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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의 서재

사막의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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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922
작품등록일 :
2020.05.11 21:30
최근연재일 :
2021.01.1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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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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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글자
12쪽

115. 구원자 2

DUMMY



01.

오조가 사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방인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멀뚱히 서서 달려드는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차마 움직일 수가 없겠지. 나도 그 힘에 당했을 때 그랬으니까.' 오조가 생각했다.


오조가 허리춤 옆에 꽂아놓았던 (원래는 뒤에 꽂았다가 아이를 업은 동안 잠시 옆으로 돌려놓았던) 단도를 빼들었다. 그의 모습은 비장했다. 그가 허리 높이에서 단도를 꽉 틀어쥐었다.


오조는 전혀 머뭇거리지 않았다. 어떤 실패의 가능성도 의심하지 않았다. 눈앞의 이방인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고 생각하면서도 주저하지 않았다. 무엇이 그렇게 믿음직스러웠길래?


물론 실력에 자신이 있기도 했다. 오조는 알라딘이 가장 신뢰하는 병사이자 암살자였다. 피를 보는 것이 대부분인 임무의 나날 속에서 그와 므시엘은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 살인에도 등급이 있다면 그는 지저인 중에서도 일류였다.


하지만 지금 오조가 무엇보다 믿는 것은 므시엘이었다. 정확하게는 그가 펼쳐놓은 '마나의 돔'이었다. 지금 이방인을 꼼짝 못 하게 만들고 있는 진홍색의 마나. 이것은 알란이 가진 <중력의 힘>과도 시알라가 가진 <치유의 힘>과는 다른 것이었다.


굳이 비슷한 것을 찾자면 사막의 마녀, 로즈의 <가시의 힘>과 유사했다. 불길하고 흉흉하다는 점에서. 그녀는 그 힘으로 아우바의 불쌍한 경비 대원들을 영원히 잠재운 바 있었다.


마나는 강력한 의지의 발현이자 간절한 염원의 실현이다. 므시엘이 강력하게 주장하고 절실하게 소망하는 것은 <속박>이었다.


'왜냐면 내 동료는 집착이 어마어마한 희대의 싸이코시거든. 뭐든지 마음에 들면 절대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최악의 땡깡쟁이란 말이지.'


오조가 단도를 힘껏 끌어당기며 생각했다. 이방인을 '속박'한 마나의 돔까지 이제 두 걸음 남짓. 오조는 자연스럽고 신속하게 스텝을 밟으며 돌격에서 공격으로 태세를 전환했다.


'절대 움직이지 못할 거다. 지금 서서 견디는 것만으로도 대단하긴 해. 보통 사람이라면 그 안에서 숨도 쉬지 못했을걸. 대단한 왕실 가드들도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으니까.'


오조가 붉게 드리워진 돔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있는 힘껏 단도를 이방인의 품으로 내질렀다. 지저인 암살자의 검이 까만 날을 번뜩이며 사자를 향해 날아들었다.


'까딱하면 나도 휘말릴 수 있겠는데.'


오조가 마지막 순간에 생각했다. 물론 그가 걱정해야 할 것은 그게 아니었다.



02.

오조가 사자를 향해 돌진하는 동안 므시엘은 품에 안은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동안 등 뒤에 나타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건방진) 이방인에게 정신을 팔리긴 했지만 그는 이제 다시 아이에게 온전히 정신을 집중했다. 뒤에서 일어날 일에 대한 걱정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오비에. 내가 널 이제 어떻게 할 건지 아니? 너에 대한 내 믿음을 쓰레기처럼 내던져버린 너를 말이야."


므시엘은 아이를 바라보았다가 다시 한번 힘껏 끌어안기도 하면서 나지막이 속삭였다.


"오비에. 나는 널 철석같이 믿었단다. 네가 말한 그 빌어먹을 지름길도 완전히 믿어버렸거든. 마치 엄마...... 엄마를 보는 아이처럼 말이야. 그런데 넌 어떻게 했지? 말해보렴. 나한테 어떻게 했냐고."


므시엘은 악의가 하나도 없는 정신병자처럼 굴었다. 그저 뇌에 자리 잡은 어떤 작은 벌레 때문에 살인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변태 사이코 살인마처럼 말이다. 오비에를 끌어안은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힘을 조금만 가해도 펑 하고 터져버릴 작은 아기 새를 쥐고 있는 듯 그의 손이 부들거렸다.


하지만 오비에는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 눈만 마주쳐도 미쳐버릴 것 같아서 애써 고개를 돌리던 때와는 달랐다. 아이의 눈은 명백히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심지어 그에게 관심도 없는 듯했다. 그가 안고 있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린 것 같았다.


오비에는 므시엘의 등 뒤에서 벌어지는 광경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뭘 하는 거야! 내가 얘기하고 있는데, 너 대체......"


그때 므시엘의 등 뒤에서 벌떼가 날아드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바위가 깨지듯, 산이 무너지듯 엄청난 굉음이 났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돌아볼 필요도 없었다. 뭔가가 뒤에서 날아들었고 므시엘을 지나쳐 (바로 옆을 지나친 것은 아니지만 날아가면서 일으킨 바람 때문에 바로 귓가를 스친 것만 같았다.) 중앙 계단의 난간을 부수고 벽에 처박혀 버렸다.


오비에의 눈이 경악으로 크게 부릅떠졌다. 뭘 봤는지는 몰라도 엄청난 광경에 입도 떡 벌어졌다. 아이와 반대 방향을 보고 있는 므시엘의 눈도 한없이 크게 떠졌다.


벽에 처박힌 것은 오조였다. 오조가 들고 있던 단도의 까만 날이 산산조각이 난 채로 오조의 오른손과 가슴 곳곳에 박혔다.


"......"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말문이 막혔을 때 대신 입을 연 것은 등 뒤의 이방인이었다.


"아이 내려놔라. 경고는 이게 마지막이다."


사자가 말했다.



03.

므시엘이 아이를 내려놓았다. 오비에는 사내의 품에서 떨어지자마자 얕은 숨을 폭하고 내쉬었다. (아이는 아직도 그 이름을 모르는) 패닉과 무한한 절망감에 사로잡혔던 아이는 이제야 '구원'이 내려왔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구원자는 위대한 천정보다 더 멀리 바깥 세계에서 온 사람이었다.


'왕자님의 손님으로 온 아저씨야. 지저분한 로브를 입고서 바깥에서 왔다는 사람. 화가 많이 났나 봐. 파란 눈에 불꽃이 일어났어.'


오비에는 당장이라도 구원자에게 달려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므시엘은 아이를 내려놓기는 했지만 놔주지는 않았다. 그는 그저 몸을 돌려 건방진 이방인의 면상을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의 손이 아이의 어깨를 단단히 틀어쥐었다. 사후 경직이 온 시체처럼 창백하고 딱딱하게 굳은 그의 손가락이 오비에의 어깨에 파고들었다. 아이가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너...... 누구야?"


므시엘이 천천히 입을 뗐다. 처음 말을 배우는 아이와 같이 음절 하나하나를 확인하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누구라도 알 것이다. 그가 지금 폭발 직전이라는 것을.


"알 것 없다."


아뿔싸. 사자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므시엘은 실핏줄이 터져버린 충혈된 눈을 한 번 더 크게 떴다. 윤곽이 희미한 사내의 가느다란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뭐?"


"알 것 없다고 했다." 사자가 말했다.


"그보다 아이를 놔주라고 했는데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구나. 말을 못 알아듣나?"


므시엘은 이제 분노로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사자는 일부러 그의 성질을 돋우었다. 사내의 분노와 모든 관심을 아이에게서 자신으로 돌려놓기 위해서였다.


"네놈 친구가 저리 처박힌 것이 보이지 않나? 살살 내질렀으니 죽지는 않았을거다. 그러니 네놈 친구 데리고 이만 꺼져라."


사자가 계속해서 므시엘의 화를 키웠다. 미친놈에게 붙잡힌 사람을 구하기 위한 투박하지만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단,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조건이 있었다. 미친놈들은 언제든지 발광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신속하게 제압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공화국의 검>처럼 말이다.


그때 므시엘의 표정이 일순간 창백해졌다. 숨을 코로 킁하고 내쉬더니 오비에의 어깨를 쥐고 있던 손을 뗐다.


"가. 꺼져."


므시엘이 말했다. 오비에는 자신에게 말하는 것인지 모르고 멀뚱히 서 있었다. 므시엘이 아이를 손으로 재차 떠밀었다.


"애야. 꺼지라고."


맙소사, 정말? 의아한 것도 잠시 오비에가 눈앞의 구원자를 향해 부들거리는 발을 내디뎠다. 혹시라도 다시 그가 붙잡을까 봐 잔뜩 경직된 몸으로. 그리고 뛰었다.


그와 동시에 므시엘이 옆구리에 차고 있던 나이프를 재빠르게 뽑았다. 아이의 무방비한 등이 훤하게 드러났다. 딱히 살인을 즐기지는 않아도 배신자들의 뱃가죽을 쑤셔 놓는 일은 아주 즐거웠던 므시엘. 지저인 암살자에게 아이의 작은 몸에 나이프를 꽂는 일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였다.


아무렴. 아주 쉬운 일이었다. 진짜 노림수를 숨기고 이방인의 정신을 빼앗기 위해 던지더라도 얼마간 거스름이 남을 만큼,


쉬운 일이었다.



04.

과연 이방인의 반응은 몹시 빨랐다. 아이를 내려놓고 떠미는 순간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교활한 놈 같으니. 어차피 내 말은 믿지도 않았으면서.'


이방인의 공격은 빤했다. 그가 들고 있는 까만 사슬. 마할란트라의 까만 암석으로 만든 사슬을 쓸 것이다.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지만 저걸로 오조를 무슨 돌가루 포대 던지듯 날려버렸다. 귓가에 일었던 바람. 벌떼가 날아드는 것 같았던 섬찟한 소리. 모두 놈이 사슬을 휘둘렀기 때문이었다. 도저히 믿을 수는 없지만.


'하지만 이건 어떻게 막을래?'


므시엘은 아이의 정확히 뒤에 서 있었다. 아이는 다가온 구원이 썩은 동아줄인지도 모르고 신나서 달려가고 있었다. 아이의 등에 나이프를 꽂아 넣기까지 1, 2초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이걸 대체 어떻게 막을 거냐고?


그리고 진짜 노림수. 므시엘은 나이프를 뽑는 것과 동시에 반대 손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마귀의 혓바닥처럼 시뻘건 마나, <속박의 힘>을 이방인을 향해 방출했다.


아까는 어떻게 마나의 돔 안에서 움직였는지 모르겠다. 아마 등을 돌리고 있어서 힘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을 뿐이리라. 지금껏 한 번도 배신한 적 없는 힘이지만 오늘 너무 많이 움직여서 좀 피곤했는지도 모르겠다. 오조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므시엘이 자신의 마나가 벽처럼 세워졌다가 이방인을 덮치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숨통을 조여주마. 겸사겸사 이 앙큼한 꼬맹이가 죽는 것도 보여주고 말이야.'


므시엘이 생각했다.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사자를 노려보며 생각했다. 다시 말하지만 눈 한번 깜빡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므시엘은 보지 못했다. 분명 눈 한번 깜빡이지 않았는데도, 공화국 검사가 까만 사슬을 휘두르는 움직임을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움직임이 더 빨랐다. 소리는 나중이었다. 벌떼가 아니라 천둥이 터지는 (지저인들은 한 번도 천둥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소리가 났다.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굉음이 바로 코앞에서 터졌을 때 므시엘은 그만 나이프를 던지는 것을 실수하고 말았다. 아이의 몸이 눈앞에서 뚝하고 떨어졌다.


떨어져?


므시엘이 의문을 떠올렸을 때 그 역시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마할란트라 지존의 보금자리, 도시의 왕궁 1층 로비 바닥이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05.

깜깜했다.


므시엘은 기절하지 않았다. 바닥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 그는 재빠르게 충격에 대비했고 어둠이 깔린 바닥에 무사히 안착했다. 고양이보다 훨씬 날렵한 몸놀림으로 바닥에 닿자마자 몸을 둥글게 말아 굴렀고 충격을 대부분 흘려냈다.


자신의 놀라운 임기응변에 뿌듯해할 틈도 없이 어둠 속 저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니, 애야? 그래. 크게 다친 곳은 없구나. 여기 잠시만 누워있거라. 뒤척거리면 안 된다."


아이의 웅얼거림.


"그래, 금방 돌아오마."


므시엘이 팔을 치켜든 채 가만히 어둠 속의 정적을 노려보았다. 부서진 잔해를 밟으며 천천히 걸음을 내딛는 소리. 호수 위 얇게 깔린 얼음이 깨지는 듯한 파열음. 놈의 손에 들린 무언가가 공기 중을 잔잔하게 가르며 달그락거렸다.


므시엘은 숨도 참은 채 어둠 속에서 곧 모습을 드러낼 놈을 기다렸다.


이윽고 푸른 안광(眼光) 두 개가 어둠 속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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