.

한때 전국을 나와바리(구역)로 삼기 위해 치열한 3파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던 전설로 남아 있는 폭력조직들이다.

폭력조직의 명칭은 주로 검찰에서 붙인다.

계보나 활동영역을 특정하기 위해 폭력조직 두목의 이름에서 따거나, 폭력배들이 최초 결성된 장소 혹은 주로 활동하는 지역을 붙인다.

광진파와 동양파는 두목이 처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던 광주지역의 다방 이름을 조직의 이름으로 붙인 것이다.

류지호가 기획한 드라마에서는 양동이파 두목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중심으로 60~80년대 한국의 조직폭력 역사를 다룰 예정이다.

워킹타이틀은 <Gang's Life>.

<야인시대> 혹은 <친구>처럼 뒷골목 세계의 판타지를 담지 않는다.

동향의 또래 3명의 주인공이 나오지만, 그들은 갱스터 판타지 영웅이 아니다.

어쩌면 <비열한 도시> 혹은 <좋은 친구들>의 TV판에 가깝다.

적당한 리얼리티와 적당한 허구를 뒤섞은 드라마가 될 예정이다.

조폭세계의 미화는 철저히 배제하기로 했다.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고 담담하게 묘사할 예정이다.

허세, 허영, 가식, 배신이 기본 가치관인 뒷골목 세계.

깡패라는 직업을 가진 이의 곡예와 같은 직장생활(?).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한순간 인생이 폈다가 한순간 몰락하는 삶.

경찰과 검찰에 의해 과장된 폭력조직 두목의 신기루 같은 권위.

깡패라는 잘못된 직업을 선택함으로써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인간 군상들의 삶을 침착하고 담담한 시선으로 보여주는 것이 드라마의 기본 방향이다.

조폭 세계 곳곳에 숨겨져 있는 아이러니를 부각함으로써 시청자는 자신의 가치관을 확인해 볼 수가 있는 동시에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결국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죽음을 맞이하거나, 가장 험한 교도소에 수감되거나, 일반인보다 더 비참한 말년을 살게 되니까.

온갖 나쁜 일을 저지른 이들이 잘 먹고 잘았다거나 개과천선했다고 하면 그것만큼 불쾌한 경험도 없을 것이다.

비록 주인공이라 할지라도.

어쨌든 한국 조폭계에 최초로 회칼을 등장시키고 소위 ‘연장질‘이라는 방식의 패싸움을 선보인 것으로 알려진 인물을 중심으로 당시의 정치·사회상까지 함께 담는 일종의 현대역사물이다.

여담으로 이 드라마는 한국 케이블TV에서 방영하지 못한다.

첫 화부터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주인공 중 한 명이 집단 강간범죄를 벌이는 장면이 나오고 그 범죄에 가담했던 똘마니가 그 첫 화 마지막에 기차에 치어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총 12화로 제작되는 드라마는 매회 업다운을 오가는 롤러코스터를 탄다.

누군가 비참한 삶으로 추락하는 것을 통해 누군가의 몰락을 통해 주인공들이 위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폭력 수위보다 그 후폭풍에 주로 집중한다.

한 조직원이 선배에게 배운 대로 회칼로 경쟁 조직원의 허벅지를 찌른다.

그런데 경쟁 조직원이 과다출혈로 사망하고 만다.

허벅지를 찌르면 괜찮다는 말만 믿고 감행하는데, 하필 동맥이 지나가는 허벅지 뒤쪽을 찔렀기 때문에 상대가 죽어버린다.

그것을 통해 조직원은 살인혐의로 종신형을 살게 된다.

조폭계에 투신하자마자 평생을 교도소에 수감되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어떤 화에서는 라이벌 조직 두목의 아킬레스건을 잘라 불구로 만드는데, 그 과정에서 라이벌 두목이 파상풍으로 죽을 위기에 처한다.

겨우 목숨을 건진 라이벌 조직 두목이 드라마 후반 회차에서 주인공 중 한 명에게 자신이 받은 고통을 고스란히 되돌려준다.


“아참, 조폭 두목들이 개처럼 노는 거 묘사해도 돼?”

“적나라한 나체가 등장하진 않겠지만, 성적인 묘사 부분에서 한국 드라마 수위를 가볍게 뛰어넘게 묘사하려고요.”

“로맨스나 브로맨스는?”

“절대 없어요. 사랑도 거래에요.”


드라마 속 등장하는 화류계 여성들은 저마다의 욕망에 따라 주인공들에 빌붙고, 이용하려하고, 배신하기도 하는 등 복잡 다난(多難)한 행각을 벌인다.


“<Carlito's Way>도 좋고 마르틴 스콜체제의 영화를 레퍼런스로 해도 좋고. 엄숙하고 비장한 척 똥폼 잡는 드라마는 싫어요.”

“류 감독이 기획한 <소프라노스> 같이?”

“좋죠. 그 정도 대본이 나와만 준다면.”


류지호가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린 냉소적인 하드보일드 느와르의 정점 <The Sopranos>(2007년 종방)나 2010년 방영 예정인 마르틴 스콜체제의 TV시리즈 <Boardwalk Empire)>처럼 리얼리즘을 중시하면서 인간적인 모습, 추잡한 모습 등 일상의 조폭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작정이다.


“암튼 한국산 드라마라고 절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수위가 셀 예정이니까. 자기검열 없이 막 갈기세요.”

“.....음.”

“한국의 다솜 채널이 아니라 미국의 JHO/DirecTV에서 서비스 되는 채널이나 MSM의 유료케이블 채널에서 방영을 고려하고 있어요. StreamFlicks의 오리지널 드라마로 최초 공개 될 수도 있고.”


영미권에서 방영되기에 흥행은 물 건너간 것이겠지만.


“영어로 더빙해서?”

“글쎄요.”

“완성은 해 놓고 한국의 방송심의 기준에 맞춰서 편집한 후 다솜 채널에서 방영할 수도 있잖아. 그리고 나중에 해외판을 따로 편집하던가.”


추후 StreamFlicks가 한국에 진출한 후에 감독판을 따로 재공개하는 방안도 염두에 두고 있긴 했다.


“류 감독이 손대는 작품이니까 무조건 한국 드라마 제작비 기록을 갈아치울 것이고. 제작비 회수하려면 방송을 해야지. 그래야 해외에 수출도 될 것이고.”


다솜과 Aram 프로덕션에 피해가 안 가도록 하려면 방송을 하긴 해야 할 터.


“다솜 관계자들과 논의해서 결정해야겠죠.”


류지호는 워킹타이틀 <Gang's Life>를 미국의 TSTV와 TBO 기준으로 작업할 계획이다.

폭력, 살인, 강간, 선정성, 노출, 욕설, 남성우월주의 등이 빠지지 않고 난무할 터.

온 가족이 함께 보는 유쾌한 드라마는 절대 아니다.


“알아서 류 감독이 잘하겠지.”

“형님이 잘해야죠. TV시리즈의 성패는 대본에 달려 있는데.”

“암튼, 초고까지는 검사 안 받는다?”

“언제는 받았구요?”


송진한은 90년대 <두목> 시나리오를 집필하기 전에 취재를 많이 해뒀다.

나래안전에는 조직폭력 세계에 몸담았던 이들도 많고, 휴민트에 뒷골목 세계에서 살아가는 이들도 많다.

그들의 협조를 받게 되면 뒷골목 세계의 살아있는 생활담을 충실히 대본에 담을 수 있다.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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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할리우드!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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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 Christmas Cargo. (12) +8 24.03.22 1,425 82 27쪽
808 Christmas Cargo. (11) +3 24.03.22 1,268 63 26쪽
807 또 작두 타는 영화 제작해야 하나? +7 24.03.21 1,446 81 23쪽
806 Christmas Cargo. (10) +3 24.03.21 1,289 74 24쪽
805 Christmas Cargo. (9) +8 24.03.20 1,398 81 26쪽
804 Christmas Cargo. (8) +4 24.03.20 1,317 69 23쪽
803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2 24.03.19 1,455 83 23쪽
802 가온그룹의 선전 덕분 아니겠습니까? +3 24.03.18 1,518 91 31쪽
801 Christmas Cargo. (7) +9 24.03.16 1,493 95 23쪽
800 Christmas Cargo. (6) +10 24.03.15 1,422 86 23쪽
799 Christmas Cargo. (5) +3 24.03.15 1,292 65 25쪽
798 Christmas Cargo. (4) +8 24.03.14 1,440 81 25쪽
797 Christmas Cargo. (3) +3 24.03.14 1,351 75 25쪽
796 Christmas Cargo. (2) +8 24.03.13 1,511 82 25쪽
795 Christmas Cargo. (1) +8 24.03.13 1,493 78 24쪽
794 안 가본 길을 걷고 있었기에. (3) +6 24.03.12 1,615 88 23쪽
793 안 가본 길을 걷고 있었기에. (2) +3 24.03.11 1,600 86 23쪽
792 안 가본 길을 걷고 있었기에. (1) +5 24.03.09 1,663 82 21쪽
791 광폭행보(廣幅行步)! (4) +3 24.03.08 1,632 87 27쪽
790 광폭행보(廣幅行步)! (3) +2 24.03.07 1,616 80 25쪽
789 광폭행보(廣幅行步)! (2) +4 24.03.06 1,668 79 26쪽
788 광폭행보(廣幅行步)! (1) +3 24.03.05 1,726 85 27쪽
787 빅딜 해볼 생각 없어? (4) +5 24.03.04 1,659 86 24쪽
786 빅딜 해볼 생각 없어? (3) +8 24.03.02 1,677 83 22쪽
785 빅딜 해볼 생각 없어? (2) +6 24.03.01 1,645 77 22쪽
784 빅딜 해볼 생각 없어? (1) +4 24.02.29 1,635 78 22쪽
783 고집쟁이는 아니지만, 지나친 완벽주의자... +9 24.02.28 1,591 79 30쪽
782 돈을 번다는 건 분명 좋다! (2) +2 24.02.27 1,565 82 23쪽
781 돈을 번다는 건 분명 좋다! (1) +3 24.02.26 1,597 83 25쪽
780 이 사업은 무조건 된다! +11 24.02.24 1,680 80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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