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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요 북해빙궁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JOON™
작품등록일 :
2024.06.05 13:18
최근연재일 :
2024.06.1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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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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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글자수 :
147,346

작성
24.06.11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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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6화

DUMMY

빙승기가 무공을 배운 시간은 겨우 한 달이지만, 빙궁주의 빠름은 몸의 통제를 잃고 얻은 것이라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누구보다 몸을 정교하게 움직일 줄 아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는 지금 같은 움직임을 설명할 수 없었다!


저것이 진짜 초절정 무인이었다.


‘내가 저렇게 될 수 있다고?’


빙승기는 도무지 그런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


다행인 것은 이어지는 공격이 없다는 것. 빙궁주는 쓰러져서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있는 빙승기를 앞에 두고 호신강기를 풀었다.


“쓸데없는 동작이 너무 많구나.”

“그런가요.”

“······하지만 나쁘지 않다.”


분명 초절정 고수의 입에서 나오는 칭찬이었는 데, 빙승기에게는 별로 와닿지 않았다.


“여전히 내게 배우고 싶으냐?”


빙승기는 빙궁주의 말에 고민이 되었다.


빙수련은 한 달 내내 지겨우리만큼 열과 성을 다해 빙승기를 가르쳤다. 왜 그를 죽이려고 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한 달간 그에게 쓴 시간과 정성은 진짜였다. 진짜 같았다.


진심이 아니라면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라면 절대 그렇게 못했을 거야.’


그렇게 차근차근 배우다보면 절정이라는 경지까지는 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절정이라는 경지도 만만하게 보인 건 아니다.


하지만 하루에도 그렇게 많은 것을 알려주는데,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빙수련도 아는 것을 모두 가르쳐주고 밑천이 털리지 않겠는가?


오늘 세운 작전도 빙수련과 대련 중에는 어찌어찌 통했단 말이다. 분명 빙승기는 절정이라는 경지까지는 닿을 수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 한 번의 대련으로 빙승기는 모든 자신감이 무너졌다. 대신 그 자리에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생각과 행동이 들어왔다.


죽음. 치열함. 살기 위한 몸부림과 도박. 같이 죽겠다는 마음가짐.


모두 빙궁주가 끌어낸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못했으면 정말로 죽었을 테니까.


“저도 궁금한 걸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해 보거라.”

“어머니는 저를 싫어하시나요?”


빙승기의 입장에서 빙수련은 완벽하게 믿을 수 없었다. 매우 아쉽지만 말이다.


‘목에 검을 들이민 사이잖아.’


그렇다면 빙궁주는 어떤가? 믿을 수 있는가?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말이 모든 경우에 통하는 게 아님을 빙승기는 잘 알았다. 고아였으니까.


“아니. 그렇지 않다.”

“그런데 왜 저는 그렇게 느끼는 걸까요?”

“나는······바쁘다.”


‘그것참 대단한 이유구만.’


빙승기는 속으로 헛웃음을 쳤다.


한쪽은 자신이 가진 모든 열과 성을 다해서 그를 가르쳤다. 어차피 죽일 대상이라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다른 한쪽은 그가 강해지는데 필요한 모든 자원을 밀어줬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후계자로 지정한뒤 북해빙궁의 기둥뿌리를 뽑아서 몸에 좋은 온갖 것을 해 주었다고.


‘그런거치고는 대하는 게 이상하지 않나?’


둘다 모순이 있었다. 그래서 빙승기를 혼란스럽게 했다.


“더 물어볼 것이 있느냐?”

“아뇨.”


‘보통은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묻지 않나? 내가 이상한 거야?’


하지만 당장 진실을 가릴 수 없다면, 당분간은 이런저런 생각은 멈추고 강해지는 데 집중하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닐 것 같았다. 당장 머릿속에서 갈무리할 것도 꽤 되었으니까.


이 한 번의 대련으로 무언가 아쉬웠던 움직임이나 해볼 만한 방법들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떠올랐다. 이 몸의 재능덕분인 것 같았다.


지금 떠오른 것이 희미해지기 전에 빨리 정리하고 싶다는 욕구 또한 분명히 존재했다.


‘이런 것들을 하나씩 고쳐나가다보면, 분명 어머니의 공격에 버티는 시간도 늘어나겠지.’


어쩌면 그게 강해진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그런데 사실 더 중요한게 있었다.


바로 빙승기는 자유롭게 빙수를 만들어 먹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너무나도 절실하게······.


어차피 누구를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다면, 누가 더 빙수를 만들어 먹는 데 적합한지 따져보기로 했다. 그러니 답이 나왔다.


그래서 그는 고민을 끝내고 빙궁주에서 대답했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빙궁주는 하루에 반 시진씩 빙승기의 수련을 봐주기로 했다.


빙승기는 빙수를 위해서 기꺼이 목숨을 걸 수 있는 인간이었다.



***



북해빙궁의 사십일대 궁주인 빙정희는 홀몸으로 본궁 한적한 곳에 있는 빙수련의 방을 찾았다.


딱히 기운을 숨기지도 않았기에 운기조식을 하던 빙수련은 그녀의 인기척에 천천히 기운을 갈무리했다.


하지만 주화입마에 걸려 폐인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몸 안을 야생마처럼 뛰어다니는 기운을 달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빙궁주는 그것을 끝까지 기다려주다가 입을 열었다.


“잘 가르쳤더구나.”

“원래 인수인계는 확실하게 해야죠.”


빙수련이 자세를 풀고 일어나며 말했다.


“하지만 왜 검을 쓰지 않는 거지?”


소궁주는 대련중 집요하게 장법만을 사용했다. 기억을 잃기 전과 달리.


허나 기억을 잃었다 하더라도 손에 잡힌 수없이 찢어지고 생긴 굳은살은 그대로일 텐데. 한 번이라도 검을 쥔다면 굳은살이 이끄는 대로 검을 휘두를 수 있어야 했다.


그게 바로 검수이니까.


“검법을 가르치지 않은 건가?”

“궁주님. 제 교육방식에 의문을 갖는 겁니까?”


빙수련이 어이없다는 듯 빙궁주를 째려보았다.


“아니, 한 달은 짧은 시간이고 장법을 그만큼 익혔다면 그럴 수도 있으니까······.”

“저는 모든 기본 무공을 가르쳤습니다. 특히 검법은 북해빙검 다음으로 빙백신검까지 가르쳤죠. 단지-.”


빙수련은 잠시 말을 멈췄다.


“소궁주는 모든 기억이 사라졌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사용하던 애검조차 알아보지 못했죠. 일시적인 기억상실이 아닐 거라 가정하셔야 합니다, 궁주님.”

“역시 그런 것이냐······.”

“성격도, 선호하는 무공도, 마음가짐도 모두 바뀌었습니다. 이제 완전히 다른 사람입니다.”

“나도 겪어서 알고 있다.”


소궁주는 오늘 패도적인 장법을 보여주었다. 고수는 무인의 움직임 하나에도 그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오늘 소궁주의 공격에는 빙궁주를 파괴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했다.


‘전에는 눈조차 쳐다보지 못했거늘.’


하지만 검수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중요한 건 바로 경지였다.


“가능성은 보았다.”

“그러면 이제 데려가서 잘 키워주십시오.”

“그렇게 완전히 손을 털려고 하지 말아라. 네가 아이의 사회적 부모가 아니겠느냐?”

“그런 거지 같은 단어는 도대체 어디서 들으신 겁니까?”

“내가 만들었다.”


빙궁주는 흠흠 하고 헛기침했다.


“그리고 어차피 아이의 호위일은 계속하는 것이니, 네 눈에 차지 않는 것이 보일 때마다 네가 가르쳐주면 좋겠지.”

“그.것.도 다른 사람을 붙여주시면 진심으로 감사하겠습니다.”


빙수련은 이제 빙승기의 교육에서 완전히 발을 빼고 싶었다.


“적당한 무인이 없어.”

“······.”

“······.”


왜 없는가? 빙궁주는 이유 또한 말해야 했으나 뒷말은 아꼈다.


하지만 말할 필요는 없었다. 빙수련은 이미 그 이유를 알고 있었으니까.


아니, 빙수련뿐 아니라 북해빙궁의 모든 무인이 아는 사실이었다.


북해빙궁에는 중원무림 어디서도 보기 힘든 초절정 고수가 한명 있지만, 절정이나 그 이하 경지의 고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렇다면 왜 부족한 것인가. 북해빙궁의 무공이 너무나도 난해하고 익히기 어려워서?


아니었다.


그건 모두 빙궁주의 손에 죽었기 때문이었다.


개파이래 최대 규모라 자부하던 북해빙궁의 전력은 십오년 전 그녀의 손에 이분지 일 아니 삼분지 일 수준으로 전락했으니까.


“여기 영약이다.”


아무튼 빙궁주는 품에서 가죽 주머니를 꺼내 주자 빙수련이 냉큼 받았다.


“오늘 들어온 북해신단 두 알이다. 못해도 이십년 치 내공은 될 거다.”

“잘 쓰겠습니다.”


빙수련은 누가 빼앗아 갈까 봐 냉큼 품에 넣었다. 이게 얼마 만에 만져보는 영약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깨달음은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 내가 얻은 깨달음이 너에게 맞지 않은 것이겠지. 여전히 소식이 없는 것을 보니.”

“알고 있습니다.”

“너와 나의 상황은 다르다. 너의 근본은 이곳에 있지 않으니까.”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빙수련이 살짝 정색하며 빙궁주의 말을 끊었다.


“언제 경지를 돌파해도 이상하지 않으니, 조급해하지 말거라.”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빙궁주는 이미 일찌감치 그녀가 초절정 무인이 되며 얻은 깨달음을 전수해 준 바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벽에 막혀 주저앉은 무인을 향한 어설픈 위로를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빙수련은 여전히 자신이 초절정에 오르지 못하리라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초절정이라는 절세의 경지가 지금도 눈앞에 있기 때문에.


그리고 젊은 나이의 절정 고수가 경지를 돌파하여 초절정에 오르는 장면 역시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었다.


빙수련 역시 세상에서 천재라고 불리는 존재였다. 뛰어난 오성과 근골을 갖고 태어나 준비된 상승무공과 영약, 무공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까지 타고난 그녀였다.


덕분에 지금껏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다양한 무공들, 사파들이나 비렁뱅이가 쓰는 잡기까지 한 번 본 것을 재현하지 못한 경우는 없었다.


그게 빙수련이 혼자서 북해빙궁의 다양한 무공을 빙승기에게 전수할 수 있는 비결이었고.


“그런데 아이는 끝까지 나에게 배우고 싶다고 하더군. 정말 네가 무언가를 한 건 아니겠지?”

“소궁주는 원래 궁주님의 인정만 구하는 아이였습니다. 알고 계시겠지만요.”

“······나약한 감정이야. 북해에서는 필요 없는.”


빙궁주는 빙승기가 단단한 얼음처럼 자라기를 바랐다. 가족 간의 정 같은 것은 무인을 약하게 만들 뿐이니까.


하지만 오늘 보여준 모습은 어떻던가? 분명 자신을 싫어하지 않냐고 물었지만, 빙승기는 그녀의 대답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럴 리가 없나.’


“그러다 후회하실 겁니다. 분명히요.”

“아무튼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란다.”


대화는 소통을 위한 것. 절대 좁혀지지 않을 주제는 다시 꺼낼 필요가 없다.


할 말을 마친 빙궁주가 떠나기전, 빙수련은 문득 부궁주가 떠올랐다.


“그런데 부궁주는 지금 뭘 하고 있습니까?”

“글쎄? 나도 그의 얼굴을 본지 꽤 되었다. 그도 경지를 올리기 위해서 폐관수련 중이니까.”

“얌전히 수련만 하고 있습니까?”

“겨울이다. 그렇지 않겠느냐?”

“궁주님은 그걸 믿습니까?”


빙수련이 보는 부궁주는 앞으로는 승복한 척하면서 뒤로는 그렇지 않은 남자답지 못한 자였다.


물론 빙궁주도 말 그대로 믿고 있지는 않았다. 부궁주가 그녀 뒤에서 몰래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건 짐작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빙궁주가 그에게 손을 댈 이유는 없었다.


그도 북해빙궁의 얼마 남지 않은 전력이었기에.


빙수련처럼 언제 초절정 경지에 올라서도 이상하지 않은!


그는 폐관수련에서 돌아올 때마다 경지가 눈에 띄게 올라가니, 빙궁주는 내심 빙수련보다 그가 먼저 초절정이 될지 모른다고 보고 있었다.


하지만 부궁주가 지금 어떤 건방진 마음을 먹었든, 빙승기가 궁주가 되면 그건 아무 의미 없는 것이 된다. 그렇기에 빙궁주는 건드릴 생각이 없었다.


순리(順理)란 것이 그렇다. 마땅히 일어날 일이 일어나면, 어긋났던 것들도 제자리로 돌아가는 법.


정파의 무공을 천마신교나 사파의 마공보다 높게 치는 이유도 순리를 따르기 때문이다. 순리를 따라야만 고고하고 거대한 자연을 몸에 담을 수 있는 것이다.


빙궁주가 원하는 것도 기실 알고 보면 세상이 순리대로 흐르는 것이었으니······.


그날 빙수련은 만년빙정을 소화하기 위해 기약 없는 폐관 수련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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