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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요 북해빙궁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JOON™
작품등록일 :
2024.06.05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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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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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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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6화

DUMMY

“나는 바쁘다.”


빙궁주는 빙승기의 제안을 듣고 업무를 볼 때와 같은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왔다.


기분 탓인지 등 뒤로 서늘한 냉기가 흘러나오는 것도 같았다. 실제로 빙궁주가 기운을 풀어 안그래도 추운 방안의 온도가 더 내려간 것이었다.


다만 빙승기가 무의식적으로 빙백신공을 운용해 냉기를 막고 있어 느끼지 못했을 뿐.


“북해에 안바쁜 사람은 없습니다. 궁주님.”


물론 빙수련도 거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 고수였다.


“앞으로 더 더 바빠질 예정이다.”

“바로 그런 행동이 소궁주에게 상처가 되는 겁니다. 다시 한 번 주화입마로 팔이나 다리 하나 못쓰게 된 후에야 바로잡으시겠습니까?”

“아직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궁주님! 이 멍청한 표정을 보십시오! 이 흐리멍텅하고! 죽은 생선 같은! 눈을 보면서도 느끼지 못한단 말입니까?!”

“저기요? 지금 제 얘기죠? 듣는 사람 생각은 안 하시나요?”

“나는 정말로 바쁘다······. 그리고 네가 있지 않느냐?”


빙궁주의 무표정한 가면은 빙수련의 공격에 서서히 깨지고 목소리는 작아졌다.


“소궁주를 주화입마에 들게 한 죄인이 어찌 다시 교육을 할 수 있겠습니까? 믿을 수 없다고 하셨지요? 예, 믿지 마십시오.”

“치사하게 지난 일을 끌고 오는 것이냐!”

“원래 가해자는 쉽게 잊고 살아도 당한 사람은 평생 못 잊고 사는 겁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지난 일을 끌고 오면 어떻게 건설적인 대화가 되겠느냐!”


‘하이고, 또 시작이네······.’


사람이 어떻게 지치지도 않고 싸울 수 있는 것일까? 어쩌면 저것이 무인의 필수자격일지도 모르겠다. 무공을 익히려면 포기를 몰라야 하니까.


하지만 빙승기는 아니었다. 그는 답답함에 찻잔에 남은 빙수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런데 빈속에 얼음만 들어가니 위가 성을 내기 시작했다. 슬슬 배를 채울 무언가가 달라고 요구했다.


“보십시오. 소궁주가 벌써 실망한 표정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배가 고파서 그런 걸 수도 있지.”


정답이었다. 아무튼 이번에는 빙궁주도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다.


“두 분 다 그만하시죠.”

“허면 이해해 주는 것이냐?”


다행히 이번에는 빙승기가 여인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았다.


“예. 저는 ‘어머니’가 바쁘다면 이해합니다. 물론 ‘어머니’에게 배우고 싶었지만요······. 하지만 ’어머니’도 안되고 스승님도 안 된다면······.”

“안 된다면?”

“수련을 안 하면 되지 않습니까?”

“제가 그러면 죽는다 말했습니다. 소궁주.”


물론 빙승기도 기억하고 있었다. 치매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안 도와주겠다 해서 하는 말입니다. 이 땅의 모두가 제가 죽기를 바라면 죽으면 그만이죠. 응 죽으면 그만이야 모르십니까? 바라는 건 그전까지는 편하게 있다 가고 싶다 이겁니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왜 그것도 못하게 하십니까?”


그의 말에 갑자기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빙승기가 옳았기 때문이었다. 둘은 지금 우선순위를 잊고 감정으로 일을 그르치는 중이었다.


그걸 한참 어린 아이에게 지적받으니 할 말이 없을 수밖에. 결국 무표정으로 방어하려던 빙궁주가 두손을 들었다.


“나는······누군가를 가르쳐본 적이 없다······. 지금 네 수준으로는 내게 배우다 죽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 것이다.”


아직 무공 수련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모르는 빙승기는 가장 무난한 대답을 골랐다.


“그러지 않으시겠죠.”

“검에는 눈이 없다.”


‘그럼 눈 달린 검도 있나?’


빙승기도 다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한 번 검을 목에 들이민 사람과 아닌 사람 중에 고르라면 당연히 후자였다.


그는 애초에 차악을 택한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결론이 어떻게 나는 겁니까?”


빙궁주도 답답한지 처음으로 휴 하고 짧게 숨을 뱉었다.


“조건을 걸겠다. 네가 정말 내게 배우고 싶다면 내가 가르칠 수준은 되어라. 적어도 내 일 합은 받을 수 있어야 수련이 되지 않겠느냐?”


빙궁주가 내린 결론이란 바로 유예였다.


“우선 한 달을 주마. 한 달 동안 수련이에게 배운 네 실력을 보겠다. 허나 눈에 차지 않는다면 다시 한 달을 더 배워야 한다.”

“궁주님!”


결국 이전처럼 빙승기를 전담해서 가르치게 생긴 빙수련이 반박하려 했다. 하지만 빙궁주가 빨랐다.


“너도 마찬가지다. 교육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아이의 경지를 돌려놓아라. 그때부터는 내가 맡으마.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지만, 초절정의 깨달음을 하나라도 줄 수 있다면 주는 게 맞겠지. 북해가 내려준 깨달음은 북해로 돌아가야 하니까.”

“그런 것을 제가 두고 볼 거라 생각하십니까?”

“이건 네가 끼어들 일이 아니야. 아니면 검으로 내 생각을 꺾어 보겠느냐?”


빙궁주는 검으로 깨달음을 얻어 초절정 경지에 올랐다. 여기가 북해가 아닌 중원이었다면 검후(劍后)라는 칭호를 받아도 이상하지 않았다.


허나 빙수련 역시 평생 검을 치열하게 파고든 검수였다. 그녀가 검으로 얻은 깨달음도 결코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빙수련은 입술을 깨물고 물러났다. 그만큼 초절정과 절정 사이에는 넘볼 수 없는 깊은 골이 있었다.


그제야 빙궁주는 상황을 정리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선 밖에는 폐관수련을 유지한다고 말해놓겠다. 그러면 한 달 뒤에 보자!”


신묘한 신법이라도 썼는지 빙궁주는 자리에서 순식간에 흩어지듯이 사라졌다. 하지만 빙승기의 눈에는 다급히 도망치는 것처럼 보였는데, 기분 탓일까?


어쩌면 기분 탓이 아닐지도.


빙승기는 이제 꽤 분한 것처럼 입을 앙다물고 있는 빙수련을 쳐다보았다.


‘나도 저 기분을 알지.’


그는 빙수련에게 절실히 공감했다. 빙승기도 회사에서 이런 식으로 은근슬쩍 일을 떠넘겨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빙승기는 모두 마음속에 담아두었다가 전부 되갚아주었지만. 확실하게!


하지만 대표새끼에게 듣기로 무협이라는 곳은 말과 정치질보다는 주먹이 앞선 세상. 아무 힘이 없는 그에게 지금 상황은 결코 좋게 흘러가고 있지 않음이 분명했다.


빙승기는 아직 영문도 모른 채 죽고 싶지도 않았다.


‘망한 거 같은데.’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또 속이 타서 찻주전자째로 남은 찻물을 얼려 빙수를 만들었다.


그리고 만드는 족족 계속해서 입으로 퍼넣었는데, 정신을 차렸을 때는 빙수련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빙승가가 민망하여 말했다.


“뭐, 갈 때 가더라도 빙수 한그릇 정도는 괜찮잖아······요.”

“······.”

“아니면 말고요.”


겨울이었다.



***



북해빙궁의 모든 사람은 ‘빙(氷)’이라는 성을 받는다.


북해에서 태어났지만 북해빙궁 소속이 아니거나, 밖에서 흘러 들어온 사람도 북해빙궁 안에 자리를 잡는순간부터는 빙이라는 성을 받아야 한다.


그것은 북해빙궁이란 세속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라는 의미다.


또한 북해의 지독하게 추운 날씨에서 살아남으려면 북해빙궁의 심법을 익히는 수밖에 없는데, 무공을 전수받는 순간부터 북해빙궁의 문도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모든 북해인은 빙씨를 받는 순간부터 자유롭게 살 자유를 빼앗기고 고유의 임무를 받는다. 그러나 자유보다 중요한 것은 생존이기에 상관없다.


이들은 오늘도 군말 없이 북해빙궁과 북해에서 가장 강한 빙궁주를 존중하며 살아간다.


중원 출신의 그럴듯한 별호까지 있었던 절정 고수 빙수련 또한 그전에는 다른 이름이 있었다. 그런 그녀도 지금은 빙씨 성과 소궁주의 호위라는 임무를 받은 여인일 뿐이었다.


“소궁주.”

“소궁주!”


그래서였을까?


빙승기는 갓난애기때부터 돌봐온 빙수련의 목소리를 들으면 항거할 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


분명했다. 그의 몸은 빙수련을 어려워했다. 빙수련의 기분을 살피고, 그녀의 기분에 따라 심장 박동이 올라가기도 했다.


‘그러나 두려운 것은 몸의 기억이지 나는 아니니까!’


그리고 실제로도 이겨낼 수 있었기에, 빙승기는 자신있게 망설임을 뿌리치고 움직였다.


“또 틀렸습니다.”


하지만 아니었나보다.


“구결을 다 외웠다 하지 않았습니까?”

“죄송합니다······. 스승님.”


소궁주 전용의 수련동에서 빙승기는 목검을 내려놓고 숨을 골랐다. 이게 벌써 몇번째 지적인지 셀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앉은자리에서 북해빙검(北海氷劍)이라는 검법의 구결을 듣고 그 자리에서 외우라는 억지를 이정도면 많이 따랐다고 생각했다.


구결은 한두문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처음 듣는 노래의 가사도 들으면서 동시에 다 기억하라고 하면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래도 이정도나 머리에 집어 넣은 걸 보면 이 몸의 기억력은 아주 좋은 편이었다!


‘원래 내 몸도 이렇게 기억을 잘했으면 의사가 됐겠다!’


“스승이라고 부르지 마십시오.”

“그러면, 선생님?”

”······빙 호위라고 부르십시오. 평소에는 그렇게 부르셨습니다. 저는 북해빙궁의 무공을 대리로 전달해드릴 뿐, 소궁주의 스승은 아닙니다.”

“예, 빙 호위님.”


이쪽 세상에서 스승과 선생은 다른 의미라고 있는 걸까?


“그냥 빙 호위입니다.”

“그러지요. 빙 호위······.”


빙승기는 호칭을 내리면서 빙수련의 눈치를 살폈다. 왜, 저번에도 뺨을 때렸지 않은가?


비록 불가피한 상황이었다고 해도 그는 이곳 사람들의 대하는 방식이 좀 거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목에 칼도 들이미는 사이인데 뭔들.’


“처음부터 시작하시죠.”


빙수련의 주문에 빙승기는 다시 자세를 잡았다.


사실 그는 생사여탈권이 남의 손에 있다는 이유로 기분이 아주 더러웠다. 고아였기 때문이다.


고아라는 환경은 남들 입맛대로 휘둘리기 딱 좋았다.


멋대로 다가오고, 멋대로 떠나고.


멋대로 어떤 모습을 기대하고, 멋대로 실망하고.


멋대로 뒤통수치고, 멋대로 돈을 떼어먹거나 말을 바꾸는 게 일상이었단 말이다.


그런 거지 같은 상황에서 꾸역꾸역 기어올라와 원하는 직업까지 얻었는데, 다시 이전보다 못한 상황이 되었으니 환장하지 않는 게 이상했다.


만약 손으로 빙수를 만드는 능력마저 없었다면, 빙승기는 될대로 되라며 난장판을 피웠을지 모르겠다.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침착하게 빙수련의 지시를 따랐다.


그편이 합리적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참았다가 언젠가 한 방 먹여주기 위해서.


‘두고봐라.’


빙승기는 군자의 복수는 십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다는 말을 좋아했다. 그것이 고아로써 자존심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남았기에 알바에서 올라와 제품 개발이라는 중요한 일을 맡은 정규직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보다 못나고 월급만 축내던 무능력한 놈들을 다 쳐내고 말이다. 빙승기는 이번에도 분명 잘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소궁주. 북해빙궁의 검법은 하나가 아닙니다. 북해빙검 다음으로 빙백신검(氷白新劍), 북해수라검법(北海修羅劍法)으로 넘어가야합니다.”

“참 많네요.”

“그것만이 아닙니다. 권법, 각법, 조법, 장법, 지법, 검법, 봉법, 보법, 신법, 심법 모두 일정이상 익혀야 합니다. 소궁주가 기억나는 게 있다면 좋겠군요.”

“그런데 이렇게 많은 걸 주입식 교육으로 가르치면 아이 정서에 좋지 않습니다.”


빙승기는 앞으로 배울 것들의 이름만으로도 넌덜머리가 나서 말했다.


“소궁주.”


빙수련이 다시 항거하기 힘든 목소리로 불렀다.


“옙, 빙 호위.”

“누군가 가르쳐줄 사람이 있다는 복을 기꺼워하십시오. 이 세상에서, 그렇게 태어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뿐이니까.”


빙승기는 할 말이 없어져 입을 다물었다.


그가 살면서 누군가 자신을 이토록 집요하게 가르쳐주려고 했는지 떠올릴 필요도 없었다.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배워서 남 주는 것도 아니고, 하면 되지 않습니까?”


물론 운공이니 오행 같은 난생처음 듣는 개념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좋은 마음가짐입니다. 소궁주는 앞으로 빠르게 잊은 기억을 되찾아야 합니다.”

“예~. 엄청 막막하지만 말이죠.”

“괜찮습니다.”


빙수련은 정말 괜찮은 표정으로 벽에 세워진 목검을 들었다.


“몸을 답을 알고 있으니까.”

“그거 절대로 좋은 의미로 쓰이는 말이 아닌데요?”


그리고 빙승기는 저 목검이 얼마나 단단한 지 알고 있기에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기분 탓입니다. 소궁주는 기억을 모두 잃었지 않습니까?”

“그래도 상식이라는 게 있는 건데······.”


빙승기는 또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북해인의 상식이란 강해지지 않으면 죽는다. 그뿐입니다. 검이 가야 할 곳으로 가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겪어 보시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번개처럼 빙수련의 목검이 빙승기를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빙승기의 시야가 하얗게 변했다.


오세요, 북해빙궁······.


폭력이 멈추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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